소설리스트

외과의사 엘리제-50화 (50/194)

00050  2-5 변곡점  =========================================================================

50화.

[2막 : 小和田 雅子???]

[2-5장 : 변곡점 (4)]

“또 죽었군.”

테레사 병원의 젊은 교수 그레이엄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몇 명째지?”

“총 4명이에요.”

간호원이 답했다.

“흠…….”

그레이엄은 고민이 되는지 책상을 두드렸다.

“고약한 일이군. 설사병으로 이틀 만에 4명이나 죽다니.”

“원래 쇠약한 노인들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간호원의 의견에 그레이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빈민들이다. 심한 위장관염 즉, 설사병으로 사망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의사로서의 감이랄까?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는 시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뻣뻣이 굳은 시체. 영혼이 떠난 그 주검은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경험한 의사가 보기에도 섬뜩한 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체 옆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존재가 한 명 서 있었다.

백금발의 인형처럼 예쁘고 여린 소녀였는데, 시체는커녕 피 한 방울만 봐도 기절할 것처럼 생겼으면서 커다란 눈을 똑바로 뜨고 시체를 살피고 있었다.

소녀, 엘리제에게 그레이엄이 물었다.

“어떻습니까, 데임 클로랜스? 특별한 점이 있습니까?”

그는 이전과 다르게 깍듯한 경어를 사용했다.

“아, 선생님. 그냥 이전처럼 편하게 말씀 주셔도 괜찮아요.”

엘리제는 그 경어가 부담스러워 말했으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선을 그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데임께서 저에게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하지만…….”

사실 그레이엄의 말이 맞았다.

엘리제는 작게는 황실에서 내린 기사 작위의 소유자이며, 크게는 대 클로랜스 가문의 직계, 동시에 황태자비로 내정되었다 여겨지는 이다.

신분으로만 따지면 일개 몰락 귀족 출신인 그레이엄보다 까마득히 높았다.

‘그래도 예법을 떠나 너무 선을 그으시는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레이엄의 태도는 단순히 예를 차리는 것이 아니었다.

저건 선이고 벽이었다. 자신을 향한.

‘정체를 숨겨 배신감이 커서겠지? 다 내 잘못이니 뭐라 할 말이 없구나.’

엘리제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가 선을 긋는 이유는 아마 그것 때문인 것 같았다. 정체를 숨겼던 것.

정상적인 도제 생활을 위해 정체를 숨기는 게 불가피했었지만, 자신의 잘못이 맞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언젠가 서운함을 풀어주실까?’

그런데 그녀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레이엄은 단순히 그런 이유로 선을 긋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그가 중간중간, 아무도 모를 때 자신을 어떤 갈망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혹시 이상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데임?”

“아…….”

엘리제는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탈수가 심해요.”

“그야 당연히?”

그레이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위장관 염(Acute gastroenteritis), 설사병으로 사망했으니, 탈수가 동반되는 게 당연했다. 그런 뻔한 사실을 왜 언급하는 거지?

하지만 저 데임 클로랜스의 의견이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한 그레이엄은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임상 경과와 비교해 탈수가 너무 심해요. 패혈증은 거의 동반되지도 않았는데도요. 그리고 이상한 점은.”

엘리제는 주저하더니 말했다.

“최근 사망한 4명 모두가 전부 그래요. 모두 질환의 양상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탈수가 심해요. 마치 모두 어떤 특별한 질환을 똑같이 앓기라도 한 것처럼.”

“……!”

그레이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말의 뜻은? 데임께서는 이들의 질환이 역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 것입니까?”

역병(疫病)! 다른 말로 돌림병, 전염병.

그 단어의 의미는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250만의 시민이 한 곳에 뭉쳐 사는 론도에서 죽음에 이르는 전염병이 돌면 사망자가 일이백 정도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일단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가능성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확인해 보면 좋겠습니까?”

“로즈데일 병원과 황실 십자 병원. 그리고 요크 병원, 크로이던 병원 등. 론도 시내에 어느 정도 시설을 갖춘 병원에 모두 연락을 해서 비슷한 증상의 사망자가 있는지 확인해 보면 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이들 사망자 주위에도 비슷한 설사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없는지도 확인하고요.”

그레이엄은 감탄했다.

엘리제가 말한 것은 현대 지구에서 사용하는 역학 조사 수단으로 간단하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지금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각 병원에 인편으로 연락만 해보면 되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레이엄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엘리제.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혹시…… 그 전염병이 유행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전 삶, 마침 이 시기쯤 론도에 대규모의 전염병이 유행했었다.

무려 10만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던 2차 론도 대역병 사건!

‘아니야. 확실하지 않아. 그리고 이전 삶에서 유행했다고, 이번에도 또 유행하란 법은 없잖아.’

사실 그녀는 당시 정확히 어떤 질환이 유행했는지는 모른다. 마침 론도에 없기도 했었고, 의학적 사실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이 설사를 심하게 앓다 사망했다고만 들었다.

‘설사병. 정말 당시의 그 전염병이 유행하는 거면 어떻게 하지?’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진실로 그 전염병이 맞는다면 지난 삶처럼 이번에도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이다.

어떻게 하지?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엘리제.”

그녀는 말했다.

“막아야지.”

당연한 결론.

“당시 무슨 질환이 유행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래도 막아야 한다.

지난 삶처럼 수많은 희생자가 생기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해내야 한다. 무려 10만이 넘는 이들의 생명이 걸린 일이니까.

다행히 자신에게는 여러 현대 의학 지식이 있다.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다른 문제지만, 이 전염병을 해결하면 폐하와의 내기도 이길 수 있겠구나.’

최소 수만 명이 넘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황제라도 그 생명의 가치를 부정하진 못하리라.

만약 전염병을 해결해 내기만 한다면 황제와의 내기는 필승이었다.

‘물론 최선은 전염병이 애초에 유행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만약 이전처럼 전염병이 도는 것이 맞는다면 반드시 해결하겠어.’

그래서 수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대재앙을 막고, 폐하와의 내기에서도 이겨 앞으로 황태자와 관계없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리라.

그녀는 그렇게 결연히 다짐했다.

***

그날 밤, 엘리제는 퇴근하던 중 뜻밖의 손님과 마주했다.

“일은 다 끝났나? 오래 걸렸군.”

서늘한 목소리, 금발의 푸른 눈, 가슴이 떨리도록 아름다운 얼굴.

그, 론이었다!

그가 병원 입구에 몸을 기댄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두근.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이었다.

두근. 엘리제의 가슴이 뛰었다.

‘너와 같이 보고 싶다.’

그때부터였다.

의사자격시험을 치르고 피카딜리에서 단둘이 공연을 본 날.

그날부터 론을 만나면 알 수 없이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엘리제는 그 떨림을 애써 가라앉히며 물었다.

“로, 론 님? 혹시 저 기다리신 거예요?”

“그래.”

“……어째서? 혹시 무슨 이유라도?”

“이유? 없다. 그냥. 그냥 보러왔다.”

“……!”

무뚝뚝한 말.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지난 3달간, 그는 종종 자신을 찾아왔다. 별다른 용무도 없이. 그냥.

그렇다고 찾아와서 특별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을 보고, 가끔 한적한 공원을 함께 걸었다.

“잠깐 시간 괜찮나?”

“아, 네. 그런데 무슨 일로?”

“너에게 할 말이 있다.”

“……!”

그 말을 들은 순간, 엘리제의 가슴이 다시 한 번 뛰었다.

할 말? 무슨?

‘혹시?’

밑도 끝도 없이, 망상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엘리제. 론 님이 날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는 자신에게 호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다.

그저 이유 없이 찾아와 같이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이렇게 자신을 찾아온단 말인가? 왜 맛있는 것을 사주고, 공연을 같이 보고, 시간을 보내 자신의 가슴을 떨리게 한단 말인가?

“잠깐 걷지.”

그는 늘 그렇듯 그녀의 답을 듣지도 않고 등을 돌렸다.

엘리제는 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혹시나 자신의 떨림이 그에게 새어 나갈까 걱정하며.

***

그들은 마차를 타고, 자리를 옮겼다.

테레사 병원 근처 피에르 지구는 빈민가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만한 장소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이 향한 곳은 테즈 강 인근의 공원이었다.

한창 공사 중인 거대 시계탑 근처의 그 공원은 연인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 유명했고, 그들도 지난 몇 달간 함께 산책한 적이 있었다.

“저…… 하실 말씀이란 게?”

강이 내려다보이는 벤츠에 앉은 엘리제가 물었다.

푸른 강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

하지만 남자, 론은 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의 눈동자에 그녀를 새겨 넣기라도 할 듯, 깊게.

그 깊은 눈빛에 왜인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물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그냥. 보고 있고 싶어서.”

“……!”

눈 하나 꿈쩍 않고 뱉은 그 말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놀리는 것인가 하고 그를 봤지만, 그의 눈동자는 진지했다.

그 진지한 눈빛에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남자는 정말.’

론은 가끔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낯 뜨거운 말을 던진다.

자신을 꿰려는 바람둥이의 수작인가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지난 몇 달간 만나본 그는 그런 수작을 걸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수작은커녕 여자를 대하는 게 굉장히 미숙했다. 마치 연애라곤 한 번도 안 해본 것처럼.

“그리고.”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이제는 볼 수 없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엘리제의 심장의 떨림이 멈추었다.

“……네?”

엘리제는 멍하니 반문했다.

그게…… 갑자기 무슨?

“사실 오늘은 할 말이 있어서 왔다.”

론이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웃는 듯하면서도 어딘지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무엇인가요?”

“작별 인사. 앞으로 너를 보러 오기 힘들 것 같다.”

“……!”

그 생각지도 못한 말에 엘리제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 어째서요?”

“2차 크림원정군. 그 원정군으로 참전할 예정이다.”

“……!”

엘리제는 입으로 손을 가렸다.

그렇다. 남자는 황실과 연관 있는 고위귀족. 그러니 2차 원정군으로 참전하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고위귀족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하기 위해 각 가문마다 최소 1명씩의 자제를 참전시키니까.

‘우리 클로랜스 가문도 큰오라버니가 참전하겠지.’

아직 작은오라버니, 크리스의 참전 소식을 못 들은 엘리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군요.”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엘리제는 고개를 숙였다.

조심히 갔다 오라고, 건강하라고. 덕담을 해줘야 할 텐데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입을 열면 가슴이 울컥할 것 같았다.

“로제.”

“…….”

“로제.”

그가 계속해서 불렀으나,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알 수 없이 요동치는 감정을 다스리느라.

왜 이럴까? 자신과 그는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그런데 그때.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얼굴에 와 닿았다.

“……?!”

서늘한 감촉.

그는 마치 깨지기 쉬운 보석이라도 만지는 것처럼 조심히 그녀의 얼굴을 자신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리곤 그녀를 바라봤다.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눈에 새기려는 듯.

============================ 작품 후기 ============================

내일 월요일 09:07분에 뵙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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