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2 론도 대역병 =========================================================================
[2막 : 小和田 雅子???]
[2-6장 : 론도 대역병 (2)]
***
엘리제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네.”
그레이엄은 조사 내용을 보고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최근 설사병에 동반된 심한 탈수로 사망한 환자는 저희 병원에서 4명. 그리고…… 론도 전체로 보면 79명입니다.”
“……!”
79명.
아무리 론도에 250만이란 시민이 모여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주로 어떤 병원에서 사망자가 나왔나요?”
“대부분 저희와 비슷한 숫자였으나 크로이던 지구에 있는 크로이던 병원에서 30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
“그리고 더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뭐죠?”
“점점 환자의 발생 속도가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저녁에 우리 병원에만 새로운 환자가 7명이나 왔습니다. 그리고 그중 3명의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다른 병원의 상황도 비슷한 듯합니다. 특히 크로이던 병원의 경우 수용 한계를 초과해, 우리 병원에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엘리제의 안색이 하얘졌다.
2차 론도 대역병(大疫病) 사건.
10만이 넘는 사망자를 냈던, 그 끔찍한 사건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전염병 소식은 곧 론도 전체를 강타했다.
환자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늘어나며, 신문사들이 앞다투어 보도했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전염병 창궐!]
[3일 만에 사망자 100명에 육박! 이 시간에도 기하급수적으로 환자가 늘어!]
[20년 전, 15만 명의 사망자를 냈던 론도 대역병(大疫病) 사건과 환자들의 증상이 유사해!]
전운의 불안이 가시지 않았던 론도가 한순간에 패닉에 빠졌다.
“다 도망가야 하는 것 아니야?”
“20년 전 역병이랑 유사하다고? 그때도 엄청 죽었잖아. 안 돼!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이 시대의 전염병은 그 무엇보다 무서운 재앙이었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한 번에 수천만 명의 생명을 앗는 흑사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했고, 전염병이 한번 돌 때마다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십만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이런 피해는 도시화로 인해 가속화되었는데, 많은 인구가 오밀조밀 모이며 전염이 쉽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세계 최고의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브리티아 제국의 수도 론도는 전염병에 가장 취약한 지역이라 할 수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황실에서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했다.
황제와 황태자, 그리고 수많은 대신이 비상 회의에 모여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갑자기 전염병이라니.”
황제 민체스터가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대신들이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았다.
“시민들을 대피시켜야 합니다.”
“어떻게 대피시킨단 말입니까? 론도에 사는 시민들의 숫자는 250만이 넘소. 발생한 지역을 폐쇄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대신들 모두 우왕좌왕할 뿐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행정부 공중보건부의 부장인 갈릭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중보건부 부장 갈릭입니다. 발언하겠습니다.”
그는 일반 시민 출신으로 행정부 부처의 부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과거 아카데미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의사시험에는 계속 낙방해 의사가 되진 못했지만, 당시의 지식을 살려 관련 부서에서 두각을 보였다.
의사가 공중보건부의 수장이 아닌 것이 의외로 비칠 수도 있지만, 사실 의사가 관련 부처의 수장인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그건 현대 지구도 마찬가지다.
“이 전염병은 과거 20년 전, 론도 대역병 사건과 같은 질환으로 보입니다.”
“허, 그런가. 큰일이군. 거의 15만에 가까운 사망자를 낸 전염병 아닌가.”
사망자가 15만.
너무 어마어마해 오히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은 숫자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 우리 공중보건부에선 당시 질환을 분석해 질병의 전파를 막을 방도를 마련해놓은 상태입니다.”
“정말인가?”
갈릭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사옵니다.”
“어서 그 방도를 말해보게.”
“20년 전의 전염병은 바로 독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독기?”
“그렇사옵니다, 폐하. 독기(毒氣). 그건 바로 나쁜 공기를 뜻하는 것인데, 론도 시내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발생한 쓰레기와 오물들로 인해 공기가 탁해지고, 악취가 발생하면서 이런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취를 제거하면 자연스레 전염병이 사그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가.”
자신만만한 말이었지만, 민체스터의 표정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독기라고? 정말로?’
20년 전, 대역병 때도 그는 황제였다. 15만에 달하는 시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다.
‘고작 악취를 없애는 조처로 그 끔찍했던 전염병을 없앨 수 있다고?’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는 의학에 문외한이었다.
일단 전문가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그런데 그 자리에서 황제 말고도 똑같은 의문을 품은 자가 있었다.
“정말 그런 조처로 이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가?”
차가운 목소리. 황태자인 린덴 드 로마노프였다.
갈릭 부장이 고개를 숙였다.
“네, 전하. 악취로 인한 전염병이니 악취만 없애면 이 역병은 없어질 것입니다.”
“악취로 그렇다고? 그런데 왜 설사 증상이 발생하는 것이지? 악취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이면 설사가 아니라, 폐렴이 발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
갈릭은 말문이 막혔다.
황태자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얼마 전 론으로 엘리제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던 것이다.
‘이런 상한 음식을 먹으면 설사병에 걸려요.’
‘설사병이라고?’
‘네, 입에 들어간 음식은 위장관으로 내려가거든요. 그래서 안 좋은 음식을 먹으면 장에 탈을 일으켜 설사를 발생시켜요.’
‘그래? 설사는 나쁜 공기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 물음에 그녀는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쿡쿡 웃었다.
린덴은 그 웃음을 떠올리니, 갑자기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얼마 전 봤었지만, 또 보고 싶었다.
‘아니에요. 공기를 마시면 폐로 가니, 나쁜 공기를 마셔도 폐렴이 생기면 생겼지, 설사는 생기지 않아요. 물론 피를 타고 장까지 와 설사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드문 일이라서.’
생각해 보면 당연한 발상이다.
공기는 폐로 가는데, 왜 설사병이 생기는가? 폐에서 대변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 그게…… 이건 저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라 의학계에서 내린 결론입니다.”
갈릭 부장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변명하듯 말했다.
사실 그가 말도 안 되는 공상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독기설.
당시 론도 의학계가 20년 전 전염병에 대해 내놓은 결론이었으니까.
아예 근거 없는 결론인 것은 아닌 게, 당시 사망자가 주로 악취가 많은 지역에 사는 주민이긴 했었다.
그때 황제가 말했다.
“일단 알겠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 자네가 말한 조처를 우선적으로 시행하게. 그리고 혹 다른 원인은 없을지 의학연구원 쪽에도 자문하고.”
“네, 폐하!”
“그리고 린덴.”
그는 아들을 바라봤다.
“이 일은 네가 총괄하여 맡는 것이 좋겠구나.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으니 꼭 잘 부탁한다.”
최소 수만.
어쩌면 수십만의 생명이 걸린 중요한 일이다 보니, 이 나라를 책임질 황태자에게 직접 맡기는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린덴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했다.
‘엘리제, 그녀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몇 번이고 기적적인 천재성을 보여준 그녀다.
어쩌면 그녀는 정확한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비상소집회의가 끝났다.
공중보건부의 부장 갈릭은 곧바로 자신이 이야기한 조처를 했다. 주요 발생 지역의 악취를 최대한 없앤 것이다.
원래 까마득히 오래 걸릴 일이었지만, 근위병의 대규모 지원을 받아 순식간에 처리했다.
하지만 호언장담과 다르게 전염병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사망자는 300명으로 늘어났다.
추가적인 환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대로라면 며칠 안에 사망자가 1,000명을 넘을 것이고, 20년 전의 그때처럼 수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안 돼! 죽고 싶지 않아!”
“이 론도를 떠나야 해!”
그런데 그렇게 론도가 공황에 빠지고 있는 그 순간이었다.
이 전염병의 정체를 정확히 진단해 낸 의사가 있었다.
테레사 병원의 작은 소녀 의사.
엘리제 드 클로랜스였다.
***
늦은 밤.
“독기가 아니에요.”
테레사 병원에서 엘리제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아니라고요?”
“네, 절대 공기로 인한 전염병은 아니에요.”
그레이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전염병은 20년 전, 론도 대역병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래서 의학계에선 이번 전염 사건의 명칭을 2차 론도 대역병으로 명명했다.
“데임, 20년 전의 전염병의 원인은 나쁜 공기 때문이었습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때도 독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공기 때문에 생긴 질환이면 폐렴 같은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야 해요. 이렇게 위장관, 설사 증상이 아니라.”
그래, 인플루엔자나, 조류독감, 사스, 스페인 독감 같은 폐렴성 질환이면 나쁜 공기가 원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설사병은 아니었다.
“이 병의 원인은 먹을 것, 정확히 말하면 오염된 물 때문이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진단을 생각했다.
‘이건 그 병이 분명해.’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한국을 포함한 웬만한 선진국에서는 자취를 찾기 어려운 질환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도 이 질환을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책에서만 봤을 뿐. 하지만 지구에서도 후진국에선 여전히 창궐하는 주요 전염병이었다.
‘도시의 발전 수준을 봤을 때도, 시기적으로 맞아.’
지구에서도 1800년대, 19세기에 수없이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던 전염병. 한국의 과거, 조선에서도 최소 50만 명 이상을 사망시킨 질환.
그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순간, 엘리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이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이 전염병이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어.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내버려 두면 끝도 없는 희생자가 나오겠지만, 발병의 원인, 진원지를 찾는다면 전염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다행이야.’
그런데 수만이 넘는 사람을 살릴 방도를 찾아낸 그녀의 얼굴이 씁쓸했다. 평소라면 활기에 반짝였을 텐데.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뭐가 좋겠어. 이걸 해결한다고 작은오라버니가 전장에 안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너무 다행이고 기뻤다.
하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슬펐다.
‘그래도 황태자 전하와의 약혼은 확실히 파할 수 있겠구나. 내기는 지킨다고 했으니.’
수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그 누구라도, 설사 황제라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아.”
평소라면 무척 기뻤을 것이다.
사람들의 생명도 구할 수 있고, 황태자와의 약혼도 파할 수 있고. 그래서 앞으로 펼쳐질 비극도 피하고, 원하는 삶도 살고.
하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단 하나. 작은오라버니 크리스를 어떻게 하면 전화(戰火)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였다.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그때였다!
그녀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굳혔다.
‘있어! 한 가지 방법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면서도, 작은오라버니가 참전하지 않을 방법이!’
그렇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전염병을 해결 후, ‘한 가지의 거래’를 황제에게 요구하면 된다.
오라버니의 군역을 면제해 달라는 거래는 아니었다. 그건 오라버니가 가문의 명예 때문에 거부할 테니까.
하지만 가문의 명예를 오히려 드높이면서도, 오라버니를 죽음의 위기에서 피하게 할 방법이 있었다.
‘지금 요구하면 폐하께서 절대 들어주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 전염병을 내가 해결해 낸다면? 그러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들어주실 거야. 그때 했던 내기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엘리제의 얼굴이 딱딱히 굳어졌다.
방금 떠올린 ‘방법’. ‘그 방법’을 시행할 때 자신이 어떤 일을 겪어야 하는지 떠올렸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내일 화요일 09:07분에 올라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