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과의사 엘리제-55화 (55/194)

00055  론도 대역병  =========================================================================

[2막 : 小和田 雅子???]

[2-6장 : 론도 대역병 (4)]

***

그가 그녀를 데려간 곳은 황궁에서 공무를 보는 용도의 건물인 리엔 궁이었다.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의학연구원의 교수, 황실십자병원의 명의(名醫), 공중보건부의 관료 등. 궁에는 전염병과 관련된 전문가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린덴은 고개를 끄덕여 건성으로 예를 받았다.

엘리제가 우는 모습을 봐서일까? 기분이 최악이었다.

“전하…… 근데, 저 소녀는?”

공중보건부의 부장 갈릭을 비롯한 여러 이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국가적 재난 사태에 대응하는 이 비상대책본부에 웬 소녀?

그런데 그녀를 알아본 이가 있었다.

“오, 데임 클로랜스! 어서 오시오!”

황궁 어의인 밴 자작이었다.

그는 희대의 천재로 이름난 엘리제를 반겼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자작님.”

“허허, 영애도 이 대책본부에 합류한 거요? 영애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터! 반갑소.”

그들의 대화에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모두 의학계에 발을 걸친 자들. 데임 클로랜스의 소문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저 소녀가 데임 클로랜스라고? 정말? 피 한 방울 못 보게 곱게 생겼는데?’

‘생각보다 더 어리잖아?’

그들은 불신에 찬 표정으로 엘리제를 살폈다.

희대의 천재라고 이름 높았는데,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왠지 소문이 과장된 것 같았다.

“전하, 그런데 데임 클로랜스는 어째서 이곳에 온 것입니까?”

공중보건부의 갈릭이 물었다.

황태자가 책임자로 있지만, 실무적으로 대책본부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그였다.

평민이지만 남몰래 귀족파의 후원을 받고 있던 갈릭은 어린 소녀가, 특히 황제파 클로랜스 가문의 딸이 이곳에 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황태자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툭 던졌다.

“지금 이 순간부터 데임 클로랜스가 전염병을 해결할 것이다. 그러니 공중보건부의 역량을 총동원해 그녀를 지원하도록.”

“네?”

“자세한 설명은 그녀에게 직접 들어라.”

“……?!”

장내가 경악에 빠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 저 소녀가 전염병을 해결할 거라고?

모두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의심했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한 그대로다.”

그러고 그는 회의실 가장 상석에 깊숙이 앉아 그들을 바라봤다. 할 말 다했으니, 이제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태도.

결국, 그들은 어려운 황태자 대신 만만한 엘리제를 바라봤다.

“데임 클로랜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데임께서 전염병을 해결하신다고요?”

갈릭의 말에는 황당함이 담겨 있었다.

엘리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갑자기 어린 소녀가 나타나 이 끔찍한 전염병을 해결한다는데,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겸손을 떨며 물러나지는 않았다.

겸손을 떨며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전염병이 퍼지며 희생자는 늘고 있다.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해야 했다.

“네, 제게 이 전염병을 해결할 방도가 있습니다.”

“……!”

갈릭은 불신의 말투로 말했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 전염병은 독기(毒氣) 즉, 나쁜 공기로 퍼지는 것입니다. 나쁜 공기, 악취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 한 전염병은 차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나쁜 공기, 악취를 제거하는 데 열중이었다.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잘못된 접근법이었다.

“이 전염병은 나쁜 공기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공기로 인한 전염병이라면 설사가 아닌 폐렴이 왔을 것입니다. 이 전염병은 먹을 것, 특히 물로 인한 것입니다.”

“그 말 증명할 수 있소?”

그녀는 황제에게 했던 설명을 하였다.

동방 힌디에서 기원한 콜레라.

그 설명을 들은 몇 명의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소. 로우랜드 상인들이 쓴 서적에 청과 영에서 비슷한 질환이 있었다고.”

“그러게 말이오. 힌디의 뱅갈이라.”

밴을 비롯한 황실십자병원의 명의들이었다.

원체 의학의 조예가 깊은 이들이다 보니, 머나먼 동방의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적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했다.

“난…… 데임께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려. 근거 없는 이야기 같은데…….”

그들의 반응에 그녀는 낙담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도 그들이 설명 한 번에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유의 문제는 압도적인 학술적 권위로 누르거나,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한 납득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러면 방법은 간단했다.

직접 눈으로 보여주면 된다. 자신의 말이 옳다는 것을.

“그러면 제 말을 증명해 보일게요.”

“어떻게 말이오?”

“저에게 론도 시내가 자세히 표시된 대축척의 지도와 50명의 인원만 지원해 주세요. 그러면 이틀 뒤부터 전염병이 없어지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갈릭을 비롯한 공중보건부의 관료들은 그녀가 진심인가 바라봤다.

“영애,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하나의 손이 아쉬울 때요. 그런 근거 없는…….”

그런데 그때, 차가운 음성이 끼어들었다.

“잔말 말고 지원해.”

“……!”

황태자 린덴 드 로마노프였다.

“하, 하지만…… 전하……?”

“명령이다. 그리고.”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공중보건부, 너희가 지금까지 한 게 뭐가 있지? 악취? 황실 근위대를 모조리 부어넣어 지금 론도의 공기는 매우 쾌적해졌다. 하지만 전염병은 여전해. 너희의 말대로라면 지금쯤 조금이라도 전염병이 꺾여야 하는 것 아닌가?”

“……죄,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는 지적이었다.

“지금도 한시가 다르게 환자가 늘어가고 있다! 탁상공론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가능성이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할 때야. 그러니 쓸데없는 이야기 그만하고, 빨리 움직여!”

“네, 전하!”

관료들이 혼비백산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엘리제는 황태자를 의외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날 도와주었어?’

물론 황제의 언질을 들은 탓이겠지만, 지난 삶 땐 이런 적이 없었는데.

“감사합니다, 전하.”

“됐다. 그런 말은 전염병을 해결하고 나서나 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관료들에게 부탁했다.

“지금 바로 지도를 가져와 주세요.”

“지도를 말입니까?”

“네, 론도 시내가 자세히 묘사된, 가장 큰 축척으로 된 지도를요. 그리고 도와주시는 분들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잘 들어주세요.”

“말씀하십시오.”

“어려운 것은 아니에요.”

그녀는 말했다.

“각 병원에 나가, 이 전염병을 앓는 환자들의 거주지를 확인해 주세요. 그리고 론도 시내를 나타낸 지도에 거주지를 정확히 표시해 주세요.”

“……?!”

그녀가 시키는 것은 바로 역학조사(Epidemiologic survey).

현대의 지구에서도 전염병 차단에 첫 단계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

환자들의 거주지.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조사하는 데 의외로 꽤 시간이 걸렸다.

론도의 모든 병원을 조사해야 하는 일이고, 현대 지구처럼 통신이 되는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일이 직접 찾아가 확인해야 했다.

그래도 공중보건부의 전폭적 지원 덕에 반나절 안에는 모든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현재까지 총 환자 1,237명.

그중 사망자는 345명이었다.

“모두 조사했습니다, 데임.”

“고마워요.”

엘리제는 환자들의 거주지를 론도 지도에 일일이 표시했다.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환자는 갈색, 사망자는 적색으로.

‘뭐하는 거지? 저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리고 그녀의 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순간, 하나의 규칙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건?’

모르는 사람이 봐도 확연한 규칙성이 드러났다.

그건 브로드가(街), 크로이던 지구, 크롬웰 지구에 대부분 환자가 밀집해 있었던 것이다!

몇 명의 관료가 흥분해 외쳤다.

“이 세 개의 지구를 폐쇄해야 합니다! 이 3지구의 사람들의 입, 출입을 막으면 전염병의 전파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전염병을 대하던 흔한 방책이었다.

흑사병이나 천연두의 경우, 영지 전체를 폐쇄하고 불태우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인구 밀도가 낮던 봉건 시대에나 가능한 방법이지, 론도 같은 대도시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어요.”

“네?”

“환자는 이 세 개의 지구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에요. 지도를 봐요.”

과연 그녀의 말처럼, 드문드문 다른 지구에도 환자가 퍼져 있었다. 이래서는 폐쇄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확실히 이 세 곳에 문제가 있긴 있어. 전염병의 원인도 이곳에 있을 거야. 뭘까?’

“갈릭 부장님.”

“네, 데임.”

갈릭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이런 재난 사태에 어린 소녀의 지시나 들어야 한다니!

‘저런 소녀가 알아봐야 뭘 얼마나 안다고.’

물론 소녀가 의학계를 뒤흔드는 천재란 것은 들었다.

하지만 영 기분이 나빴다.

“다른 지구에 발생한 환자들이 최근 이 세 곳, 브로드가(街), 크로이던, 크롬웰 지구에 방문했는지 지금 바로 확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건 금방 확인되었다.

모두 이 세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역시 이 세 곳에 원인이 있어. 이 안에 답이 있을 거야.’

그녀는 확신하고 지도를 바라봤다.

‘이 세 지구의 공통된 요소를 찾아야 해.’

그리고 그 안에서도 환자의 분포 차이가 생기는 요인을 파악해야 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에서 하는 조사는 이걸로 끝. 이제는 내가 직접 발로 뛸 차례야. 눈으로 보고 원인을 찾아내야 해.’

황태자가 그녀에게 물어봤다.

“어딜 가려는 거지?”

“브로드가로 가려고요.”

“거긴 왜?”

황태자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왠지 못마땅해하는 모습에 엘리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직접 가서 살피려 합니다.”

그런데 황태자의 반응이 의외였다.

“안 돼. 허락하지 않겠다.”

“네?”

엘리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꼭 직접 가야 하는 것인가? 다른 사람 보내. 그대가 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

그녀는 당황하며 말했다. 왜 저러시는 거지?

“보고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전염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있어, 현장 조사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혹시 제가 그곳에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

린덴은 입을 다물었다.

이유? 없다.

아니, 정말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긴 하다.

‘브로드가(街)는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이잖아, 젠장.’

가서 옮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이 전염병의 사망률은 현재 30%. 아니, 점점 사망자의 비중이 늘어 50%에 육박하고 있다.

‘이 여자는 왜 자기 몸은 안 챙기는 거야? 도대체 몸도 약하면서!’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환자가 우글거려 폐쇄까지 고려하는 브로드가(街)에 갔다가 병이라도 걸리면? 그래서 혹시 잘못되기라도 하면?

린덴은 그 사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엘리제는 이 전염병이 사람 간에 옮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정확한 것은 모르는 것 아닌가?

절대 그녀가 위험지역에 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전하, 혹시 제가 제대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그러는 것입니까?”

그건 아니다.

그녀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론도에 없겠지.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래도 안 된다.

엘리제는 곤란한 얼굴로 부탁했다.

“전하, 어떤 이유로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혹 제가 모르는 사이 전하의 마음에 불편을 끼친 게 있다면 사죄드립니다. 다만…… 폐하께 저는 이 전염병을 해결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 지엄한 명을 따르기 위해선 현장 조사가 불가피합니다. 보고만으로는 원인을 파악할 수가 없으니까요. 제발 통촉해 주시옵소서.”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안다. 황태자도. 그녀의 말이 옳음을.

하지만 그녀가 그런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싫었다.

‘하아, 정말 마음에 안 들어.’

결국, 황태자는 백기를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는 늘어가고 있는데, 개인적 이유로 계속 고집을 부릴 순 없으니.

대신.

“좋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어떤 것입니까?”

“위험지역의 현장 조사는 나도 같이 가겠다.”

“……?!”

엘리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황태자는 입술을 비틀었다.

자신이 같이 간다고 전염병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혹시 위험에 노출되지는 않는지.

두 눈으로 지켜봐야겠다.

============================ 작품 후기 ============================

내일 목요일 09:07분에 올라갑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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