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5 3-2 Lady with the Lamp =========================================================================
3-2장 : Lady with the Lamp (3)
엘리제는 당황해 물었다.
“그, 그러면? 혹시 바라는 것이라도?”
“내가 너를 도와주었으니, 너도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냐?”
그, 그런가?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어떤…… 부탁을…….”
그리고 황태자가 한 말은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한번 웃어봐라.”
“네?”
“맨날 찡그리고 있지 않으냐. 한번 웃어보라고.”
그러며 황태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 앞에선 잘도 웃으면서. 내 앞에선 절대 웃지 않지.
“네, 네…….”
엘리제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조금 더. 잘 웃어봐라.”
“네…….”
엘리제는 마치 지구에서 사진기 앞에 섰던 때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나름 잘 지어졌다 생각하며 물었다.
“이 정도면……?”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엘리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봤던 것이다.
그가, 저 린덴 드 로마노프의 얼굴이 자신의 미소를 보고 잠시 부드러워진 것이다.
‘뭐, 뭐지? 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가?’
이전 삶, 9년을 짝으로 지냈지만 한 번도 못 본 얼굴이다.
“엘리제.”
“네, 네, 전하?”
“그렇게 웃으니 예쁘지 않으냐. 가끔 내 앞에서도 그렇게 웃도록 하여라.”
“……!”
그 말을 듣는 순간, 엘리제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그,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오, 오늘 감사했습니다.”
엘리제는 허겁지겁 그의 방을 나갔다.
탁!
그의 방문을 닫고, 몸에 힘이 빠져 그녀는 벽에 몸을 기대었다.
두근.
가슴이 뛰었다. 알 수 없게.
그리고 방에 남은 린덴은.
‘미치겠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렇게 좋다니.’
안다. 방금 미소는 그저 억지로 지은 것이란 것을.
그래도 좋았다. 저 얼굴이 미소를 그리는 게.
저 미소를 매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맥가일 원수에게 다른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해야겠군. 별로 믿음은 안 가지만.’
***
야전병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틀간 자료를 정리했다.
환자들의 상태, 부상 원인, 사망원인 등을 체계적으로 종이에 적어 내렸다.
다행히 크림전쟁 발발 후 병원에 들렀던 병사들에 대해 간단한 의무 기록이 있었기에 자료는 풍부했다.
‘그런데 전하. 마지막에 도대체 뭐였을까?’
엘리제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부여잡았다.
‘정신 차려. 엘리제. 이상한 생각하지 마.’
별 의미 없었을 것이다. 그게 분명했다. 아니, 그래야 했다.
그렇게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최대한 집중해 이틀 뒤 회의를 준비했다.
금방 시간이 지나, 사령부 주관 회의가 다가왔다.
그녀는 두툼한 자료를 들고 회의에 참석했다.
“그래서 서부 전선에서 공화국군의 진군이 주춤합니다.”
“동부의 포트랭 요새가 공격받았으나, 검제 전하의 검기사단의 측면 기병 돌격으로 기습 후, 격퇴하였습니다.”
총사인 황태자에게 각 방면의 참모가 보고하였다.
전열을 완전히 정비한 덕일까? 전황은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듯했다.
“전하, 그런데 데임 클로랜스께서는 사령부 회의에 어쩐 일로?”
“아아.”
린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 중 그녀가 말할 안건이 있다. 기다리도록.”
“네.”
엘리제는 얌전히 앉아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전황, 부대 배치, 보급, 정보 등 중요한 안건이 끝나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그녀의 차례가 왔다.
“종군 의사로 참전한 엘리제 드 클로랜스입니다. 부상병의 생존율 증가를 위해 건의가 있어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군부의 요인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들었다.
의료는 물론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군부의 중핵인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적의 격파와 승리!
따라서 승리를 위한 행위 외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역시 별 관심이 없어.’
엘리제는 그 반응을 예상했다. 그래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먼저 꺼냈다. 질질 끌면 반응만 안 좋아질 테니.
“현 야전병원 부상병들의 사망률은 40% 이상입니다. 부상을 당하면 반 가까이가 사망하는 것이지요. 이는 군 전력에 큰 누실이 되며, 승리에도 큰 장애가 됩니다. 만약 이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면 전쟁에 승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엘리제는 장내를 둘러보았다.
“이 사망률 42%를 10배 이상 낮출 방법이 있습니다.”
“……!”
그 말에 군부의 모두가 경악에 빠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데임이 론도를 구한 영웅인 것은 아오. 하지만 10배라니. 너무 허언이 심하지 않소?”
엘리제는 고개를 젓고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 근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
“펼쳐주세요.”
같이 온 2명의 병사에게 그녀는 부탁했다.
병사들은 커다란 두루마리 종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단상 앞에 펼쳤다.
“……?!”
종이에는 정체불명의 막대기와 원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뭐요, 데임?”
“다이어그램입니다.”
다이어그램.
통계를 기호, 선, 점 등을 사용해 이해시키는 설명적 그림으로 직관적이기 때문에 설득 및 프레젠테이션에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나, 이 시대에는 익숙한 방법은 아니었다.
“이 원의 날개들은 시기별 사망자의 원인을 나타낸 것입니다. 안의 빨간 부분이 부상으로 인한 사망이고, 바깥의 파란 부분이 다른 원인으로 인한 사망입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군부의 핵심.
즉, 제국의 엘리트들이다.
그녀의 말을 단숨에 받아들여 다이어그램을 이해했다. 그리고 원에 담긴 통계적 의미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허, 이럴 수가?”
“이게 제대로 된 정보요, 데임?”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4개월 사망자의 사망 기록을 토대로 만든 자료입니다. 정확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불신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사망의 원인.
부상은 단 2%도 되지 않았다. 모두 설사나 폐렴 등 다른 감염성 질환이 합병되어 사망한 것이었다.
‘나도 이 사실을 의대에서 처음 배울 때 놀랐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 전쟁에서 병사들이 사망하는 원인은 거의 부상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질병이 합병해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첨단 군 의료 시스템을 가진 현대의 미군도 80% 이상이 질병에 의한 사망이니까.’
그녀는 설명을 이었다.
“이 그래프는 사망에 이르게 한 질병을 도식화한 것입니다. 대부분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전염되는 질환들입니다.”
“…….”
장내가 조용해졌다.
모두 그녀가 하는 말의 요지를 깨달은 것이다.
“따라서 야전병원의 환경만 개선한다면 전염성 질환들의 발생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고, 부상병들의 사망률을 급격히 낮출 수 있을 것입니다.”
“허허, 그래도 10배라.”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때, 총사령관인 황태자가 말했다.
“해보지.”
“전하?”
모두 린덴을 바라봤다.
“들었지 않나? 무려 사망률을 10배나 낮출 수 있다고. 이건 할까 말까 고민할 게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 생각되는데?”
“그건 그렇습니다.”
무려 10배다.
10배, 아니, 최소 3배만 사망률이 낮아져도 군 전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혹 반대하는 사람 있나?”
“없습니다.”
린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그리고 그때, 엘리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지원을 얻어낸 것이다.
‘정말 다행이야.’
이제 제대로 된 진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 순간, 황태자의 입에서 나온 결정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단순히 지원을 해주는 것이 아닌.
“엘리제 드 클로랜스를 제국군 삼군(三軍) 사령부 소속, 임시 의무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이 일을 진행하도록 하지.”
“……네?”
엘리제는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삼군 사령부 소속 의무사령관? 이게 무슨 말?
이해 못한 건 군부의 요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전하?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듣지 않았나. 데임 클로랜스를 병사들의 회복을 책임지는 의무사령관으로 임명한다고.”
“하, 하지만 제국군 편제에 그런 보직은 없습니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뭐가 문제인가?”
그러며 린덴은 부총사령관인 맥가일 원수를 바라봤다.
“원수, 총사인 내가 사령부 소속의 의무사령부를 만드는 데 군법상 문제가 있는가?”
“없습니다, 전하.”
사실 린덴은 맥가일과는 이야기가 끝난 상태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말을 더듬거렸다.
“하, 하지만…… 그래도…… 전례가…….”
“그만.”
황태자가 차갑게 말을 끊었다.
“지금껏 의무사령부라는 편제가 없었던 게 이상한 것 아닌가? 전쟁할 때마다 최소 수만 명씩 죽고 다쳐나가는데 말이야.”
“……!”
“그리고 사망률을 10배 이상이나 낮추는 거대 프로젝트야. 이 프로젝트를 어느 부서에서 감당할 건가? 보급? 작전? 정보? 말해보지.”
언급당한 부서의 장들은 눈을 피했다.
자신들은 그런 프로젝트를 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면 모두 동의한 것으로 알지. 데임 클로랜스, 직위는. 음, 대령 정도가 적당하겠군.”
“……!”
이번에도 사람들은 경악했다.
대령이라니!
장군(Star) 바로 밑의, 최고위 지휘관이었다.
편제마다 다르지만, 보통 1,500명 정도를 지휘하는 연대장이 대령이었다.
“그, 그건 너무 과합니다, 전하.”
“뭐가 과해? 사령부 정보 참모장 계급이 뭐지?”
“……준장입니다.”
준장. 원 스타의 장군을 뜻한다.
“사령부 작전 참모장은?”
“준장입니다.
“사령부 군수지원부 사령관은?”
“……소장(two star)입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지? 원래 사령부 소속 특수 병과의 장은 준장이 아니었나? 대령이 아니라 준장 직위가 맞다고 하는 것인가?”
사람들은 하얗게 질려 고개를 저었다.
장성인 준장이라니! 말도 안 된다.
“아니면, 그대들 중 이 직위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나? 나는 론도를 3일 만에 구한 저 소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인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가?”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들, 아니, 제국군 전체를 통틀어도 저 소녀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국군 외부의 민간인사를 살펴도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역사상 대역병을 3일 만에 해결한 의사는 아무도 없으니까.
“물론 아무 조건 없이 이런 중책을 맡기는 것은 아니야. 내가 말하지 않았나? ‘임시’라고.”
“그러면 그 말씀은?”
황태자는 엘리제를 바라봤다.
“데임 클로랜스, 너에게 임시로 의무사령관 직위를 맡기는 대신 조건이 있다.”
“하명하시옵소서.”
솔직히 엘리제는 지금 정신이 없었다.
그저 지원만 받으려 한 건데, 의무사령관이라니? 자신보고 군 의료의 수장이 되라는 것 아닌가?
‘잠깐. 그러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일을 하려면 이게 가장 낫긴 하잖아?’
군대에서 일을 진행하려면, 군 조직의 특성상 그에 걸맞은 계급과 권한이 없으면 굉장히 힘들다.
고작 며칠 만에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다.
‘설마 그걸 알고? 힘을 실어주시려고?’
그래도 이건 너무 파격적인 것 아닌가?
엘리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모르겠다.
그때, 황태자가 조건을 말했다.
“3개월이다. 3개월 안에 네가 말한 성과를 이루어내라. 만약 이루어낸다면, 그때는 그 공과 능력을 인정해 임시가 아닌, 정식 의무사령관으로 임명하겠다. 단!”
조건은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만약 3개월이 지났는데도 네가 말한 성과. 사망률이 10배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너에게 책임을 물겠다!”
“……!”
사람들이 황태자에게 물었다.
“전하, 책임이라면?”
“이 전쟁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여겨 강제로 전역시킬 것이다.”
“……!”
그렇다. 이게 바로 린덴이 생각해 낸 묘책이었다.
강제 전역. 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었다.
그녀를 못 보게 되는 것은 싫지만, 그녀가 전장에 머물다 혹시라도 모를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더 싫으니까.
지금도 이렇게 불안한데 그녀가 털끝 하나라도 다친다면 자신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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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09:07분에 뵙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