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6 3-2 Lady with the Lamp =========================================================================
2장 Lady with the Lamp-4
‘정말로 사망률이 10배 이상 떨어지면 좋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더 좋고.’
이왕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 확실히 해준다. 자원뿐 아니라, 파격 인사를 통해 직위와 권한까지 주어서.
사망률을 10배나 떨어뜨리는 일이니까.
또 그녀가 의무사령관으로 있으며 군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면 앞으로도 제국군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하려면 높은 계급과 직위는 필수였다.
‘이득 보면 이득 봤지 손해 볼 것은 없는 파격 인사지.’
만약 그녀가 생각만큼 못한다면 그때는 파격 인사의 대가로 전역시키면 된다.
자신에게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전쟁터 옆에 놓고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니까.
‘어찌 돼도 좋아. 이왕이면…… 그녀가 전역하면 더 좋을 텐데.’
린덴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망률은... 한 9배 정도 떨어졌으면 좋겠군.’
그러면 사망률 감소도 이루고, 그녀도 전역시킬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세계 최초의 의무사령부(Medical Command)가 쾌도난마로 뚝딱 만들어졌다.
머지않은 미래에 모든 열강이 따라 할 편제였다.
***
물론 그 파격적 인사에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리 황태자비가 될 분이라지만 대령이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더구나 의무사령부(Medical Command)라니요. 내 평생 그런 부서는 들어본 적이 없소이다.”
“그리고 예비 황태자비께서 말한 대로 해도 사망률이 10배나 감소할 리 없지 않습니까? 이번만큼은 태자 전하께서 잘못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군부의 몇몇 인사가 이런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크게 드러내진 못했다.
총사령관인 린덴이 평소에 워낙 뛰어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군부의 인물들은 황태자이자 총사령관인 그를 지휘관으로서 존경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존경하는 윗사람을 깎아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태자 전하께서도 사람이시니. 한 번쯤은 잘못 판단하실 수 있겠죠.”
“그러게 말이오. 총사령관께서도 인간다운 면모가 있긴 하시구려. 앙젤리 전쟁 때도 곁에서 모셨는데, 전혀 빈틈이 없으셔서 혀를 내둘렀었는데. 당시 사막의 전갈 때문에 다 패한 전쟁을 총사령관이 뒤집으셨었죠.”
“어쨌든 이번 데임의 일은 지켜봅시다. 어차피 사망률이 10배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책임을 문다셨으니.”
“허허, 10배라. 데임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수치를 발표하셨는지 모르겠구려. 그런 사망률의 감소가 가능할 리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 엘리제가 허황된 주장을 하였다 생각했다.
정말로 사망률이 10배나 떨어질 거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편, 엘리제는 곧바로 일에 착수했다.
군대에서 직위와 계급, 권한이 주어지니 할 수 있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이래서 한국에서는 별(장군)이 되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는구나.’
그녀는 지구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장군은 아니지만, 대령은 하늘 아래 지상에서 가장 높다는 계급이다.
원래대로라면 온갖 보고에, 결제에, 회의를 통해 한참을 끌었을 일들이 착착 해결되었다.
‘먼저 환경개선부터. 이게 가장 시급해.’
자신에게 배속된 병사들을 통해 병원 환경을 개선했다.
일단 건물을 청소하고 피와 배설물이 묻은 침대 등을 빨래했으며, 오물을 버렸고 통풍구를 만들었다.
혼자서는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으나 병사들이 달려드니 순식간이었다.
곧 야전병원은 못 알아볼 정도로 깔끔하게 변모했다.
물론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환자 수는 턱없이 많은데 건물이 너무 작아. 공간이 너무 없어, 환자끼리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이러면 전염병이 잘 퍼지는데.’
그래서 아예 임시 건물을 더 지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 건물이 쑥쑥 세워졌다.
이것 역시 그녀가 직위가 없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문제 없이 시원하게 진행해 버렸다. 모두 황태자가 내려준 직위 덕분이었다.
‘의약품 보급도 너무 부족해.’
그건 어떻게 된 일인지 진상을 살폈다. 혹시나 보급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뭔가 이상해. 의약품 부분 예산이 이렇게 적게 배정되지는 않았을 텐데.’
분명 일정 규모의 예산이 의약품 보급을 위해 배정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오는 의약품은 예산보다 훨씬 적었다.
수상한 일.
조사 후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책임자인 헤인츠 대위가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엘리제는 그 사실을 확인 후 곧바로 그를 해임했다.
이전부터 술을 마시다 눈에 띄는 등 선처의 여지가 없었다.
더구나 예산을 중간에 빼돌린 증거도 확인돼 그는 단순한 해임이 아니라, 헌병대에 넘겨져 큰 벌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엘리제는 임시 의무사령관 및 야전병원의 원장이 되었고, 이후부터는 의약품의 보급이 조금씩 원활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해. 어떻게 하지?’
엘리제는 고민했다.
이건 보급처와 협상해서 해결할 일은 아니었다.
배정된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총탄, 포탄, 의복, 식량 등, 어찌 보면 전쟁에 더 중요한 물품에도 돈을 써야 하는데, 무작정 예산을 늘려 달라 할 수도 없었다.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가문에 편지를 썼다.
‘우리 가문이 차일드가(家)만큼 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클로랜스는 제국에서 손에 꼽는 부자였다.
이 정도는 감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우리 가문의 부(富)는 모두 제국에게서 얻은 것이니까.’
‘지난 300년간, 제국의 신하로서 받은 부이니, 제국의 신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다.’
그게 평소 빈민을 구제하며 아버지가 하던 말씀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라 존경받는 이다운 발언.
그러니 이번 그녀의 부탁도 들어주실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 덕에 의료 여건이 급속도로 개선되었다.
환경이 깨끗해진 탓에 새로운 감염병의 발병이 확연히 줄어들었고, 만성적인 의료 보급품 문제도 다소 해결되었다.
또 엘리제는 행정적인 일뿐 아니라, 두 팔을 걷고 뛰어다니며 환자를 치료하였다.
아무리 해도 해도, 전투는 끝이 없었으며 그녀가 살릴 환자도 끝이 없었다.
“등불을 든 천사(The Lady with the Lamp)…….”
누군가 그녀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달마저 자취를 감춘 밤마다 그녀가 등불을 들고 나타나 환자를 살폈기 때문이다.
삶의 희망을 잃고 꺼져가던 부상병들에게 등불과 함께 나타난 그녀는 천사나 다름없었다.
“힘내세요. 좋아질 수 있어요.”
“가, 감사합니다. 정말 좋아질 수 있을까요?”
“네, 좋아져서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해드릴게요. 그러니 힘내세요.”
자신의 반만 한 작은 소녀의 따뜻한 말에 병사는 눈물을 흘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물론 그녀가 모든 환자를 살린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녀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실제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장의 여건상 간단한 처치들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들과 함께했다.
상처를 치료했고, 손을 잡아주었고, 같이 아파해 주었고, 누군가 죽을 때 같이 슬퍼해 주었다. 그렇게 처음 출정 때 했던 약속처럼 그들이 홀로 스러지지 않도록 함께했다.
누군가 다친 자신과 함께한다는 것.
그건 머나먼 이국에서 홀로 죽어가던 이들에게 크나큰 위로였다.
“등불을 든 여인…….”
누군가 처음 한 그 말은 곧 제국군 진영 전체에 퍼져 나갔다.
부상에 회복된 병사들은 병영으로 복귀해 그녀에 관해 이야기했고, 모든 병사는 자신들을 위해 헌신하는 그녀에게 감동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감동한 것은 전장의 병사들뿐이 아니었다.
곧 브리티아 섬으로도 그녀의 이야기가 전해 들어갔다. 죽음을 앞둔 병사들이 가족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어머니, 건강하신가요? 이곳은 많이 추운데 브리티아 섬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편지를 한 것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예요. 저는 아마 곧 주님의 곁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보고 싶어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마지막에 어머니 얼굴을 보고 올 걸 그랬어요. 어머니가 끓여준 수프가 먹고 싶네요. 사랑해요.
그래도 마지막이지만 많이 쓸쓸하진 않아요. 저희와 함께하시는 분이 있거든요. 참 착한 분이세요. 그분 덕분에 쓸쓸하게 가진 않을 것 같아요.
아, 눈이 흐려져 더 편지를 쓰진 못할 것 같아요. 꼭 건강하세요. 주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천국에서 기원할게요.]
이러한 편지가 고국의 가족들에게 도착했다.
편지를 읽은 가족들은 눈물 흘렸다. 그런 가족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종군 기자가 보낸 기사가 한 장의 흑백 사진과 함께 신문에 실렸다.
전쟁의 참상을 알린 기사였는데, 동봉된 사진은 다름 아닌, 죽어가는 병사의 손을 잡고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 한 장의 사진은 브리티아 섬을 울렸다.
소중한 이를 전장에 보낸 사람들에게 사진 속 죽어가는 병사는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의 아들이고, 동생이었으며, 연인이었다.
그 소중한 이의 가슴 아픈 모습에,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소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 소녀는 다름 아닌 엘리제였다.
그뿐 아니라 소녀가 가문의 사비를 들여 부족한 의약품을 사들였단 이야기도 퍼졌다. 종군 기사가 기사를 낸 것이다.
“우리도 동참하자.”
“그래, 가족을 위한 일이야.”
이제 갓 서대륙에 도입된 흑백 사진 기사는 전쟁의 참상을 고국에서도 잘 알 수 있게 하였다.
사람들은 전장에 나간 가족을 위해 성금을 모았고, 부족한 의약품 구입에 사용하도록 부탁했다.
덕분에 부대에 만성적인 의약품 부족은 완전히 해결되었다.
그리고 그 기사 덕분에 엘리제에게 더욱 크나큰 도움을 주는 일이 일어났다.
“저희도 왔습니다, 데임.”
“선생님!”
엘리제는 깜짝 놀라 반색했다.
그레이엄 남작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비롯한 여러 의료인이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크림반도로 온 것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도 금방 오려 했는데, 여러 일이 발목을 잡아서.”
“아니에요. 와줘서 정말 감사해요!”
그녀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렇지 않아도 홀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에 큰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차였다.
‘정말 다행이야. 숨통이 트이겠어.’
무려 의사가 20명, 도제(견습의사)가 15명이었다. 간호원도 50명이나 되었다.
모두 엘리제의 기사에 감동하여 전장에 자원한 것이다.
“정말 감사해요. 정말로.”
소녀는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렀다.
전선은 황태자 린덴의 지휘 아래, 루이 니콜라스의 공화국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며 일진일퇴를 반복했다.
다만 황태자의 꿈쩍 않는 지휘 덕분일까? 여러 전선에서 제국군에 유리한 정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동부 방면의 군이 적의 주요 요새를 함락해 남쪽으로 전진했다.
교착 상태에 빠지려던 전선 상황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선전이었다.
그리고 엘리제는 여러 지원에 힘입어 의료 환경을 완전히 개선했다.
이제 시궁창 같은 환경 속에 부상병이 방치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병사들은 이전에 비하면 천국 같은 환경에서 각자 부상 정도에 맞춰 적합한 치료를 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부상병을 살릴 수는 없었지만, 엘리제는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망률이 감소하는 것을.
이윽고 3달 뒤.
사령부와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임시 의무사령관 엘리제는 사망률을 통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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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토요일 09:07분에 뵙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