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7 대회전 =========================================================================
3장 대회전-1
“……!”
2%.
믿을 수 없는 통계 결과였다.
린덴은 엘리제가 낸 보고서를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정말로 해냈군.’
그냥 해낸 정도가 아니었다.
42%에서 2%.
사망률이 무려 20배가 넘게 감소한 것이다.
이건 그녀를 믿었던 린덴도 예상치 못한 수치였다.
‘엘리제, 정말로 너는…….’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바라는 그녀는 항상 저 하늘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감탄해도 끝이 나지 않았다.
항상 새로운 기적으로 자신을 놀라게 했다.
한편 그 결과에 제국군 사령부는 난리가 났다.
“허허, 정말로 그게 진실이오? 2%? 20%가 아니고?”
“나도 믿지 못해서 확인해 봤는데 정말이라고 합디다. 그리고 실제로 부상병들의 병영 복귀율이 크게 늘었어요.”
3개월 만에 사망률 20배 감소!
두 귀로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군 전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구려.”
“그게 이를 말이오? 2% 사망률이면 웬만한 부상이면 다 산다는 이야기 아니오?”
2%. 20배.
그건 단순한 산술적 수치가 아니었다.
부상을 당해 병원에 온 이들 중 98%가 살아서 돌아간단 뜻이었다.
“허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구려.”
“정말 소문대로 데임 클로랜스의 의술은 하늘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것 같소.”
그들은 엘리제의 의술이 뛰어나 이런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녀라도 전장에서는 의술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부상의 합병증 및 전염병을 철저히 막았기 때문이다.
엘리제는 속으로 생각했다.
‘애초에 죽음에 이를 정도의 부상을 당해 병원에 오는 경우는 많지 않아.’
그 이유는 간단했다.
죽음에 이를 부상을 당하면 병원에 오기도 전에 죽는다.
따라서 병원에는 치료할 만한 중상이나, 경상 환자가 많았는데 이런 부상은 합병증과 감염만 막으면 살릴 수 있다.
‘이 말은 과거에는 살릴 수 있는 간단한 환자도 합병증과 감염병으로 다 죽었다는 뜻.’
엘리제는 씁쓸히 중얼거렸다.
어쨌든 그녀의 군 의료 개혁 덕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단 가시적으로도 군 전력이 향상됐다. 사망률이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사기적인 측면에서도 이로웠다. 부상을 당해도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데임 클로랜스 만세!”
“황태자비 만세!”
이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역시 황태자 전하시군. 데임께서 이런 일을 해내실 줄 알고 파격 인사를 하셨던 거야.”
당시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격 인사를 감행했던 린덴에게도 찬사가 쏟아졌다.
엘리제의 위상도 달라졌다.
황태자 덕분에 낙하산으로 높은 직위에 올랐다고 고깝게 보는 시선이 쑥 들어갔다.
모두 그녀가 만들어낸 기적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2차 크림원정의 초반은 제국군에게 나쁘지 않은 분위기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때 프랑소엔 공화국군은…….
***
“적들의 방어가 만만치 않습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꿈쩍도 하지 않으니.”
크림반도의 수도, 심페폴에 자리한 공화국의 사령부.
파란 제복을 입은 수뇌들이 심각한 얼굴로 전황을 상의하고 있었다.
“역시 공제(空帝). 철벽과도 같습니다. 도저히 뚫을 수가 없어요.”
“더 골치 아픈 것은 검제(劍帝)이지요. 교전하고 있으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 검기사단(劍騎士團)을 이끌고 벼락같이 돌진해 전열을 무너뜨리니.”
공화국의 수뇌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서대륙 최강의 오러 나이츠 검제!
그리고 300명 전원이 오러 나이츠로 이루어진 대륙 최고의 돌격 기병대 검기사단!
공화국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정말 이런 총과 대포의 시대에 검이나 사용하는 그런 구시대적인 전력을 못 당해 내다니.”
누군가의 푸념에 한 장군이 고개를 저었다.
“오러 나이츠는 구시대적이라고 할 병력이 아니지 않소. 그들의 오러는 총알을 막아내니.”
기사가 철저히 몰락한 시대이다.
하지만 오러를 사용하는 오러 나이츠는 달랐다. 오러를 전신에 두르면 잠시나마 총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장식 강선 총은 아무리 빨리 쏴봤자 1분에 3발이 고작이니.”
당시 총의 사정거리는 길어야 200m 정도이다. 그런데 분당 발사 속도가 빨라야 3발이니, 재장전하는 데 무려 20초가 걸리는 것이다.
여기서 오러 나이츠의 무서움이 발동한다.
최초의 총알을 오러를 통해 막아내고 벼락같이 돌진하는 것이다.
20초면 돌격 시간으로 차고도 넘쳤다.
“일단 돌격을 허용하면 일반 보병으로선 막을 방법이 없지요. 딱 붙어 있는데 총을 쏠 수도 없으니.”
그때 누군가 말했다.
“사실 오러 나이츠도 오러 나이츠지만, 로마노프 황가의 초상능력도 무섭긴 마찬가지죠.”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2년 전, 앙젤리에서 1황자 염왕(炎王) 지펠을 잡을 때 기억이 나는구려. 참 끔찍했는데.”
“아직 공제가 전장에 안 나서고 있지만, 나설 때를 대비한 대책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뭐, 설마 나서겠소? 그래도 총사령관인데. 앙젤리에서도 직접 나선 적은 드물지 않소? 특별한 일 없는 한 뒤에서 지휘만 하겠지요.”
“하지만 앙젤리에서도 나설 때마다 악몽을 만들었죠. 대비는 해야 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여러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 전쟁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그런데 한참을 토의한 뒤였다.
한 젊은 장군이 분개한 듯 탁자를 치며 말했다.
탁!
“이렇게 이야기해 봤자 뭐하겠습니까? 이런 산발적인 공방은 적에 의도에 휘말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총공격을 해야 합니다!”
“……!”
“우린 적에 비해 병력의 수에서 우위에 있습니다. 한 번에 군을 휘몰아치면 아무리 제국군이라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그들은 상대편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있으니까.
공화국의 수뇌들은 가장 상석에 앉은 이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느낌의 그림처럼 잘생긴 젊은 남자.
사막의 전갈, 루이 니콜라스는 말없이 그들의 논의를 듣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각하?”
“흐음. 장군?”
“네, 각하?”
그런데 그의 나온 말은 엉뚱한 것이었다.
“혹시 등불을 든 여인이란 말을 적 있나?”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장군은 당황한 표정을 했다.
“듣긴 들었습니다만. 제국의 예비 황태자비를 뜻하는 말 아닙니까?”
엘리제의 이름은 공화국군 사이에도 퍼져 있었다.
짧은 시간, 워낙 인상적인 인도주의적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제국에 생포된 공화국 포로를 치료해 주기도 했다.
“지금 어디에 있지?”
“제국 사령부 인근의 야전병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코프스크에 있는 거군.”
“네.”
루이 니콜라스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 적의 3군이 어디에 있나?”
“서쪽 방면 군이 비트란에, 사령부의 중앙군이 코프스크에 있습니다.”
이어 장군은 분한 듯 말했다.
“동쪽 방면 군은 보크네 요새까지 내려왔고요.”
보크네 요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화국의 세력권이었다가 제국군에게 탈환당했다.
그런데 루이 니콜라스의 반응이 이상했다.
“좋군. 이상적이야.”
“네?”
그 말에 수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새를 뺏겼는데 좋다니?
하지만 니콜라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짧게 명했다.
“전군을 북진시킨다.”
“……!”
회의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각하, 그 말은?”
“적의 3군을 한 번에 친다. 특히 적의 동, 서 양면 군을 향해 집중시키도록.”
총공격 명령이다!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작전명은 ‘모루 작전’이다.”
“알겠습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수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분주히 작전을 준비했다. 이 전투가 이번 전쟁의 분수령이 되리라.
한편 루이 니콜라스는 느긋이 지도를 바라봤다. 그의 눈이 얼마 전 뺏긴 보크네 요새를 향했다.
‘3달. 3달이나 기다렸지. 일부러 요새의 방어를 약화해 적이 뺏어주기만을 바라며. 드디어 때가 왔군.’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적의 3군을 향한 총공격. 그런 게 통할 리가 없지. 상대가 누구인데.’
그래, 통할 리가 없다. 그런 무식한 총공격이 통할 상대였으면 2년 전에 자신에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작전은 그게 아니었다.
‘이건 어떨까? 공제?’
루이는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적의 위대한 존칭을 떠올렸다.
그의 시선이 지도 북쪽 중앙을 향했다. 그곳에는 적의 사령부가 위치해 있었다.
코프스크. 이곳에 그 아름답고 고결한 소녀가 있다고?
‘이번 작전이 끝나면 볼 수 있겠군.’
루이 니콜라스는 빙긋 웃었다.
‘등불을 든 여인이라. 기대되는군.’
그렇게 공화국의 ‘모루 작전(Anvil tactics)’이 시작되었다.
엘리제의 지난 삶.
제국군에 악몽 같은 피해를 준, 작은오라버니 크리스를 전사시킨 작전이었다.
***
한편 공화국군의 북진 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아 제국군의 분위기가 다소 평화로울 때.
엘리제는 환자 진료에 열심 중이었다.
이제 의료 시스템적인 면은 많이 개선됐지만 일은 끊이지 않았다. 환자가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 지혈 좀 해주세요! 소독도 해주시고요!”
“네, 데임!”
그래도 추가로 지원 온 그레이엄과 여러 의사의 도움이 컸다. 그들과 함께 엘리제는 수많은 병사를 살릴 수 있었다.
“하아.”
잠시 틈이 나 엘리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람차긴 하지만 힘들긴 힘들구나.’
안 힘들 수가 없었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환자들을 돌보고 있으니.
‘아버지, 어머니, 크리스 오라버니. 다들 잘 지내고 계시겠지?’
엘리제는 서쪽, 저 멀리 있을 브리티아 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웠다. 보고 싶었다.
‘빨리 전쟁이 끝나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지만 엘리제는 아직 전쟁이 끝날 시기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지난 삶과 비슷하게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몇 번의 더 큰 전투가 있어야 해. 최소 3번. 3번의 큰 사건이 일어나야 하니.’
그녀는 전황을 뒤흔들었던 3개의 사건을 떠올렸다.
사실 이전 삶에서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 그저 크리스 오라버니 때문에 전후에 기록을 찾아본 정도다.
‘그나저나, 론 님은 무사히 잘 계실까?’
그녀는 론을 생각했다.
전장에 와서 혹시나 우연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으나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아마 사령부에 있는 중앙군이 아닌 동군이나 서군 쪽으로 배치된 것 같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찌릿했다.
그녀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병원에 오지 않았잖아. 만약 다쳤으면 이곳에 왔을 거야. 그러니 괜찮을 거야.’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만약 죽거나, 심하게 다치면 이곳에 후송 올 수도 없다는 것을.
‘아니야. 괜찮을 거야. 반드시 다시 만나 어머니의 유품을 돌려주실 거야.’
애써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참 이상하지. 론 님과 나는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걱정되는 걸까?’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만난 기간도 짧다. 고작 몇 개월?
만나면서 특별히 한 것도 없다. 그저 같이 밥을 먹고, 그녀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었고, 가끔 그녀가 좋아하는 길을 산책했다.
그것뿐이다. 심지어 그는 무뚝뚝하고 재미도 없었고 여자를 대하는 것도 서툴렀다.
‘그런데. 그것뿐인데. 왜.’
이렇게 자꾸 생각나는 걸까.
‘모르겠다.’
그녀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음성이 그녀에게 들렸다.
“왜 한숨을 쉬는 거지?”
“……!”
론 님? 그를 떠올리게 하는 서늘한 음성에 순간 그녀의 가슴이 뛰었으나 곧 가라앉았다.
‘그가 아니야.’
고개를 돌리니 역시 그가 아닌, 황태자 린덴이 서 있었다.
<바로 한편 더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