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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68화 (68/194)

00068  대회전  =========================================================================

3장 대회전-2

“충성. 전하를 뵙습니다.”

엘리제는 군 예법으로 경례했다.

그러며 그녀는 생각했다.

‘왜 이렇게 자꾸 헷갈리는 걸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부상병들을 돌보기 위해서인지, 그는 가끔, 아니, 자주 야전병원에 시찰을 왔는데 이렇게 뒤에서 부를 때마다 매번 론 님과 헷갈렸다.

‘목소리도, 얼굴도 완전히 다른데. 분위기가 비슷해서일까?’

그러고 보니 론과 황태자는 느낌이 정말 흡사했다.

가면을 쓰면 구별이 안 될 것 같았다.

“부상자들을 살피러 오셨습니까?”

“……그래.”

“많은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이전 삶, 자신과의 관계는 별개로 그는 정말 훌륭한 지휘관이고 지도자였다.

‘이렇게 군 의료를 개선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전하 덕분이지.’

그가 자신을 밀어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아직도 홀로 지리한 싸움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주 병사들도 살피러 오시고.’

뭔가 너무 자주 오는 감도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덕분에 병사들은 크게 감동했다. 한낱 일개 병사들의 부상을 살피러 황태자이자 총사령관인 그가 행차한 거니까.

‘원래 2년 전 전쟁 때도 이러셨나? 그러셨겠지?’

그녀는 그렇게 짐작했다.

“……엘리제.”

“네, 전하?”

“사실 할 말이 있다.

“무엇입니까?”

그런데 그는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뭔가 심각한 고민이라도 있는 표정.

엘리제의 얼굴도 굳어졌다. 도대체 무슨 심각한 일이길래 전하께서 저런 표정이지?

이윽고 그가 말했다.

“생일 축하한다.”

“……네?”

“생일 축하한다고.”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린덴이 천에 쌓여 있던 물건을 내밀었다. 그리고 천을 벗기니.

“……!”

화사한 붉은 장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전 성인식 날도 못 챙기고. 오늘은 성인이 된 생일인데, 제대로 기념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전장의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 만약 전선의 사정이 좋아진다면 이전의 못 챙겼던 성인식까지 같이 챙겨주마.”

“아, 아닙니다. 괘, 괜찮습니다.”

그녀는 화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어떻게 그가 자신도 까먹고 있던 생일을 알고?

“혹시 장미는 싫은가?”

“아, 아닙니다! 좋아해요. 가, 감사합니다.”

장미.

우연이겠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꽃을 받아 든 순간이었다.

두근.

지난번 그의 집무실에서 느껴졌던 알 수 없는 떨림이 다시 왔다.

하지만 그녀는 이 뜻밖에 일에 혼이 나가 그 떨림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저 놀라고,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그래, 그만 가보마.”

“아……! 네, 네!”

그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사라지기 전, 이렇게 말했다.

“아, 엘리제.”

“네?”

“그게…… 음…… 사령부에도 자주 오도록 해라. 그래도 사령부 소속 의무사령관 아닌가? 음…… 그리고 오면 올 때마다 꼭 내 집무실로 찾아와 보고하고.”

보고? 무슨 보고?

하여튼 엘리제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 네.”

“그래. 그렇지 않아도 내일 적의 진군에 대한 참모 전체 회의가 있으니 그것부터 참석하면 되겠군.”

그리고는 그는 사라졌다.

홀로 남은 엘리제는 멍하니 장미를 바라봤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가 나한테 장미라니?’

지난 삶, 9년이나 짝으로 지냈으면서도 그에게서 꽃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생일이라고 그가 뭘 챙긴 적이 없었다.

물론 선물을 받긴 했었다. 여러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하지만 그건 궁내부에서 예산을 사용해 알아서 챙긴 거였지, 그가 개인적으로 신경 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진료복을 입은 한 소녀가 엘리제에게 다가왔다.

“어머, 전하께서 주신 거예요, 데임?!”

“아, 레이디 제이.”

레이디 제이.

그녀는 로즈데일 병원의 도제였었는데, 신문에서 엘리제의 기사를 보고 이곳으로 자원해서 와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인 레이디 제이는 장미꽃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와, 예뻐요. 이런 겨울에 장미라니. 전하께서 데임을 생각하시는 게 역시 보통이 아니시군요. 저는 언제나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 그런 것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엘리제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하가 나를 생각한다고?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레이디 제이가 말했다.

“바쁘신데도 매번 꼬박꼬박 데임을 보러 오시잖아요.”

“네?”

“며칠에 한 번씩 꼭 야전병원에 오는 게 데임을 보러 오는 거 아니에요?”

“아, 아니에요. 부상자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죠. 저 때문에 오시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레이디 제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요? 이상하다. 올 때마다 데임을 힐끗힐끗 보시던데. 내가 잘못 본 건가.”

“……잘못 본 것 아닐까요?”

“그런가요. 흠, 전 데임 때문에 황태자 전하가 야전병원에 오시는 거라 짐작했는데.”

아직 어린 레이디 제이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엘리제는 어색하게 웃었다.

설마 그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차가운 전하가.

‘이 생일 선물은 렌 큰오라버니가 신경 써준 거겠지? 그래도 동생이 성인이 되는 17번째 생일을 전장에서 보내는 게 불쌍해서? 그래서 본인이 직접 못 오니 전하께 부탁한 거겠지?’

그래, 최전선에 나간 큰오라버니가 자신이 직접 못 오니, 친우인 전하께 부탁한 것일 거다.

엘리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큰오라버니가 절대 그럴 위인이 아니란 것을. 큰오라버니, 렌은 자신의 생일이 며칠 인지는커녕 몇 월인지도, 어쩌면 겨울인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렇게 그녀는 혼란에 빠져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

다음 날이 다가왔다.

‘회의에 참가하라고? 도착하면 매번 자신의 집무실로 와서 보고하라고?’

엘리제는 황태자의 명을 떠올렸다.

왜? 설마 전하가 나를?

순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으나,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엘리제. 전하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 그 전하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그럴 리가 없으시다.

그녀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하지만 그 결론 뒤에 따라오는 의문.

‘그런데 그러면 왜 이런 선물을 주신 걸까?’

물론 예비 약혼녀에게 생일 선물을 줄 수도 있다. 아니, 안 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큰 선물도 아니고, 고작 꽃이고.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린덴 드 로마노프란 것이다.

이전 삶, 그는 생일 따윈 절대 챙기지 않았다. 그녀의 생일뿐 아니라, 자신의 생일도 안 챙겼다.

그에게 생일이란 번거로운 황실의 행사 날일 뿐, 축하할 만한 기념일이 아니었다. 누구의 생일이든 늘 최소한의 형식적인 행사만 마치고 집무실에 틀어박혔다.

‘그런데 왜?’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모르겠다. 사령부에나 가자.’

빨리 회의에 참석 후 돌아와 환자나 봐야겠다.

그렇게 엘리제는 사령부로 향했다.

그녀를 알아본 병사들이 경례했다.

“충성!”

“안녕하십니까!”

일반 병사들뿐 아니라 콧대 높은 장교들도 그녀에게 깍듯했다.

처음 전장에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

당시에도 그녀를 예비 황태자비로서 존중하긴 했으나 뭔가 형식적인 면이 있었다면, 지금은 마음을 다해 그녀에게 예를 다하고 있었다.

3달간 모두에게 완전히 인정받은 탓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데임?”

“회의에 참석하러 왔어요. 그 전에 전하를 뵈려고 하는데요.”

“총사령관님 말씀이십니까? 방금 전선에서 급한 보고가 들어와서 당장은 뵙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급한 보고? 무슨 일이지?

어쨌든 그녀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를 피할 이유는 없지만, 지금은 그냥 껄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회의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뭐 하고 있지?’

시계를 보니 2시간 넘게 남았다.

일찍 오기도 일찍 왔고, 황태자에게 온 급한 보고 때문인지 회의 시간이 살짝 늦춰진 것이다.

‘보급처에 가서 의약품 수급에 대해 상의나 해야겠구나.’

그녀는 늘 들르는 보급처에 들어갔다.

“충성! 데임을 뵙습니다!”

존 소령이 벌떡 일어나 경례했다.

그 역시 지난번보다 훨씬 깍듯해졌다.

엘리제는 군인들의 그 칼로 자른 듯한 경례가 잘 익숙해지지 않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 말씀드린 소독약 보급 문제를 여쭤보러 왔어요.”

“아, 그건 프러시엔 공국을 통해 보급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물품이 온 것 같은데 제가 지금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릴 테니 앉아서 기다려 주십시오.”

존 소령은 바로 그녀의 용건을 해결해 주기 위해 사라졌다.

덩그러니 남은 엘리제는 보급처를 둘러보았다.

‘다들 바쁘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보급처에는 존 소령 혼자서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장교가 서류를 붙잡고 원활한 보급을 위해 씨름하고 있었다.

‘저건 식량 보급 서류, 저건 탄약…….’

그들이 하는 업무를 보던 엘리제의 눈이 살짝 커졌다.

시선을 끄는 서류철을 발견한 것이다.

<장교 사망자 명단.>

“……!”

엘리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한 명 꼭 확인해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론 님이 전사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

‘사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면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계속 걱정되니까.’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과 반대의 마음이 충돌했다.

그런데 그때 한 젊은 장교가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고 물었다.

“데임? 혹시 확인하고 싶은 이가 있습니까? 금방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

결국 엘리제는 답했다.

“혹시…… 이름만 아는데, 가능할까요?”

“성은 모르십니까? 그래도 가능합니다.”

“론. 론이에요.”

“네, 지금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젊은 장교는 서류철을 들고 휘리릭 넘기며 확인했다.

‘제발…….’

기다리는 엘리제의 가슴이 찌르르 떨렸다.

만약 그가 전사했으면 어떻게 하지? 그를 다시는 못 본다면?

‘아니야. 절대 그럴 리 없어. 무사할 거야. 제발, 주님.’

그녀는 기장에 달린 십자가를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까마득히 걸린 듯한 시간.

장교가 웃으며 말했다.

“없습니다.”

“네?”

“사망자 명단에 없습니다. 아마 무사한 모양입니다.”

하아!

엘리제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어찌나 긴장했는지, 손바닥이 땀에 물들어 있었다.

장교가 물었다.

“그런데 데임께서 아시는 분입니까? 어느 부대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아……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참전한다고만 들어서.”

“그러면 찾아드릴까요?”

“……!”

엘리제는 놀라 그를 바라봤다.

“장교 인명 첩은 제가 관리하는 업무라서 찾아드릴 수 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나요?”

장교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 것입니다. 뭐, 오래 걸려도 찾아드려야죠. 다른 분도 아닌, 등불을 든 천사의 일인걸요.”

등불을 든 천사.

그 말에 엘리제의 얼굴이 붉어졌다. 민망했다.

“그, 그러면…… 혹시 부탁해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장교는 기분 좋게 대답 후 커다란 인명 첩을 꺼냈다.

그러며 ‘론, 론, 론……’ 이렇게 중얼거리며 인명 첩을 눈으로 훑어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찾아도 되는 걸까?’

엘리제는 그런 고민이 들었다.

‘그냥 어느 부대에 소속됐는지 찾아보기만 하는 것이니까. 찾아갈 것도 아니고.’

그래,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친구. 그와 자신을 친구라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는 사람의 행방을 찾는 것이니까.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장교가 그녀에게 말했다.

“저…… 데임?”

“네, 찾으셨나요?”

“그게…….”

장교는 고개를 갸웃하며 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그녀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무슨 일인가요?”

“론이란 분이 참전하신 것 맞습니까?”

============================ 작품 후기 ============================

내일 일요일 09:07분에 뵙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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