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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70화 (70/194)

00070  대회전  =========================================================================

3장 대회전-4

“이곳 코프스크, 중앙군이 위치한 곳입니다. 서남쪽의 비트란, 서군이 위치해 있고, 동남쪽의 보크네 요새, 동군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상 중앙군을 꼭지로 하는 삼각형 모양으로 군이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라이트 각하의 활약으로 동남쪽의 점, 동군이 보크네 요새까지 내려가 있지요.”

그건 제국군 장군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다음은 공화국군의 진군 방향입니다. 서군으로 향하는 1군이 펨페스, 동군으로 향하는 2군이 코릴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며 엘리제는 부연 설명을 하였다.

“펨페스, 코릴. 두 곳 모두 이곳 중앙군이 위치한 코프스크로 향하는 갈림길이 있는 곳입니다. 방향만 틀면 가도를 타고 곧바로 이곳 중앙군으로 돌진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그 속도는 우리 서군과 동군이 중앙군을 뒤늦게 지원 오는 것보다 빠를 것입니다. 서군 쪽에는 우크라 산맥이 있고, 동군은 보크네 요새까지 진격한 상태로 중앙군에서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요.”

엘리제의 설명이 끝난 후 회의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었다.

그녀의 말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허어…… 정과 망치라…… 중앙군…….”

“하지만…….”

소녀의 말을 믿고 싶지 않은 눈치였지만, 그들 모두 전장에서 뼈가 굵은 베테랑들. 그 심각성은 충분히 알아차렸다.

한편 총사령관 린덴은.

‘정말 대단하군. 정확해.’

그녀에게 경탄하고 있었다.

자신이 떠올렸던 추측과 일치했다.

아니,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자신보다 더 구체적이고 정확했다. 자신은 그저 사막의 전갈의 진짜 목적이 중앙군이 아닐까? 정도만 떠올렸으니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그래, 의학적인 면은 이해한다.

의술에 관한 한 그녀는 불가해한 천재였으니까.

하지만 이건 의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군략(軍略) 아닌가?

‘도대체 너는?’

린덴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엘리제. 알면 알수록 도저히 모르겠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의 마음을 더욱 안달 나게 하였다.

‘엘리제…….’

하지만 그가 감탄했다고 해서, 장군들이 모두 설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녀 주장의 허점을 짚었다.

“분명 무서운 지적이오. 하지만 그저 추측에 불과한 것 아니오? 적이 그렇게 움직이리란 보장이 있소?”

“맞습니다. 적들이 중앙군을 향해 가도를 타고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동, 서 양군은 큰 곤란에 빠질 것입니다.”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긴 하다.

적들이 중앙군을 칠 것이란 명확한 근거는 없다. 그녀는 그저 지난 삶을 통해 알고 있을 뿐이다.

다만.

정황적 근거는 한 가지 있다.

‘이걸 이야기해도 될까?’

엘리제는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받아들이지 안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말해보자.’

“이건 제 추측이지만…… 동군이 보크네 요새까지 진격한 것이 어쩌면 사막의 전갈의 작전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동군이 보크네 요새까지 한참 남쪽으로 내려감에 따라 중앙군과 거리가 멀어져, 유사시 급하게 지원을 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장군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아니, 데임. 듣자 듣자 하니 너무한 것 아니오? 그러면 우리 동군이. 라이트 각하께서 보크네 요새를 탈환한 게 적들이 함정으로 거저 내주었기 때문이란 말이오?”

“허허, 아무리 전쟁에 무지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하구려. 보크네 요새는 크림반도 동부의 핵심적인 요충지이오. 아무리 작전이라지만, 그런 요충지를 적에게 내주는 바보는 없소이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의 반발이었다.

엘리제는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하지?’

이제 할 말은 다했다.

남은 것은 군부에서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였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를 봤을 때 도저히 받아들일 것 같지가 않다.

‘안 돼! 큰 희생자가 나올 거야.’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떻게 해야지? 무슨 방법이 있지?’

그렇게 고민했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어 속으로 발을 동동 굴릴 때, 한 명의 목소리가 회의에 끼어들었다.

“실례합니다. 제가 한 말씀만 올려도 되겠습니까?”

“……?!”

약간은 삐딱한 젊은 목소리.

사람들은 시선을 돌렸다.

“차일드 공자?”

자신감 있지만 오만한 인상의 젊은 남자.

알버트 드 차일드 공자였다!

“네, 정보부의 참모 차일드 중령입니다. 장군님들 앞에서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엘리제를 힐끗 바라봤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시선.

그 눈빛에 엘리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안 돼! 여기서 차일드 공자마저 반대하면!’

군에서 그는 일개 참모에 불과할지라도, 실제 신분은 제국을 주름잡는 귀족파의 수장 차일드 가문의 후계자였다.

당장 이곳 군부의 수뇌 중에서도 차일드 가문의 뒤를 따르는 귀족파의 인물이 적지 않은 터.

만약 알버트가 반대하면 그들도 같이 반대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저는 데임 클로랜스의 의견에 일부분 동의합니다.”

“……네?”

엘리제는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지금 뭐라고?

알버트는 그녀를 향해 입술을 살짝 비틀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보부에서 보크네 요새 탈환전시 석연치 않은 상황을 여러 발견하였습니다.”

“……!”

“여러 정보가 있었지만, 결론만 말하면 분명 중요한 요충지인데도 공화국에서 이상하게 신경을 덜 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말은 무엇입니까? 공화국이 보크네 요새를 일부러 내주었다는 뜻입니까, 공자? 동군을 남쪽으로 전진시켜 중앙군과 떨어뜨리기 위해?”

“글쎄요. 이 정보들만 가지고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겠죠. 그냥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보크네 요새까지 진격함으로써 동군과 중앙군의 거리가 너무 멀리 벌어지긴 했다는 것입니다. 데임의 말처럼 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발 빠르게 지원하기 어려울 정도로요.”

엘리제는 알버트를 끔뻑끔뻑 바라보았다.

나를 도와주고 있어? 귀족파인 그가?

그런데 그때, 총사령관 린덴이 말했다.

“이제 그만. 모두의 의견. 다 잘 들었다.”

“…….”

“결론을 내겠다. 맥가일 원수, 잘 듣도록.”

“네, 전하.”

옆에 앉아 있던 부총사령관 맥가일 노장이 고개를 숙였다.

“중앙군에서 5만씩을 차출해 각각 동, 서 양면으로 보낸다.”

“……!”

엘리제가 놀라 그를 바라봤다.

‘안 돼!’

그렇게 하면 중앙군은 궤멸이다! 지난 삶의 악몽이 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총사령관. 전장에서 그의 결정은 법이나 다름없었다.

엘리제는 절망에 눈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그가 똑바로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는 척만 한다.”

“……?!”

“사막의 전갈만 기만술을 쓰라는 법 있나? 우리도 전갈을 낚아보지.”

장군들이 놀라 그를 바라봤다.

“전하, 그 말씀은?”

“동, 서 양면으로 빠져나간 각각의 5만 군들은 이곳 중앙군 근처에서 몰래 대기한다. 그래서 우리 중앙군이 약해진 줄 알고 전갈이 달려들면, 좌우에서 협공한다.”

모두의 눈이 커졌다.

그러면 삼면 협공이었다!

아무리 공화국군이 수적으로 우세해도 큰 혼란에 빠지리라!

하지만 린덴은 그걸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맥가일 원수, 서군에 연락을 넣도록.”

“어떤 연락을?”

“전장을 우회해 공화국군의 뒤를 따르도록.”

“……!”

“공화국군이 우리 중앙군의 삼면 공격에 혼란에 빠지면 서군은 그대로 뒤를 친다.”

모두 그 계책을 듣고 경악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궤멸적 피해를 보는 것은 공화국이었다.

“하, 하지만 전하…… 만약 적이 중앙군을 공격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한 인물이 물었다.

린덴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만약 패전한다면. 그 책임은 내가 진다.”

“……!”

“물론 도박을 하는 게 아니야. 이번 적의 총공격은 원래부터 수상했어. 난 클로랜스 대령의 말이 맞는다고 믿는다.”

믿는다.

그 말이 엘리제의 가슴에 와서 박혔다.

지난번 론도 콜레라 사건 때 이후로 두 번째 듣는 말이었다.

“엘리제.”

“네, 네, 전하?”

“고맙다. 네 의견이 결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

“만약 이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가장 큰 수훈자는 바로 너이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의 조언 덕분에 추측이 확신으로 변했으니까.

린덴은 군부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장군들.”

“네, 전하.”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이번엔 우리가 사막의 전갈을 사냥할 것이다. 모두 단단히 각오하고 준비하도록.”

“……!”

***

그렇게 회의가 끝났다.

엘리제는 장군들 앞에 섰던 긴장이 풀려 다리가 떨렸다. 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회의장을 나섰다.

“잘 준비해야겠구려.”

“그러게 말이오. 비밀을 잘 유지해야 할 듯하오.”

회의 때는 설왕설래했지만, 더 이상 잡음은 없었다.

총사령관이 결정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결정한 이상 따른다. 그게 군인이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장군들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사막의 전갈을 사냥한다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제국군의 무서움을 보여줄 때입니다.”

사막의 전갈을 사냥한다!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일이다.

한편, 엘리제는 야전병원으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옮겼다.

‘빨리 돌아가자.’

그런데 그때였다. 그녀는 한 인물을 발견하고 서둘러 뒤를 따라갔다.

“알버트 공자님!”

“……!”

젊은 남자, 알버트가 그녀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입니까?”

그가 귀찮은 내색을 보였지만 엘리제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네?”

“회의 때 저를 도와주신 것 감사합니다.”

알버트는 이마에 주름살을 만들었다.

“됐습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도와준 것 절대 아닙니다. 그저 제 생각도 마찬가지이기에 발언한 것일 뿐. 그러니 절대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절대’가 두 번이나 들어간 강한 부정.

그런데 너무 강한 부정이다 보니, 오히려 반대의 느낌이 들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쿡 웃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원래 말투가 이런가?’

한편 알버트는 웃는 엘리제를 뚱한 얼굴로 바라봤다.

“뭘 그렇게 웃습니까?”

“그냥요.”

알버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가세요.”

“조심히 안 가도 됩니다. 바로 앞이 제 방이니.”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알버트는 말꼬투리를 잡았다.

그러고 정말 코앞에 있는 집무실로 들어가기 전,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안부 전해 달라더군요.”

“네?”

“유리엔 그 아이가 말입니다. 데임께 꼭 안부 전해 달라고.”

그러며 그는 투덜거렸다.

“편지로 몇 번이나 부탁하던지. 그렇게 안부가 전하고 싶으면 직접 데임께 편지하면 될 것을.”

엘리제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알버트 공자님, 안부 전해줘서 고마워요.”

“됐습니다. 빨리 들어가기나 하십시오.”

그러며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틈 사이로 그가 사라지기 직전, 엘리제는 갑작스러운 마음이 들어 이렇게 외쳤다.

“알버트 공자! 전투 때 꼭 몸조심하세요!”

“……!”

닫히던 문이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이런 소리가 새어 나오며 다시 닫혔다.

“당신도 조심하십시오.”

며칠 뒤, 제국군과 공화국군이 충돌하였다.

코프스크 대회전.

지금껏 유례가 없던, 크림반도의 운명을 건 대전(大戰)이었다.

============================ 작품 후기 ============================

내일 화요일 09:07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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