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4 3-4 위험한 수술 =========================================================================
4장 위험한 수술-3
린덴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특별히 할 말은 없다.”
“그러면 어째서?”
거듭된 물음에 린덴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가? 그냥 있으라 했다.”
그저 너와 함께 있고 싶어서 그랬거늘! 린덴은 속으로 말했다.
엘리제는 입을 다물었다.
‘그냥 있으라 했다고? 왜?’
그의 대답을 들으니 가슴이 더욱 불편해졌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후 둘은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엘리제는 머리와 가슴이 혼란스러워 입을 다물었고, 린덴은…….
‘젠장, 어떻게 단둘이 남긴 남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지 그녀가 좋아할까?’
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맥가일 원수가 했던 조언을 떠올렸다.
맥가일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전하! 여자들은 유머 있는 남자를 좋아합니다!’
‘……난 유머 같은 것 모른다.’
‘어쨌든 말 없는 남자는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니 데임과 단둘이 있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유창한 말주변으로 데임을 즐겁게 해주십시오!’
‘젠장, 유머와 유창한 말주변이라니. 가능한 걸 조언하라고! 나한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황태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조언을 듣고는 있지만, 왠지 전혀 믿음이 안 가는 맥가일 원수.
린덴은 여자에 대해 모른다. 사귀어본 적도 없고,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다. 그저 정략혼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그러니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 알 리가 없다.
그저 간절히 원하는 그녀를 코앞에 두고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끙끙댈 수밖에.
‘빌어먹을, 셋째는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애들을 대하는 거지?’
그는 론도 최고의 바람둥이라 불리는 3황자 미하일을 떠올렸다. 목숨을 걸고 다투는 정적이지만, 이 순간은 그의 말주변이 부러웠다.
‘맥가일 원수가 알려준 유머라도 말해야 하나? 총을 쐈더니 새가 날아갔다는?’
하지만 그 유머를 말하는 순간, 둘 사이가 얼음처럼 얼어 벌일 것 같은 본능적 위기감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왠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똑. 똑.
“……?!”
둘이 있는 회의실의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황태자는 갑작스러운 불청객에 인상을 찌푸렸고, 엘리제는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괜찮으니 들어오세요!”
끼익.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 너머로 나타난 얼굴을 보고 엘리제와 황태자는 눈을 크게 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전하?”
화사한 꽃 같은 미남.
붉은 제복 밑으론 검술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엘리제를 반가운 눈길로 보더니, 옆에 앉은 린덴을 보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라? 형님도 여기 계셨네? 내가 방해한 건가?”
“……네가 여기는 웬일이냐, 미하일?”
린덴은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타난 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3황자 검제 미하일이었다!
미하일은 형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엘리제를 바라봤다.
“잘 지냈어, 리제? 오랜만이네.”
“네, 전하. 특별한 일은 없으셨어요?”
“응, 나는 늘 건강하지. 알잖아. 나 강한 거.”
“그래도 꼭 조심하세요. 전장은 위험하니.”
엘리제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자신을 대할 때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인지라 린덴은 눈썹을 꿈틀했다.
실제로 엘리제는 이전 삶의 유일한 친구였던 미하일에게 깊은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린덴은 마음에 안 든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미하일.”
“아아. 다른 건 아니고. 사실 리제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그 말에 엘리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검제 3황자 전하가?
“리제, 하나만 물어봐도 돼?”
“네, 전하. 무슨 일인데요?”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물음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나한테 수술법을 가르쳐 줄 수 있어?”
“……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질문이란 말인가? 난데없이 수술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환자가 한 명 있는데 네가 수술할 수는 없고, 내가 직접 해야 할 것 같아서.”
더 알 수 없는 대답이었다. 환자가 있는데, 자신이 직접 수술해야 한다니?
그러며 그는 자신의 오른쪽 배를 가리켰다.
“여기에 뭐가 박혔는데, 어떻게 수술해야 할까? 대충 다 잘라내고 꺼내면 되나?”
위치를 보니 간 하단, 부신과 콩팥이 있는 부위였다.
후복막강 장기로 저곳에 총탄이 박혔으면 부신과 콩팥 일부를 절제해야 한다.
어려운 수술로 이곳 의사 중 저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유일했다. 당연히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은 더더욱 아니었고.
“전하, 제가 수술할게요. 환자는 지금 어디 있나요? 혹시 적진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런 거예요?”
“아니, 환자는 이곳 야전병원 근처에 대기하고 있어.”
엘리제는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 있다면 빨리 병원으로 데려올 것이지 왜?
“빨리 이곳으로 데려와 주세요. 콩팥이 있는 부위인데 시간이 지체되면 피가 많이 나 위험할 거예요.”
“이곳으로는 데려올 수가 없어.”
“네? 어째서요?”
“그게…….”
미하일은 황태자를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안 돼. 사실 죽게 내버려 두는 게 맞는 것 같지만, 나름 친척이라 내버려 둘 수가 없네.”
“친척…… 이요?”
“응. 밉상이지만, 나쁜 놈은 아니어서.”
그의 말에 그녀는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3황자 전하의 친척? 친가인 로마노프 황족은 아닐 거고, 3황자의 외가는 차일드 가문인데?’
거기까지 생각한 엘리제의 몸이 뻣뻣이 굳었다.
그러고 보니 한 명 있었다!
차일드 가문에서 참전한 공자가.
“……설마?”
“응, 알버트. 너도 지난번 얼굴은 봤지? 그놈이야. 이대로 두면 곧 죽을 것 같아.”
“……!”
엘리제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알버트 드 차일드! 차일드가의 차기 당주.
그가 죽을 부상을 입었다고?
그의 오만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그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당신도 조심하십시오.’
엘리제는 급히 말했다.
“그가 다쳤다고요? 왜 병원으로 데려오시지 않은 거예요? 지금 빨리 데려오세요! 저는 당장 수술 준비를 할 테니!”
그녀는 미하일이 가리킨 부위를 떠올렸다.
부신과 콩팥!
‘쉽진 않겠지만, 빨리 수술하면 살릴 수 있어.’
다른 의사는 안 된다. 하지만 자신이라면 현대 지구의 수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라면 살릴 수 있었다.
“빨리요. 한시가 급해요!”
그런데 미하일의 반응이 이상했다.
“이곳으로는 데려올 수가 없어.”
“네, 그게 무슨?”
“말했잖아. 그냥 죽게 내버려 두는 게 사실 맞는다고.”
엘리제는 미하일이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죽게 놔두는 게 맞는 것이 어디 있는가? 살릴 수 있으면 무조건 살려야지.
“하아. 리제, 잠시 이쪽으로 와볼래? 형님, 미안. 리제 좀 잠시만 빌릴게.”
“이곳에서 이야기해라.”
“에이, 너무 그러지 마. 잠시만 빌릴게. 나가서 이야기해도 괜찮지, 리제?”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가서 이야기해요.”
그녀 본인이 나가서 이야기하겠다는데, 말릴 방도도 없어 황태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빨리 이야기하고 돌아와라.”
그렇게 3황자는 황태자의 시선을 피해 엘리제를 회의실 밖으로 데려갔다.
충분히 거리가 떨어진 후 상황을 설명했다.
“이곳에 데려오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어.”
“……네?”
“그놈 몸 안에 박힌 게 총류탄용 소형 수류탄이거든.”
엘리제는 잠시 그 말뜻을 이해 못했다.
“수, 수류탄이요?”
“응. 하필 공화국군이 쏜 총류탄에 맞았어. 아, 총류탄이 뭐냐면 수류탄을 발사하는 총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총류탄(銃榴彈, Rifle Grenade).
현대 지구의 유탄 발사기의 초기 형태와 유사한 물건으로 총알 대신 소형 수류탄을 발사하는 무기이다.
“여러 문제점 때문에 제국군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공화국군은 바넬이란 화학자가 개발한 총류탄을 종종 사용하고 있거든. 수류탄을 날렵하게 소형화시켜서. 어쨌든.”
“…….”
“다행히 터지진 않고 불발되었는데, 배 안에 수류탄이 총알처럼 박혀 버렸어. 이걸 제거해야 하는데, 문제는 수류탄의 종류가 충격신관으로 된 놈이라…….”
미하일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술 중 잘못 건드리면 터질 수도 있어. 그러면 다 죽어. 알버트도, 수술하는 사람도, 근처에 있는 사람은 모두.”
“……!”
엘리제의 얼굴이 하얘졌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 명을 살리려다 수술하는 사람이 모조리 몰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알아.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맞는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정이 든 놈인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미하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너를 포함해 다른 사람을 위험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위험은 나만 감수할 거야. 그러니 너는 나한테 수술 방법만 알려줘. 수술은 내가 할 테니.”
“……!”
엘리제의 눈이 흔들렸다.
미하일, 그가 수술한다고?
‘절대 안 돼. 불가능한 일이야.’
아무리 그가 최강의 오러나이츠라도 가능한 것이 있고, 불가능한 것이 있다.
설명만 듣고 수술을 할 수 있으면 누가 의사를 못하겠는가?
더구나 이곳 크림에서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자신밖에 없다. 그만큼 예민한 손놀림이 필요한 수술이다.
미하일이 자신의 말을 듣고 수술하면 백 프로 실패해 수류탄을 건들 것이다. 그러면 수류탄이 그의 코앞에서 터지겠지.
‘그러면? 그러면 그는? 아무리 오러 나이츠라도 괜찮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검제라도 수류탄이 바로 앞에서 터지는데 무사할 리가 없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짧은 순간 생각을 마친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환자를 보여주세요.”
“응?”
“알버트 공자께 저를 안내해 주세요.”
“……리제!”
엘리제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상태를 직접 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겠어요.”
***
“크으으…….”
알버트는 들것에 실린 채 인근 야산에 대기하고 있었다.
“……!”
그의 모습을 확인한 엘리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다리가…….”
피로 물들어 있는 우측 복부는 물론이고, 왼쪽 발이 발목부터 형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왼쪽 발목은 대포의 포탄에 휩쓸리며 떨어져 나갔어. 그나마 이건 응급처치를 잘해서 큰 문제는 없을 거야.”
3황자 미하일은 씁쓸히 말했다.
“대포의 포탄에 휩쓸리고 총류탄에 맞았는데도 다행히 목숨은 건졌어. 운이 좋았지.”
“…….”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운이 좋아? 이걸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론도의 차일드 가문 앞에서 그를 처음 만날 날이 생각났다.
비 오는 날 유리엔을 에스코트하던 이 자신감 넘치는 남자는 본인에게 이런 불행이 닥칠 것이라 상상한 적이 있을까?
사이좋은 인연도 아니건만, 이 비참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울컥했다.
“데임 클로랜스?”
한편, 이미 의식이 없는 알버트 곁에서 노심초사 있던 젊은 장교들이 그녀를 알아봤다.
엘리제도 그들을 알아봤다.
‘카르만 경? 라오스 경도?’
귀족파 가문의 영식들로 모두 그녀에게 고깝게 대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출현에 서로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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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25일 09:07분에 뵙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