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5 3-4 위험한 수술 =========================================================================
4장 위험한 수술-4
엘리제는 곤란한 마음이 들었다.
‘또 시비를 걸려고? 이런 상황에?’
저들은 그녀가 클로랜스 가문의 딸이란 이유만으로 필요 없는 시비를 종종 걸었었다.
그러든 말든 큰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환자의 상태가 급해 시비를 받아줄 상황이 아니었다.
“데임.”
그런데 이어진 그들의 행동에 엘리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발 알버트 공자를 구해주십시오!”
“……?!”
“제발! 이렇게 간절히 부탁합니다!”
귀족파의 영식들이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간절히 매달린 것이다!
“이런 부탁 염치없는 것 압니다. 하지만 제발…… 제발 부탁합니다! 데임 말고는 알버트 공자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발……!”
그렇게 말한 그들은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서로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그녀의 실력만큼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알버트를 살릴 능력을 가진 의사는 오로지 엘리제밖에 없었다.
그녀는 당황해 고개를 저었다.
“이, 일어나세요.”
“만약 알버트 공자를 살려주신다면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저 카르만 자작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오스 가문의 이름을 걸겠습니다!”
엘리제의 눈동자가 다시 흔들렸다.
저런 부상이면 살아나도 정계에 복귀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런 간절한 부탁이라니.
오만한 인상과 다르게 알버트는 주변인들에게 많은 인망을 쌓았던 것 같다.
그런데 딱딱한 목소리가 그들을 찔렀다.
“일어나. 리제는 치료에 참여하지 않아.”
“……!”
“치료는 내가 한다. 그러니 리제에게 괜히 부담 주지 말고 일어나.”
3황자였다.
귀족파의 영식들은 말을 더듬었다.
“하, 하지만…… 전하! 알버트 공자를 치료하려면……!”
“그래서? 리제보고 알버트를 수술하라고? 수술하다 수류탄을 잘못 건들면 죽는데?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라는 말이냐?”
“…….”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놈은 밉상이긴 하지만 내 사촌이야. 그리고 난 최악의 상황이라도 오러로 내 몸을 지킬 수 있고. 그러니 위험은 내가 감수한다.”
3황자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리제, 나한테 어떻게 수술해야 하는지만 알려줘.”
엘리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상처를 살필게요.”
그녀는 알버트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일단 다리는 괜찮아. 지혈도 완벽하고 처치가 잘됐어.’
상처에 비해 전체적인 몸의 상태는 나쁘지 않은 듯했다.
의식은 없었지만, 맥을 짚을 때 혈압도 잘 유지되고 있었고, 심장의 박동수도 지나치게 빠르진 않았다.
수술만 잘하면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역시 복부의 수류탄이었다.
‘도대체 수류탄이 어떤 식으로 어느 부위에 박혀 있는 거지?’
그녀는 조심히 복부의 개방 상처를 손으로 열어 보았다.
울컥. 피가 쏟아져 나오며 그녀의 하얀 손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드러나는 내부의 풍경을 굳은 눈으로 살폈다.
“……!”
오른쪽 복부 깊숙이, 후복막강.
간의 밑.
콩팥과 부신이 위치한 곳. 그곳에 날렵한 쇳덩이가 박혀 있었다!
‘저게 수류탄?’
그녀가 매체에서 보던 수류탄과는 많이 다르게 생겼다.
동그랗기보단 길쭉하면서, 뾰족한 게 마치 총의 탄알처럼 생겼다. 물론 일반적인 탄알보다는 몇 배는 컸다.
“바넬이란 화학자가 개량한 수류탄이야. 총으로 쏘기 적합하게 일반 수류탄보다 작고, 날렵하지. 디자인 자체는 혁신적이야. 치명적 문제가 있지만.”
“무슨 문제요?”
“지나치게 둔감하거나 지나치게 예민해.”
“……예?”
“이렇게 몸에 박힐 때까지 안 터지거나, 안 터지는가 싶어 안심하고 있으면, 툭 건들기만 해도 터진다고. 한마디로 조절이 안 돼. 쏘기도 전에 총 안에서 터지는 일도 부지기수고.”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수술 중에 툭하고 잘못 건들면 터질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물론 안 터질 수도 있겠지만.
“위험하네요.”
“그래, 그러니 빨리 어떻게 하는지나 알려주고 병원으로 돌아가. 그 뒤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말도 안 되는 말에 엘리제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나왔다.
“안 돼요.”
“뭐?”
“절대 못한다고요. 전하께서 수술을 어떻게 해요?”
“왜? 그냥 적당히 잘라내면 되는 것 아니야?”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먼저 간의 삼각 인대를 자르고, 간의 위치를 상방으로 올린 후, 부신 정맥, 부신 동맥을 지혈해야 해요. 또 주변의 연조직을 메스로 박리한 후, 부신을 콩팥에서 떼야 해요. 그리고 이후에는……“
그녀는 최대한 짧게 수술 과정을 그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물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한 것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그것도 수류탄을 안 건들면서.”
“…….”
3황자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그는 그녀가 이야기한 것을 10%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은 그냥 잘라낸다고 끝이 아니에요.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요. 무턱대고 들어갔다간 수류탄만 잘못 건드려 알버트 공자는 죽고 전하만 다치실 거예요.”
“……그러면 방법이 없는 건가?”
3황자는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그녀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저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어 그녀에게 수술법을 가르쳐 달란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한 것이다.
“딱 하나 있어요. 알버트 공자도 살고, 아무도 다치지 않을 방법이. 물론 백 프로는 아니지만.”
3황자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떤 방법이야?!”
엘리제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생각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솔직한 말로 다른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없었다. 이 방법이 유일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짧게 답했다.
“제가 수술을 하는 거예요.”
“……!”
“수류탄을 건드리지 않고, 부신 절제술과 부분 콩팥 절제술을 한꺼번에 해내면 모두가 안 다치고 알버트 공자를 살릴 수 있어요.”
***
부신 절제술.
부분 콩팥 절제술.
이 시대의 의학 수준에선 까마득히 어려운 수술이겠지만, 그녀에게는 지구에서 늘 하던 일상적인 수술이었다.
‘문제는 수류탄이지만. 안 건들면 돼. 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난 할 수 있어.’
그건 과신이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을 알고 하는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자신은, 외과의사 엘리제는 이 수술을 해낼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3황자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리제 네가 수술한다고? 절대로 안 돼!”
“전하.”
“무조건 안 돼! 네가 그런 위험에 처할 바엔 차라리 치료를 포기하는 게 나아!”
엘리제는 달래듯 그에게 말했다.
“전하, 위험하지 않아요. 저에겐 그렇게 어려운 수술이 아니에요. 수류탄을 안 건들고 주변을 다 절제 후 한꺼번에 들어내면 돼요.”
사실 그녀는 비슷한 수술 경험이 있었다.
‘갈색세포종 수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갈색세포종(Pheochromocytoma).
신경 호르몬이 분비되는 종양으로 수술 중 실수로 혹을 건들면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물질이 과다로 분비되어 환자를 위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혹을 건드리지 않은 채 수술을 해야 한다.
고도의 집중력과 손기술이 필요한 수술.
하지만 그녀는 그 갈색세포종 수술을 몇 번이고 성공한 경험이 있었다. 바로 이 수류탄이 박혀 있는 부신 부위에.
‘그 수술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돼. 충분히 승산이 있어.’
“전하, 만약 어려울 것 같으면 바로 중단하면 돼요. 그러면 위험하지 않아요. 하지만 시도해 보지도 않으면, 이 알버트 경은 무조건 죽어요.”
사실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녀도 수술하기 싫었다.
자신감이 있다 해서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만약 실수라도 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알버트는 무조건 죽는다.
그러니 다른 답이 없었다.
“…….”
3황자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말대로 수술하지 않으면 알버트는 죽는다. 하지만 수술을 하면 그녀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건 더 싫었다.
이 모순된 상황 속에서 그는 갈팡질팡하다 입을 열었다.
“좋아. 하지만. 조건이 있어.”
“무엇인데요?”
“그 수술에는 나도 같이 들어갈 거야. 너와 나. 둘이서 해.”
그 말에 엘리제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하.”
“만약 안 듣는다면 수술도 절대 허락할 수 없어. 어차피 도와줄 사람 필요하잖아? 괜히 엄한 사람 끌어들이지 말고 나로 해.”
미하일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알겠어요.”
어쩔 수 없이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최소한 한 명은 그녀를 도와줘야 하는데,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니 그가 도와주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리제. 만약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 수류탄이 터지더라도 내가 넌 털끝 하나라도 상하지 않게 할 거야. 설사 내가 죽더라도 말이야. 내 몸으로 막아서라도 너를 지키겠어.”
엘리제는 그 말에 웃음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잘할게요.”
그녀는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미하일은 빈말로 뱉은 말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카르만 경, 병원에 빨리 내려가 수술 준비를 해달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준비가 끝나면 건물 하나를 비워 달라고 전해주세요.”
혹시나 수술이 잘못되면 수류탄이 터질 수도 있다. 그러니 건물을 비워 달라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데임!”
카르만이 내려간 후, 그녀는 3황자에게 말했다.
“우리도 알버트 공자를 데리고 빨리 내려가요.”
“그래.”
그런데 그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그녀를 잡았다. 서늘한, 그러면서도 분노가 가득한 음성이었다.
“지금……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술을 하겠다고?”
“……?!”
황태자 린덴 드 로마노프였다!
“전하, 여긴 어떻게?”
놀란 엘리제가 물었으나, 린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엘리제. 데임 클로랜스! 다시 한 번 묻겠다!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수술을 하겠다고?!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
그의 눈빛에 담긴 아득한 분노에 엘리제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왜? 왜 이렇게 화나신 거지?
엘리제는 떨림을 멈추기 위해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 전하. 알버트 공자는 지금 당장 수술받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이는 병원에 저밖에 없으므로 제가 수술해야 합니다.”
“……시끄러.”
“……전하?!”
“시끄럽다고!”
그 거친 말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린덴은 자신이 그녀에게 험한 말을 했다는 자각도 못했다. 그만큼 분노했다.
“너는 도대체! 도대체! 왜 자신이 위험할 수 있단 것을 생각하지 않는 거야! 왜 네 몸은 신경 쓰지 않는 거냐고! 왜?!”
그는 이를 바득 갈았다.
그녀의 참전을 들었을 때 이후로 이렇게 화난 적은 처음이었다.
“저, 전하.”
엘리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서, 설마…… 걱정하는 건가? 나를?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황태자가 자신을 걱정하다니.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 드는 생각. 걱정하는 게 아니라면 저 말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저 분노는? 분노 뒤에 요동치는 저 눈빛은?
그녀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뒤죽박죽 섞였다.
“위,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잘못되면?”
린덴은 으르렁거렸다.
“만약 잘못돼서 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왜 너는 네 생각만 하는 거야?! 이 이기적인!”
“……!”
그 말에 엘리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이게 무슨 말이지……?
“저, 전하?”
“명령이다. 넌 이제부터 감금이다.”
“……!”
============================ 작품 후기 ============================
내일 26일 09:07분에 뵙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