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7 3-4 위험한 수술 =========================================================================
4장 위험한 수술-6
그래도 지난 삶, 필사적으로 쌓아둔 노력 덕분일까?
다행히 수류탄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이분지 일 정도를 박리해 낼 수 있었다.
‘대단하군.’
3황자는 그런 그녀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봤다.
의술과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그래도 검술의 정점에 이른 그이기에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그녀가 해내고 있는 일이 얼마나 섬세하고 어려운 손놀림을 요구하는 것인지.
‘어떻게 이런 수술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는 수많은 이가 가졌던 의문을 떠올렸다.
그만큼 놀라웠다. 정말 이 소녀라면 아무 문제 없이 수류탄을 제거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경탄과 다르게 엘리제는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못 느끼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
타앗!
엘리제의 손이 일순 미끄러지며 메스를 놓쳤다!
“리제?!”
“아……?!”
3황자와 엘리제 모두 가슴이 덜컥하여 수류탄을 바라봤다.
천만다행으로 이번에도 수류탄은 조용했다. 분명 건드려졌는데 터지지 않은 것이다.
“괜찮아, 리제?!”
“아…… 죄송해요. 실수했어요.”
그렇게 답하는 엘리제의 얼굴에는 땀이 흥건했다.
“리제…… 너?”
“괜찮아요. 정말로.”
그러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실수했어.’
오랫동안 집중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지구에서도 10시간 이상 집중해 수술한 적이 많으니까.
하지만 고도의 긴장이 문제였다.
혹시라도 수류탄이 터질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게 되었다.
하얀 소독 장갑 안에 그녀의 손은 긴장으로 땀이 가득 찬 지 오래였다.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할까?’
그녀는 고민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할 수 있어. 긴장만 풀면 돼. 릴랙스. 너 자신을 믿어, 엘리제.’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이어 할게요.”
“…….”
그런 그녀를 미하일은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다.
작은 소녀는 여전히 강인해 보였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미하일은 무거운 마음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부탁 때문에 위험을 감수한 소녀다. 절대 털끝 하나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슥. 스윽.
고요한 수술방, 메스가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은 덕일까? 아무런 문제 없이 수술이 진행됐다.
이윽고, 부신의 박리가 거의 마무리되었다!
‘좋아. 이대로.’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엘리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박리가 끝난 후, 부신을 살짝 들어보니 수류탄의 날카로운 끝 부분이 부신을 뚫고 후복막에 아예 파묻혀 있었다.
‘이러면 수류탄을 안 건들 수가 없잖아?’
아니, 부신에 가려진 후복막을 살짝 도려내면 안 건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녀에게도 고난이도 테크닉이었다. 너무 위험했다.
엘리제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지?’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포기하는 것이 맞았다.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니까.
그 순간 그녀의 머리에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엘리제, 꼭 무사해야 한다. 꼭.’
자신을 떠나보내며 눈을 붉히던 근엄한 얼굴의 아버지. 그리고 끝없이 자신을 걱정하던 작은오라버니와 새어머니.
‘어떻게 해야죠? 아버지, 오라버니, 어머니.’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짧은 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건 아니야. 너무 위험해. 할 만큼 했잖아, 엘리제? 안 그래? 죽을 수도 있다고.’
두 번의 삶을 살았다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첫 번째 삶, 단두대에 처형당하고 나서 지구에서 얼마나 많은 악몽을 꿨었는가? 오히려 두 번의 죽음을 생생하게 경험했기에 죽음이 더욱 두려웠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만약 내가 죽으면? 날 기다리는 아버지는? 가족들은?’
그래, 아무리 자신이라도 이건 너무 위험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끄으으…….”
마취 가스에 잠들어 있던 알버트가 신음을 흘렸다.
“……!”
엘리제의 눈이 다시 흔들렸다.
그녀가 포기하고 장갑을 벗는 순간 저 알버트는, 자신감 넘치던 오만한 사내는 목숨을 잃으리라.
‘이 아이를 잘 봐줄 수 있겠나?’
갑자기 차일드 후작의 부탁이 떠올랐다. 자신을 간병하던 유리엔 공녀의 얼굴도.
그녀의 눈동자에 습기가 차올랐다.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해야지? 누가 알려주세요. 도저히 모르겠어요.’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두려웠다. 죽고 싶지 않았다.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를 살리고 싶었다.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억겁 같은 몇 초가 흘렀다. 그리고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죄송해요, 아버지, 오라버니, 어머니.’
그녀는 론도에 있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저 조금 위험한 짓을 하려고 해요. 정말 죄송해요. 저도 이게 아니란 것을 알지만,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겠어요. 만약…… 수술이 무사히 끝나면, 그래서 살아나면, 꼭 효도할게요. 절대 다시는 이런 위험한 짓 하지 않을게요.’
그녀는 창밖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니 제발 저를 지켜주세요. 아버지, 어머니, 오라버니. 주님.’
그리고 그녀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메스의 칼날이 수류탄의 끝 부분이 박힌 후복막을 조금씩 도려내었다.
어려운 일이었다. 시야는 여러 장기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고, 손이 움직이는 각도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론도에 있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무사히 수술을 끝내겠다는 필사적인 일념으로.
그리고 이윽고 그 작업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덜컥!
절대, 절대로 들려선 안 되는 소리가 울렸다!
“……?!”
엘리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3황자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제길!”
수류탄의 충격신관이 자극된 것이다!
이제 곧 폭발한다!
‘안 돼!’
엘리제의 머릿속이 백지장으로 변했다. 곧 닥칠 죽음의 공포에 몸이 뻣뻣이 굳었다.
‘아버지, 오라버니, 어머니!’
찰나의 순간, 가족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들에게 미안했다. 기껏 다시 살아났건만,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하고 이렇게 죽다니.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 그녀의 머리에 떠올랐다.
차가운 인상, 조각 같은 얼굴.
‘론…… 님?’
론? 아니, 론이 아니었다. 하나의 얼굴에 두 명의 남자가 겹쳐 보였다. 론과 겹쳐 보이는 그는 다름 아닌 황태자였다!
‘어째서?’
그런데 그녀가 멍하니 의문을 품는 순간이었다.
다급한 손길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리제!”
미하일이 와락 거칠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전하?!”
그는 그대로 그녀를 땅바닥에 엎어트렸다.
“꺄악?!”
그리고 자신의 온몸으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
‘절대 다치게 하지 않아!’
미하일은 이를 악물며 대자연의 기운, 기(氣), 서대륙에서 오러라 불리는 기운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그러고 자신의 몸은 도외시하고 그 기운을 모조리 그녀 쪽으로 둘러 버렸다.
“조심해, 리제!”
미하일은 곧이어 닥칠 충격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탁!
수류탄이 터지는 순간이 되었다.
***
“…….”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하일은 눈을 깜빡거렸다. 뭐지? 이미 죽어서 아무것도 못 느끼는 건가?
그의 몸에 안겨 있는 엘리제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리제?”
“……네, 전하?”
“……너 살아 있는 거지?”
“……아마도요.”
“그러면 나는?”
“……전하도 살아계신 것 같은데요?”
둘은 그렇게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분명 수류탄이 작동했는데? 왜 안 터진 거지?
미하일은 곧 답을 깨달았다.
‘이런 빌어먹을. 완전히 불량품이었구나.’
조금만 건드려도 터지는 예민한 탄이 아니라, 신관이 작동해도 아예 터지지 않는 불발탄이었던 것이다!
불발탄에 이렇게 마음 졸여 했다니, 미하일은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흐윽. 흑.”
그의 품 안에 안겨 있던 엘리제가 울음을 터뜨렸다.
“리, 리제?”
“죄, 죄송해요. 흐윽. 너무 놀라서.”
그녀는 눈물 흘리는 게 부끄러운지 허겁지겁 손등으로 눈가를 비볐다.
하지만 워낙 놀란 탓인가? 울음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리제.”
미하일은 따뜻한 얼굴을 했다.
이렇게 우는 모습을 보니 아까 전 굳세게 수술하던 의사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귀엽고 여린 또래 소녀처럼 느껴졌다.
“괜찮으니 조금 더 울어도 돼.”
“……!”
그러면서 그는 부드럽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엘리제의 얼굴에 탄탄한 그의 가슴이 와 닿았고, 그 따뜻한 손길에 그녀는 알 수 없게 울컥하였다.
“흐윽. 크흑.”
“그래, 그래. 많이 놀랐지? 진정하고.”
“나. 나 죽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로…… 흐윽.”
“그래, 아무 일도 없었어. 놀라지 말고.”
미하일은 아이를 달래듯 엘리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진정할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추태를 부려서.”
엘리제는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 게 민망한지 시선을 피했다.
미하일은 싱긋 웃었다.
“뭘. 난 좋았는데? 얼마든지 울어도 좋다고.”
“……!”
엘리제의 얼굴이 일순 달아올랐다.
“저, 전하.”
“왜?”
“그런데 이제 좀…….”
“뭘?”
엘리제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 그게…… 이제…… 몸을 좀…….”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하지만 미하일은 알아들었으면서도 못 알아들은 것마냥 물었다.
“응? 뭘 말하는 거야?”
“그게…….”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눈과 눈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가까운 것은 눈동자만이 아니었다. 폭발 순간 그가 그녀를 엎어뜨리고 몸 위에 밀착한 탓에 지금 그들은 한 몸으로 붙어 있었다.
더구나 그냥 붙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한쪽 손은 그녀의 머릿결에 있었고, 다른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참으로 야릇하기 그지없는 구도.
“그, 그…… 그러니까…… 모, 몸을 조금…….”
엘리제는 민망함에 제대로 말도 못하고 더듬었다.
미하일은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이 소녀는 아까는 그렇게나 강인한 모습이었으면서, 지금은 왜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럽단 말인가?!
“뭘? 응?”
“그, 그러니까…… 비, 비켜 달라고요!”
결국, 엘리제는 빽 소리 질렀고 미하일은 쿡쿡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그렇게 웃으세요?”
엘리제는 뾰로통하게 물었다.
“쿡쿡, 그냥. 좋아서. 몸은 괜찮아? 넘어질 때 다친 데는 없지?”
“네.”
엘리제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그에게 새로운 소독 장갑을 건네었다.
“받아요. 바로 수술 진행할 거니까.”
“네, 네.”
금세 외과의사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녀를 보고 미하일은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참 여러모로 대단했다.
“빨리 끝낼게요.”
불발탄인 것을 몸으로 확인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그녀는 쓱쓱 메스를 움직였다. 지금까지의 가슴 졸임을 복수라도 하듯 쾌도난마의 손짓이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했다.
한결 여유가 생긴 분위기에 미하일은 장난 삼아 물었다.
“리제.”
“네?”
“우리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행이나 가지 않을래?”
“여행이요?”
엘리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웬 여행?
“그냥 너랑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뭐, 테마는 의료 봉사 여행 정도로 할까? 너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나는 네 호위기사로 따라다니고.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장난. 어디까지나 농담 같은 물음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그래요. 가요.”
“……뭐?”
“재미있겠네요.”
미하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심이야?”
“네, 기회가 되면 가요.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3황자는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그녀의 말대로 둘이 여행을 갈 기회가 올 리는 없지만, 엘리제의 시원한 승낙에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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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28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