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과의사 엘리제-81화 (81/194)

00081  3-5 감금  =========================================================================

5장 감금 - 4

그래서 방을 나가려는 그녀를 잡았다. 억지로 자신의 옆에 눕게 했다.

‘많이 놀랐겠지?’

그는 방금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던 행동을 떠올렸다. 그도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계속 자신을 밀어내는 그녀를 보고 욱하고 충동이 들었고, 자신도 모르게 일을 저질러 버렸다. 미친 짓이었다.

‘엘리제. 하아, 엘리제.’

그녀를 ‘내 엘리제’라 부를 수 있는 날이 올까? 온다면 그게 언제일까?

“하아.”

그런데 그 한숨 소리가 큰 탓이었을까?

엘리제가 신음을 내며 뒤척였다.

“으음…… 으…….”

“……!”

린덴은 혹시나 그녀가 깼을까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도 다행히 꿈을 꾸다 낸 소리일 뿐, 잠에서 일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음…… 으…….”

린덴은 그녀의 신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또 악몽을 꾸는 건가?’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는 그녀가 잠든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 그녀가 하버 공작부인을 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백원의 궁, 혈탑(血塔)에 갇혔을 때 초상 능력을 이용해 여러 번 자는 모습을 보러 갔던 것이다.

“그때도 매번 이렇게 악몽을 꾸더니…….”

무슨 꿈을 꾸는 건지, 그녀가 편히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괴로워하며 눈물 흘렸다.

그래서 언젠가 지나가듯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잘 때 악몽을 꾸진 않느냐고. 소녀는 전혀 아니라고, 악몽 같은 것 없이 잘 잔다고 대답했었다.

“잘 자기는 무슨…….”

어느덧 소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죽지 마요. 제발…… 제발…….”

그리고 늘 비슷한 잠꼬대.

“살려 주세요…… 제발…… 죽고 싶지 않아요…….”

“……!”

도대체 이 어린 소녀는 늘 무슨 꿈을 꾸고 있단 말인가? 이런 잠꼬대라니. 얼굴도 너무나 괴로워 보였다.

“하아,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이젠 하다못해 잠자는 모습까지 자신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소녀에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아느냐, 엘리제?”

중얼거렸다.

“난 네가 마음에 안 든다. 정말로. 정말로 마음에 안 들어.”

그는 머뭇거리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괴로워하는 그녀의 어깨를 조심히 감쌌다.

“그래도…… 네가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난 네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가 않아.”

내가 아프니까.

네가 아픈 것보다 내 가슴이 훨씬 아프니까.

그러니.

“꿈속에서라도 아프지 마라. 제발.”

그녀의 몸이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린덴은 마치 깨지기라도 할까 조심히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녀가 준 ‘징표’.

그의 옷 안에 걸린 진주 장식 십자가가 그녀의 등 뒤에 살포시 와 닿았다.

그렇게 달빛 비추는 밤이 깊어갔다.

엘리제는 모르고 있지만, 이번 삶 그와 그녀의 첫 포옹이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일까?

그의 품에 안긴 순간, 괴로움에 떨던 그녀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마치 악몽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

심페폴 교외에 위치한 아담한 별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꽃이 만발했을 것이 분명한 아름다운 휴식처에 공화국군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었다.

“그래, 이상은 없는가?”

“충성! 네, 이상 없습니다, 중령님!”

별장을 찾은 이는 파비앙 중령.

공화국군의 총사령관 루이 니콜라스의 친우이자, 부관이었다.

“그래, 검기사단의 포로들은?”

“특별한 이상 동향은 없습니다.”

“모두 오러 나이츠들인데 위험한 행동은 없나?”

“손을 구속해 두었습니다.”

별장에 갇혀 있는 포로들은 다름 아닌 검제가 이끄는 검기사단의 오러 나이츠들이었다.

‘오러 나이츠. 참 지긋지긋한 자들이지.’

파비앙은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오러의 정체는 사실 별것 아니지만.’

오러의 정체는 이미 규명됐다.

수력, 화력, 풍력 같은 대자연에 떠도는 기(氣). 그 줄 에너지(joule energy)를 동방에서 전해진 특수한 단전호흡을 통해 움직이는 것이다.

‘신비하기는 차라리 로마노프 황가의 초상 능력이 훨씬 신비하지. 뭐, 그것도 언젠가 과학적으로 규명될 날이 오긴 하겠지만.’

지금도 과학자들 사이에는 로마노프 황가의 초상 능력에 대한 가설이 여럿 있었다.

뇌와 혈액으로 전해지는 유전 물질로 인한 현상이란 등 말이다.

그들이 황족인 탓에 제대로 연구를 할 수가 없어서 그렇지, 만약 일반인이었다면 진작 낱낱이 해부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오러든 초상 능력이든 지금 우리 계획과는 상관이 없는 일.’

그의 얼굴이 무겁게 변했다.

‘정말 이 계획을 그대로 진행해도 되는 걸까?’

그는 이 계획이 두려웠다.

실패할까 두려운 게 아니었다. 성공할까 두려웠다.

‘아무리 전쟁이라도 최소한의 선이 있는 법이거늘.’

물론 전쟁은 무조건 이기는 게 최선이란 루이 니콜라스의 말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선이 있는 법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하아.”

하지만 그는 선택권이 없었다. 자신은 그저 명을 수행하는 장기판의 말이었으니까.

“손이 묶여 있으니 누군가 도와줘야 할 텐데. 지금 수발은 누가 들고 있나?”

“명대로 무어인들이 도와주게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수레에 새롭게 실려 온 무어인들로 바꾸었고요.”

“그래, 자네들은 새로운 무어인들과 접촉하진 않았지?”

“네, 당부하신 대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 반드시 접촉하면 안 되네.”

한 병사가 그 당부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중령님, 왜 그 무어인들과 접촉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멀리서 보니까 안색도 별로 좋지 않던데. 피를 흘리는 이도 있었고.”

“그건 알 것 없네. 자네들의 임무는 이 별장에서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감시하는 것. 괜히 쓸데없이 무어인이나 포로들과 가깝게 접촉할 필요 없어.”

파비앙은 그렇게 둘러대었다.

“어차피 저들은 며칠 뒤 제국으로 돌려보낼 거니. 그때까지만 수고해 주게.”

병사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들을 풀어준다는 말씀입니까? 검기사단인데?”

검제를 필두로 한 검기사단의 기사들은 공화국군에게 악몽 같은 존재였다.

간신히 포로로 잡았다 들었는데, 이렇게 쉽게 풀어준다고? 풀어주면 자신들에게 곧바로 칼을 겨눌 게 분명한데?

“그쪽 포로와 맞바꾸기로 했네.”

“……그렇군요.”

정말 파비앙의 말대로 며칠 뒤 심페폴 북쪽의 야산에서 포로 교환이 일어났다.

검기사단의 기사 2명과 공화국의 영관 장교 2명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당시 이런 식의 포로 교환은 흔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그래서 제국군은 총사령관인 황태자에게 보고할 것도 없이, 제의를 승낙했다. 별다른 의심은 전혀 하지 못했다.

“이봐, 맥, 잭! 칠칠치 못하게 포로로 잡히고 말이야!”

“전하! 저희를 위해 몸소!”

포로로 잡혔던 검기사단의 맥과 잭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포로 교환을 위해 3황자가 직접 마중 나온 것이다.

“너희들 일인데, 당연히 내가 나와야지. 안 그래?”

미하일은 시원하게 말했다.

사실 검기사단의 유래는 총기사단과 다르게 로열 나이츠가 아니었다.

그저 검제 미하일의 무명을 동경한 젊은 오러 나이츠들이 집결해 만든 기사단인 것이다.

따라서 단장인 미하일과 단원들 사이에 관계는 끈끈하기 그지없었다. 술에 진탕 취해 형, 동생 할 때도 수 없었다.

“얼굴이 많이 상했는데? 공화국 놈들이 괴롭혔어?”

“아닙니다. 시종까지 붙여 잘 대접받았습니다.”

“시종?”

“네, 손을 묶어놓고 무어인을 붙여주더라고요. 그런데 전하야말로 얼굴이 상하신 것 같습니다.”

미하일은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아, 소심한 어떤 분 때문에 고생을 좀 해서.”

“혹시 영창이라도 가신 겁니까?”

“어떻게 알았어?”

“딱 표정이 그러셔서…….”

“맞아. 으…… 그놈의 벌레들. 내가 다시는 영창에 가나 봐라. 영창 갈 바에는 차라리 탈영을 하지!”

맥과 잭은 3황자의 여전한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튼 돌아가자!”

“네, 전하!”

그렇게 그들은 말을 타고 현재 검기사단이 주둔 중인 부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망원경으로 보며 미소 짓는 이가 있었다.

사막의 전갈, 루이 니콜라스였다.

“계획대로군.”

“네, 각하.”

“이왕이면 검제도 걸려들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

“지금 검기사단이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지?”

“프라바입니다.”

프라바는 심페폴을 가시권에 두고 있는 소도시로 제국 중앙군의 새로운 주둔지였다.

코프스크의 승리로 전선이 남하함에 따라 주둔지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아마 제국의 사령부도 조만간 프라바로 옮길 것이 분명했다.

“좋군. 아주 좋아.”

루이 니콜라스는 그림 같은 얼굴로 비릿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우리는 와인이나 마시며 기다리자고.”

그의 얼굴이 미소를 지음에 따라 눈가에 난 상처가 흉측하게 꿈틀거렸다.

“제국군이 무너지기를 말이야.”

그는 이 계책이 끝난 후 마주할 소녀를 떠올렸다.

엘리제 드 클로랜스.

‘내 계책을 두 번이나 무산시켰지?’

그 순백한 아름다움을 지닌 소녀는 그를 끝없이 자극하고 하고 있었다.

‘죽지 말라고. 곧 만나야 하니.’

***

며칠 뒤, 엘리제는 야전병원으로 돌아왔다. 자택 근신이 해제된 것이다.

병원의 사람들은 그녀의 복귀를 반겼다.

“고생하셨어요, 병원장님!”

“아…… 네.”

“많이 힘드셨죠?”

제이를 비롯한 사람들은 그녀가 벌을 받는 것이 위험한 수류탄 제거 수술을 강행해 황태자의 분노를 산 탓이라 생각했다.

물론 정확한 추측이다.

“그때 수술은 너무 무모하셨습니다, 데임.”

그레이엄이 말했다.

원래도 딱딱한 말투지만 더 딱딱했다. 마치 화라도 난 듯.

엘리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위험하긴 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다음에는 수술하더라도 반드시 저에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왜 항상 혼자 위험을 감수하려 하십니까?”

당시 그녀는 그레이엄을 비롯한 의사들에게 수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저 건물만 빨리 비워 달라 했다.

“네, 꼭 그럴게요.”

“반드시입니다.”

“네.”

제이도 말했다.

“그러게요. 데임. 너무 위험했어요. 그때 전하께서 얼마나 많이 화내셨는데요.”

“……그래요?”

“네, 데임께서 수술하고 있을 때 건물 밖에서 난리도 아니셨어요. 전 황태자 전하가 그렇게 무서운 분이신 것 처음 알았어요.”

당시를 회상하며 제이는 몸을 떨었다.

“그렇게 막 화를 내면서도, 당장에라도 뛰쳐들어가고 싶어 하셨어요. 하지만 그러면 혹시라도 수술 중인 데임께서 놀라 위험해지실까 또 전전긍긍하시고. 하여튼 그랬어요. 옆에서 보는 저희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요.”

“……!”

“어쨌든 데임께서도 고생하셨어요. 얼굴 안 좋은 것 봐요. 그래도 전하께서도 아무리 화가 나셔도 그렇지, 약혼녀를 감금시키면 어떻게 하시나. 치이.”

제이는 엘리제의 어두운 표정을 살피며 속상한 얼굴을 지었다.

사실 엘리제의 얼굴은 전혀 나빠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나아졌다. 근신 기간 동안 워낙 잘 쉬고, 잘 먹었기 때문이다.

다만 마음속 근심과 혼란 때문에 표정이 안 좋았다.

‘하아.’

그녀를 번뇌케 하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황태자였다.

엘리제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환자를 봐야겠어요. 새로 들어온 환자들한테 안내해 주세요.”

***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부상병의 상처를 치료했고, 등불을 들고 환자들과 함께했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

하지만 곁의 몇몇 의사는 그녀가 평소와 다르다는 점을 눈치챘다.

============================ 작품 후기 ============================

내일 31일 09:07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타 플랫폼에 들어간다고 해서 조아라 연재 중단은 당연히 없습니다.;; 완결은 대충 180화 정도로 예상하고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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