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과의사 엘리제-83화 (83/194)

00083  3-6 전염병  =========================================================================

6장 전염병 - 2

‘도대체?’

엘리제는 괜찮다는 제이를 끌고 가 방사선 촬영을 하였다.

야전병원은 그녀 덕분에 개선을 거듭해 단순히 깨끗해진 게 아니라, 이제 X-ray 기계와 간단한 피 검사도 가능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 정도면 론도의 병원들에 비해 그다지 쳐지지 않는 설비였다.

‘폐 X-ray는 정상이야. 폐렴은 아닌데? 뭐지? 그냥 정말 감기인가?’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너무 과민한 건가? 감기에 걸린 것일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한데.’

하지만 계속 느낌이 안 좋았다. 마치 2차 론도 대역병 때처럼 불길한 기분이 등줄기를 찔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엘리제는 불안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우웩!”

“제이!”

제이가 메스꺼운 표정을 짓더니, 와락 무언가를 토했다.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달려간 엘리제의 얼굴이 굳었다.

피였다!

음식물을 토한 게 아니라, 새빨간 피를 뿜은 것이다!

“제이?!”

“데, 데임? 이게……?”

제이도 자신이 피를 토한 게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제이의 진료복이 흥건히 피로 물들었다.

엘리제는 급히 활력 징후를 체크하고, 응급 처치를 하였다.

“여기 누가 와서 도와주세요! 수액 좀 달아주세요! 위장 보호제도 같이 가져와 주시고요!”

곧 그녀 말고 여러 의사가 달려들었다.

“제이, 괜찮지?”

“걱정하지 말고. 금방 좋아질 테니.”

제이는 의료 지원단의 가장 어린 소녀였다. 그런 만큼 모두의 아낌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엘리제뿐 아니라, 여러 의사가 성심을 다해 치료했고, 덕분에 제이의 상태는 금방 안정됐다.

한 남자 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왜 피를 토한 거야? 놀라게.”

“죄송해요.”

“최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니? 이런 건 대부분 위장관 궤양 출혈의 가능성이 높아.”

위장관 궤양 출혈.

토혈(위나 식도 따위의 질환으로 피를 토함)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의사들은 그녀가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아 위에 궤양이 생겨 피를 토했다 짐작했다.

하지만 한 명, 엘리제는 눈썹을 찌푸렸다.

‘궤양 출혈? 갑자기? 아니야.’

그때 말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레이엄이 입을 열었다.

“데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단순 위궤양 출혈인 것 같습니까?”

모두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지난 몇 달간 그녀의 기적 같은 실력을 봐온 그들이다. 이제 그들은 론도의 최고 의학 석학보다 그녀의 말을 신뢰하게 되었다.

“아니요. 다른 원인을 생각해 봐야 해요.”

“어째서입니까?”

“고열(高熱)이요.”

“……?”

“위궤양은 복막염으로 진행하지 않는 한, 열이 나지 않으니까요.”

의사들은 그 말에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놓치고 있었는데, 위궤양은 열이 나지 않는다. 위산이 과다 분비되어 위벽이 깎이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위궤양에 감기가 동반되어 열이 날 가능성은 없습니까?”

“물론 그렇기도 하죠. 하지만 두 개의 병이 갑자기 오는 것은 너무 공교롭잖아요. 한 번 다른 원인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떤 검사를?”

그녀는 짧게 답했다. 다행히 최근 로마노프령에 요청해 검사 기계를 들여왔었다.

“혈소판 수치요.”

혈소판.

몸의 지혈 작용을 돕는 혈액 성분이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검사해 보겠습니다.”

곧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확인한 엘리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게…… 맞는 건가요?”

“네, 저도 이상해 2번이나 검사했습니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숫자가 쓰여 있었다.

1.5만.

정상의 15만에 비해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수치였다. 일반적으로 절대 나올 수 없는 수치.

이 정도 수치면 가만히 있어도 출혈로 사망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그런데 그때였다!

“데임! 데임! 빨리 와주세요!”

한 간호원이 다급히 뛰어들었다.

“……?!”

간호원이 급박히 소리쳤다.

“급성 토혈 환자가 왔어요! 3명이나! 모두 상태가 안 좋아요.”

“……!”

토혈 환자가 3명이나?

그녀의 등줄기에 한기가 돋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가지 단어.

전염성 출혈열.

제국군에 원인 미상의 출혈열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사막의 전갈이 뻗은 마수가 제국군의 진영에 죽음의 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

3명의 환자 모두 제이와 증상이 비슷했다.

감기와 유사한 고열, 그리고 갑자기 동반된 토혈.

‘분명해. 이건 그냥 단순한 감기나 위장관 출혈이 아니야.’

환자를 살핀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세히 살피면 3명의 눈에는 결막하 출혈이 관찰되고 있었다.

급성 출혈 질환 환자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소견이었다.

‘갑자기 왜?’

이런 출혈열은 절대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 분명 어디선가 매개체를 통해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이다.

‘크림반도에 이런 출혈열을 일으키는 풍토병(어떤 지역의 특수한 기후나 토질로 인하여 발생하는 병)이 있었나?’

엘리제는 고민했다.

‘아니야. 없어.’

참전을 결정 후, 크림반도 풍토병에 대해 자세히 공부했기 때문에 확실히 알고 있었다. 크림반도에 이런 출혈열은 없었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서 전염된 것이지? 아니, 무슨 병인 것이지?’

출혈열!

이건 고열과 출혈을 동반하는 질환을 총칭하는 단어였다. 정확한 진단명이 아니라.

문제는 출혈열의 종류가 한두 개가 아니란 점이다.

‘서울 바이러스도 출혈열이고, 황열도 출혈열이야. SFTS도. 마버그 병도 출혈열이고. 라싸 열도 마찬가지.’

당장 그녀의 머릿속에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병이 5개도 넘게 떠올랐다.

‘현대 지구에서 아프리카를 공포에 몰았던 에볼라도 고열과 출혈을 동반하는 출혈열의 일종이고. 도대체 그중 뭐지?’

엘리제는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천하의 그녀라도 단서가 너무 적었다. 이래서야 병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단서를 모아야 해.’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다음 날 새로운 3명의 환자 중, 2명이 열이 악화되더니 갑작스레 폐에서 출혈을 일으켜 사망한 것이다!

“……?!”

그러나 악몽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곧바로 10명의 출혈 환자가 다시 몰려들었다. 그중 3명이 폐출혈이 발생해 죽었고, 2명이 위독해졌다.

다음 날에는 다시 20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전염병인 거지?”

“이거 이러다 다 죽는 것 아니야?”

제국군 진영에 갑작스러운 공포가 내려앉았다.

이 시대 사람들의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병이 한번 돌 때마다 수십만의 단위가 툭하면 죽어 나갔으니까.

특히 군대에서 전염병의 위력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밀집 생활을 하고 위생이 좋은 것도 아닌지라 아차 하면 순식간에 퍼져 나가기 일쑤였고,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가 나곤 했다.

병사들은 서로 모이면 겁에 질려 떠들었다.

“우리 부대에서도 고열 환자가 발생했어.”

“우리도 그래. 난 이렇게 죽고 싶지 않은데.”

“벌써 50명이나 죽었데. 곧 죽을 사람도 많다고 하고.”

“어떻게 하지? 이러다 다 죽는 것 아닐까?”

그때 한 병사가 분연히 말했다.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거야?! 우리에겐 데임 클로랜스가 있잖아!”

“……!”

“데임 클로랜스는 론도를 3일 만에 대역병에서 구한 영웅이라고. 이번에도 이 전염병을 물리쳐 주실 거야!”

그 말에 다른 병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등불을 든 천사가 이번에도 우릴 살려줄 거야.”

“그래, 조금만 기다리자. 예비 황태자비께서 분명 방책을 마련해 주실 거니까.”

병사들은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엘리제가 있는 야전병원이 위치한 방향이었다.

그렇게 작은 소녀, 엘리제의 어깨에 제국군의 희망이 집중되었다.

***

하지만 그때, 엘리제는 그들의 희망과 다르게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도저히 모르겠어. 이 병은 뭐지?’

처음엔 기침과 고열로 발병한다.

그러다 위장에서 출혈이 발생해 토혈하고, 상태가 악화하며 폐에서도 출혈이 발생해 호흡 곤란으로 사망한다.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아닐 수가 없다.

현재까지 치사율은 무려 50%.

‘신증후군 출혈열? 아니야. 에볼라? 그것도 아니야.’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전염성 출혈 질환들을 떠올렸다.

모두 아니었다. 출혈한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양상이 맞지 않았다.

‘새로운 병일까? 아니면 지구에서는 없어진 병?’

모든 전염병이 세기를 이어 내려오진 않는다. 몇십 년만 유행하고 사라지는 전염병도 많았다.

어쨌든 이 출혈열은 그녀가 모르는 병이었다.

‘내가 지금 이 병을 진단 내리는 것은 불가능해. 현대 지구의 전자 현미경이라도 있으면 바이러스의 정체라도 확인했겠지만.’

그녀는 고뇌했다.

‘어떻게 하지?’

최대한 빨리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미 많이 늦었어. 더 늦으면 안 돼.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통제 불능이 될 거야.’

엘리제는 초조히 생각했다.

모든 이가 그녀만 목을 빼놓고 바라보는 상황이다.

그녀가 빠르게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수없이 많은 사망자가 나오며 제국군은 무너질지도 몰랐다.

고작 병 하나에 최강 제국군이 무너진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고래로 전염병에 무너진 강군은 수도 없었다. 특히 이런 치사율이 높은 병은 치명적이었다.

‘당장 정확한 진단을 찾는 것은 불가능. 그렇다면.’

그녀의 눈이 깊어졌다.

수없이 많은 삶과 죽음 앞에서 결정을 거듭한 외과의사의 눈빛이었다.

‘진단을 내리는 건 포기해.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중요하지 않아.’

그녀는 신이 아니다. 완벽하게 해결해 내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럴 수가 없다.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이런 상황에서 모두를 살릴 수는 없어. 추가적인 발병자와 사망자를 최대한 줄이는 것만 생각하자. 나머지 일들은 모두 뒤야. ’그 방법‘을 쓰자.’

그렇게 생각한 그녀의 가슴이 시큰 아파져 왔다.

이 전염병 때문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까?

그런데 그 순간, 한 가지 떠오른 의문.

‘이 전염병은 어디서 온 걸까? 정말 자연적으로 생긴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크림반도의 풍토병이 아니니까. 왜 갑자기 이런 병이 유행한 걸까? 공교롭게. 그것도 제국군에서만.

‘설마……?’

한 가지 소름 끼치는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곧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리 사막의 전갈이라도.’

그녀는 그 가설을 한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너무 지나친 비약이었다.

‘어차피 ‘그 방법’으로 병을 해결하다 보면, 원인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녀가 생각해 낸 ‘해결책’.

그건 기본적으로 지난번 론도 콜레라 사건 때와 동일한 원리였다. 다만 방법이 전혀 달랐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불가피한 희생을 필요로 했다.

‘아무도 위험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불가능해. 어쩔 수 없어.’

그녀는 굳게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한 엘리제는 총사련관 린덴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지난밤 이후, 마음이 복잡해 최대한 그를 피해왔지만, 지금은 그런 개인적 감정을 개입시킬 때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아, 내일도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1월 1일 09:07분에 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s. 1월 1일에 한편, 1월 2일에 2편, 1월 3일에 2편, 1월 4일에 2편. 이렇게 올라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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