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과의사 엘리제-86화 (86/194)

00086  3-6 전염병  =========================================================================

6장 전염병 - 5

그래도 한 가지 고무적인 일이 있었다.

전염병 환자들의 사망률이 꺾이기 시작했다. 50%를 넘어 60~70%에 육박하던 사망률이 거의 10%대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는 엘리제가 급하게 새로 도입한 치료 방법 덕분이었다.

“아무리 해도 살릴 수가 없습니다. 방법이 없어요.”

당시 의사들은 치료하면서도 절망감에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위장관의 출혈은 위험하지 않아요. 심하게 피가 나는 것도 아니고, 수액 치료를 하면 보통 좋아지니까요. 하지만 폐의 출혈이 문제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모든 환자가 폐출혈로 사망하고 있어요.”

폐출혈!

당시로는 의사의 능력이 닿지 않는 영역이었다. 몸 깊이 있는 폐에 접근할 수가 없었으니까.

“폐에서 나는 출혈을 도저히 지혈할 수가 없어요.”

“이대로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지. 하아…….”

그렇게 의사들은 무력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 고민하던 엘리제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출혈을 멈추게 할 필요는 없어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데임? 피가 나는데 지혈을 할 필요가 없다니?”

“지금 폐출혈로 사망하는 환자들의 경과를 자세히 보면, 과다출혈로 죽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엘리제는 자신의 분석 결과를 말했다.

“폐출혈로 폐 안에 피가 나다 보니,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산소 교환이 되지 않아 사망하고 있어요. 폐에 물이 차서 죽는 익사자처럼요.”

“……!”

그렇다.

출혈성 전염병이지만, 사망에 이르는 원인은 과다 출혈이 아니었다.

바로 폐에 피가 차서, 즉, 물이 찬 것처럼 산소 교환이 안 되어 저산소증으로 죽었던 것이다. 물에 빠진 익사자와 유사했다.

“그러면 해결책은?”

“산소 치료예요.”

산소 치료(Oxygen therapy)!

인위적으로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해 주는 것이다. 이러면 폐에 피가 찬 상태에서도 저산소증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데임, 산소를 어떻게 공급한단 말입니까?”

한 의사가 물었다.

산소 치료는 현대 지구에서는 굉장히 흔하게 사용하지만, 이 시대에는 익숙지 않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산소를 공급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동용 산소 방(챔버, chamber)를 사용하면 돼.’

이동용 산소 방(챔버)!

마차나 기차 등에 실어서 이동하는 산소 공급 방이었다.

휴대용 산소까지 개발된 현대 지구와 비교하면 조악하기 그지없는 산소 치료 시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산소를 공급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가 알기로 현재 서대륙에는 이동용 산소 챔버가 10개 정도 있어. 브리티아 섬에 있는 것을 가져오기에는 바다를 건너야 하니 시간이 너무 걸리고, 근처에서 구해야 하는데.’

적국인 공화국에서 빌릴 수는 없었다.

가까우면서도, 이동용 산소 챔버가 있는 국가.

‘그나마 프러시엔 공국이 가장 가까워. 빌릴 수 있을까? 아니, 무조건 빌려야 해. 안 그러면 이 환자들은 다 죽어.’

엘리제는 어떻게 하면 프러시엔 공국의 챔버를 빌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데임 클로랜스에게. 감사의 선물을.>

이런 메시지와 함께 이동용 챔버가 화물 기차에 실려 전장에 도착한 것이다.

발신자는 놀랍게도 귀족파의 수장 차일드 가문이었다.

“……어떻게?”

놀란 엘리제가 물었다.

대리인이 공손히 답했다.

“알버트 공자를 구해준 것에 대한 답례입니다, 데임. 지난번 위험을 무릅쓰고 공자를 구해주신 일. 후작 각하를 비롯한 모든 이가 크게 감동해하고 있습니다.”

“……!”

“물론 고작 이런 걸로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그냥 사소한 선물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차일드 가문은 국제 은행 재벌의 수장이었다.

프러시엔 중앙은행의 소유자인 마르크 백작이 이들의 방계였으므로, 이동용 산소 챔버를 구하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던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마음껏 쓰시고 편할 때 마르크 백작께 돌려주십시오. 아, 만약 원하시면 그냥 클로랜스 후작가로 가져가도 상관은 없습니다.”

대리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름 농담이라 한 말 같았다. 세계 최고의 재벌가다운 농담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전염병 치료에 활력이 붙었다.

폐출혈로 인한 저산소증이 산소 치료를 통해 해결되었고, 기타 여러 문제는 엘리제를 비롯한 의사들이 최선을 다해 달려들었다.

그 결과가 사망률의 급감!

한때 70%에 육박했던 사망률이 10%대까지 떨어졌다.

거의 최초의 감염자, 검제 3황자도 좋아졌고, 제이도 병석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제국군을 죽음의 마수로 몰아넣었던 정체불명의 전염병은 점차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모두 엘리제와 죽음을 각오한 여러 의사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들의 노력과 헌신은 브리티아 제국 전체로 널리 퍼졌다.

[예비 황태자비, 데임 클로랜스! 죽음의 전염병을 막아내!]

[죽음을 각오한 의사들, 제국군을 구해내다!]

원정군의 전염병 사건은 제국 본토에서도 초유의 관심사였다.

잘못하면 수십만에 달하는 젊은 장병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이 그들을, 엘리제와 의사들을 환호했다.

“역시 우리의 황태자비!”

“데임 클로랜스와 고생한 의사들을 위해 건배!”

특히 엘리제는 벌써 몇 번째 혁혁한 공을 세웠는지 모를 지경이다.

코프스크 회전부터 이번 일까지.

그녀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제국군은 어떤 피해를 입었을지 모른다.

여린 소녀의 몸으로 참가해 그 어떤 장군들보다 큰 공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군, 대단해.”

론도의 황실에서 황제 민체스터가 혀를 찼다.

“이거 이러다 크림원정 1등 훈장을 자네 딸에게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과찬이십니다.”

엘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과찬은. 클로랜스 영애가 아니었으면 우리 제국군이 어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

확실히 그랬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제국군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어쩌면 패전으로까지 갔을지도 몰랐다.

‘승전해도 상처가 컸겠지.’

하지만 딸이 큰 공을 세웠지만, 엘 후작은 답답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제. 난 네가 공 같은 것은 하나도 안 세워도 좋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구나.’

날마다 그녀가 걱정돼 잠이 들 수가 없었다.

밥은 잘 먹는지, 작은 몸으로 아프진 않은지, 혹시나 다치진 않았는지.

너무나 걱정돼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했어. 아무리 고집을 피웠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내지 않는 건데.’

엘 후작.

제국 전역에서 존경받는 명재상이지만, 그에겐 제국군이나 전쟁의 승패보다도 딸이 훨씬 더 소중했다.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

전염병은 그렇게 해결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잠복기도 거의 끝나가니, 더 큰 피해는 없겠구나.’

지금까지 총 사망자는 478명.

그녀가 황태자에게 공언한 대로 500명이 넘지 않았다.

물론 이것도 가슴 아픈 숫자였지만, 질병의 전염력이나 치명도를 고려하면 대단한 결과였다.

엘리제가 고안한 보호구 덕분인지, 의료진의 피해도 거의 없었다. 황태자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그녀도 아무 탈 없었고.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야.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어.’

엘리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남은 문제.

그것은 바로 전염병의 원인이었다!

‘뭔가 이상해. 정말 자연적으로 유행한 전염병일까?’

처음에는 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설마 사막의 전갈이라도 이런 악독한 수를 쓰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료를 거듭할수록, 역학 조사를 할수록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의심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그건 바로 병의 정체였다.

‘이 병은 1년 전, 검은 대륙의 중북부에서 유행하던 전염병이야.’

치료 중, 그녀는 론도의 황궁 어의 밴 자작에게 자문을 구해 병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병의 진단명은 ‘전염성 폐 출혈열’!

1년 전, 검은 대륙 중북부를 휩쓸었던 전염병이었다!

‘왜 검은 대륙에서 유행하던 전염병이 갑자기 크림반도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검은 대륙의 병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크림반도에 나타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것도 제국군에만.

‘정말 설마……?’

그리고 그녀는 질병의 경로를 밝히는 역학 조사를 하던 중, 섬뜩한 단서를 발견했다.

바로 공화국군에 포로로 잡혀 있던 검기사단의 단원, 맥과 잭이었다.

***

“포로로 있을 때, 검은 대륙에서 온 무어인의 시중을 받았다고요?”

“네, 데임.”

맥과 잭은 병석에 누워 엘리제에게 답했다.

전염병을 심하게 앓은 그들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몸이 크게 쇠약해진 상태다.

“그들의 증상이 우리 군에 돈 전염병과 유사했습니다. 계속 기침을 했었고, 한 여인은 종종 코피를 흘렸었어요.”

“……!”

엘리제는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혹시 그들 말고 군 내에서 전염병 환자를 접촉한 적이 있나요?”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아프기 시작한 후, 3황자께서도 발병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검기사단의 단원들도 저희와 접촉 후 전염병에 걸렸고요.”

엘리제는 역학 조사 결과를 다시 한 번 검토했다.

확실히 이들은 그 어떤 환자와도 접촉한 경험이 없다. 포로로 있을 때 시중을 받은 무어인을 제외하고는.

‘역학 조사 결과 이 전염병이 최초로 발생한 부대는 검기사단이야. 그렇다면 이들 맥과 잭 경이 최초 발병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한 가지 끔찍한 가설이 떠올랐다.

이들이 검은 대륙에 가서 병에 옮아 왔을 리는 당연히 없다. 그렇다면 그 무어인들이 이들에게 병을 옮긴 것인데…….

‘설마…… 일부러……?’

그녀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막의 전갈!’

그녀는 이 사실을 곧바로 검기사단의 단장인 검제 미하일에게 알렸다.

그도 병을 심하게 앓았지만, 서대륙 최강검답게 지금은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상태다.

“그게 정말이야, 리제?”

“확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확인해 봐야 한다 생각해요.”

미하일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딱딱하게 굳었다.

이번 전염병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검기사단이었다.

300명의 단원 중 100여 명이 감염되고, 30명이 넘게 사망했던 것이다.

오러 나이츠의 가치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피해가 아닐 수 없었다.

“……알겠어.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밀.”

“리제는 리제의 일을 해. 이건 내가 해결할 테니.”

미하일은 차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기사단의 단원들은 모두 3황자 미하일의 친구이자 형제 같은 이들이었다. 그런 소중한 이들이 30명이 넘게 죽은 것이다.

“이 일이 정말 사막의 전갈 때문에 일어난 일이면.”

그는 말했다.

“나 검제의 이름으로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

***

미하일이 먼저 향한 곳은 총사령관 린덴의 지휘실이었다.

업무를 보던 린덴이 힐끗 눈만 들어 그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지?”

피를 나눈 형제건만 반가운 인사는 없었다.

그럴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전쟁 중이라 서로 발톱을 감추고 있을 뿐, 종전 후 론도로 돌아가면 그들은 서로의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황위를 향한 싸움을.

“사막의 전갈 때문에 왔어, 형님.”

“그게 무슨 말이지?”

“이번 전염병.”

짧은 말이었지만, 린덴은 알아들었다. 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형도 의심은 하고 있었지? 사막의 전갈과 이번 전염병 말이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번 전염병은 여러모로 수상쩍은 면이 많았다. 적의 수작이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는 의심은 헛된 망상일 뿐이다. 근거가 필요했다.

“의심할 근거를 찾아냈나?”

“아아, 리제 덕분에 말이야.”

그런데 그 와중에 린덴이 짧게 말을 끊었다.

“리제가 아니라, 형수님이라고 불러라.”

“뭐?”

“그녀는 네 친구가 아니다. 황태자비가 될 소녀니, 공손하게 대해.”

그 말에 미하일은 입술을 비틀었다.

이 와중에 진짜.

============================ 작품 후기 ============================

내일 1월 3일 09:07분에 올라갑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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