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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88화 (88/194)

00088  3-7 엇갈림  =========================================================================

7장 엇갈림 - 2

애초에 공화국에는 이번 크림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많았다.

크림반도 인근 흑해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제국군을 상대하기 위해 너무 큰 병력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40만.

아무리 공화국이라도 허리가 휘청할 병력이었다.

“정부는 크림반도에서 철수를 검토하라!”

“전쟁만 일삼는 니콜라스 일당은 물러나라!”

그렇게 비둘기파들도 거리로 나와 당국과 루이 니콜라스를 규탄했다.

원래 프랑소엔인들은 기질이 불같은 면이 있었다. 한번 팔을 걷고 일어나자, 반대파의 기세가 불을 타오르듯 타올랐다.

모두 린덴이 의도한 대로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 비공식적 라인을 통해 공화국의 정치인들도 움직였다.

모두 니콜라스 부자의 반대파로 브리티아와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비밀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크림반도에서 연달아 실패하고 있는 루이 니콜라스를 경질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린덴의 공작들은 오래지 않아 루이 니콜라스에게 직격으로 내리꽂혔다.

“빌어먹을! 제기랄!”

와장창! 쨍그랑!

루이 니콜라스는 닥치는 대로 집무실의 도구를 집어 던졌다. 거울이 깨지고 유리잔이 박살 나며 와인 병이 붉은 액체를 터뜨렸다.

항상 여유가 있던 평소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 그런 그의 옆에는 갈가리 찢어진 신문들이 있었다.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루이 니콜라스, 이번에도 또 패해.]

[하늘이 벌을 주는가? 연전연패의 수렁에 빠진 루이 니콜라스.]

제국은 물론,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이런 기사들이 도배되고 있었다. 공화국도 마찬가지다.

틀린 기사는 아니다. 전염병 계책이 실패한 후 공화국군은 연전연패 중이니까.

애초에 공화국군은 세계 최강인 제국군보다 병력의 질에서 다소 떨어졌다. 그런 판에 기세까지 밀리니, 열세를 뒤집을 수가 없었다.

“제기랄!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루이 니콜라스는 분노에 시뻘게진 눈으로 외쳤다.

그런 그의 얼굴 한편에는 기다랗고 흉측한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코프스프 회전 시 눈가에 입었던 상처가 그사이 곪아 농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탓이었다.

‘술을 많이 마셔, 상처가 덧난 것 같습니다. 당분간 와인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화국의 군의(軍醫)가 평소 시도 때도 없이 와인을 즐기는 그에게 충고했다.

그렇지 않아도 화나는데 분통을 터뜨리는 충고였고, 루이는 그 의사를 당장 군영에서 쫓아내 버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제기랄!”

사막의 전갈은 갑자기 수술받은 부위가 아파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수술을 받았음에도 염증이 가라앉지 않아, 그의 얼굴은 한편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붓기와 상처 때문에 그의 얼굴에선 이전의 그림 같은 외모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특히 커다란 수술 자국은 염증이 사라진 뒤에도 일평생 흉측하게 남으리라.

‘이게 다 클로랜스, 그년 때문이다.’

루이 니콜라스는 이를 갈았다.

그래, 모두 다 그년 때문이었다.

처음 몽쉘 왕국을 이용한 계략이 실패한 것도, 코프스크 대회전 때 대패를 한 것도, 전염병 계책이 아무런 효과를 못 본 것도, 그리고 오히려 계책이 발각돼 정치적 역공을 당한 것도, 그래서 이렇게 연전연패하고 있는 것도, 얼굴에 이렇게 큰 흉을 얻은 것도.

모두 다 그년 때문이었다.

실제로 일부에선 그녀를 이렇게 부르는 이도 있었다.

전갈 사냥꾼.

그의 계책을 연달아 무산시켜 생긴 별명으로, 루이에겐 엄청난 치욕을 주는 별명이었다.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절대로.’

처음의 호기심은 이 사라졌다.

이제 그 소녀를 바라보는 감정은 단 하나. 복수심.

반드시 사로잡아 이 치욕을 갚아주리라. 차라리 죽여 달라 빌게 만들 것이다.

‘머지않아. 곧.’

그런 그의 마음속에 또다시 악마의 계책이 피어올랐다.

사막의 전갈이 혹독한 마음으로 짜낸.

이번이야말로, 클로랜스 그 계집도 빠져나갈 수 없을 계책이었다.

***

프라바 인근의 제국군 사령부.

전선이 남하함에 따라 제국군의 사령부는 코프스크에서 남쪽의 프라바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린덴을 비롯한 장군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좋군요. 이대로라면 곧 심페폴을 탈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 황태자 전하와 예비 황태자비 덕분입니다.”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공화국과 다르게 회의 분위기는 좋았다.

연전연승 중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린덴이 차분히 물었다.

“사막의 전갈은 특별한 움직임은 없나?”

황태자의 물음에 부총사령관 맥가일 원수는 시원하게 답했다.

“네, 심페폴에 틀어박혀 꼼짝도 못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전갈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더 수작을 부리긴 어렵겠죠.”

요즘은 기사가 랜스 돌격하는 시대가 아니다.

서대륙의 서쪽 끝 스페냐 왕국에서 북쪽 끝 로마노프령까지 기차가 다니고, 전장의 참사가 곧바로 사진에 실려 본국에 기사로 발표되는 시대.

이런 시대에는 아무리 원정 나와 있는 군대의 총사령관이라도 자국의 여론을 신경 안 쓸 수가 없다.

잘못하면 본국에 보고돼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으니까.

따라서 사막의 전갈의 움직임도 소심해질 수밖에 없다. 한 번이라도 더 실패하면 그때는 정말 경질될 테니까.

“이대로 여세를 몰아 심페폴을 함락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승전이 눈앞에 보이고 있습니다, 전하.”

“모두 전하와 예비 황태지비님 덕분입니다.”

맥가일 원수를 비롯한 장성들이 신이 나서 떠들었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와 다르게, 린덴은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사막의 전갈이 무너질까? 과연?’

물론 특별히 눈에 보이는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냥 감이었다.

왠지 사막의 전갈이라면 또다시 기기묘묘한 계책을 내놓을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상관은 없겠지.’

린덴은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필승의 계책은 그놈만 세우고 있는 게 아니니까.’

그는 목소리를 낮춰 은밀히 맥가일 원수에게만 말했다.

“맥가일 원수.”

“네, 전하.”

“‘그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겠지?”

맥가일 원수가 그 말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네, 그렇습니다. 차질 없이 시작했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제 조금의 시간만 더 지나면 이 전쟁도 끝입니다.”

그렇다. 이 순간.

린덴의 반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마 사막의 전갈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으리라.

‘그래, 나는 전갈, 네놈에 비해 국지적 전술 능력은 떨어진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를 좌우 짓는 것은 ‘대국적 전략’이지, ‘국지적 전술’이 아니야.’

아마 그의 계획이 성공하면 전쟁은 그걸로 마무리되리라. 만약 그렇게 되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승전이었다.

‘모두 엘리제 덕분이지.’

린덴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모두 엘리제 덕분이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코프스크 대회전에서 패배했을 것이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 채 지금도 반도 북쪽에서 피나는 접전을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지난번 전염병으로 병력이 궤멸했거나.

모두 그녀 덕분에 이 횡액들을 피할 수 있었고,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공이 아닐 수 없었다.

‘엘리제.’

갑자기 린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맥가일 원수는 황태자가 무거운 표정을 하자 걱정스레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전하?”

“아니. 별것 아니네.”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별것 아닌 일이었다.

아니, 별것 아닌 일이 아닌가? 자신에게는 전쟁의 승패만큼이나 중요한 일이긴 했다.

그의 얼굴이 어두워진 이유는 최근 계속 그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리제. 언제까지 나를 피할 생각인 거지?’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함에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그를 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

“데임 클로랜스께서는 안 계십니다.”

또 병원을 방문했으나, 허탕이었다.

린덴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짓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에 있는 거지? 병원에 있는 거면 나오라 해. 할 말이 있으니.”

“병원에 안 계십니다.”

“그러면?”

“전선에 순회진료를 가셨습니다.”

그 말에 린덴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순회진료라고?

‘빌어먹을. 순회진료는 무슨 순회진료.’

순회진료는 전선에 나가 있어 병원에 오지 못하는 병사들을 위해 의사가 직접 부대에 방문해 진료하는 것을 뜻한다.

지금껏 어떤 의사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최근 의무사령관 엘리제가 고안해, 본인이 몸소 실천 중이었다.

병사들의 반응은 당연히 대감동!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레이디가 될 여인이 연약한 몸을 이끌고 자신들을 위해 직접 부대까지 와서 치료해 주는데, 감동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 순회진료 덕분에 등불을 든 여인, 엘리제의 이름은 다시 한 번 제국군 전체에 크게 울려 퍼졌다. 제국군 모두가 그녀의 헌신을 높이 칭송했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다.

‘망할. 등불은 든 여인은 무슨. 제기랄.’

총사령관 린덴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다 마음에 안 들었다.

‘순회진료 때문에 얼굴을 볼 수가 없잖아.’

순회진료를 시행한 후 그는 그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부재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나를 피한단 말이지?’

린덴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을 피하려고 순회진료를 나간다는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늘 병원을 비우고 일선 부대로 진료를 가는 이유가 자신 때문일 거라 짐작했다.

순회진료를 가지 않을 때도 이런저런 핑계로 자신의 얼굴을 피했기 때문이다.

‘엘리제. 내가 그렇게 싫단 말이냐?’

부글부글 화가 났다.

비참한 기분도 들었다. 또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최악의 사실은 이렇게 더러운 기분 속에서도 그녀가 보고 싶단 것이었다.

그때, 그의 앞에 서 있던 무뚝뚝한 인상의 남자 의사가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환자를 살피실 거면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린덴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환자를 살핀다는 핑계는 그가 병원에 오기 위한 핑계일 뿐이었다. 그녀가 없는데 환자를 보고 싶을 리가 없었다.

“됐다.”

“그러면 조심히 가십시오.”

문득 황태자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 의사를 바라보았다.

무뚝뚝하니 잘생긴 얼굴. 그레이엄이라고 했던가? 엘리제의 선생이라는.

‘재수 없게 생겼군. 마음에 안 들어. 쫓아내 버릴까.’

심사가 꼬여서일까? 그냥 다 마음에 안 들었다.

특히 자신도 못 보는 그녀 옆에서 늘 같이 있을 거로 생각하니 열불이 확 뻗쳤다.

‘젠장.’

린덴은 짓씹듯 말했다.

“클로랜스 대령에게 말을 전해라.”

“어떤?”

“그렇게 도망 다녀도 소용없다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넌 그냥 그렇게만 전해.”

황태자는 입술을 비틀었다.

그는 다음에는 억지로라도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담판을 지을 것이다.

‘도망 다녀도 소용없다고.’

자신은 절대 그녀를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까.

‘어디 계속 도망 다녀봐.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갈 테니. 네가 날 싫어해도 상관없어.’

그래, 상관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밀어낼 때마다 너무나 아프지만. 그래도 자신은 그녀를 가질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만약 그녀가 새처럼 날아 도망가려 한다면, 그는 그녀를 꽁꽁 묶어 새장에 가둬서라도 가질 것이다.

‘이건 네 책임이야, 엘리제.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난 이제 네가 없으면 안 되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내일 4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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