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0 3-7 엇갈림 =========================================================================
7장 엇갈림 - 5
“……그렇습니다.”
이번 대답은 조금 늦게 나왔다. 목소리도 조금 떨렸다.
‘죽고 싶지 않아.’
피에르는 고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결혼을 약속한 연인도 떠올랐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자신에게 선택 권한은 없었다. 따라야 한다.
‘이 작전을 거부해도…… 죽겠지.’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작전을 거부하면 자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제물을 찾겠지.`
“이 작전이 성공하면, 그래서 제국군에게 승리하면, 자네에게는 총통께서 직접 내리는 영광된 훈장이 수여될 거야.”
“……감사합니다.”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죽은 다음 받는 훈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한편 루이는 그런 피에르 중위의 마음은 신경 쓰지도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면 자네가 이번 작전에서 해야 할 일을 알려주지.”
그리고 설명을 들은 피에르 중위가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사령관실에서 나갔다.
“파비앙.”
“네, 각하.”
“레오 장군에게는 이야기가 잘 전해졌지?”
“네, 이미 준비를 끝낸 상태입니다.”
“좋아. 잊지 말라고. 우리의 진짜 목표는…….”
루이의 눈이 전장 지도를 향했다.
“프라바니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심페폴 북단의 프라바.
사령부와 엘리제가 머무는 야전병원이 위치한 곳이었다.
***
다음 날, 어스름한 저녁이 깔리는 시점.
심페폴에서 출발한 전령이 말을 달렸다.
공화국의 동쪽 방면 군, 2군단을 향해서였다.
‘제발! 제발!’
전령, 피에르 중위는 이를 악물고 말에게 채찍질했다.
‘죽고 싶지 않아!’
그는 자신의 임무를 떠올렸다. 그 임무를 달성하려면 자신이 죽어야 한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살아서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사랑하는 연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제발! 2군단에 무사히 도착할 수만 있으면!’
그가 2군단에 무사히 도착하면 ‘어쩔 수 없는’ 작전 실패였다.
피에르는 제국군을 만나지 않고 이 위험 지역을 돌파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그러나…….
상대는 제국군이었다.
분명 제국군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 지역으로 왔음에도, 꼬리를 잡혀 버렸다. 목적지까지 절반도 오기 전의 일이었다.
“공화국의 전령이다! 잡아라!”
“거기 서라!”
그 목소리를 들은 피에르 중위는 아득한 마음이 들었다. 얼핏 뒤를 돌아보니 5명의 기병대가 자신을 쫓고 있었다.
‘아아! 총기사단!’
그들의 어깨에 새겨진 총과 검이 교차하는 문장을 본 피에르는 아득한 절망감을 느꼈다.
검기사단과 더불어 제국 2대 기사단 중 하나인 총기사단이었다!
‘안 돼! 도망가야 해!’
그는 발굽의 징으로 말을 박찼으나, 상대는 총기사단이다.
검기사단이 오러 나이츠로 이뤄진 최강의 돌격 기병대라면, 총기사단은 전원이 명사수로 이루어진 최강의 총기병대.
“어딜 도망가려고!”
타앙!
찢어지는 굉음이 울리고, 피에르 중위가 탄 말이 단번에 쓰러졌다. 다리에 정확히 저격당한 것이다!
“크악!”
바닥을 떨어진 피에르는 비명을 질렀다. 끔찍한 고통이 그를 덮쳤다.
‘아아……! 엘르!’
그는 연인의 이름을 속으로 불렀다.
제국군에게 잡혔으니 이제 끝이었다. 남은 길은 단 하나,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가서 잡아와!”
“옛썰(Yes, sir)!”
이미 다 잡았다 생각한 제국군은 느긋하게 피에르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혹시나 마지막 발악을 하지 않을까 총을 겨누고 주의하며.
그런데 그 순간, 다 잡은 고기가 의외의 행동을 하였다.
가슴에 급하게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꺼내 입안에 집어넣어 삼킨 것이다!
“아니?!”
“편지잖아?! 말려!”
제국 군사들은 놀라 눈을 떴다. 그들은 피에르가 삼킨 게 무엇인지 똑똑히 보았다.
편지였다! 분명 작전 기밀이 적혀 있을!
화들짝 놀라 그에게 다가갔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이런! 빌어먹을!”
더구나 그들이 자신에게 도착하기 직전, 피에르는 마지막 작전을 수행했다.
권총을 꺼내 들어 자신의 이마에 겨눈 것이다. 그리고…….
제국 군사들 중 책임자가 급하게 외쳤다.
“안 돼! 잡아!”
편지까지 삼켰는데, 전령마저 자살하면 작전 기밀을 알아낼 방법이 없다!
하지만…….
타앙!
“……!”
피가 튀며, 피에르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즉사였다.
“이런 제길!”
제국 군사들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죠, 소위님? 분명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던 놈 같은데.”
책임자인 소위도 그렇게 생각했다.
잡히자마자 편지를 삼키고 자살하는 전령이라니. 얼마나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에?
더구나 제복을 살피니 계급도 중위였다. 초급이긴 하지만, 당당한 장교 계급. 보통 중위는 중대장의 직책을 맡는다.
단순히 전령으로 쓰기에는 너무 직위가 너무 높았다. 분명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지?’
그는 고민했다.
무슨 정보인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전황에 크게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배를 가른다.”
“네?”
“배를 갈라서 편지를 꺼낸다. 삼킨 지 얼마 안 됐으니 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을 거야.”
“하지만…….”
시신을 모독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수하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위는 단호히 명했다.
“어쩌면 우리 제국군을 위험하게 할지도 모를 정보야. 반대로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정보기도 하고.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렇게 그들은 피에르의 배를 갈라 식도에 남아있는 편지를 꺼냈다.
소위의 말대로 배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편지의 내용은 온전했다.
소위는 편지의 내용을 먼저 살폈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건……!”
편지에는 제국군의 우익을 뒤흔들 내용이 적혀 있었다!
“빨리 사령부에 전해야 해!”
편지의 내용에 따르면 시간이 얼마 없었다. 작전 감행일이 코앞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문제의 편지는 제국 사령부에 전달되었다.
사령부가 발칵 뒤집어졌고, 곧바로 비상회의가 소집되었다.
***
“이거 정말 엄청난 정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모르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또 뒤통수를 맞을 뻔했어요.”
“미리 알아 정말 다행입니다.”
사령부의 장군들이 흥분하여 떠들었다.
서신의 내용은 그만큼 중요한 정보였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서신의 내용을 살폈다.
<친애하는 레오 장군에게.>
제국의 3군단이 계획대로 보흐라드에 접어들었소이다. 예정대로 양면 합동 공격을 시행하겠소. 작전 시행일은…….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모르고 있었으면 3군단, 5만에 달하는 병력이 대패할 뻔했다.
“참 등골이 서늘하군요. 물론 우리 제국군 3군단이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적이 이번에 동원할 병력은 총 10만 명! 코프스크 이후 또 한 번의 대회전이 일어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한 참모가 의견을 제시했다.
“이 정보…… 역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말인가?”
“이 서신을 보면 적들의 진군 방향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 방향에 맞춰 우리가 미리 매복했다가 역공을 가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공화국군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겁니다.”
장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좋은 작전이었다.
“그렇게만 하면, 분명 크게 이길 수 있겠소이다.”
“전황을 아예 굳혀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는 제국군이었다. 이 정보를 이용해 또다시 대승한다면 아예 승전을 굳힐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병력은 어디서 동원합니까? 서신에 적힌 작전시행일을 보면 너무 시간이 촉박해 멀리 있는 부대를 동원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문제는 바로 시간.
작전시행일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해 인근에 있는 부대 말고는 적에게 역습을 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수도인 심페폴만이 아니었다.
크림반도 서쪽 끝부터 동쪽 끝까지 기다란 전선을 형성해 동시다발적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따라서 급하게 병력을 투입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잠시 의견이 오고 간 후, 한 장군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여기 프라바, 사령부를 지키고 있는 수비병을 동원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지금 프라바에 주둔 중인 병력은 총 3만. 이 중 최소의 병력만 남기고 전부 동원하면 될듯합니다.”
“그러면 이곳 사령부의 수비는 어떻게 합니까?”
의견을 제시한 장군은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 3군단을 공격하기 위해 10만이나 되는 병력을 움직일 공화국군입니다. 이곳 사령부를 공격할 여력 따윈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이 옳았다.
그렇지 않아도 열세인 공화국군이다. 작전을 위해 10만이나 동원하는 판에 사령부까지 공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하?”
부총사령관 맥가일 원수가 황태자의 의견을 물었다.
총사령관인 린덴은 말없이 장군들의 토론을 듣고 있었다.
“제 생각에는 사령부의 병력을 동원해 적들에게 역습을 가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되긴 합니다만.”
“내 생각도 그렇긴 하다.”
린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뜻하지 않은 정보 획득으로 세우는 완벽한 작전이었다.
이 역습이 성공해 대승한다면 공화국군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어쩌면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타격을.
‘그렇게만 되면 내 계획은 시행할 필요도 없겠군.’
욕심이 날 정도로 완벽한 상황.
하지만 그는 쉽게 작전을 승인하지 못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정말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
린덴은 인상을 찌푸렸다.
의심할 만한 근거는 없었다.
공화국 장교가 자살하면서까지 지키려던 작전 기밀을 운 좋게 얻은 것이니까.
아마 사막의 전갈도 전령이 편지를 삼키고 자살까지 했는데, 배를 갈라 정보를 가져갔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유 없이 느낌이 안 좋아.’
그는 책상을 두드렸다.
‘하지만 느낌이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병력을 안 보낼 수는 없어. 너무나 좋은 기회이니까.’
고민하던 그는 잠시 결론을 보류했다.
‘엘리제, 그녀와 상의해 봐야겠군.’
엘리제, 어쩌면 그 소녀라면 그들이 놓치고 있는 이 작전의 맹점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안 계십니다.”
린덴을 맞은 건, 밉상인 그레이엄이었다.
“아직도? 아직도 안 돌아왔다고?”
“네, 전령을 통해 환자가 많아 조금 늦는다고 연락 왔습니다. 아마 내일 저녁이나 모레쯤 병원에 돌아올 것 같다고 합니다.”
린덴은 와락 인상을 구겼다.
‘이 여자가 정말.’
며칠 전, 그는 결심했었다.
그녀가 자신을 피하니 억지로라도 만나 담판을 짓자고.
그는 그녀에게 아무리 도망 다녀도 소용없으니 포기하라고 말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억지로 만나려 해도, 일단 돌아와야 만날 것 아닌가?
‘이틀 뒤에 온다고? 작전은 어떻게 하지?’
시간에 맞추려면 늦어도 내일은 병력을 이동해야 했다. 이틀 뒤면 너무 늦었다.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데.’
감이 꺼림칙했다. 하지만 근거 없는 감만으로 작전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지만, 이래서야 불가능했다.
‘어쩔 수가 없군.’
결국, 그는 출정을 결정했다.
‘이번 작전이 끝나면 순회진료는 영원히 금지해야겠어. 반드시.’
그녀가 반발해도 이번만큼은 절대 안 됐다. 순회 진료가 반드시 필요하면 다른 의사 보내라고. 그렇게 명할 것이다.
다음 날, 린덴이 이끄는 3만의 병력이 공화국군을 역습하기 위해 출발했다.
프라바, 사령부에는 최소한의 병력인 2천의 수비병만 남겨두었다.
그리고 린덴이 떠난 날 늦은 밤, 엘리제가 프라바의 병원에 돌아왔다.
대규모 작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그녀는 린덴을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도망 다니는 것은 답이 아니야. 어떻게든 답을 내야 해.’
그녀는 큰오라버니의 조언을 생각했다.
어떤 답을 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도망은 답이 아니었다.
엘리제는 환자를 진료하며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순간.
린덴과 엘리제가 엇갈린 그때.
사막의 전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령부, 엘리제가 있는 프라바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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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5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