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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93화 (93/194)

00093  3-7 엇갈림  =========================================================================

7장 엇갈림 - 8

전갈과 공화국군의 병사들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 무슨?”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정신을 차리고, 병사들이 소총을 엘리제에게 겨누려는 순간!

루이 니콜라스가 그들을 말렸다.

“그만! 계집애처럼 호들갑 떨지 마.”

“가, 각하?”

“너희는 저 소녀가 권총을 발사할 수나 있다고 생각하나?”

“……!”

“보라고. 저 다리 떨리는 것.”

그렇다. 엘리제의 다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공포와 긴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쏘면? 저 거리에서 근처에 맞출 수나 있을 것 같아? 천장이나 바닥에 안 맞으면 용하지.”

권총은 뛰어난 휴대성에 비해 명중률이 극악하다.

오죽하면 영관 장교에게 주어지는 권총이 호신용이 아니라, 자살용이란 말이 있을까?

지금 그녀와 루이의 거리는 약 20m. 권총의 명사수가 아닌 한, 맞추기 어려웠다.

“대령, 역시 마지막 기백마저 멋지군. 도저히 귀족가의 여식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야. 그런데 그거 아나?”

“…….”

“그런 모습이 나를 더욱 자극한다는 것을.”

그러며 그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엘리제가 찢어지듯 외쳤다.

“다가오지 마십시오!”

“다가오면? 그러면 어쩔 건데? 쏘기라도 할 건가?”

루이가 비웃음을 지었다.

저벅.

“쏠 수 있어? 아니, 사람한테 쏴본 적이나 있어? 응?”

저벅.

“없지? 한번 쏴봐. 자, 이렇게 손 내밀 테니 말이야. 이 손을 향해 한번 쏴보지. 쏠 수만 있다면 말이야.”

저벅. 저벅.

루이는 고양이가 궁지에 몰린 쥐에게 향하듯 걸음을 내디뎠다.

여전히 엘리제는 다리를 파르르 떨 뿐, 총을 발사하지 못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십시오! 정말로 발포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공화국군의 병사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실제로 그녀가 총을 발사할 거라, 그래서 루이에게 상처 입힐 거라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뭐 해? 빨리 쏴봐. 여기 손 내밀었잖아. 응?”

저벅. 저벅.

루이는 몇 발자국 더 내디디며 오른손을 허공 위로 뻗었다.

그는 저 아름다운 소녀의 눈이 긴장과 공포에 물든 모습을 즐겁게 감상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엘리제가 이를 깨물었고!

타앙!

리볼버가 불을 뿜었다.

그리고……!

“크아악!”

찢어질 듯한 고통이 울려 퍼졌다.

허공에서 흔들리던 루이의 오른손목이 총알에 그대로 관통된 것이다!

“각하!”

“크아악! 으악!”

루이는 고통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비명을 질렀다. 손이 끊어질 듯한 통증에 머리가 하얗게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이년이!”

뒤늦게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그녀에게 총을 겨누려 했다.

하지만 엘리제가 날카롭게 외쳤다.

“모두 움직이지 마십시오!”

“……!”

“단 한 명이라도 움직인다면! 그때는 머리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없습니다!”

그다음은 없다. 그 말은 다음에는 루이를 죽이겠단 뜻이었다.

꿀꺽.

모두가 긴장된 침을 삼켰다. 엘리제가 어린 소녀라고 무시하는 마음은 깨끗이 사라졌다.

아니, 오히려 이 순간 그들은 약자가 되었다. 루이 니콜라스란 인질을 잡힌 약자가 말이다!

“그러니 움직이지 마십시오!”

엘리제는 비명을 지르듯 반복해 외쳤다.

그녀는 피가 날 듯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쐈어! 정말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녀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쏴본 적이 없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두려웠다. 무서웠다.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안고 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참고. 작은 소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맥 쪽을 맞은 것 같으니, 빨리 치료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제안한 협상을 잘 생각해 주십시오. 제가 말한 조건만 들어준다 약속한다면 총을 치우겠습니다.”

하지만 루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끔찍한 고통에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크악! 으으…….”

엘리제의 말대로 동맥이라도 뚫린 것인지 피가 펑펑 쏟아졌다. 마치 수도 댐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은 출혈량이다.

그의 팔은 물론, 상체 전체가 피에 젖었다.

“크으……!”

“약속해 주십시오. 이 병원에 있는 의료진들과 환자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루이 니콜라스가 버럭 비명을 질렀다.

“그래, 알았다! 빌어먹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하지만 엘리제는 단호히 말했다.

저렇게 대충 뱉는 약속을 믿을 수는 없다. 하물며 저 루이 니콜라스는 배덕과 기만의 상징 아닌가?

“자유와 평등에 걸고 맹세해 주십시오.”

하지만 자유와 평등. 공화국이 신봉하는 가치를 건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다른 공화국 병사들 앞에서 한 맹세이니 어지간해서는 지킬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조건도 아니었고.

“크…… 알았다! 제길! 자유와 평등을 걸고 맹세하마! 이 병원에 있는 자들은 손끝 하나 안 건들 테니 빨리 총 치워!”

루이는 발광하듯 외쳤다.

동맥에서 터져 나오는 엄청난 출혈에 그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아무리 건장한 남자라도 이런 출혈이 지속하면 사망한다. 빨리 지혈을 해야 한다.

그의 맹세에 엘리제는 눈을 감으며 총을 내렸다.

됐다. 이걸로 이 병원에 있는 자들은 일단 안전할 것이다.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은 다했다.

저 루이를 인질로 잡고 탈출을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으나, 그건 절대 무리였다.

그에게 총을 겨누고, 협박한 것만으로도 그녀는 모든 기력을 다 쏟아부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끝났어.’

그녀가 총을 내리자, 공화국 병사들이 다급히 움직였다.

“가, 각하! 지혈을……!”

일부는 루이에게 붙어 팔뚝을 끈으로 묶어 응급 지혈 처치를 시도했고, 일부는.

“이년! 빨리 잡아!”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엘리제는 반항하지 않았다. 다행히 도박이 성공하긴 했으나, 저들을 상대로 자신의 반항이 먹힐 가능성은 없다.

그나마 몸이 덜 상하려면 가만히 있는 것이 나았다.

“손 뒤로 해서 묶어!”

병사들은 그녀를 거칠게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쿠웅!

‘아악!’

온몸으로 땅에 충돌한 그녀는 아득한 통증에 비명을 삼켰다. 끔찍하게 아팠다.

“묶어!”

자신들의 사령관에게 총을 쏜 것을 갚기라도 하려는 듯, 등 뒤로 그녀의 팔을 꺾고 거칠게 밧줄로 손을 묶었다. 거친 밧줄이 그녀의 여린 피부에 파고들었다.

그렇게 등불을 든 여인, 엘리제 드 클로랜스는 공화국군의 포로가 되었다.

루이 니콜라스가 쓰러진 그녀를 보며 이를 갈며 말했다.

“바로 심페폴로 옮겨!”

그녀에게 받은 이 빚은 심페폴에서 철저히 갚아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병원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안쪽으로 울려 펴졌다.

“급보입니다!”

“……?!”

“동쪽에서 제국군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루이 니콜라스가 통증 속에서도 놀라 외쳤다.

“뭐라고?!”

“이곳 사령부를 지키던 병력입니다. 총 병력 3만 명! 공제가 직접 이끌고 있습니다!”

“……!”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제국군이 도착했고, 곧바로 프라바 탈환전이 벌어졌다.

린덴이 이끄는 3만의 제국군은 마치 해일이 몰아치듯 공화국군을 덮쳤다.

“와아!”

“크악!”

공화국군은 정신없이 저항했으나 열세였다. 일단 숫자가 2만으로 3만인 제국군에 비해 적었고, 점령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여서 전열도 엉망이었다.

그리고 가장 밀렸던 것은 바로 기세!

“황태자비를 구하자!”

“등불을 든 천사를 구해라!”

제국군 모두 이곳 프라바의 야전병원에 자신들의 레이디, 등불을 든 천사, 엘리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병사들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공화국군에게 돌격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공제 린덴이 있었다.

‘엘리제! 제발! 제발!’

그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미친 듯이 타올랐다.

린덴은 로마노프 황가의 역사상 가장 강한 초상 능력자로 평가받는 이.

자신의 초상 능력의 특성상, 몸에 가해질 반작용 때문에 평소에는 강한 초상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린덴이지만, 지금 그는 분노와 걱정에 눈이 먼 상태였다.

‘만약 엘리제가 손끝 하나라도 상해 있다면! 너희 중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겠다!’

그는 호랑이가 포효하듯 공화국군을 몰아붙였다.

그런 린덴과 제국군의 노도와 같은 기세에 프라바를 일시적으로 점령했던 공화국군은 일방적으로 밀렸다.

결국.

“후퇴하라! 모두 심페폴로 후퇴하라!”

동맥 출혈로 엘리제와 같이 심페폴로 실려 간 루이 니콜라스를 대신하여 공화국군을 지휘하던 파비앙이 다급히 외쳤다.

이대로는 전멸이었다.

공화국군은 모든 것을 내던지고 목숨만 건지고자 허겁지겁 도망쳤다.

결국, 전투 결과는 제국군의 대승!

사막의 전갈이 자국 장교를 자살시키면서까지 계책을 꾸몄건만, 결과적으로 대승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제국군에게 전투의 결과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황태자비께서는?!

“데임 클로랜스가 없어!”

제국군 모두 엘리제가 공화국군에게 포로로 끌려간 것을 깨달았다.

“공화국군을 잡아라! 등불을 든 천사를 구해라!”

“절대 놓치면 안 돼!”

프라바는 크림반도 전역으로 길이 나 있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래서 린덴이 새로운 사령부의 위치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제국군 그 누구도 수복한 프라바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들의 레이디, 등불을 든 여인을 구하기 위해 제국군을 쫓았다.

그리고 그 군을 만류해야 할 총사령관 린덴은.

‘엘리제! 안 돼!’

오히려 시뻘게진 눈으로 선두에서 공화국군을 쫓았다.

“전하! 전하! 더 이상 쫓으면 위험합니다!”

맥가일 원수가 하얘진 얼굴로 그를 만류했지만 린덴은 듣지 않았다.

이성을 잃은 맹수처럼 끝없이 공화국군을 추격할 뿐이었다. 그녀를 되찾기 위해!

하지만.

아무리 쫓아도, 심지어 홀로 심페폴의 성벽이 보이는 곳까지 말을 달려도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제국군이 몰아치기 전, 루이 니콜라스가 미리 심페폴로 출발한 탓이었다.

“엘리제! 으아악!”

린덴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비명이었다.

그렇게 프라바 공방전이 막을 내렸다.

***

프라바 공방전이 벌어진 다음 날이었다.

크림반도의 수도, 심페폴의 시청사.

공화국군이 사령부로 사용하는 그 건물 옆에 위치한 관사였다.

사막의 전갈의 부관, 파비앙 중령이 건물 안에 들어가 4층 꼭대기에 위치한 방에 공손히 노크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런데 안에서 들리는 음성이 의외였다.

여린 소녀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네, 들어오세요.”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끼익.

문이 열리니 단정하게 정리된 방이 나타났는데, 한 소녀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백금발의 푸른 눈, 인형같이 예쁜, 작고 여린 소녀.

엘리제 드 클로랜스였다!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으십니까?”

파비앙이 공손하게 물었다.

프랑소엔어였다. 하지만 엘리제는 프랑소엔어를 사용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프랑소엔어는 서대륙 귀족계에서 공용어처럼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수백 년 전 프랑소엔 왕국이 브리티아와 비교도 안 되는 강국이었기 때문이다.

“네, 덕분에요.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녀는 처음 험하게 끌려갈 때와 다르게 나쁜 대우를 받지 않고 있었다.

나쁜 대우는커녕 마치 손님을 모시는 듯한 최고의 대우였다. 방 앞에 감시하는 경비병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흉흉한 루이 니콜라스의 분위기 때문에 잔뜩 고초를 예상한 것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닙니다. 전장이다 보니 더 좋은 대접을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건 모두 사막의 전갈의 부관 파비앙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가 엘리제에 대한 대우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특별히 명한 것이다.

물론 이런 특별 대우가 가능한 것은 현재 니콜라스가 손에 입은 부상 때문에 과다 출혈이 심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덕이다.

“저…… 혹시…… 저에게 이렇게 잘해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래도 저는 적국의 포로인데.”

엘리제가 조심스레 물었다.

============================ 작품 후기 ============================

내일 1월 8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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