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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03화 (103/194)

00103  4-3 직시  =========================================================================

3장 직시 - 1

“한 끼 말고. 난 자주 먹고 싶은데?”

“……저 사실 요리 잘 못해요.”

“이거 맛있는데? 그리고 요리 경력이 길다며?”

“그, 그게……”

엘리제는 버벅거렸고, 린덴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관없다. 네가 해주는 요리면 뭐든 좋을 것 같군.”

“……저, 저…… 남은 고기 타는지 보고 올게요!”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엘리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작 구이를 살피러 갔다.

‘그가 내가 해준 요리를 먹는다고.’

요리를 종종 해주는 사이.

그런 관계는 단 하나다.

부부.

그녀는 고기를 살피며 자신도 모르게 그가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는 상상을 해보았다.

무뚝뚝한 그는 반찬 투정은 하지 않겠지. 맛없어도 맛있는 척 먹어줄 것이다. 아니, 의외로 반찬 투정을 하려나?

린덴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떠올랐다.

싫지 않은 상상이었다.

***

그 뒤로도 둘은 길을 걸었다.

린덴이 계속 공화국의 허를 찌르는 방향으로 가서인지, 다행히 공화국군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며 중간중간 그들은 이전처럼 노숙을 하고 요리를 해먹었다.

린덴은 그녀가 무슨 요리를 해주든, 맛있게 먹어주었다.

솔직히 별로인 요리도 있었는데, 그냥 맛있다고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도 그가 잘 먹으니 기쁘단 마음이 들었다.

한번은 장작 구이를 하느라, 둘 모두의 얼굴이 까매져 서로 깔깔 웃은 적도 있었다.

엘리제가 먼저 웃었고, 그도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녀는 그가 소리 내어 웃는 것은 그때 난생처음 보았다.

봄이 오기 전, 마지막 한파가 몰아치려는 것인지 밤에는 한층 더 추워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둘은 꼭 껴안고 잘 수밖에 없었다.

“이리로 와라.”

“하지만…….”

“그러면 따로 자다 얼어 죽을 것이냐? 특별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이리로 와.”

엘리제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특별한 마음이 생겨서요.’

그에게 꼬옥 안기니 추위 속에서도 따뜻했다.

하지만 문제는 심장의 떨림.

그리고 그의 몸에 닿는 부분이 전기가 닿은 듯 찌릿했다.

‘이전에는 안 그랬는데.’

이전 삶.

부부였으니, 당연히 서로의 몸을 맞닿을 일이 있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손을 잡거나, 춤을 추거나, 아니면…… 관계를 가질 때나.

하지만 그의 차가운 눈 때문이었을까? 그를 사랑했음에도 이런 식으로 가슴이 떨리거나, 닿은 손이 찌릿하진 않았다.

특히 사랑이 아닌, 의무로 인해 억지로 맺는 관계 때는 떨림은커녕 조금 슬펐다.

그러나 지금은…… 왜 이렇게 심장이 터질 것 같은지.

‘하아. 모르겠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냥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전 삶도, 앞으로 그와의 관계도.

물론 안다. 이렇게 계속 피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러다 언젠가 후회할지 모른다는 것을.

그러나 지금은 그냥 노곤히 이렇게 그의 체온을 느끼고 있고 싶었다.

좋았다.

***

하지만 다음 날, 그들의 탈주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을 이끌고 한창 길을 걷던 린덴의 얼굴이 굳어졌다.

“잠깐.”

“전하……?”

린덴은 대답하지 않고, 가방에서 급히 망원경을 꺼냈다. 그리고 산 아래를 굽어 살폈다.

“……!”

그의 얼굴이 딱딱해졌고, 그녀의 등줄기로 불안이 스쳐 지나갔다.

“문제가 생겼다.”

“네……?”

“공화국군이 우리의 꼬리를 잡은 것 같다.”

“……!”

엘리제가 놀라 물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그들은 항상 공화국군의 허를 찌르며 이동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그들을 찾은 거지?

린덴은 인상을 찌푸렸다.

“루이 니콜라스, 그놈이 직접 추격을 시작한 것 같군.”

망원경 저 너머로 보이던 한 장면.

한쪽 팔이 잘린 채, 시뻘게진 얼굴로 병사를 다그치는 젊은 지휘관이 있었다.

사막의 전갈, 루이 니콜라스. 그가 그사이 병석에서 일어나 직접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막의 전갈은 위고 중장과 다르게 모략과 전술의 달인. 린덴의 이동 경로를 예측해 낸 것이다.

‘지긋지긋한 놈. 그때 숨통을 끊었어야 하는데.’

린덴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어쨌든 상황이 곤란해졌다.

지금껏 공화국군을 지휘하던 위고 중장은 순수한 열혈 무인이라 그저 병력을 무작정 우크라 산맥에 때려 넣기만 해, 빈틈으로 지나갈 수 있었지만, 루이 니콜라스는 달랐다.

폐인이 되었다 해도 한때 사막의 전갈이라 불리던 모략의 달인.

철저한 계산으로 그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엘리제, 힘들겠지만 속도를 내야겠다.”

“네, 전하!”

엘리제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정도만 더 이동하면 공화국군의 세력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라.”

그러며 린덴은 간절히 바랐다.

‘제발 아무 일 없이 돌파할 수 있기를. 하루. 딱 하루만 마주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공화국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수도 있어.’

하루만 더 가면, 양측 세력이 비등하게 교전을 벌이는 지역이 나타난다.

거기까지만 가면 된다. 그러면 변고를 눈치챈 제국군이 구원군을 보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얼마 뒤 그들은 푸른 제복의 병사들과 맞닥뜨렸다.

“공제(空帝)다!”

“……?!”

“전원 발포 준비! 니콜라스 각하의 명대로 즉결 사살한다! 너는 신호탄을 쏴!”

그들은 무슨 명을 받았는지, 생포할 생각도 없이 곧바로 발포를 준비했다.

피유웅!

곧 붉은 신호탄이 수놓았고, 그들을 향해 총알이 날아들었다. 심지어 수류탄도 날아왔다.

“엘리제!”

“전하!”

린덴은 그녀를 감싸 안았다.

공간 방어가 펼쳐지며 총알이 튕겨 나갔다. 그리고……!

콰앙!

수류탄의 파편이 그들을 덮쳤다.

‘크윽!’

초상 능력의 반작용으로 크게 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재차 무리한 초상 능력을 사용하니 린덴의 속이 진탕됐다.

하지만 린덴은 자신의 품에 안긴 작은 소녀를 바라봤다.

‘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겠다. 엘리제.’

그렇게 이를 악물며 다짐한 그는 엘리제를 한 손에 안고 돌파를 시작했다.

방향은 일직선으로 북쪽 방향.

거리는 하루거리. 끔찍이도 긴 거리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를 지키고자 하는 그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공제를 발견했다고?”

“네, 각하!”

루이 니콜라스는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잘했어. 잘했어. 큭큭.”

그 광기가 흐르는 모습에 흉갑기병대의 사령관 위고 중장은 소름을 느꼈다.

전령으로 온 병사도 침을 꿀꺽 삼켰다.

공화국 최고의 명장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지 오래였다.

“저, 정말 보는 즉시 사살합니까? 생포하지 않고 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죽이라고! 아니면 네가 죽고 싶어?!”

루이 니콜라스는 뻘게진 눈으로 고함을 질렀다.

“공제든, 등불을 든 여인이든. 다 죽여. 내가 갈 때까지 그 연놈들이 살아 있으면 너희가 죽을 줄 알아.”

그런 그의 왼팔은 팔꿈치부터 잘려 있었다. 오른팔도 손목동맥이 상해,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양팔을 다 잃은 것이다. 모두 공제와 등불을 든 여인 때문이었다.

‘절대 용서하지 않아.’

그는 지금껏 자신이 저지른 일은 생각지도 않고 이성을 잃고 생각했다.

“나도 간다.”

“각하?”

“그놈들의 최후를 직접 목격해야겠어.”

루이는 괴물처럼 웃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까악.

하늘 위에서 검은 깃털을 가진 까마귀가 푸드득 나무 위에 내려앉았다.

까악.

그 흉조(凶鳥)는 다시 한 번 불길한 울음을 흘렸다. 정확히 루이 니콜라스를 바라보며.

***

한편, 우크라 산맥의 북동쪽 가도.

한 무리의 기병대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가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다, 단장님. 이렇게 가도 괜찮은 것입니까?”

어깨에 총과 검이 교차하는 문장을 지닌 붉은 제복의 장교가 당황해 물었다.

얼음 같은 인상의 아름다운 미남자는 말을 달리며 짧게 답했다.

“안 되지.”

“그, 그러면 어째서? 맥가일 원수께서는 각 부대마다 반드시 제자리를 지키라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명령 불복종이다.”

“네에?!”

장교는 당황해 젊은 미남자를 바라봤다.

얼마 전까지 총기사단의 부단장이었던, 이제는 전(前) 단장의 사망으로 신임 단장이 된 렌 남작은 ‘명령 불복종이 뭐?’란 표정이었다.

“우리가 지금 누굴 구하러 가는 거지?”

“…….”

“그리고 우리는 누구지?”

렌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천의 기병대가 결연한 얼굴로 그를 따르고 있었다.

“너희에게 하나 묻겠다!”

“네, 단장님!”

“너희가 누구냐?!”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황실의 자랑스러운 로열 나이츠(Royal Knight), 총기사단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굴 구하러 가는 것이지?”

“나의 주인(My Lord)을 구하러 갑니다!”

렌은 말을 달리며 기병용 라이플을 들어 올렸다.

“그래, 우리는 우리의 주인, 황태자 전하와 예비 황태자비를 구하러 간다! 명령 불복종은 내가 책임지겠다. 로열 나이츠인 우리는 우리의 충성(Royal)을 다한다!”

“와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가도를 울렸다.

그리고 고개를 앞으로 돌린 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전하.’

또 생각했다.

‘너도 절대 다치면 안 된다.’

그는 초조히 입술을 깨물었다.

‘내 동생.’

***

렌과 총기사단의 결연한 의지와 별개로 린덴과 엘리제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초상 능력자인 그는 분명 강했지만, 인간인 이상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아무리 필사적으로 돌파해도, 적은 끝없이 몰려들었다.

“1진 돌격!”

“와아! 자유와 평등을 위하여!”

좁은 협곡, 푸른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끝없이 린덴과 엘리제에게 달려들었다.

린덴은 이를 악물며 초상 능력을 움직였다.

‘진공 만들기.’

병사들의 진형 한가운데의 공기가 일시적으로 증발하며 진공 상태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비어버린 공간을 메우기 위해 휘몰아치는 공기의 후폭풍!

후웅!

“아악!”

돌격하던 병사들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형편없이 쓰러져 버렸다.

한순간에 소대 규모에 달하는 인원을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기적을 선보였지만, 적의 공격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2진 일제 사격!”

타앙! 타앙! 타앙!

마치 비가 내리듯 총알이 쏟아졌다. 공간 방어를 하였지만, 화망(火網)을 형성한 총알 세례는 린덴의 내부에 타격을 주었다.

‘큭.’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느낌을 억지로 참으며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어떻게든 엘리제가 다치지 않도록 온몸으로 그녀를 감싸며.

린덴은 전방에서 일제 사격을 가하는 적 진형을 향해, 초상 능력 ‘공간 찢어발기기’를 시전하였고, 곧 비명을 지르며 적들이 쓰러졌다.

생명을 잃은 적들은 거의 없었지만, 당분간 거동은 어려울 것이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위력. 하지만 힘을 사용할 때마다 그의 내부는 문드러져 갔다.

“저, 전하…….”

“난…… 괜찮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엘리제의 눈이 끝없이 흔들렸다.

결국.

린덴은 끝없이 몰려드는 적들을 향해 연거푸 초상 능력을 사용하다 반작용이 와 거칠게 기침을 토했다.

“쿨럭. 커억.”

“전하!”

린덴의 입에서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엘리제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괜…… 찮다. 정말 괜찮아.”

린덴은 장갑으로 쓰윽 피를 닦았다. 장갑이 빨갛게 물들었다. 한계에 도달했는지, 숨길 수 없는 통증이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래서 말했다.

“이대로는 안 돼요. 절 놓고 전하 혼자 가세요.”

“뭐?”

“전하 혼자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잖아요. 그러니 전하 혼자 가세요. 빨리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그런데 그때, 엘리제가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제가 싫어서 그래요!”

“뭐?”

“저도 싫다고요! 전하가 다치는 것! 전하가 괴로워하는 것! 전하가 죽을지도 모르는 것! 싫다고요! 저도 아프다고요!”

“……너?”

린덴의 눈이 커졌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거지?

엘리제의 눈동자에서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주말 토, 일요일은 쉽니다.>

============================ 작품 후기 ============================

다음 주 월요일 18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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