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4 4-3 직시 =========================================================================
3장 직시 - 2
그녀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빌듯 말했다.
“그러니 제발 부탁이에요. 절 놔두고 혼자 가세요.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엘리제…….”
린덴의 가슴이 요동쳤다.
지금…… 그녀가 자신을 향해 눈물 흘리고 있는 게 정말…… 맞는 건가?
“엘리제…… 너…….”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낮은 목소리가 그들을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공제 전하.”
“……!”
린덴과 엘리제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경갑을 갖춘 3명의 젊은 남자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앙젤리 이후로 처음 뵙겠습니다.”
린덴은 짓눌린 신음을 뱉었다.
“삼기사(三騎士).”
“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비교적 나이 들어 보이는 이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
젠틀한 신사 같은 인상이었지만, 린덴과 엘리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린덴은 물론, 엘리제도 삼기사(三騎士)란 이름을 알고 있었다.
삼기사.
흉갑기병대의 사령관 위고 중장과 더불어 공화국 최고의 오러 나이츠들의 별명이다.
한 명, 한 명이 위고 중장에 맞먹는 실력자였는데 비슷한 나이 또래라 늘 형제처럼 어울려 다녀 삼기사란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서로의 뜻이 잘 맞는 만큼, 합공이 무시무시했다.
‘하필 지쳐 있는 상태에서.’
린덴은 굳은 얼굴로 생각했다.
최악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대를 만나 버렸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유감이군요, 아름다운 레이디. 빛의 도시, 파리스의 거리에서 만났으면 데이트 신청이라도 했을 텐데.”
삼기사 중, 셋째가 엘리제에게 찡끗 미소를 지었다. 바람둥이 같은 인상이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마. 공제에게 집중해라.”
엄격한 인상의 둘째가 말했다.
“네에, 네에. 형님들. 그러면 바로 시작하죠.”
스릉.
그들은 각자의 검을 꺼냈다.
첫째는 기병용 세이버(Sabre), 둘째는 레이피어, 셋째는 톱니 같은 날의 잔인한 검, 프랑베르쥬(Flamberge)였다.
린덴도 검을 꺼내 들었다.
“레이디는 뒤로 물러나시죠.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삼기사는 말했다.
황태자도 그녀에게 말했다.
“엘리제, 뒤로 물러나라.”
“하지만…….”
“어서! 옆에 있으면 방해돼!”
린덴은 초상 능력을 이용해 엘리제를 뒤로 밀어내었다.
삼기사는 여성에 대한 존중인지, 그녀가 안전거리로 물러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러면 갑니다, 전하. 사살을 명받아 손속에 사정을 둘 수 없음을 이해하시길.”
그 말과 동시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파앙!
시작은 린덴의 초상 능력, 공간 베기였다. 프랑베르쥬를 든 셋째의 목이 있던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졌다.
“크윽!
오러 나이츠의 육감으로 간신히 그걸 피해낸 삼기사의 셋째는 신음을 흘렸다.
그사이, 첫째와 둘째가 단숨에 린덴과의 거리를 좁혔다.
타앙!
검에 맺힌 오러와 공간 방어가 부닥쳤다.
지금껏 많은 무리를 한 탓에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던 린덴은 신음을 삼켰다.
주륵. 그의 코에서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전하!”
엘리제가 비명 지르듯 외쳤다.
린덴은 이를 악물고 힘을 끌어올렸다.
자신이 쓰러지면 그녀도 끝이다. 그러니 그는 절대 질 수 없었다.
파앙! 파앙!
계속해서 공간 베기가 펼쳐졌고, 의식 추방, 눈 가리기 등. 수많은 초상 능력이 삼기사에게 작렬했다.
삼기사도 이를 악물고 오러를 린덴에게 휘둘렀다.
그렇게 뒤를 돌아보지 않는 치열한 공방이 수도 없이 이어졌다.
***
그리고…….
“커억! 쿨럭!”
린덴은 계속해서 피를 토했다.
“전하!”
엘리제가 그에게 뛰어왔다.
“아아…… 전하. 전하…….”
결국, 승자는 린덴이었다.
삼기사는 모두 차가운 땅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그녀를 지키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이긴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등 뒤에 난 기다란 자상에서 흘러나온 피에 상의가 붉게 물들었고, 무리해서 초상 능력을 사용한 대가로 계속해서 선홍빛 피를 토했다.
“전하, 전하…… 어떻게…… 어떻게…… 흐윽…… 끄윽…….”
엘리제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녀의 눈에서 끝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때, 린덴이 흐릿한 눈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엘…… 리제. 너는 괜찮으냐?”
“……!”
그 걱정을 듣는 순간, 엘리제는 무너져 내렸다. 가슴이 너무 아파 참을 수가 없었다.
“전하, 전하…… 흐윽. 끄윽. 제발…… 나를 놔두고…… 끄윽.”
린덴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거의…… 다 왔다. 저…… 앞의 협곡만 넘으면…… 돼…….”
“끄윽, 흐윽…… 그러면 전하 혼자서라도…… 제발, 제발.”
“괜…… 찮다니까.”
그러며 린덴은 힘겨운지 눈을 옅게 감았다.
“잠시만…… 쉬었다…… 출발하자.”
“전하, 전하…….”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엘리제의 눈이 커졌다.
“……!”
린덴의 등 뒤.
쓰러져 있던 삼기사의 셋째가 떨리는 몸을 붙들며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런 그의 손에는 흑색의 금속, 권총이 들려 있었다.
삼기사의 셋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총구를 정확히 린덴의 심장을 향해 겨누었다.
‘아…….’
그리고.
찰칵.
총이 장전되었다.
저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지면, 린덴은 죽을 것이다.
눈을 감은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가 죽는다고?
그 순간 엘리제의 시간이 멈추었다.
세상이 회색으로 변하였다. 마치 생명을 잃은 것처럼.
지금껏 그와 함께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렇게 웃으니 예쁘지 않으냐. 가끔 내 앞에서도 그렇게 웃도록 하여라.’
‘생일 축하한다. 제대로 못 챙겨서 미안하다.’
‘만약 잘못돼서 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왜 너는 네 생각만 하는 거야?! 이 이기적인!’
그뿐이 아니었다.
론도에서 ‘론’으로 자신과 함께했던 시간.
무뚝뚝한 시선으로 자신을 담던 눈동자.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을 구하러 와준 일.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을 먼저 걱정하는 눈빛.
그리고 이번 우크라 산맥에서 그와 함께하던 시간들.
왜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 왜 억지로 외면하고 있었을까?
이전 삶의 악몽 따위. 단두대의 칼날 따위.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중요한 것은 바로 ‘그’라는 것을.
-알고 있잖아.
그의 죽음을 앞둔 이 순간.
그녀의 속마음은 고백했다.
그래, 그녀는 이전 삶의 기억이 두려웠다. 이전 삶의 기억은 트라우마처럼 그녀의 마음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그가 죽으면…… 넌 살 수 있어?
아니, 없었다.
이전 삶의 악몽 따위. 그의 죽음 앞에서 다 사소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가 죽는데. 그가 없는데.
고작 이전 삶의 기억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녀도 이제 그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는데.
‘린덴…… 전하…….’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시간이 다시 흐르며 세상이 붉게 변했고, 엘리제는 선택했다.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리고 당연하게.
그녀의 몸이 린덴을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타앙!
붉은 세상에 총성이 울렸다.
퍼억!
린덴의 눈이 커졌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엘리제의 오른 어깨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엘…… 리제……?”
린덴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감싼 엘리제를 바라봤다.
그녀의 상의가 순식간에 피로 젖어드는 모습이 그의 뇌리를 마비시켰다.
“엘리제! 안 돼!”
그는 마지막 힘을 끌어 올려 초상 능력으로 삼기사의 셋째의 목을 베고, 엘리제를 끌어안았다.
인형처럼 힘이 빠진 그녀가 그에게 매달려 흔들렸다.
“전…… 하.”
“어째서! 어째서! 안 돼! 엘리제!”
린덴이 미친 듯이 그녀를 불렀다.
그 음성을 들으며 엘리제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린덴이 그토록이나 보고 싶어 했던 자신을 향한 그녀의 미소였다.
‘아아. 내가 막았구나. 다행이야.’
그녀는 흐릿한 의식으로 생각했다.
‘난 정말 바보야.’
조금만 더 빨리 마음을 열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전 삶의 기억 따위가 뭐라고. 왜 나는 이렇게나 그를 거부했을까.
‘문제를 회피하면 결국 이렇게 후회하게 되는 것 알고 있었으면서.’
그녀는 속으로 씁쓸히 웃었다.
두 번의 삶을 살며, 그리고 의사 일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문제를 회피하면 결국 후회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 뭐해. 내가 이렇게나 바보인데.’
그래도. 그래도 다행이었다.
지금 이 순간 총을 맞은 것이 그가 아니라 자신이어서. 그리고 지금이나마 마음을 인정하게 되어서.
그래서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전하…… 린덴…… 저……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엘리제!”
엘리제는 뿌연 시야로 끝없이 흔들리는 그의 금안을 바라봤다.
아아.
저 차가운 금안에 눈물이 고이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그녀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저 당신을…….”
하지만 그녀는 그 뒤로 말을 잇지 못했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이다.
“엘리제! 정신 차려! 엘리제! 엘리제!”
황태자 린덴은 그녀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
저벅저벅.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피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의 걸음 뒤로 하얀 눈에 붉은 피가 쭈욱 이어졌다.
“엘리제.”
중얼거렸다. 그의 양손에는 하얀 소녀가 피에 젖은 채 늘어져 있었다.
“웃기지 마. 네가 이렇게 죽는다고? 절대…… 절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린덴은 짓씹듯 말했다.
무리한 초상 능력의 반작용으로 이미 그의 몸은 전신의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다. 시야도 흐릿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를 살려야 하니까. 자신의 몸이 부서지더라도 그녀를 살리고 말 것이다.
‘제발, 제발…… 엘리제.’
그는 엘리제와 달리 의사가 아니라, 그녀가 얼마나 위험한 총상을 입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중요한 혈관이라도 다쳤는지 출혈량이 많다는 것. 그래서 알고 있는 지식과 심지어 초상 능력까지 동원해 어떻게든 지혈을 시도했다.
그의 간절한 정성 때문일까? 다행히 출혈이 어느 정도 멈추긴 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이미 흘린 피가 많아서인지, 그렇지 않아도 하얀 안색은 시체가 같았고, 맥도 빠르고 얕았다.
전형적인 저혈량 쇼크 증상이었다.
‘빌어먹을. 왜 맨날 너는 내 가슴을 이렇게 아프게 하는 거냐.’
린덴은 이를 악물었다.
힘이 빠져서일까, 아니면 습기가 계속 차올라서일까, 시야가 계속 흐려졌다.
‘엘리제. 제발…….’
그는 자신의 품에 안긴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니, 그의 가슴이 칼로 도려내지는 것 같았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아픔이었다.
‘제발 살아만 나다오. 부탁이다. 제발…….’
그래서 날 얼마든지 아프게 해도 좋으니. 제발…….
그는 간절히 빌었다.
‘아까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 그 말을 들려줘야지.’
가슴속, 그녀가 준 십자가도 떠올렸다.
‘그리고 이 ‘징표’도 돌려받아야지. 엘리제. 응?’
또 ‘론’으로 그녀와 디저트 가게에 가던 것도 생각했다.
딸기 케이크와 바나나 타르트, 망고 푸딩을 특히나 좋아하던 그녀.
그녀가 무사히 살아나기만 한다면 온 론도, 아니, 제국에 있는 맛있는 케이크란 케이크는 모조리 사다 줄 텐데.
그래서 단 음식을 먹으며 애처럼 좋아하던 모습을 다시 볼 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니 가슴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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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19일 09:07분에 뵙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