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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21화 (121/194)

00121  5-2 마주 보다  =========================================================================

2장 마주 보다 - 6

‘왜? 왜 날 찾아온 거지? 그것도 특별한 용무도 없었다면서?’

자신이야 그녀를 간절히 열망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아직 그녀의 마음을 정확히 모르는 그는 혼란스러운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떠오르는 몇 가지 일들.

‘저도 싫다고요! 전하가 다치는 것! 전하가 괴로워하는 것! 전하가 죽을지도 모르는 것! 싫다고요! 저도 아프다고요!’

‘조금이라도 더…… 잘 써서 보내고 싶어서…… 전하에게 보내는 거니까…….’

그리고 그녀의 캐비닛에 수북이 쌓여 있던 자신을 향한 편지들.

‘……설마? 정말로……?’

린덴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것.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설마…… 그녀가 자신을……?

두근.

그 가정이 떠오르자, 가슴이 뛰었다.

그녀가 자신을 거부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 생각했다.

그런 것에 상관없이 무조건 그녀를 가지겠다고.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얼마나 바랐는가? 그녀의 마음속에 자신이 들어가길. 그녀가 자신을 바라봐 주길.

‘아니야. 아직은 정확히 몰라.’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슴은 계속해서 뛰었다.

단지 추측일 뿐이지만,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풍랑처럼 거세게 일었다.

‘엘리제.’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확인하고 싶다.

만나서 그 작은 몸을 끌어안고, 그녀의 마음을 확인해 보고 싶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진행했을 때, 그는 더 머뭇거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얄미운 크리스가 던져준 서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잠시 나갔다 오겠다.”

“네? 이 시간에 어디를?”

란돌이 당황해 물었다.

벌써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이다.

린덴은 검은 코트를 걸치며 말했다.

“암행.”

“……네? 갑자기 어디로 암행을……?”

“클로랜스가(家)로 암행 다녀오겠다.”

“크, 클로랜스가요?”

란돌은 입을 벌렸다.

재상가에 왜 암행을 다녀온단 말인가?

하지만 린덴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다녀오마.”

그렇게 짧은 말을 남긴 후, 궁을 나와 곧바로 말을 달렸다.

클로랜스 저택.

바로 그녀가 있는 곳으로.

그런 그의 등 뒤로 한 송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옅은, 아름다운 겨울눈이었다.

***

부지런히 말을 달린 결과 오래 걸리지 않아, 클로랜스 저택이 위치한 화이트가(街)에 도착했다.

화이트가(街)는 귀족들이 모여 사는 곳답게 거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말에서 내린, 린덴은 클로랜스 저택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저택 2층, 그녀의 침실 쪽을 바라봤다.

‘불이 꺼져 있군. 자고 있나?’

린덴은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해 보니 무작정 오긴 왔지만, 시간이 너무 늦긴 했다.

잠이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젠장.’

왜 이렇게 만나기가 어렵단 말인가. 가슴은 열망으로 이렇게 타들어 가고 있는데.

빨리 그녀를 보고 싶고, 그녀를 끌어안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품 안에 가둔 채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지?’

그는 고민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미 잠이 들었는데, 강제로 깨워 납치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제길. 이러니 빨리 결혼을 해야.’

그는 아직 제대로 데이트도 안 해본 주제에 그렇게 생각했다.

결혼하면 이렇게 못 만나 가슴 타는 일은 없을 텐데.

그녀가 자신의 아내가 되면, 그래서 같이 살게 되면, 손안에서 한순간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그녀의 얼굴을 볼 것이고, 그녀가 일어나면 입맞춤해 줄 것이다.

그리고 커피와 빵을 마시고, 같이 식사를 하며, 한적할 때는 그녀가 좋아하는 디저트와 차를 마시고, 같이 산책을 할 것이다.

매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그녀와 함께라면, ‘그날’ 이후 늘 악몽을 꾸는 자신이지만, 어쩌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궁내부장을 다시 한 번 닦달해야겠어. 정말 약혼 없이 결혼은 안 되느냐고.’

며칠 전 물었을 때는 질색해 경기를 일으켰었다.

말도 안 된다고. 역사상 그랬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예법에 어긋난다고.

‘전하! 황후가 되실 분이 의사 겸업을 할 수 있도록 말도 안 되는 개정안을 내시더니 약혼 생략까지! 정말 이 늙은이를 말려 죽일 것입니까!’

이러며 고래고래 난리였다.

하지만 그는 입술을 비틀었다.

‘예법. 그따위 것.’

그런데 그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마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더니, 뜻밖의 음성이 그를 불렀다.

“전…… 하?”

“……?!”

살짝 떨리는, 익숙한 여린 목소리.

엘리제였다!

그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차의 문이 열리며 추운 날씨 탓에 회색 코트를 걸친 그녀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전…… 하? 이 시간에 이곳엔 어떻게……?”

그의 앞에 도착한 그녀는 푸른 눈을 커다랗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사랑스러운 눈을 본 그는 일순 충동을 참지 못해 와락 그녀를 껴안았다.

“……!”

엘리제가 당황해 그를 불렀다.

“저, 전하……?”

하지만 그를 거부하진 않았다.

단단히 느껴지는 그의 몸에 그녀의 가슴이 다시 뛰었다.

그의 품에 들어와서일까? 추운 날씨가 따뜻하게 변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들리는 낮은 목소리.

“이제야 일이 끝나 돌아오는 것인가?”

“……네.”

“보고 싶었다.”

“……!”

그 낮지만 달콤한 목소리에 엘리제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오후에 그와 만나지 못하고 하루 내내 계속 기운이 없었는데,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도요. 저도 보고 싶었어요.’

엘리제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의 등 뒤를 마주 감싸 안았다.

“……!”

자신의 등 뒤에 옅게 느껴지는 그녀의 손길에 린덴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놀라 품 안에 안긴 그녀를 내려다보니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뭉클.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린덴의 가슴이 알 수 없이 울렁거렸다.

지금 자신의 품 안에 느껴지는 그녀가 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둘은 잠시 가만히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옅은 눈송이가 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

린덴은 한 손으로 엘리제의 머리와 얼굴에 내려앉은 눈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의 손이 얼굴에 닿자, 그녀가 살짝 움찔했다.

엘리제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그의 등 뒤를 감쌌던 손을 내리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그녀의 귓가에 대고 물었다.

“오늘 왜 나를 찾아온 것이지?”

“……!”

그녀의 얼굴이 당황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그, 그건…….”

“말해봐라. 명령이다.”

그 말을 들은 엘리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를 찾아간 이유?

단 하나다.

‘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귓가에서 바로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하겠는가.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 그게…… 검진을 위해서요.”

“검진?”

“네, 크림반도에서 돌아오신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그…… 건강은 괜찮으신지 확인하려고…… 그게 전…… 어의이기도 하고…….”

“단지 그 이유 때문인가?”

“그…… 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그의 차가운 손이 품 안에 안겨 옆으로 돌아가 있던 그녀의 턱을 잡더니,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

쿵.

품 안에 안겨 그의 얼굴을 코앞에서 마주하게 된 그녀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너무 가까웠다.

그의 굳은 입술에서 나오는 숨결이 곧바로 느껴졌다.

“저, 전하…….”

제발 놔달라는 듯 그녀가 그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물으마. 정말 그 이유 때문인가?”

“……!”

엘리제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금안이 타오르듯 그녀를 직시했다.

그 시선을 피하고 싶었으나, 그는 놔주지 않았다.

마치 마음을 꿰뚫듯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결국 그녀는 입을 열었다.

“거, 걱정도 됐고요…….”

“걱정?”

“네, 그게…… 전 어의니까…….”

린덴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초식 동물이 자꾸 자신을 자극하고 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싼 손에 더욱 강하게 힘을 주어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마치 거짓말하는 아이를 혼내듯.

둘의 몸이 으스러지듯 강하게 밀착했다.

“엘리제.”

“…….”

“정확히 말해라.”

엘리제는 울상을 지었다.

얼굴이 귓불 끝까지 빨개졌다.

결국, 그녀는 고백했다.

“……보고 싶어서요.”

그 목소리는 개미가 기어가는 것보다 작았다.

그래서 린덴은 그녀의 말을 곧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소망하던 말이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뭐? 안 들린다. 다시 말해봐라. 조금 더 크게.”

“…….”

그녀의 얼굴이 더욱더 붉어졌다.

한 번 말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니. 그러나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보고…… 싶어서요.”

이번엔 린덴도 똑똑히 들었다.

그의 무뚝뚝하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보고 싶어서 나를 찾아왔다고?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구를? 누구를 보고 싶어서 온 거지?”

“…….”

이제 엘리제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누구긴, 누구겠는가?

바로 눈앞에 있는 그이지.

“전…… 하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린덴의 가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가 차올랐다.

그건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벅찬 기쁨이었고, 가슴이 찢어질 듯 격동했다.

‘내가…… 내가…… 지금……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 건가?’

그는 그렇게 의심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그의 품 안에 느껴지는 엘리제의 작은 몸도, 눈앞에서 떨고 있는 푸른 눈동자도 모두 현실이었다.

나를 보고 싶어 했다고? 그 말의 의미는 단 하나였다.

그녀의 마음에도 자신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전하와 저는 아무 사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전하가 이러시는 것…… 솔직히 거북합니다.’

과거 그녀가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을 밀어내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순간.

그녀의 눈동자는 그때와 달랐다. 붉게 물든 얼굴에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 엘리제.’

격동하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확실히 더 확인하고 싶어 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어째서…… 어째서 나를 보고 싶어 한 거지?”

엘리제는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

그 이유야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민망해 죽겠는데, 자꾸 꼬치꼬치 묻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대답해 봐라. 듣고 싶으니.”

“……그냥…… 그냥…… 보고 싶었어요.”

“그냥? 넌 나를 싫어했던 것 아니었나?”

“…….”

도저히 그를 마주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쥐죽은 듯 말했다.

“……시, 싫어하지 않아요…….”

“……!”

“그러니까…… 싫어하지…… 않아요.”

린덴의 눈동자가 폭풍을 만난 듯 흔들렸다.

‘신이여. 정말 이게 꿈이 아니란 말입니까?’

너무나 기뻐 오히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꿈에서 깨어날 것만 같았다.

헛된 미몽을 꾼 것처럼.

“다시 말해봐라. 아니, 정확히 말해봐라. 싫어하지 않다는 것이 무슨 뜻이지?”

“그러니까…… 싫어하지…… 않아요…… 전하를…….”

그녀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 버린 엘리제는 지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민망함에 얼굴을 들 수가 없어, 그의 품 안에 더욱 얼굴을 파묻었다.

============================ 작품 후기 ============================

내일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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