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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22화 (122/194)

00122  5-3 상흔  =========================================================================

3장 상흔 - 1

하지만 그 순간.

“……!”

그가 그녀의 얼굴을 다시 들어 올렸다. 다시 코앞에서 그와 얼굴을 맞대게 된 엘리제의 가슴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엘리제.”

“…….”

“엘리제.”

린덴은 계속해서 그녀를 불렀다.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그의 품 안에서 그녀의 심장이 떨렸다.

한 음절, 한 음절에 담긴 깊은 갈망.

그 갈망에 취해…… 그녀도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듯 말했다.

“네…… 전하…….”

“엘리제…….”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귀, 귓불, 뺨.

마치 귀중한 보석을 만지듯 그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그의 손이 닿은 곳마다 엘리제는 전기에 감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하…….”

마지막.

린덴의 손가락이 그녀의 붉디붉은 입술에 닿았다.

그의 감촉을 입술에서 느끼며 엘리제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엘리제…….”

그 빠지고 싶을 정도로 깊고 푸른 눈을 보며, 린덴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를 보며,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으나, 피하진 않았다.

‘아…… 전하.’

그렇게 그와 그녀의 거리가 사라지려는 순간.

놀란 목소리가 그들을 불렀다.

“전하?”

“엘리제?”

“……!”

그 뜻밖의 목소리에 놀란 엘리제가 화들짝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오, 오라버니? 오빠?”

목소리의 주인들을 확인한 린덴은 속으로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녀의 오라비들인 렌과 크리스였다!

‘또 결정적인 순간에.’

큰오라비인 렌은 상황 판단이 안 되는지 보석 같은 얼굴을 어벙하게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오빠, 크리스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밀회 장면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엘리제는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왜, 왜 나오셨어요?”

“크흠. 왜 나오긴. 마차가 도착했는데 네가 안 오니 걱정되어 나와 봤지. 날씨가 쌀쌀한데 안 춥니? 아버지가 또 감기 걸릴까 걱정하시던데.”

헛기침한 크리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며 황태자를 흘끗 보는데…… 착각일까? 왠지 그 눈빛이 ‘도둑 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두 번이나 결정적인 순간에 방해받은 린덴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친오빠만 아니었어도!

“아닙니다. 혹시 제가 저녁에 드린 서류는…… 내일 아침까지 검토해 주셔야…….”

“안다. 알아. 돌아가서 할 거다.”

그 얄미운 말에 린덴은 발끈해 말했다.

갈이 치워 버릴까.

하지만 유능하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크리스는 지금껏 그가 만나본 비서관 중 가장 완벽했다. 왠지 얄미운 것만 빼고는.

“가자, 리제.”

“……네.”

엘리제는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오빠들에게 다가갔다.

크리스가 우산을 들어 그녀의 머리 위를 가려주었고, 연애 바보 렌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그러면 저희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전하.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그래.”

“서류는 내일까지 꼭 부탁드리…….”

“한다고.”

린덴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놈. 이거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백금발 3형제는 저택으로 들어갔고, 린덴은 눈을 맞으며 그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갔군.’

방금까지 함께 있었으면서, 눈앞에서 사라지니 다시 가슴이 휑한 느낌이 들어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봐도 계속해서 보고 싶으니, 정말 중증의 중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말을 타고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저, 전하!”

다급한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렸다.

“……!”

놀라 돌아보니 작은 소녀가 그에게 종종 걸음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엘리제?”

“하아, 하아.”

급하게 와 힘든지, 숨을 몰아쉰 그녀는 무언가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눈이 많이 오니 이걸 쓰시라고…….”

“…….”

챙이 넓은 모자와 망토였다. 눈이나 비를 막는 용도로 사용하는.

소녀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 날씨가 추운데…… 건강이 상하시면 안 되니까…… 저는 황궁의 어의이기도 하고…….”

그 우물쭈물한 말을 듣자, 린덴은 다시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와락.

다시 한 번 그에게 껴안긴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입술이 엘리제의 이마에 와 닿았다.

“……!”

그 차갑지만, 타오르는 듯한 감촉에 엘리제의 몸이 뻣뻣이 굳었다.

“엘리제.”

“……네, 전하.”

“내 궁에 와서 나에게 차를 달여 줄 수 있겠나?”

“언제……?”

그는 가만히 입술을 떼고, 그녀의 눈가 앞에 입술을 가져갔다.

“언제든.”

“……!”

“이제 앞으로 그대가 살 곳이니. 언제든 와도 좋다.”

그대가 살 곳. 그 말에 엘리제의 가슴이 살짝 떨렸다.

후에 언젠가 그와 하나가 되면. 그녀가 살 곳.

방금 이마에 와 닿은 입술의 감촉도 떠오르며 심장이 진동했다.

린덴이 나직이 말했다.

“가급적 매일. 그래. 매일 네가 와서 차를 달여 주었으면 좋겠군.”

엘리제가 시선을 피했다.

“매…… 매일은 어려워요. 병원 일이 바빠서…….”

그 대답에 황태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부끄러운 눈으로, 피하지 않고 그를 마주 바라봤다.

“그래도…… 최대한 자주 가서 달여 드릴게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린덴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웃음이 나왔다.

가슴이 터질 듯한 충만감. ‘그날’ 이후 무채색의 지옥으로 변한 그의 마음에 넘쳐흐르는 환희.

너무나 벅차 꿈처럼 여겨지는 행복감이었다.

그렇게 그녀와 그.

둘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 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축복하듯 하늘에서 옅은 눈이 송이송이 내리는, 어느 예쁜 겨울 저녁 밤의 일이었다.

***

엘리제와 린덴이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하던 그 순간.

브리티아의 산업화를 이끈 명군(明君) 민체스터는 꿈을 꾸고 있었다.

삼십 년에 가까운 머나먼 옛날.

오늘처럼 똑같이 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

검은 예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이 북적이며 클로랜스 저택을 드나들고 있었다.

“아, 왜. 엘 이 자식은 하필이면 결혼식을 눈 내리는 겨울날 하는 거야?”

검은 예복이 어울리지 않는 거친 인상의 남자가 투덜거렸다.

로열 나이츠인 총기사단의 단원이었다.

“그러게 란돌. 듣자 하니 엘 그놈 사고 쳐서 결혼하는 거라는데?”

“사고?”

“응, 임신시켰데.”

그 대답에 총기사단의 단원인 란돌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란돌은 총기사단의 소대장으로 낙하산으로 들어온 클로랜스 가문의 골칫덩이 엘의 선배였다.

“엘, 그 놈답군. 다워. 상대가 평민이라 하지 않았던가? 제국 최고의 명문 클로랜스 후작가가 발칵 뒤집어졌겠군.”

“뭐, 완전 평민은 아니고. 중부 지방의 부르주아 집안 출신이라고 하던데. 이름이 테레사였나? 이미 임신한 다음이고 현 후작께서도 워낙 성품이 좋으셔서 어쩔 수 없이 허락한 것 같더라고.”

“참, 별일이군. 그나저나 엘 이놈은 결혼하면 그 바람기는 좀 가라앉으려나?”

“글쎄? 힘들지 않을까. 워낙 철없는 놈이니. 단장님께서도 결혼 뒤에도 이런 식이면 기사단에서 내쫓는다던데?”

총기시단원의 단원들은 훗날 제국의 명재상이라 불리게 될 엘을 뒤에서 거침없이 깎아내렸다.

“아, 예식 시작한다. 빨리 들어가자.”

그렇게 여러 하객이 이 희한한 결혼식에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식장에 입장했다.

결혼식은 차분히 진행됐다.

젊은 엘은 결혼식 내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보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신부 테레사는 당차던 평소와 다르게 다소곳이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이상으로 엘 드 클로랜스와 레이디 테레사가 주님의 축복 아래에서 한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짝짝짝.

하객들은 그 행복해 보이는 한 쌍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었다.

“엘 저놈. 이제 정말 철들어야 하는데.”

선배 란돌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료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제 사고 안 칠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예쁜 부인을 두고 또 사고 치고 싶겠어?”

그 말에 란돌은 입을 다물었다.

하긴, 저런 부인을 맞으면 자신이라도 바람기가 없어질 것 같았다.

“어쨌든 돌아가자. 춥다.”

하늘에서 송이송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객들은 추운 입김을 뱉으며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북적이던 식장이 한산해졌을 때.

저택의 뒤편, 화이트가(街)의 도로에서 아픈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온화한 인상의 남자, 당시 브리티아 제국의 황태자인 민체스터 드 로마노프였다.

“하아, 제길.”

차분한 평소와 다르게 그는 욕설을 내뱉었다.

욕설뿐이 아니었다.

어디서 술도 마셨는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째서.”

그가 이렇게 아파하는 이유.

그건 다름 아닌 친우인 엘과 결혼한 테레사 때문이었다.

“내가 뭐가 부족하다고.”

술에 취한 민체스터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민체스터와 엘은 테레사를 두고 사랑의 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 승자는 황태자인 그가 아니라 후작가의 골칫덩이 엘이었다.

민체스터는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니, 이미 마음속으로는 그녀를 놔주었지만 이렇게 결혼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제길.”

그는 다시 욕설을 내뱉었다.

가슴이 너무 찢어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는 진탕 취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전하.”

“……!”

익숙한 목소리에 민체스터는 고개를 돌렸다.

금발에 푸른 눈, 고귀한 기품의 여인.

당대 론도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지만, 민체스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순간 가장 보기 싫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여인의 이름은 마리엔 드 차일드.

국제 금융 재벌인 차일드 가의 공녀이자,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 그리고 얼마 전 그의 약혼녀가 된 여인이었다.

“전하…… 어째서 이렇게 술을?”

마리엔이 놀란 얼굴로 비틀거리는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걱정 어린 손이 그의 몸에 닿는 순간.

탁!

민체스터가 그녀의 손을 쳐 냈다.

“……저, 전하?”

마리엔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술에 취해서일까? 민체스터는 비틀린 소리를 냈다.

“가.”

“……?!”

“꺼지라고! 너 따위는 지금 꼴도 보기 싫으니!”

갑작스러운 폭언에 그녀의 커다란 푸른 눈이 흔들렸다.

아픔이 깃들며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마리엔은 입술을 깨물며 그 아픔을 참고, 걱정 어린 말투로 말했다.

“전하, 많이 취하셨습니다. 날씨가 추우니 궁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면 저희 저택이라도.”

차일드가의 저택은 이곳 클로랜스가의 저택 바로 옆이었다.

그러나 민체스터는 피식 웃고 다시 그녀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너희 저택? 그 더러운 돈으로 세운?”

“……!”

“다시 말하지만 꺼져. 지금 네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을 참기 어려우니.”

“저, 전하.”

결국, 마리엔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꺼지라고!”

“어, 어째서 저에게 이렇게…….”

“어째서? 몰라서 물어? 너 때문에! 네 고집 때문에 테레사가 내 곁을 떠났어! 네가 고집을 피워 내 약혼녀가 되는 바람에! 응?!”

민체스터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엔은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현 황제는 대륙의 돈줄을 움켜쥐고 있는 차일드가의 공녀인 그녀를 황태자의 배필로 결정했다.

‘끔찍한 일이지.’

민체스터는 이를 갈았다.

그는 그녀가 싫었다. 고리대금업자인 차일드 가문도 싫었다.

이렇게나 싫은데 결혼해야 한다니. 정말 끔찍한 일이다.

“저, 전하…….”

마리엔의 눈에서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더는 그의 곁에 있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부, 불편을 끼쳐 드려…… 죄, 죄송합니다. 흐윽. 그, 그래도…… 날이 추우니…… 조, 조심히 들어가시옵소서.”

그리고 그녀는 차일드가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벽을 넘어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말은 쉽니다. 월요일 뵙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월요일 뵙겠습니다!!

Ps. 사실은 설 연휴여서... '아, 설이다! 다음주 수요일까지 합법적으로 쉬어야지!'라고 좋아했는데... 출판사님이 연재하라고 해서(어버버...) 설에도 정상 연재합니다.ㅠㅠ 월요일날 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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