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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26화 (126/194)

00126  5-4 첫키스  =========================================================================

4장 첫키스 - 1

하지만 린덴은 주저 없이 란돌에게 명했다.

“데임 클로랜스가 쉴 수 있도록 따뜻한 담요를 가져오도록.”

“네, 전하.”

“따뜻한 것도 마시는 것이 좋겠어. 뭘 마시고 싶지, 엘리제?”

엘리제는 어쩔 수 없이 소파에 몸을 앉히며 말했다.

“코코아요.”

“코코아?”

“네, 최대한 달게 해서요.”

그 말에 황태자는 피식 웃었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그녀의 입맛은 참 유아틱하다.

“그래, 코코아. 따뜻하고 달게. 그리고 같이 먹을 수 있게 딸기 케이크도 좀 내와라.”

린덴은 말했다.

엘리제는 그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를 말하자 잠시 놀랐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니, ‘론’과 딸기 케이크를 먹으러 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전하는 징표는 안 돌려주실 생각이실까?’

린덴이 론인 것은 알았으나, 그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아직 차분히 그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뭐, 서로의 마음을 알았으니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기도 했고.

‘언젠가는 론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오겠지. 징표는 어머니의 유품이니 돌려받았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사실 큰 상관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 괜찮았다.

“뜨거우니 조심히 드십시오, 데임.”

란돌이 웃으며 코코아와 케이크를 내오고 사라졌다.

그렇게 엘리제는 린덴과 단둘이 방에 남겨졌다.

‘따뜻하네.’

란돌이 준 담요를 몸에 두르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코코아를 마시니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힐끗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는 린덴을 보았다.

조각 같은 얼굴.

그렇게 거부하려고 했지만 결국 자신의 마음에 들어와 버린 사람.

이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전하.’

그녀는 속으로 그를 불렀다.

단둘이 한 방에 있지만, 걱정했던 것처럼 어색함은 없었다.

그냥 아늑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얼굴을 이렇게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코코아에서 올라오는 김만큼이나 따뜻하고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많은 일이 있겠지만.’

엘리제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황제 민체스터가 자신에게 지나가듯 했던 부탁이 떠올랐다.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말이야. 린덴을, 그리고 미하일을 잘 부탁하네.’

‘폐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알고 있을까?’

엘리제의 얼굴이 슬퍼졌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앞으로 론도에 어떤 비극이 일어날지. 어떤 피가 흐를지.

‘그리고 앞으로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의 옆에 서서.’

엘리제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사실 말릴 수 없는 일이다.

그 비극이 어떤 이유로 일어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그냥 모른 척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

이전 삶 때는 그냥 외면했었다. 사랑하는 그의 뜻에 반하기 싫어서. 그저 모른 척했다.

그러나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

무엇보다 그 비극을 일으킨 후, 평생을 바라던 복수를 한 후 저 황태자는 굉장히 괴로워했다.

그렇지 않아도 상해 있던 그의 가슴은 그 비극 이후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어머니와 누이를 위한 복수는 그에게 후련함이 아닌, 처참함만을 안겨주었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그를 도와줄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한숨에 황태자가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몸이 많이 안 좋은가?”

“괜찮아요.”

“그렇게 앉아 있지 말고 좀 누워서 한숨 자라.”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앞에서 어떻게 누워 있겠는가?

“괜찮아요. 이렇게 앉아 있는 것도 편해요.”

“내 앞이어서 불편해서 그런가? 상관없으니 편히 누워라.”

“정말 괜찮아요.”

거듭 권했으나, 엘리제가 고개만 젓자 린덴은 못마땅하단 표정을 지었다.

“안 되겠군. 늘 말을 안 들으니.”

“네?”

“혼을 내줘야겠어.”

그는 보던 서류를 한 뭉치 집어 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제는 도대체 뭘 하려는지 몰라 당황해 그를 올려다봤다.

“전하?”

린덴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소파, 그녀의 바로 옆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더니, 부드러운 동작으로 자신 쪽, 정확히는 허벅지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그녀는 얼굴이 그의 다리를 베는 모습으로 자연스레 눕게 되었다.

“……전하?!”

졸지에 황태자의 허벅지를 베고 눕게 된 그녀는 놀라 바동거렸다.

하지만 린덴은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귓불과 거의 밀착해서.

“가만히 있어라. 늘 말을 안 듣는 벌이야. 그리고.”

그는 나직이 입을 움직였다.

“움직이면 더 큰 벌을 주겠다. 예를 들면.”

그러며 그는 고개를 좀 더 숙였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으나 충동적으로…….

그의 입술과 그녀의 귓불이 맞닿았고, 그 순간 그의 혀가 가볍게 그 귓불을 훑고 지나갔다.

“……!”

그 생각지도 못한 느낌에 엘리제의 몸이 뻣뻣이 굳었다.

쿵. 귀로부터 강렬한 전류가 흐르며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린덴도 본인이 저질러 놓고는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감각이지?

가슴, 아니, 온몸이 찌릿했다.

‘엘리제.’

그는 타오르는 눈빛으로 자신에게 갇힌 초식 동물을 바라봤다.

가지고 싶다.

저 앙증맞은 귓불을. 이렇게 감질 맛나게 스치는 것이 아닌, 철저히 농락하고 싶었다.

아니, 귓불만인가?

저 붉은 입술도 범하고 싶었다. 저 입술을 벌려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입술부터 시작해 그녀의 모든 곳에 자신을 새겨놓고 싶었다.

“저, 전하…….”

놀랐는지, 살짝 떨리는 몸이 그를 더욱 자극했다.

린덴은 앞뒤 안 가리고 그녀에게 입 맞추고 싶은 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으며 말했다.

“이건 벌이니 가만히 있어라. 만약 또 바둥거리면.”

“……!”

“이 정도로 끝내지 않겠다.”

그 말에 엘리제의 몸이 부동자세로 굳었다.

이 정도로 끝내지 않겠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나, 나 괜찮은 걸까?’

그녀는 울상을 지었다.

무언가 맹수의 아가리에 들어와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맹수에게 잡힌 초식 동물이었다. 도망갈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맹수의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

얌전해진 그녀를 보며, 린덴은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전부터 신경 쓰이는 저 붉은 입술.

바동거리면 저 입술에 그 벌을 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가져온 서류를 펼치며 말했다.

“난 여기서 일을 처리할 테니, 이대로 편히 쉬도록. 몸이 안 좋으니 눈을 붙이는 게 좋겠군.”

그 말에 엘리제는 지극히 곤란한 마음이 들었다.

황태자의 다리를 베고 어떻게 자겠는가?

아니, 그런 걸 떠나 아까 전 귓불에 닿았던 그의 입술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 이런 상태로 잘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결국, 그녀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전하…… 다리가 불편하실까 걱정이…….”

린덴은 답했다.

“더 벌 받고 싶나?”

그 말에 엘리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벌? 도대체 무슨 벌?

혹시 지금 내가 상상하는 그런 벌?

‘그, 그건 안 돼.’

지금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더 심한 벌을 받으면 못 버틸 것이다.

그녀는 속으로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 삶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과거 그녀와 그는 부부였다.

사랑은 없었지만, 신체적 접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지금 이런 가벼운 터치와는 비교도 안 되는 농밀한 접촉이 수도 없었다. 부부였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이렇지 않았다.

그가 정해진 날마다 자신을 안을 때도 이런 강렬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아니, 그때는 오히려 조금 슬펐다.

사랑이 없는, 부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행위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살짝살짝 닿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멈춰 버리는 것 같았다.

‘하아. 정신 차려, 엘리제.’

하지만 린덴은 그녀가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릿결 위에 올라오더니,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한 것이다.

“……?!”

“가만히 있어라.”

그러며 낮지만, 부드러운 음색으로 말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쉬어라.”

엘리제는 깊은숨을 삼켰다.

이러며 편히 쉬라는 게 말이 되는가?

물론 그의 손길은 부드러웠다.

지난 삶에서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따뜻함.

아늑할 정도로 부드러웠지만, 그녀는 편안하게 그 손길을 느끼지 못했다.

그 손길이 닿을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가슴이 고장 난 것 같다.

‘정신 차려, 엘리제. 정신 차려.’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 물론 별 소용없었다.

그렇게 초식 동물은 얼굴을 붉힌 채 꼼짝도 못하고 맹수의 손길을 고스란히 느꼈다.

한편, 맹수, 린덴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거. 크리스, 그놈한테 한 소리 듣겠군. 오늘 안에 처리해야 하는데.’

서류의 글자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오로지 뇌리에 들어오는 것은 자신에게 갇힌 그녀.

허벅지에 닿은 그녀의 감촉이 자꾸 그를 자극했다. 참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 손에 그녀가 닿을 때마다 가슴이 더욱더 타올랐다.

‘엘리제.’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발개진 얼굴로 눈감고 있는 모습. 자신의 손이 닿을 때마다 눈썹 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저 떨리는 눈가에 입술을 가져가고 싶었다. 그곳부터 시작해 천천히 내려가 저 붉은 입술을 범하고 싶었다.

미칠 듯한 충동.

하지만 그는 입술을 깨물며 그 충동을 참으려 노력했다.

당장 이 순간이라도 저 입술을 범하고 싶었지만.

‘참아. 놀랄 거야.’

아직은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

저 소녀는 분명 놀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참으려 했지만, 도저히 그 충동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하아.’

그는 자신이 이렇게 자제력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평생을 참으며 살아왔건만. 도대체.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방 앞에서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전하, 내무대신이 방문하였습니다. 들라 할까요?”

“……!”

엘리제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바동거리는 그녀를 손으로 안으며 말했다.

“가만히 있으라 했지?”

“하, 하지만…… 내무대신께서?”

“괜찮아. 어차피 내 것이 될 그대다. 무슨 상관이냐?”

내 것이 될.

그 말에 엘리제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반항했다.

“하지만 그래도 예법이…….”

린덴은 피식 웃었다.

“예법? 그게 뭐지?”

먹는 건가? 하는 말투.

“황족에게 중요한 게 뭐지?”

“…….”

“신민들을 위하는 능력이야. 예법은 그다음이고. 그리고 난 황태자로서 손색이 없지. 유능하니까. 그러니 예법은 조금 어겨도 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궤변인가!

말이 안 통하니, 이길 수가 없다, 란 명언처럼. 하나도 논리적이지 않으니 엘리제는 일순 반박할 말을 잃었다.

============================ 작품 후기 ============================

내일 12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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