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5 6-1 결투 =========================================================================
1장 결투 - 3
린덴의 품에 안겨 있던 엘리제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무, 무슨 환자인가요?”
동료 의사에게 민망한 모습을 들킨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런 민망한 마음을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권총 결투로 인한 총상 환자입니다! 한 명은 심장 손상이 의심되고, 한 명은 간 손상이 의심됩니다!”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심장 총상! 간 총상! 둘 모두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상처였다.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전하, 저는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엘리제의 다급한 인사에 린덴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떨어지기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환자에게 물불 안 가리는 열정을 보내는 그녀를 사랑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응급 처치는 하고 있는 거죠?”
“네, 그레이엄 남작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총 결투라니. 환자들은 누구죠?”
그리고 의사가 한 말은 엘리제는 물론, 린덴의 얼굴도 하얗게 굳게 만들었다.
“상원위원장인 메르키트 백작과 재정부 장관 도리슨 백작입니다.”
“……!”
***
엘리제는 물론, 린덴도 급하게 구호소로 뛰어 내려갔다.
그만큼 이번 일이 중대한 사태였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무슨 이런 상황에 권총 결투를.’
린덴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물론 귀족 사회에서 권총 결투야 워낙 흔한 일이기야 하지만. 그래도!’
사실 일반적인 서대륙 귀족 사회에 대한 상상과 다르게 서대륙 귀족들끼리 결투는 굉장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프러시엔이나 오스트리엔 국의 귀족들 같은 경우엔 조금만 시비가 붙어도 바로 칼부림이 일어났고, 결투로 난 얼굴의 흉터를 영광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 나라의 귀족 젊은이 중엔 일부로 얼굴에 흠집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브리티아는 조금 덜했지만, 역시나 결투가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편.
그러니 정치적 적대 관계에 있는 이들끼리 사소한 일로 감정을 다투다가 명예를 훼손시켜 결투를 벌이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하필이면 메르키트 백작과 도리슨 백작이라니!’
여러모로 곤란했다.
모두 양 계파의 핵심 인물. 한 명이라도 죽으면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갈등으로 치달을 것이다.
‘아직은 안 돼. 아직은.’
그리고 그런 상황은 린덴, 그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린덴이든 미하일이든 아직은 그런 파국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제길. 다들 나이도 많이 먹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조금 참지!’
그리고 곧 엘리제와 그는 구호소에 도착했다.
워낙 중요한 인물들이어서 그런지, 구호소에는 이미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비켜 주세요! 환자는 어디 있나요?”
“레이디 클로랜스!”
황실십자병원의 의사들이 구원자를 만난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반겼다.
“이쪽입니다!”
엘리제는 그들 사이를 헤쳐 환자에게 다가갔다.
다급한 걸음에 하얀 가운이 펄럭였고,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얼굴에서 린덴에게 뺨을 붉히던 소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로지 철혈의 외과의사!
그녀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환자들을 살폈다.
둘 모두 상태가 심각했다.
특히나 안 좋은 것은 가슴에 정통으로 총알을 맞은 메르키트 백작이었다. 시체처럼 변한 안색으로 지금도 피를 흘리고 있는데, 즉사하지 않고 이곳까지 살아서 온 것이 기적으로 여겨졌다.
‘어쩌다 이렇게……!’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메르키트 백작은 귀족파 인물 중 그녀에게 가장 적대적인 인물이었다.
뒤에서 이를 갈았을 뿐 아니라, 모두 무위로 돌아갔지만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 노력하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엘리제는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의사로서 환자를 보았다.
“두 분 모두 바이탈이 어떤가요?”
“안 좋습니다. 우상 복부가 관통돼 간에 심한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도리슨 백작님도 쇼크 상태이고, 메르키트 백작님은 더욱 심각합니다. 수축기 혈압이 고작 60에 불과합니다.”
수축기 혈압 60!
당장에라도 사망할 수 있는 심각한 쇼크 상태다.
“혹시 메르키트 백작님의 가슴 엑스레이를 찍었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환자를 살피던 그레이엄 남작이 방사선 소견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엘리제는 그것을 보고 표정이 더욱 굳었다.
심장.
총알이 그 심장 한가운데에 정확히 들어가 있었다.
‘심장 관통상!’
모든 부상 중 가장 치명적이라는 심장 관통상이었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그리고 도리슨 백작의 부상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가 급하게 상처를 살피니 총알이 간을 기다랗게 찢어발긴 것 같았다.
어쩌면 간 뒤쪽에 대정맥(Inferior vena cava)도 상했을 수도 있다.
“어떻습니까? 레이디 클로랜스. 둘 모두…… 살릴 수 있겠습니까?”
“…….”
그레이엄이 그렇게 물어보자 웅성거리던 구호소가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그렇다.
제국 최고의 황실십자병원이라지만, 이런 치명적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희망을 걸 수 있는 의사는 단 한 명.
기적의 천사이자 등불을 든 여인인 레이디 클로랜스! 그녀밖에 없었다.
황태자도, 메르키트의 사고 소식에 급하게 뛰어온 3황자 미하일도, 재상 엘 후작도, 황제파의 인물들도, 귀족파의 인물들도 모두 간절히 그녀의 입만 바라봤다.
그녀가 안 된다고 하면 더는 방법이 없었다. 저들은 죽을 것이다.
“…….”
하지만 엘리제는 좀 더 상처를 살필 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이 길어지자 구호소에 있는 인물들은 극도의 초조감을 느꼈다.
누구든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가능해요. 제가 직접 수술하면 두 분 다 치료할 수는 있어요.”
“……!”
그 놀라운 말에 모두가 눈을 크게 부릅떴다.
특히 심장이 다쳤단 말에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던 귀족파의 인물들의 놀라움이 컸다.
“저, 정말이야, 리제? 메르키트 백작을 살릴 수 있다고? 심장이 다쳤는데?”
미하일이 물었다.
심장이 다쳤는데, 살릴 수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엘리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은 해요. 물론 가능성은 높지 않아요. 하지만 시도해 볼 수는 있어요.”
심장 총상.
일반적인 상식처럼 대부분 즉사한다.
하지만 극히 드물게 살아서 병원까지 이송되는 경우가 있다. 관통 시 심장마비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다.
그럴 때엔 심장 수술을 통해 살릴 수 있었다. 다만 그 확률이 굉장히 낮았다.
현대 지구에서조차 사망률 80~90%! 극악할 정도이다.
하지만 시도해 볼 수는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오! 신이여! 감사합니다!”
“역시 레이디 클로랜스! 등불을 든 여인! 감사합니다!”
귀족파 인물들이 눈물을 흘릴 듯 기뻐했다.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인물은 없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기적의 천사, 등불을 든 여인. 그녀가 가능하다면 가능한 것이다.
이전 엘리제를 깎아내려야 한다며 주장하던 사람들도 정신없이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그때 엘리제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
문제란 말에 미하일이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메르키트 백작님, 도리스 백작님 모두 바로 수술을 받아야 해요.”
“……!”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환자는 두 명. 그리고 그녀의 몸은 하나.
둘 중 한 명밖에 살릴 수 없는 것이다!
구호소에 죽을 듯한 침묵이 깔렸다.
모두 간절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만 바라봤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레이디 클로랜스! 제발 부탁합니다! 메르키트 백작님을 살려주십시오!”
시작은 귀족파였다. 나이가 지긋한 한 귀족이 거의 무릎 꿇다시피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외쳤다.
깜짝 놀란 황제파의 귀족들도 그녀에게 매달렸다.
“안 됩니다! 도리슨 백작님을 살려주셔야 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도리슨 백작님은 황태자 전하께 큰 힘이 될 인물입니다!”
“무슨 소리요?! 메르키트 백작님을 살려야 합니다!”
구호소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지체 높은 귀족들이 엘리제에게 매달렸다. 말로만 매달린 것이 아니라 직접 그녀에게 몰려왔다.
“무, 물러나십시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의사들이 깜짝 놀라 엘리제를 보호하려 하였으나 소용없었다.
귀족들에게 휩쓸리며 엘리제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하지?’
몸이 하나니, 두 명의 수술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누구를?
도리슨 백작은 사랑하는 린덴의 중요한 인물이고, 메르키트 백작은 소중한 친구 미하일의 중요한 인물이다.
누구를 어떻게 선택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두 개의 외침이 구호소를 갈랐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지금 당장 물러나라!”
“그만! 모두 리제에게서 물러나!”
황태자와 3황자였다.
엘리제가 곤란해하는 것을 본 둘이 동시에 고함을 친 것이다.
“하, 하지만…… 전하…….”
귀족들이 각자 자신의 주인들을 머뭇거리며 바라봤다.
특히 귀족파 인물들은 필사적이었다.
그들은 엘리제 자작이 도리슨 백작을 살리는 선택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당연한 일 아닌가? 그녀는 황태자의 짝이었으니까!
미하일이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약간의 분노를 담고서.
“다시 말하지만 당장 물러나. 그녀를 곤란하게 하지 마. 아니, 번잡하니 아예 구호소 밖으로 나가 있어.”
황태자도 말했다.
“레이디 클로랜스한테서 물러나라. 당장. 그대들도 나가 있어라.”
귀족들이 머뭇거리며 명에 따라 구호소 밖으로 나갔다.
이제 구호소에 남은 인물은 황태자와 미하일과 아버지인 엘 후작뿐.
하지만 그들도 이렇게 말했다. 동시에.
“잠시 산책이나 하고 와야겠군.”
“나도 나갔다 올게, 리제.”
그들의 말에 엘리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들은 자신이 선택에 부담감을 느낄까 봐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다. 자신들은 신경 쓰지 말고, 소신에 따른 선택을 하라고!
‘린덴. 미하일.’
분명 저들도 간절히 원하고 있을 것이다. 단 한 명만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중요한 인물을 살려주기를.
하지만 그녀가 부담스러워할까 그런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때, 구호소를 나가며 린덴이 동생에게 물었다.
“넌 어딜 가려고?”
“나가서 담배나 피우게. 형님도 담배나 피울래?”
미하일이 형에게 답했다.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담배 끊었다. 너는 원래 안 피우지 않았나?”
“형님이 자꾸 나를 핍박하니 가슴이 답답해서 피우게 됐네. 그런데 어떻게 끊었데?”
“원래 거의 피우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리제가 하도 걱정을 하며 끊으라고 해서.”
형의 말에 동생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셨어요? 좋겠네.”
“너도 끊어라. 건강에 안 좋다고 한다.”
“그게 형님이 할 말이야? 내가 누구 때문에 담배를 시작했는데?!”
이 급박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둘의 대화를 들으니, 엘리제는 실소가 나오며 왠지 가슴이 차분해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엘리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넌 의사야. 정신 차려.’
눈을 감았다.
메르키트 백작. 도리슨 백작. 그들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저 의사로서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게 가장 환자들을 위한 선택일지.
‘생각해. 어떤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인지.’
둘을 동시에 수술할 수는 없다.
그러면 한 명만 살려야 할까? 한 명은 죽게 놔두어야 할까?
사실 답은 그게 맞았다.
정확히는 살릴 확률이 희박한, 심장이 다친 메르키트 백작은 포기하고 조금 더 확률이 높은 도리슨 백작을 수술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어쩌면 살릴 수도 있는 사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선택을 주저하게 했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 둘 모두를 살릴 방법은? 생각해, 엘리제. 시간이 없어. 지금 당장 생각해 내야 해.’
그리고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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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