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7 6-2 양방 수술 =========================================================================
2장 양방 수술 - 2
‘내가 살릴 수 있을까?’
메스로 가슴을 열려는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냥 지금 이 순간, 포기하고 도리슨 백작을 치료하러 가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괜한 욕심에 무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곳은 현대 지구가 아니라 심장 수술을 보조하는 도구들도 없었다.
‘현대 지구라면 심장을 멈추는 약을 쓴 후, 심장을 대체하는 기계인 에크모(ECMO)를 돌리며 천천히 진행했겠지만.’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현대 지구에서 그런 도구들의 도움을 받아 수술해도 사망률이 80%가 넘는다.
지금 이 순간은 어떨까?
내가 수술하면 이 환자가 살아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무리 높게 봐도 10%도 안 된다.
그래도.
살리고 싶었다. 둘 모두.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자신에게 온 환자니까. 적지만 살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물론 과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고 싶었다.
‘주여. 도와주소서.’
그녀는 짧게 기도하고 말했다.
“바로 오픈(Open)합니다. 피터 교수님, 준비해 주세요.”
“네, 레이디 클로랜스.”
황실십자병원에서 그녀 다음가는 실력자인 피터 교수가 어시스트로 들어와 굳은 얼굴로 답했다.
“메스.”
간호사에게 수술칼을 건네받은 그녀는 곧바로 절개를 시작했다.
가슴의 정중앙에서 왼쪽 갈비뼈 사이로 쭈욱 내리그었다.
메스가 지나가며 피부와 그 밑의 피하조직. 그리고 여러 겹으로 겹쳐진 근육들이 쩌억 입을 벌리며 갈라졌다.
울컥 피가 튀었지만, 작은 소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철제 도구로 갈비뼈 사이 벌려주세요.”
그녀가 낸 길을 따라 미리 준비해둔 철제 도구가 들어왔다. 피터 교수가 도구를 조작해 강력한 힘으로 갈비뼈 사이를 벌렸다.
그러자 드러나는 가슴의 풍경.
“……!”
끔찍했다.
심장, 정확히는 우심실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으로 심장이 뛸 때마다 울컥울컥 피가 솟구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총알이 심장 안으로 파고들었구나.’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총알이 심장벽을 뚫지 못했다면, 그냥 총알을 빼내고 심장벽만 수리하면 됐을 텐데, 안으로 박혀 버린 상태다.
‘총알이 박힌 위치를 보니 피의 흐름을 막고 있어서 가만히 놔둘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심장벽을 메스로 더 째서 총알을 꺼내야 해.’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막막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심장벽을 메스로 절개하겠습니다. 피터 교수님, 준비해 주세요.”
“네, 레이디 클로랜스.”
“이제 혈압이 계속 떨어질 것입니다. 잘 모니터해 주세요.”
피터 교수가 긴장한 얼굴을 했다.
엘리제는 숨을 크게 들이켜고 메스를 움직였다.
끝없이 박동하고 있는 심장, 우심실에 구멍이 뚫린 부위부터 위의 방향으로.
찌익.
절개 길이는 길지 않았다. 그저 기다란 철제 도구를 집어넣을 수 있고, 총알을 꺼낼 수 있을 정도의 크기.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양의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울컥. 울컥.
수술 필드가 순식간에 피로 뒤덮였고, 엘리제의 수술복도 피에 흠뻑 젖었다.
“혈압 떨어집니다! 수축기 혈압 70!”
혈압을 모니터하던 간호사가 외쳤다.
하지만 간호사의 외침이 아니어도 혈압이 떨어지는 게 눈으로 보였다. 갑작스러운 저혈량 충격에 심장의 맥동하는 힘이 약해진 것이다.
금방이라도 빛이 꺼질 것처럼 심장의 힘이 떨어졌다.
‘10분! 아니, 5분 안에 총알을 꺼내고 심장벽도 수리해야 해!’
5분도 길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언제, 어느 순간 심장마비가 와 사망할지 모른다.
“피터 교수님! 거즈로 피를 닦아 시야를 확보해 주세요!”
“네!”
그러고 엘리제는 기다란 철제 집게 도구를 집어 들었다.
철컥.
집게의 잠금을 풀고 절개한 구멍으로 조심히 밀어 넣었다.
‘제발……!’
총알이 심장 정확히 어디에 박혀 있는지는 모른다.
심장 안에는 피가 가득 차 있어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 엑스레이는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오로지 짐작만으로 위치를 캐치해 꺼내야 한다.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장은 움직이는 기관. 더구나 빈방을 뒤지듯 아무렇게나 헤집으면 심장 전류 시스템을 건드려 치명적 부정맥이 와 곧바로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심방으로 향한 삼첨판막 쪽!’
그녀는 조심히 집게를 움직였다.
하지만 없었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교수님, 혈압 더 떨어져요! 60입니다!”
“……!”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득하게 급한 상황이었지만 침착하려 애썼다.
‘아직 괜찮아. 할 수 있어, 엘리제.’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그녀의 얼굴에도 튀었다. 백금발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쓸 수도 없었다.
그녀는 다시 철제 집게를 움직였다.
그리고 판막 옆으로 이동한 순간.
딸각!
집게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총알을 발견한 것이다!
“……!”
엘리제의 표정에 일순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곧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그녀는 얼굴을 굳혔다.
‘이런. 코흐 삼각형 쪽이야!’
코흐 삼각형(Koch triangle).
심장을 움직이는 전류계의 중요한 지점인 방실 결절(AV node)이 있는 곳이다.
‘급하게 잘못 빼내다가는 그대로 심장 전류 이상인 부정맥이 올 수도 있어. 그러면 곧바로 사망이야.’
간호사가 다시 혈압을 알렸다.
“교수님, 혈압 50입니다!”
그 순간, 엘리제는 손을 움직였다.
아무리 철혈의 그녀라도 이런 상황에서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최대한 차분히,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총알의 제거를 시작했다.
제발 심장의 전류 시스템을 건들지 않도록 기원하며.
‘주여, 제발.’
찰칵.
철제 집게가 총알을 물었다. 다행히 구경이 큰 총알이 아니라 집게에 무리 없이 물렸다.
그리고 조심히, 최대한 심장을 건들지 않도록 노력하며 총알을 뒤로 빼내었다.
수술실 모두가, 린덴도 미하일도 숨을 삼키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피에 젖은 철제 집게가 모습을 드러냈다. 집게의 끝에는 얇은 총알이 물려 있었다.
“아아……! 신이여!”
모두가 탄성을 터뜨렸다.
저 등불을 든 여인이 다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부정맥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감탄하고 있을 때, 엘리제가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집중해 주세요!”
“네, 교수님!”
그렇다.
고작 총알을 꺼냈을 뿐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심장벽 수리를 해야 한다.
“수술실 주세요.”
엘리제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심장벽을 보수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실로 찢어진 부위를 다시 잇는 것이다.
하지만 그 테크닉의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심장은 움직이는 기관이다. 그냥 얌전히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좌우심방, 좌우심실이 유기적인 흐름에 따라 비틀며 박동한다.
더구나 피도 끝없이 쏟아지고 있다. 갈기갈기 찢어진 근육을 외심막, 심근, 내심막의 층을 맞춰 꿰매야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극악한 난이도의 봉합을 지극히 짧은 시간 안에 해내야 한다. 환자가 사망하기 전에.
제국,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오로지 그녀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할 수 있어. 아니, 해내야 해.’
그녀는 손을 움직였다.
피터 교수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계속해서 피를 닦아냈지만, 당연히 닦아내도 끝없이 피가 쏟아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엘리제는 마치 눈을 감고 봉합을 하듯, 오로지 감각,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손을 움직였다.
“…….”
수술장 안에 죽을 듯한 침묵이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혈압이 떨어졌지만, 간호사는 입을 다물었다. 이 순간 혈압을 알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그녀가 조처할 방법도 없었다.
어차피 엘리제도 손으로 심장의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심장마비가 코앞이었다. 그리고 심장마비가 일어나면 환자는 죽는다.
방법은 단 하나. 그녀가 성공적으로 봉합을 마쳐야 했다.
그리고 그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지나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끝난 후.
드디어 봉합이 끝났다!
“……!”
피터 교수는 눈을 부릅떴다. 그뿐 아니라, 다른 어시스트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수술 필드를, 정확히는 메르키트 백작의 심장을 바라봤다.
멈췄다.
심장의 벽이 깨끗하게 봉합되며 피가 멈춘 것이다!
모두가 엘리제를 바라봤다. 저 작은 소녀가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일을 일으켰다.
“하아.”
엘리제는 힘든지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레, 레이디 클로랜스…….”
피터 교수가 경악과 경탄으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들의 안도가 너무 빨랐던 것일까?
봉합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끔찍한 일이 일어나 버렸다.
“교, 교수님! 시, 심장이! 심장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
엘리제가 급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 정지해 있는 메르키트 백작의 심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
엘리제와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뇌리가 하얗게 비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결국 심장마비가 일어난 것이다!
“레이디 클로랜스…….”
피터 교수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수술장 모두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모두가 포기하고 넋을 놓은 그 순간! 엘리제가 움직였다.
수술대 위로 올라가더니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심장 마사지를 시작한 것이다!
“교, 교수님?”
“아직 안 끝났어요! 아예 심장이 사망한 게 아니라, 저혈량 충격에 의한 일시적인 심근 기절일 수도 있어요! 빨리 최대한 수액 공급을 더 해주세요!”
“……!”
그러며 그녀는 온몸으로 심장을 압박했다. 열려 있는 심장에 직접! 심폐소생술 중 개흉 심장 직접 압박(open chest cardiac massage)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심근 기절이야. 저혈량 쇼크만 회복시키면 살릴 수 있어!’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린 체구가 안쓰러울 정도로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피 묻은 얼굴에 안타까운 땀이 맺혔다.
“빨리 수액 주입해! 빨리! 수혈도 더 해!”
그렇게 그녀가 안간힘을 다해 메르키트 백작의 생명을 연장하는 사이 다른 의사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두근. 두근.
메르키트 백작의 심장이 다시 맥동하기 시작했다. 약하지만 확실히!
“움직인다!”
“살았어! 살렸다고!”
수술장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엘리제는.
‘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대로 환자를 잃는 줄 알았다.
‘힘들어.’
수술대에서 내려온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수술은 그녀로서도 정말 힘든 수술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극도로 긴장해서 그런지 괴로울 정도로 힘들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운을 내자, 엘리제.’
다시 맥동하는 심장을 보자 긴장이 한 번에 풀리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당장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곧바로 도리슨 백작에게 가서 두 번째 수술을 진행해야 했다.
“피터 교수님.”
“네, 레이디 클로랜스!”
기적 같은 일을 해낸 그녀에게 피터 교수가 존경을 담아 답했다. 오늘 목격한 수술은 그의 일평생 기억으로 간직하며, 이상향으로 삼을 것이다.
“뒤의 처치를 부탁해도 될까요? 두 번째 수술을 진행해야 해서요.”
“맡겨만 주십시오.”
“네, 감사해요. 아직 저혈량 쇼크가 회복된 것이 아니니, 추가적인 수액처치와 수혈로 혈압도 회복시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는데, 일순 현기증이 일었다.
‘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레이디 클로랜스!”
의사들이 깜짝 놀라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엘리제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긴장해 그랬던 것 같다.
‘정신 차려, 엘리제. 아직 수술은 끝나지 않았어.’
엘리제는 피에 젖은 장갑을 벗고 새로운 장갑을 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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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