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1 6-5 약혼식 =========================================================================
5장 약혼식 - 1
‘난…… 또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봐야 하는 걸까? 또다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옥죄어왔다.
그건 끔찍한 고통이었다.
그때, 린덴이 그녀를 자신의 품에서 놔주었다. 그리고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춘 후 이야기했다.
“어쨌든 오늘 정말 고맙다. 약혼식이 얼마 안 남았으니 몸 관리 잘하고 있도록. 또 아프지 말고. 매번 툭하면 아프니까 말이야.”
“네, 린덴.”
“대신들이 기다리고 있어 이만 나는 가보겠다. 나중에 내가 찾아가지.”
그는 아쉬운 듯 그녀의 뺨을 잠시 만지다가 사라졌다.
바람을 맞으며 멀어지는 그의 등을 보며 엘리제는 멍하니 생각했다.
‘나……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해야지?’
이제 비극이 머지않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막막한 일.
하지만 그 순간. 엘리제는 굳게 고개를 저었다.
“엘리제. 왜 계속 방법이 없다고만 하는 거야? 언제는 방법이 있는 문제에만 부닥쳤어? 본질을 생각해.”
그녀는 강하게 중얼거렸다.
“너…… 그가 또 아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잖아. 또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잖아.”
그래, 가장 중요한 것은 그거였다.
그녀는 그가 아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비극이 일어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잖아.”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방법이 없다고 하지 말고, 어떻게든 생각해 내. 그를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이 순간 그녀는 앞으로 다가올 비극에 대해 자신의 행보를 결정했다. 움직일 것이다.
물론 방법은 아직도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해낼 거야.’
그를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움직일 것이다.
물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그래도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와 모두를 위한 방향으로.
그렇게 장미 정원에서 엘리제는 결심했다.
그 결심이 어떤 일을 해낼지, 아직은 아무도, 그녀 본인도 모르고 있었다.
***
지나치게 신경을 쓰며 스트레스를 받은 탓일까?
그날 이후, 엘리제는 없던 병이 생겼다.
툭하면 재발하는 감기에 더해 만성 두통이 생긴 것이다.
‘아파. 편두통인가?’
엘리제는 감기약과 두통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생각했다.
상당히 많은 양의 약에 린덴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약을 먹어도 괜찮은 것인가?”
엘리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네, 특별히 몸에 안 좋은 약들은 아니에요.”
“하아. 도대체 그대는 왜 매일 아픈 것이지?”
속상한 목소리에 엘리제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앞에서 한두 번 아픈 것이 아니다 보니 미안했다. 왜 이렇게 난 몸이 약한 걸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데…….
엘리제는 통증을 참으며 짐짓 밝게 말했다.
“괜찮아요. 고작 감기랑 편두통인데요, 뭘. 신경 쓰지 마세요. 금방 나을 거예요.”
린덴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껴안았다.
부드럽게. 따뜻하게.
“제발…… 제발 아프지 마라. 내가 속상하단 말이다.”
“……네.”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이제 익숙해질 법하건만 그의 단단한 품에 안길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아, 약혼식은 어떻게 하지? 이렇게 몸이 안 좋은데. 미룰까?”
린덴의 말에 엘리제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약혼식을 어떻게 미뤄요?!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이미 준비 다 끝났다고요. 지방의 귀족분들도 올 채비를 다 끝냈을 거고.”
“하지만 그대가 아프지 않나.”
“저 정말 괜찮아요. 고작 두통이에요. 두통.”
린덴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다. 약혼식을 미룰 수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알까? 그녀가 아프면 자신은 열 배, 스무 배로 아프다는 것을.
왜 저 작은 몸은 늘 아픈 것일까. 차라리 자신이 대신 아팠으면 좋겠는데.
‘너무 무리해서 그런 거야.’
마음만 같아서는 병원 일이고 뭐고 다 금지하고 품 안에 가둬놓고만 싶은데. 그녀가 워낙 좋아하니 그럴 수도 없다.
그때, 엘리제가 그의 품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다 나을 테니.”
“……그래, 꼭. 약속이다.”
그렇게 대망의 약혼식이 하루하루 다가왔다.
린덴이 간절히 원하는 서로 진정한 하나가 되는 것, 부부가 되는 결혼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길고 길었던, 그리고 아픔과 행복이 있었던 그들의 사랑이 하나의 능선을 넘게 되는 것이니까.
약혼식이 끝나면, 그러면 이제 그녀는 공식적으로 그의 짝이 된다.
그 사실이 린덴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리고 그 약혼식을 반기는 것은 린덴만이 아니었다.
일반 시민들도 그들의 약혼식에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레이디 클로랜스와 황태자 전하께서 약혼식을 올리는구나.”
“진즉 올리지.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네.”
“결혼식도 곧바로 올려라!”
그들은 모두의 지지를 받는 연인이었다.
특히 엘리제, 등불을 든 여인은 제국 전체에서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는 명사였고, 황태자도 크림반도에서 그녀를 구출한 낭만적인 이야기로 크게 사랑받고 있었다.
시민들 모두가 고대하던 그들의 약혼식에 환호성을 질렀다.
폭풍 속 찻잔과도 같은 정계의 긴장과 다르게 론도의 거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레이디 클로랜스 만세!”
“등불을 든 여인 만세!”
“결혼도 바로 해라!”
“결혼식은 꼭 대경기장에서 해라!”
약혼식은 론도 대성당에서 올리기로 되어 있었다.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초대받은 황족과 귀족들 외에는 참석이 어려웠다.
시민들은 직접 등불을 든 여인의 예식을 보고 싶어, 결혼식은 꼭 대경기장에서 치르길 요청했다.
그런데 술에 취해 다소 다른 반응을 보이는 몇몇 시민도 있었다.
“크흑. 등불을 든 여인이 약혼하다니. 내 마음속 레이디였는데.”
“난 크림반도에서부터 그분을 사모했단 말이야! 레이디 클로랜스 같은 분은 만인을 위해 독신으로 남아야 하는데!”
“그래! 아무리 황태자 전하라도 등불을 든 여인이 아깝다!”
“꼭 행복하게 해줘라! 등불을 든 여인을 울리면 가만 안 둔다!”
그녀의 극성팬들이었다.
어쨌든 약혼을 기뻐하든 아쉬워하든 그녀를 위하는 마음은 같았다.
일반 시민들뿐 아니라, 귀족들도 약혼을 환영하는 것은 같았다. 정확히는 귀족 중, 황태자를 지지하는 황제파의 인물들이 크게 기뻐했다.
“드디어 두 분이 약혼식을 올리시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크림원정이다 뭐다 해서 많이 늦어진 것 같습니다. 약혼 공표가 난 지 벌써 2년이나 되었는데.”
“하여튼 정말 기쁜 일입니다. 하하.”
엘리제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다.
그런 그녀가 주군의 공식적인 짝이 된다니. 크게 기쁜 일이었다.
반면 황제파의 모두가 기뻐할 때, 속 쓰려 하는 인물들이 있었다.
현 황태자의 가장 강한 우군이자, 측근.
제국의 2인자인 명재상 엘 후작과 그의 작은아들 크리스였다.
“재상 각하. 레이디 클로랜스의 약혼을 정말 축하드립니다. 온 제국의 경사입니다!”
“하…… 하. 그, 그렇습니까?”
“그렇고말고요!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엘 후작은 별로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태를 씹은 표정.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위는 다 도둑 놈이라더니. 왜 이렇게 속이 쓰리지.’
분명 황태자인데. 곧 황제가 될 분인데. 자신의 새로운 군주인데.
그냥 싫었다. 평생 애지중지 키웠더니 애먼 놈…… 아니, 애먼 분이 납치해 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엘리제의 마음도 이전과는 다르지만.’
알고 있다.
딸의 마음에 그가 들어가 있음을.
그런데 웃긴 게 그 사실이 더 싫었다. 딸이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니! 왜 그게 속이 쓰린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엘과 크리스 부자는 어색한 얼굴로 축하의 인사를 받았다.
한편, 큰오라버니 렌은 복잡한 눈치였다. 존경하는 주군이자, 친우인 린덴과 막내 동생이 짝으로 이어진다니.
뭐,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고, 자신과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썩 기분이 좋지 않을까?
그게 동생 뺏기는 오빠의 심정이란 것을 모르는 렌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황제인 민체스터.
최근 주로 병석에 누워 있는 그는 정말 크게 기뻐했다.
“그래, 약혼식 준비는 잘하고 있는가?”
그녀를 만날 때마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그런 질문을 해댔다.
엘리제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네, 폐하.”
민체스터는 흡족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제 내 진료는 보러 오지 말도록 하게.”
“폐하?”
“약혼식을 올릴 영애가 이런 데 시간을 뺏겨서야 쓰겠는가? 약혼식 준비에 집중하게.”
“안 됩니다, 폐하.”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약혼식 준비도 중요했지만, 현재 그녀는 민체스터의 치료에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가 빠지면 굉장히 치료에 난항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민체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약혼식을 올리지 않은 지금이야 괜찮지만, 이제 곧 황태자비, 황후가 될 것인데 지금처럼 내 곁과 병원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의 직을 당장 그만두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금씩 황궁에 들어올 준비를 해야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의사 겸업을 허가받았다 하더라도, 황태자비가 되면 의사 일이 주 업무가 될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공식적으로 황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병원 일을 주로 하는 것이지만, 약혼식을 올리면 내명부의 일을 우선하도록 조금씩 업무를 조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어의직은 조만간 그만두어야 했다.
황태자비가 황족을 돌보는 어의를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폐하의 진료를 보는 것은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엘리제는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그 부탁에 황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자신을 염려하는 마음에 진료하려는 것임을 안 것이다.
시아비를 걱정하는 며느리의 마음을 그 어떤 시아비가 싫어하겠는가?
“그래, 하지만 너무 무리해서는 안 돼. 영애가 없어도 밴 그이와 다른 의사들도 잘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네, 감사합니다, 폐하.”
“아, 그리고.”
민체스터는 한 가지 이야기를 더했다.
“영애의 약혼식 때는 내가 꼭 참석하겠네.”
“……폐하.”
엘리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황태자의 약혼식이니 아버지이자 황제인 그가 참석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그의 건강 상태였다.
대성당에서 치르는 약혼식은 전통 예법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굉장히 장시간 치러지고,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단순히 앉아 있는 것이라 해도 이런저런 식을 다 진행하고 나면 족히 반나절은 지나게 될 터인데, 괜찮을까?
하지만 민체스터는 완강했다.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절대 양보 못하네. 약혼식뿐만 아니라 결혼식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참석할 거야. 그렇게 알고 있게.”
============================ 작품 후기 ============================
내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