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6 6-6 민체스터 =========================================================================
6장 민체스터 - 3
갑갑한 마음 때문일까? 최근 들어 계속 그녀를 괴롭히던 머리가 띠잉 하고 다시 아파와 엘리제는 한 손으로 잠시 머리를 짚었다.
그녀를 보조하고 있는 그레이엄이 걱정스레 말했다.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습니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는 게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벌써 이틀째 한숨도 안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식사도 거의 안 하시고…….”
그렇다. 약혼식 후 벌써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엘리제는 단 한 순간도 민체스터의 곁을 떠나지 않고, 치료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약한 체력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는 상황.
그러나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자신의 몸이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민체스터를 회복시켜야 했다.
우선적으로 억울하게 시해범의 누명을 쓰고 있는 황태자를 위해서 그랬다. 황태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는 황제가 쓰러진 이유를 정확히 진단해 내고 살려내야 했다.
그리고 황제를 살리고 싶은 이유는 그뿐이 아니었다.
‘폐하.’
그녀는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 있는 황제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의견이 엇갈릴 때도 있었고, 황태자비 문제로 대립할 때는 그가 미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자신을 한결같이 아꼈다는 것이다.
‘영애 얼굴을 보니 오늘도 힘이 나는군. 맑은 차나 한잔 달여 주지 않겠나?’
민체스터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울컥했다.
그를 이렇게 잃고 싶지 않았다.
물론 원래부터 병환이 있었으니, 언젠가는 헤어짐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는 아니었다. 암 환자의 가족들이 어떻게든 환자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녀도 그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향해 보내는 따뜻한 시선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뭘까? 엘리제, 생각해 내. 이런 쇼크를 일으키는 질환은 많지 않아. 네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질환일 거야. 생각해 내, 제발.’
엘리제는 그의 심장마비가 평소 앓던 병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그의 병은 천천히 진행하는 만성 질환이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악화하는 병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독극물도 아니야.’
그것도 생각해 보았다.
혹시 귀족파에서 린덴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설마 미하일이 이런 독한 수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리라 믿었지만, 의사로서 모든 가능성을 확인해 봐야 하니까.
하지만 체내 반응이 독극물에 의한 급성 반응과는 조금 달랐다.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독극물 가능성은 낮아. 오히려 당시 폐하의 증상은 폐나 심장 쪽에 급성 문제가 온 것에 가까워.’
당시 눈앞에서 목격한 것을 떠올렸다.
민체스터는 가슴을 부여잡더니 울컥 객혈을 토했다.
가슴 통증은 심장의 문제를 의미하고, 객혈은 폐의 문제를 의미한다. 분명 급성으로 심장이나 폐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심장 검사와 폐 엑스레이 검사를 했지만…….’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둘 다 아무런 이상이 나오지 않아.’
문제는 그것이었다.
검사상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
저렇게 쇼크가 심한데!
‘이건 단순히 기술력의 한계가 아니야. 뭔가 놓치고 있는 거야. 뭐지? 뭘 놓치고 있는 거야, 엘리제. 생각해 내.’
심장마비를 일으킬 정도의 쇼크를 일으키는 질환은 많지가 않다.
특히나 객혈과 흉통을 동반한 질환은.
그리고 그런 질환들은 대부분 지금의 기술력으로도 단서를 추정할 수가 있다.
심장에 문제가 있으면 심장 전류 검사에서 파형의 변화가 나오고, 폐에 문제가 있으면 엑스레이에서 병변이 나오니까.
하지만 가슴 통증과 피를 토했으면서 각 장기를 보는 검사는 정상이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하아.”
엘리제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에게 그레이엄이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쉬고 오십시오.”
“괜찮아요.”
“안 괜찮습니다. 그거 압니까?”
“네?”
“지금 평소와 전혀 다르단 것을.”
엘리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레이엄이 짐짓 엄한 말투로 말했다.
“당신은 환자를 볼 때 항상 이성적이었습니다. 불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판단과 처치는 지극히 냉철하게 하였지요.”
그건 그레이엄이 그녀를 더욱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불같은 마음과 냉철한 이성.
의사로서 가장 이상적이라 여겨지는 마음이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냉철함을 잃고 있습니다. 물론 폐하를 어떻게든 살리려는 마음 때문인 것은 압니다. 하지만 의사가 그렇게 초조한 마음을 가지면 적절한 판단을 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무엇보다 본인 몸을 챙겨야 환자도 돌볼 수 있는 법입니다. 이틀이 넘게 한잠도 안 자고, 식사도 거의 안 한 상태에서 어떻게 폐하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겠습니까?”
“…….”
틀린 말이 아니었다.
확실히 그녀는 초조한 마음에 너무 무리하고 있었다.
‘하아. 하지만 어떻게 초조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엘리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민체스터다.
“아직 쇼크에서 다 회복되신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지금 폐하께서는 큰 변동 없이 활력 징후가 유지 중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잠시 쉬고 오십시오.”
“하지만…….”
“그러다 당신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더 큰 문제입니다. 이곳엔 저도 있고, 밴 자작님도 있으며, 피터 교수님도 계십니다. 다른 의사도 많습니다.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진료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변화가 있으면 당장 부를 테니 조금이라도 쉬고 오십시오.”
그래도 그녀는 좀처럼 민체스터 곁을 벗어나지 못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활력 징후를 적어놓은 종이만 바라봤다.
결국, 그레이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결코 권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잠시라도 쉬려면.
“그러면 황태자 전하께라도 잠시 다녀오십시오.”
“……!”
“얼굴이라도 뵙고 오십시오. 아마…… 그분께서도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엘리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린덴. 그녀도 그가 보고 싶었다.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엘리제가 흔들리는 것을 안 그레이엄은 씁쓸히 미소 지었다.
“갔다 오십시오. 오는 길에 잠시 눈도 붙이고요. 병원 안에서 주무시면 무슨 일이 있을 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잠시만 백원의 궁에 다녀올게요.”
결국, 그녀는 주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녀가 린덴에게 향했을 때는 이미 자정에 가까운 늦은 밤이었다.
고요한 황궁을 걸어 백원의 궁에 도착했다.
“전하를 뵈러 왔어요.”
“아…… 레이디 클로랜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로열 가드는 그녀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던 약혼식이었나? 그런데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다니.
시아비가 될 황제는 혼수상태고 약혼자인 황태자는 혐의를 받고 감금 중이다.
모두가 그녀의 행복을 바랐건만 최악의 약혼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쪽입니다.”
로열 가드는 백원의 궁 깊은 곳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들어가겠습니다, 전하. 레이디 클로랜스께서 오셨습니다.”
끼익.
낡은 문이 열리고. 린덴, 그의 얼굴이 나타났다.
“……!”
엘리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핼쑥했다.
지난 이틀간 식사는 제대로 한 것일까? 초췌한 얼굴에 무뚝뚝한 금색 눈동자는 평소와 다르게 아픔이 깃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급환을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다.
“……린덴.”
그녀는 천천히 린덴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울컥거렸다.
“……엘리제.”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순간.
왈칵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푸른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라 뚜욱 떨어졌다.
“으흑. 리, 린덴…….”
린덴이 그런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울지 마라. 리제…….”
“으흑. 흑……! 죄, 죄송해요. 흐윽…….”
그의 품에 안겨 엘리제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은 그이건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냥 다 속상했다.
황제 폐하가 그렇게 된 것도. 린덴이 슬퍼하는 것도. 너무너무 속상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린덴은 그녀를 쓰다듬어주었다. 본인이 더 아플 텐데. 말없이. 묵묵히.
한참을 울고 난 그녀가 간신히 진정하자 그가 물었다.
“며칠 사이 왜 이렇게 말랐느냐? 밥은 잘 먹고 다닌 건가?”
“……네. 잘 먹었어요.”
“거짓말. 누가 거짓말하라고 가르쳤지? 부탁이니 제발 그대의 건강도 챙겨. 머리 아픈 것은 어떻지?”
엘리제는 그가 걱정할까 거짓말했다.
“머리는 다 나았어요. 이제는 약도 안 먹어요.”
거짓말이다.
잠을 못 자서일까, 아니면 민체스터가 그렇게 되어서일까? 두통은 오히려 더 악화했다.
“거짓말 아니지?”
“네, 정말이에요.”
린덴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틀 사이에 더욱 마른 얼굴을 조심히 어루만졌다.
“제발 부탁이다. 몸을 챙겨. 그대마저…… 안 좋아지면 난 못 버틸 거다.”
“…….”
그 말에 엘리제의 마음이 다시 울컥 치밀어 올랐다.
눈물을 참으려고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백원의 궁에서 지내는데, 불편하지는 않으신가요?”
“괜찮다. 귀족파 놈들이 거슬리게는 하지만 그거야, 뭐.”
귀족파는 그를 어떻게든 시해범으로 몰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작은 실제로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혐의를 벗지 못하면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따로 대비책이 있는 것일까? 린덴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저 황태자라면 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무언가 대비책을 마련해 놨을 것 같다.
‘내가 급성 심장마비의 원인을 밝혀내면 자연히 혐의가 벗겨질 텐데.’
엘리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황제가 쓰러진 원인을 밝혀내면 그의 혐의를 벗길 수 있다. 그뿐인가? 원인을 알면 황제를 치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으니 가슴이 미칠 듯이 답답했다.
‘하아.’
이후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린덴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의…… 상태는 어떠신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궁금했을 텐데 이제야 꺼내는 질문.
아마 두려웠으리라. 안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엘리제는 흔들리는 마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은 좋지 않으세요.”
의사로서 객관적인 답변.
“……그런가.”
그는 낮게 탄식했다.
그 모습이 자신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해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아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황제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좋아지실 거예요.”
“……?”
“제가…… 제가 그렇게 할게요. 최선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꼭…… 꼭…….”
왜일까? 말을 하는 중에 자꾸 울먹거리게 되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자꾸 눈물이 고이는 눈가를 손등으로 닦았다.
린덴은 잔잔히 그녀를 안아주었다.
“괜찮다, 리제. 알고 있어. 네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흐윽. 흑…… 죄, 죄송해요. 저, 정말 죄송…… 흐윽.”
“괜찮아. 정말로. 정말 괜찮아. 그대가 뭘 잘못했다고 울어.”
그녀는 계속 떨어지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떨리는 입술을 물었다. 얼마나 강하게 물었는지,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엘리제.”
“저…… 정말로…… 폐하를 좋아지게 할게요. 정말로요. 정말…….”
린덴은 잠시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알고 있다. 그녀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녀 이상 가는 의사는 이 세상에 없음을.
하지만 그런 그녀라도 한계는 있을 것이다. 그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의학의 한계였다.
괜찮다고.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려다 그는 그저 짧게만 말했다.
“……고맙다. 내 엘리제.”
***
짧은 만남을 가진 후, 엘리제는 백원의 궁에서 나왔다.
보고 싶던 그를 만났지만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하아.”
끝없는 한숨.
말없이 아파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그녀는 아무도 없는 황궁 정원 벤치에 앉아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제발. 생각해 내, 엘리제.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검사상 이상 소견이 없는 폐와 심장의 문제.
그것도 심장마비와 쇼크를 일으킬 정도의.
뭘까? 도대체 뭘까?
‘하아, 주여. 제발 알려주시옵소서.’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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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