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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57화 (157/194)

00157  6-6 민체스터  =========================================================================

6장 민체스터 - 4

“교수님! 교수님!”

저 멀리서 그녀를 부르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황실십자병원의 젊은 의사였다.

엘리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과연.

“큰일 났습니다! 폐하께서!”

“……?!”

“다시 쇼크가 악화하였습니다!”

“……!”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엘리제는 가운을 펄럭이며 다급히 물었다.

“활력 징후는 어떤가요?!”

“수축기 혈압 60에 맥박 160회입니다. 호흡수도 35회로 빠릅니다!”

간신히 유지되던 활력 징후가 다시 심각한 쇼크에 빠진 것이다.

그녀는 다급히 민체스터를 살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얬다. 숨이 찬지 호흡도 가빴다.

‘폐에 문제가?’

청진기로 폐음을 들었으나 여전히 정상이었다.

“검사에 이상은 없나요?”

“여전히 다 정상입니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검사는 정상인데 이런 쇼크에 호흡곤란이라니!

“혈압유지 위해 수액 더 주세요! 약도 투입하고요!”

“네, 교수님!”

응급 처치를 하며 그녀는 초조히 생각했다.

‘생각해 내. 이제 더는 시간이 없어. 지금 바로 생각해 내지 못하면 폐하는 돌아가실 거야. 안 돼. 절대 그렇게는 되지 않게 하겠어.’

그녀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했다.

마치 백과사전을 펼쳐놓고 쭈욱 훑듯 비슷한 증상을 가진 질환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당시 상황도 되짚어 보았다.

‘술을 마시자마자 가슴을 움켜쥐며 피를 토했어. 술에 영향을 받는 질환이었을까?’

하지만 술에 영향을 받아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병은 그녀가 알기로 없다. 술이 심장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러면 검사에 이상 소견이 나왔을 것이다.

‘당시에 다른 특이 사항은 뭐가 있었지? 술 말고…… 주여. 제발. 알려주시옵소서.’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지금껏 스쳐 지나쳤던 사실이 한 가지 떠올랐다.

‘예식을 하며…… 4시간 동안 앉아계셨지.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 생각이 떠오른 엘리제는 멈칫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황제의 문제 목록이 쭈욱 떠올랐다.

‘원래 앓고 있던 만성 질환. 4시간 동안 무리하게 앉아 있었던 상태. 그리고 객혈, 흉통, 쇼크, 호흡곤란. 여러 검사상 이상 소견 없음.’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문제 목록(problem list)를 기반으로, 기적적으로 한 가지 추정 진단이 떠올랐다.

확실하진 않지만…….

“설마…… 폐 색전증?”

폐 색전증(Pulmonary embolism)!

폐로 가는 혈관을 피딱지가 틀어막는 초응급 질환이다. 만성병을 앓는 환자에서 주로 생기는 그 질환이면 현재 황제와 같은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그것도 엑스레이나 심장 전류 검사상 아무런 이상 소견 없이.

하지만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확실하진 않아. 그냥 가능성이 있을 뿐이야.’

폐동맥은 오른쪽 심장에서 곧바로 나온다.

그곳에 피딱지가 들어차면 심장에서 나가는 피의 흐름이 막히므로 심장이 기능을 못 한다.

그 결과 오는 것은 심각한 쇼크. 심장마비를 동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바로 민체스터의 경우처럼.

문제는 폐나 심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 혈관이 막히는 질환이기 때문에 엑스레이나 심장 전류 검사에서는 이상 소견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진단해 내기가 굉장히 어렵다.

현대 지구에서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갑자기 이유를 못 찾고 돌연사하는 경우, 많은 원인이 이 폐 색전증이었다.

‘정말 폐 색전증일까?’

여러 임상 양상을 봤을 때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의심은 가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폐 색전증은 이 시대의 기술력으로는 진단할 수가 없는 병이야.’

이 질환을 진단하려면 CT가 필요하다. 아니면 다른 핵의학 검사나 하다못해 초음파라도.

모두 이 시대에는 불가능한 검사다. 이 시대의 기술력으로는 폐 색전증을 확실히 진단해 낼 수가 없다.

‘어떻게 하지? 확실하지 않으면? 치료를 할 수는 없는데.’

엘리제는 고민했다.

그녀가 주저하는 이유.

험악한 치료 방법 때문이었다.

‘폐 색전증을 치료하려면 가슴을 열어야 해. 그리고 폐동맥과 심장을 메스로 열어 피딱지를 꺼내야 하는데…….’

개흉 수술!

폐 색전증을 치료하려면 바로 그 개흉 수술을 해야 했다.

굉장히 위험한 방법이다.

특히나 저렇게 몸 상태가 안 좋은 환자에게는.

‘만약 가슴을 열었는데 폐 색전증이 아니면? 그때는 돌이킬 수가 없어.’

폐 색전증이 정말 맞는다면 상관이 없다.

그러면 가슴을 여는 수술만이 민체스터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니라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쇼크 상태인데 그대로 사망할 것이다.

‘어떻게 하지?’

엘리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너무나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황제를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오히려 그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의사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수액에 반응이 없습니다! 혈압 더 떨어집니다, 교수님!”

“……!”

옆에서 밴 자작이 나지막이 탄식했다.

“폐하. 주여…….”

다른 의사들도 눈을 감았다.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니 더는 방법이 없었다. 아마 황제는 이대로 악화하다 사망할 것이다.

밴 자작이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엘리제에게 조심히 말했다.

“레이디 클로랜스, 이제…… 황태자 전하를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3황자 전하도요.”

“…….”

가족이 임종을 지켜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엘리제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굳은 얼굴로 황제의 얼굴을 바라볼 뿐.

밴은 그 작은 소녀에게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디 클로랜스,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폐하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마 폐하께서도…… 천국에서 당신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 말이 그녀의 가슴을 울컥하게 했다.

엘리제가 물었다.

“더는 방법이 없겠죠?”

“네, 이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다 했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폐하는 승하하시겠죠?”

밴은 씁쓸히 웃었다.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그녀가 이런 물음을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도저히 폐하를 놓아줄 수가 없어서 리라.

“네, 더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는 놔드려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

그 말을 들은 엘리제는 마음을 결정했다.

이대로 놔두면 민체스터는 죽는다.

수술을 해도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

“황태자 전하를 불러주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언질하겠습니다.”

하지만 엘리제는 포기하고 임종을 준비하려 황태자를 부르려는 것이 아니었다.

“수술 준비도 해주세요.”

“네?”

밴이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갑자기 무슨?

엘리제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수술 준비를 하면서 최대한 빨리 전하가 이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어쩌면…… 위험하지만 폐하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 방법에 대해 전하와 상의하겠어요.”

“……?!”

위험하지만.

만약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면, 큰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그것을 감수하고 민체스터를 살리는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위험하다 할지라도 이 길을 택하지 않으면 그를 살릴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수술은, 특히 이런 생명이 걸린 위험한 수술은 그녀 마음대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 특히 장자인 황태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전하께 말씀을 드려야 해.’

곧 린덴이 로열 가드와 함께 십자병원에 도착했다.

“엘리제, 어떻게 된 일이지?”

그가 굳은 눈으로 물었다.

“설마 아바마마께서?”

최악의 상황을 짐작한 것인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에요.”

“……그 말은?”

“네, 많이 안 좋으십니다.”

린덴의 눈이 괴로움으로 물들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가.”

짧지만 깊은 슬픔이 담긴 음성.

그때 엘리제가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시도해 볼 방법이 있긴 있어요. 어쩌면 폐하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린덴의 눈이 커졌다.

“그게 뭐지?!”

엘리제는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그녀의 말을 듣는 린덴의 표정이 시시각각 굳어졌다. 상황을 이해한 것이다.

“……위험하군.”

“네, 위험합니다.”

엘리제는 솔직히 말했다. 선택이 맞는다면 황제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틀린다면?

그녀의 심정은 수술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수술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지만, 위험을 감수하면 어쩌면 황제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이런 사안은 의사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의 생각도 중요했다.

‘더구나 그냥 환자가 아니니까.’

그녀는 의사로서 가급적 정치적 사항은 생각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이번 경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민체스터는 황제다.

린덴은 황태자고. 특히 공교로운 상황 덕에 혐의를 벗지 못하고 유폐 중이었다.

만약 수술해서 그녀의 생각이 맞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틀렸다면? 그래서 민체스터가 수술 중에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그러면 정치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귀족파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때 린덴이 대답했다. 고민 없이 곧바로.

“진행해라.”

“……!”

그 주저나 고민 없는 답에 엘리제는 살짝 놀랐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쩌면 정치적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그의 동의로 그녀가 수술했는데, 황제가 죽으면 그는 그대로 몰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린덴은 말했다.

“아버지를 살리는 일이다. 가능성이 있다면 그게 무슨 방법이라도 당연히 시도해 봐야겠지. 정치적인 사안은 그다음 문제야.”

“……!”

“그리고 무엇보다…… 난 그대를 믿는다.”

믿는다.

그 말에 그녀는 그를 바라봤다.

그의 금안에는 깊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엘리제는 갑자기 울렁이려는 가슴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그렇게 자정이 넘은,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 응급 수술이 시작되었다.

집도의는 엘리제, 어시스트는 황실십자병원 최고의 의사인 밴과 피터 교수가 들어왔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의사가 유사 상황에 대비해 수술장 근처에서 대기했다.

“바로…… 진행하시겠습니까?”

밴과 피터가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들도 설명은 다 들었다.

분명 지금으로선 이 방법 외에는 없긴 했었다.

하지만 무려 황제의 옥체다.

확실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 옥체에 칼을 대야 한다니.

더구나 그냥 수술도 아닌, 개흉 수술이다. 극악한 위험도로 꼽히는.

물론 방법이 없으니 다른 일반 환자였으면 주저 없이 위험을 감수했을 것이나,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하지만 엘리제는 굳건히 답했다.

이미 고민은 끝났다.

남은 것은 그저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뿐!

‘도와주시옵소서.’

짧게 기도 후 말했다.

“메스 주세요. 시작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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