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8 6-6 민체스터 =========================================================================
6장 민체스터 - 5
엘리제는 이 순간 눈앞에 환자가 민체스터인 것을 머리에서 지웠다.
이런저런 잡념은 수술을 방해할 뿐이다. 그저 환자로만 보고 수술을 진행했다.
찌익.
가슴 정중앙을 메스가 가르며 피가 흘렀다.
하지만 다른 부위와 다르게 바로 내부까지 가르진 못했다. 가슴 정중앙에는 복장뼈이 있기 때문이다.
‘오른 심장과 폐동맥에 접근하기 위해선 저 복장뼈를 양옆으로 절단해야 해.’
“뼈 절단할 철제 칼 주세요.”
밴과 피터 교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가 지금 하려는 것은 정중흉골절개술(Median sternotomy)!
특별히 제작된 커다란 철제 칼로 가슴 중앙의 뼈를 위아래, 일자로 절단하는 것이다.
뼈를 절단하다니. 이야기만 들어도 끔찍한 술기.
더구나 과도한 힘이 들어가거나 자칫 실수라도 하면 주변 갈비뼈가 손상되거나 바로 밑의 심장이나 대동맥 등이 상할 수도 있다.
“뼈 절단합니다.”
하지만 저 여린 체구의 소녀는 커다란 철제 칼을 들고 주저 없이 뼈를 절단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칼과 뼈가 마찰하는 소리가 드득 수술장을 울렸다.
온갖 산전수단을 다 겪은 의사도 흠칫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엘리제는 굳은 얼굴로 쇄골 부위부터 명치까지 일자로 뼈를 절단했다. 멈추지 않고 단 한 번에.
그리고…….
“……!”
밴과 피터의 눈이 흔들렸다.
기다란 복장뼈가 좌우로 깨끗하게 절단되며 그 안의 심장과 대동맥, 폐가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한 흉골 절개술!’
그들은 급박한 상황 중에도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저 작은 소녀 외에는 이 흉골 절개술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의사는 없었다. 황실십자병원의 의사들이 그녀에게 배우고 있긴 하지만 아직 까마득했다.
“…….”
엘리제는 민체스터의 가슴 안 장기들을 살폈다.
심장, 폐동맥.
‘제발, 주여.’
정말 그녀의 짐작대로 저 폐동맥 안에 피 떡이 차 있으면 그걸 빼내 주면 민체스터는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라면? 그때는 방법이 없었다.
‘제발…….’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술칼을 가져갔다.
현대 지구처럼 초음파나 CT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피 떡을 확인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폐동맥을 메스로 째서 직접 확인해 봐야 했다.
물론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폐동맥은 대동맥과 더불어 인체에서 가장 큰 혈관. 메스로 째는 순간 어마어마한 출혈이 일어날 것이다.
‘제발…… 제발…….’
찌익.
메스가 폐동맥의 중심 부분을 쨌다.
울컥!
분수 같은 피가 솟아올랐다. 붉은 피가 그대로 그녀의 뺨에 피어올랐다.
그리고.
“……!”
그녀는 아찔함을 느꼈다.
없었다. 아무것도. 그저 걷잡을 수 없는 피만 솟구치고 있을 뿐이었다.
엘리제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폐색전증이 아니었나? 그러면 민체스터는?
‘아니야. 아직 먼 부위의 혈관들이 남아 있어. 그곳까지 확인을 해봐야 해.’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울컥울컥 쏟아지는 피 사이로 먼 부위의 폐동맥 혈관 벽에 희끗희끗하게 검은 물체가 보였다.
“……!”
그녀는 벼락을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피 떡(blood clot)이었다! 희미하지만 분명했다. 피 떡이 폐동맥 우측을 막고 있었다. 그녀의 짐작이 맞았던 것이다!
엘리제는 곧바로 처치에 들어갔다.
“철제 집게 주세요! 얇고 긴 것으로요!”
혈관의 절개한 부위로 얇은 집게를 넣었다. 그리고 조심히. 조심히. 혈관 벽을 손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길게 밀어 넣었다.
이윽고 탁하고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고, 그녀는 그걸 집게로 물었다.
철컥!
그리고 집게를 뽑자 기다랗게 딸려 나오는 피딱지!
그걸 보고 의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오! 맙소사!”
“신이여!”
정말로 등불을 든 여인의 추측이 맞았던 것이다!
“저런 게 폐동맥을 막고 있었으니 쇼크가 회복이 안 되었던 거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폐동맥은 우측 심장 바로 앞에 있는 혈관인데, 저런 게 피의 흐름을 막고 있었으니.”
의사들이 흥분해 떠들었다.
저런 피 떡이 심장의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으니, 몸에 혈액 공급이 안 돼 쇼크가 왔던 것이다.
엘리제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되었다.
이걸로 막힌 피의 흐름을 뚫어주었으니, 심장도 제 기능을 할 것이고, 쇼크도 회복될 것이다.
‘살릴 수 있어!’
과연 혈압을 체크한 간호사가 외쳤다.
“혈압 조금씩 올라갑니다, 교수님!”
밴과 피터 교수가 감탄을 넘어 존경이 담긴 얼굴로 엘리제를 바라봤다.
어떻게 또 이런 기적을 일으킨 것인지.
“이제 끝난 것입니까, 레이디 클로랜스?”
“아니요. 이런 피딱지는 여러 군데에 한꺼번에 생기는 경우가 많아 다른 부위의 폐동맥도 확인해 봐야 해요.”
지금 빼낸 곳은 우측의 폐동맥이었다.
그녀는 반대 측의 폐동맥도 꼼꼼히 살펴 피딱지가 있는지 확인했다. 역시 추가적인 피딱지가 관찰되었다.
모든 부위를 꼼꼼히 살핀 후, 얇은 실로 동맥을 꿰매기 시작했다.
얇은 혈관을 봉합하는 엘리제의 손기술에 밴 자작과 피터 교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녀의 손기술은 가히 하늘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다른 이들은 감히 흉내 내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일단 급한 처치를 끝낸 그녀는 잠시 숨을 돌렸다. 이제 막힌 길을 뚫어주었으니 민체스터의 쇼크는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직 한 단계가 더 남았어. 가장 위험한.’
엘리제는 메스를 움직였다.
메스가 닿은 부위를 본 밴과 피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레이디 클로랜스? 거기에는 왜?”
그녀가 메스를 가져간 부위는 우측 심장이었다.
“일단 동맥에 피딱지를 모두 제거했지만, 피딱지가 우측 심장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걸 꺼내줘야 해요. 안 그러면 우측 심장의 피딱지가 다시 폐동맥으로 날아가 똑같은 상황이 또 반복될 거예요.”
“아…….”
물론 그녀도 심장을 여는 수술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워낙 위험했으니까.
그래도 완벽히 수술을 마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
“절개합니다.”
찌익.
벌컥! 심장벽이 열리는 순간, 피가 솟구쳐 올랐다.
‘시간 싸움이야! 최대한 빨리!’
역시 추가적인 피딱지가 관찰되었다.
그걸 철제 집게로 꺼낸 후, 엘리제는 곧바로 손을 움직였다. 절개한 심장을 다시 봉합하기 위해.
1초, 2초.
회중시계의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민체스터의 몸에서 혈액이 빠져나갔고, 그녀의 몸도 피로 물들었다.
“교수님, 다시 혈압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했다.
모든 생각을 잊었다. 모든 감각을 닫았다.
오직 박동하는 우측 심장의 움직임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작은 손에 달린 바늘이 심장벽을 뚫었다. 깊게 들어간 바늘은 반대 측 벽을 뚫고 다시 올라왔고, 질끈. 실이 묶이며 벽이 닫혔다.
그렇게 그녀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절개된 벽이 오므라들었고, 시간이 지나자.
탁.
심장의 벽이 완전히 닫히며 피가 멎었다.
“…….”
순간 수술장에 침묵이 흘렀다.
모두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낸 소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감히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작은 소녀는 들고 있던 바늘을 살짝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말했다.
“수술 끝났습니다. 클로즈하겠습니다.”
“…….”
수술의 성공을 선언하는 문장.
잠시의 정적 후.
“와아아!”
“레이디 클로랜스 만세!”
“등불을 든 여인 만세!”
수술장이 터질 듯한 함성으로 뒤덮였다.
저 작은 소녀가 기어코 황제를 살려낸 것이다!
‘……린덴.’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마침 린덴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리제.”
“전하.”
그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와락. 피에 젖은 그녀를 껴안았다.
“저, 전하? 피가…….”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더욱 그녀를 강하게 안았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정말로…….”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다시 가슴이 울컥했다.
다행이었다. 정말로.
민체스터가 이렇게 급하게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 린덴이 더 아파하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있어서.
그리고 이런 피딱지를 발견했으니 그의 혐의도 완전히 풀리게 되었다.
‘사랑해요, 린덴. 정말로…….’
속으로 중얼거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수술을 마무리해야 해요, 전하.”
“그래.”
복장뼈를 절단해 놨으니 서둘러 다시 붙어야 했다.
엘리제는 절단한 복장뼈를 철심으로 다시 이을 준비를 하였다. 못에 가까운 커다란 쇠바늘을 이용해 철심을 박는 뼈 봉합은 굉장한 힘 소모를 요구한다.
솔직히 엘리제는 체구가 여려, 이 뼈 봉합을 할 때마다 매우 괴로웠지만, 그녀 말고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황태자비가 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교수님에게 이 기술을 전파해야 할 텐데.’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뼈 봉합을 하려는데, 뭔가 가슴 안쪽 깊은 곳에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어, 저게 뭐지?’
심장 뒤쪽 깊은 곳.
이렇게 가슴을 열지 않았으면 절대로 관찰하지 못하는 부위. 아니, 가슴을 열었어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깊은 부위.
그곳에 종괴가 있었다.
‘……설마?’
황제의 병은 미지의 만성 질환.
그녀는 그 질환을 모종의 혈액 질환이나 자가 면역 질환, 아니면 밝혀지지 않은 종괴로 추정했었다.
‘혹시…… 저게 폐하의 질병의 원인인?’
엘리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메스와 철제 집게를 이용해 조심히 종괴를 떼어냈다.
“……!”
“레이디 클로랜스? 그 종괴는?”
밖으로 나온 종괴를 관찰한 의사들과 엘리제의 눈이 흔들렸다.
‘이건…… 임파선 종괴랑 비슷한 형태잖아!’
임파선 종괴, 임파종.
경험적으로 봤을 때 임파종과 거의 흡사한 형태의 종괴였다.
‘임파종이면 폐하의 증상이 다 설명돼! 설명 불가능한 체중 감소, 기력 감소가 모두 임파종의 증상이니까.’
심지어 이번에 발생한 폐색전증도 임파종에서 흔하게 오는 합병증이었다.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어. 임파종이면…… 프레밍이 남긴 약물을 이용해 어쩌면 치료를 시도해 볼 수도 있어.’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대연금술사, 아니, 대약학자로 불러야 할 프레밍은 생전에 무수히 많은 약을 개발했다.
프레밍의 정체가 의심될 정도로 시대를 뛰어넘는 약도 많았는데, 대표적인 약들이 항생제, 강심제, 마취제, 승압제 등등이었다.
그런 종류 중에는 도저히 용도를 알 수가 없어서 버려져 있는 것들이 꽤 있었는데, 단 한 명, 엘리제만큼은 사용법을 알 수 있었다. 지구에서 사용했던 약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약 중에 혈액병이나 임파종에 사용하는 면역 억제제가 있어. 그 약들을 잘 조합하면 어쩌면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직은 모른다.
저 종괴의 성질을 정확히 분석하고 연구해 봐야 한다.
하지만 어쩌면…… 민체스터를 회복시킬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물론 심장마비까지 겪었으니, 이전처럼 완전히 건강하게 되지는 못하시겠지만.’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의식을 회복하는데 만도 어느 정도의 세월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니 권력 승계는 변함없이 일어날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정국의 혼란에도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나중에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어느 정도 건강을 찾으면 자신과 린덴을 보며 미소 지어줄 수 있을 것이다.
장미 정원에서 자신이 달여 주는 차를 마시며 즐거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 아닐까? 아니, 그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폐하.’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주말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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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