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9 6-6 민체스터 =========================================================================
6장 민체스터 - 6
수술 성공 후 민체스터의 상태는 순조롭게 안정을 찾아갔다.
일단 쇼크가 회복되었고, 기타 활력 징후도 정상으로 돌아갔다.
“대단하군요. 이렇게 거짓말처럼 좋아지시다니.”
황실십자병원의 의사들이 감탄을 토했다.
등불을 든 여인은 아무리 봐도 놀람이 끝이지 않는다.
“심장마비를 일으킨 폐색전증 같은 유의 질환은 수술로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절대 좋아지지 않아요. 대신 수술해서 악화한 원인을 제거하면 금방 좋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군요. 항상 많이 배웁니다.”
그 설명에 교수들은 존경의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황실십자병원에서 일하게 된 지 이제 1년 정도.
그 기간 동안 제국 최고의 명의라는 십자 병원의 교수들은 그녀의 말이라면 사과가 포도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엘리제를 신뢰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면 아바마마는 언제 깨어나시는 거지?”
“그건…… 더 시간이 걸릴 거예요.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린덴의 물음에 엘리제가 답했다.
심장의 기능은 회복되었지만 약혼식 당시 왔던 심장마비가 문제였다.
옆에 있던 엘리제가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아무래도 뇌에 피가 덜 가며 부담이 갔을 것이다.
이런 경우 의식이 언제 회복될지는 몰랐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군. 그러면 그 임파…… 선 종괴라고 했나? 그 병에 대한 치료는? 종괴를 뗀 것으로 치료가 완료되는 것은 아닌가?”
“다른 종괴와 다르게 임파선 종괴는 혈액병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약물치료를 해야 해요.”
“이제 바로 하는 것인가?”
“아니요. 지금은 몸 상태가 안 좋으셔서 최소 의식이 회복된 다음에 진행할 예정이에요.”
“그러면…… 좋아지실 수 있는 건가?”
엘리제는 조심히 답했다.
“완전히 이전처럼 건강해지시긴 어려워요. 무리한 일은 하기 힘드실 거예요. 치료 반응도 살펴야 하고요. 그래도 특별히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편하게 지내실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 대답에 린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고맙다. 정말…… 정말로 고맙다.”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조금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솔직히 그녀는 아쉬웠다.
더 빨리 민체스터의 병을 진단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진단이 늦어진 것은 엘리제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녀라도 심장 뒤에 몰래 숨어 있는 종괴를 알아낼 재주는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확실한 추정 진단도 없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개흉 수술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다만 이 시대에 CT나 기타 진단 검사 도구들이 있었으면 진즉 황제의 병을 진단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너무 아쉬웠다.
“아니야. 정말…… 정말…… 고맙다. 이 나라의 황태자로서도, 그리고 아바마마의 아들로서도 너무 고마워.”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전하. 아니, 린덴. 고맙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 말에 린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살짝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 사랑하는 사이끼리…… 그렇게 고맙다는 말…… 하는 것 아니래요…….”
린덴은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엘리제는 살짝 부끄러운 표정으로 그를 마주 바라봤다.
“……왜요?”
린덴은 대답 대신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작은 몸이 으스러지도록. 몸에 닿는 단단한 품에 그녀의 심장이 쿵쾅거리도록.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숙여 붉은 입술을 훔쳤다.
“아…… 리, 린덴…… 여기서는…….”
거침없이 탐하는 그의 혀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며 몸이 나른히 풀렸다.
그는 그녀를 한참이나 괴롭히고 나서야 입술을 떼었다.
엘리제는 사과 같은 얼굴을 그의 품에 묻었다.
“여, 여기 병원 복도라고요. 사람들이 봐요.”
“그래서? 보면 어때서?”
“부, 부끄러워요.”
린덴은 웃었다.
귓불까지 붉어진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는 품 안에 안긴 백금발을 쓰다듬었다.
“그래, 네 말대로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지. 대신.”
“대신?”
“너한테 상을 줄 거야. 황태자로서, 아니,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이로서 주는 감사의 상이니 그건 거절하지 말도록.”
그 말에 엘리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뭘 주려고 그러지? 보석은 필요 없는데?
“전 상으로 딸기 케이크가 먹고 싶은데요? 아, 오늘은 바나나 타르트도.”
린덴은 피식거렸다. 그놈의 딸기 케이크랑 디저트는 지겹지도 않나?
“그대를 위해서 아예 황궁에 디저트 경연 대회를 열어주지. 그대를 심사위원으로 해서. 제국 최고의 요리사만 참석할 수 있도록 하지.”
농담이라 생각한 엘리제는 쿡쿡 웃었다.
“정말요?”
“그래, 우리 브리티아뿐 아니라, 프랑소엔 공화국이나 스페냐 왕국, 로우랜드 등에서도 초빙해도 좋겠군.”
“와아, 좋아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날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린덴은 생각했다.
반짝이는 눈이 귀여웠다.
저 눈을, 그녀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은데. 상이고 자시고 결혼 먼저 할까?
“좋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렇게 대회를 열면 돈이 너무 많이 들잖아요. 저는 카린 베이커리 케이크면…… 읍?”
말을 잇던 엘리제는 숨을 들이켰다.
그가 다시 입을 맞춰왔던 것이다.
복도에서 그만! 하며 그의 가슴을 두드렸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그녀의 입술을 탐하며 말했다.
“디저트는 디저트대로 받고, 상은 따로 줄 테니 거절하지 마. 뭐, 거절해도 줄 거지만.”
도대체 무슨 상을 주려고?
엘리제는 키스를 당하며 몽롱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린덴은 알려주지 않았다.
***
그녀의 수술 성공 소식은 곧 제국 전체를 뒤흔들었다.
[등불을 든 여인, 기적 같은 수술로 황제 폐하를 살려내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브리티아 제국의 황제를 구한 일이다.
제국, 아니, 전 세계의 모든 언론사가 그녀가 해낸 일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정말 다행이야. 폐하께서 고비를 넘기셨다니.”
“그러게. 정말 많이 걱정했는데.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기도했다고.”
“나는 성당에 나가서. 이대로 폐하가 잘못되는 줄 알고 얼마나 마음이 졸이던지.”
민체스터는 개인적으로 완벽한 성품을 가진 이는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의 편애는 혈탑의 비극이 벌어지는 단초를 마련했고, 여러 성격적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황제 민체스터는 일평생 제국을 위해 봉사했다.
어떨 때 보면 그는 권력을 가진 황제가 아니라, 그저 제국이란 거대 기계의 부속품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의 통치 아래 제국은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온 시민은 영광된 번영을 누렸다.
그런 만큼 시민들의 그를 향한 존경과 사랑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황제 폐하 만세!”
“등불을 든 여인 만세!”
“뇌제 민체스터 만세! 황태자비 만세!”
기사를 접한 시민들이 론도 거리에 뛰쳐나와 신문을 던지며 환호성을 질렀다.
살얼음 같던 정국 분위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거리가 축제로 변했다. 시민들은 황제의 이름과 레이디 클로랜스의 이름을 부르며 열광했다.
그리고 감사하는 것은 시민들뿐이 아니었다. 귀족들, 특히 황제파에 속한 이들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덕분에 황제가 살아난 것은 물론 황태자도 혐의를 완벽하게 벗게 되었으니까.
“레이디 클로랜스 덕분에 살았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그녀는 정말 기적의 천사입니다.”
그리고 다른 인물도 그녀에게 찾아와 감사의 인물을 하였다.
“고마워, 리제.”
한참 황제의 진료를 보고 있을 때 찾아온 이를 보며 엘리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3황자 미하일이었다.
“밀.”
“정말 고마워.”
미하일은 다시 말했다.
엘리제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웃고 있는 그의 눈에 괴로움이 보였다.
‘밀…….’
그녀도 알고 있었다.
황제가 쓰러져 있을 때, 귀족파에서 황태자를 음해했던 것을. 그리고 그 음해는 저 미하일의 지시 아래 이뤄졌다.
하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또 다른 사실.
깊은 밤. 병원마저도 고요에 잠든 늦은 밤마다 미하일은 민체스터를 찾아왔다.
그러고 괴로운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다 돌아갔다.
그의 얼굴에 담겨 있던 아픔은 무엇이었을까?
‘하아.’
이 두 형제는 왜 이럴까?
차라리 독하기라도 하지.
‘하긴 독했으면 이런 싸움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겠지.’
린덴이 비정했으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모른 척했을 것이다. 그리고 귀족파마저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안아 권력을 강화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하일이 비정했으면 어머니를 외면하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로마노프령의 독립 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고마워.”
“아니에요.”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데, 어디 아파?”
미하일은 그녀를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엘리제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괜찮아요. 최근 무리해서 그런 것 같아요.”
미하일은 그녀의 이마를 살짝 어루만졌다.
갑자기 닿은 그의 느낌에 엘리제는 살짝 놀랐으나, 특별히 사심이 없는 손길이란 것을 알아 피하진 않았다.
미하일의 체온은 린덴과는 다르게 따뜻한 느낌이었다.
“약간 미열이 있는 것 같은데. 절대 무리하지 마. 알았지?”
“네, 그럴게요.”
“밑에 의사들 많잖아.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최대한 부려 먹으라고. 너는 착해서 먼저 다 하려고 해서 문제야. 원래 높은 사람은 거들먹거리며 시키기만 하는 건데.”
그 말에 엘리제는 미소 지었다.
미하일도 마주 미소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둘은 잠시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리제. 나 사실 할 말이 있어.”
“네, 말하세요.”
하지만 미하일은 주저하며 바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엘리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밀?”
“아니다. 몸 건강히 잘 지내.”
“……?”
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만 가볼게. 다음에 봐.”
그러고 그는 사라졌다.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민체스터는 완전히 안정을 찾았다. 물론 의식이 돌아오진 않았다. 그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 한창 진료에 열중이던 엘리제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들었다.
“저에게…… 백작 위를 내리기고 결정되었다고요?”
“네, 자작님. 아니, 이제 백작님이 되시겠군요.”
소식을 전하러 온 시종은 기쁜 표정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아니, 왜 어째서? 이건…… 너무 과한데…….”
그녀는 당황해 말했다.
백작이라니!
얼마 전 받은 자작 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자작이 일반적인 귀족의 계급이라면 백작부터는 고위 귀족에 반열에 들어간다.
봉건 시대라면 수많은 남작, 자작을 거느리며 가히 한 지역의 왕과도 같이 군림하는 존재. 시대가 바뀌어 그런 권세는 없어졌지만, 그 명예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백작 위를 자신에게 내리겠다니? 도대체?
“너무…… 과한데요.”
하지만 시종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 과하지 않습니다. 자작님은 우리 대브리티아 제국의 황제 폐하의 생명을 구하셨습니다. 기적 같은 수술로요. 그리고 그 외에도 세운 공이 한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나이는 이제 18살이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그것도 여인의 몸으로 백작 위를 받다니. 계승이 아닌 황실로부터 직접.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시종은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저는 전혀 과하지 않다 생각합니다. 황제 폐하의 생명은 고작 백작 위에 비할 바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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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