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1 에필로그 1 =========================================================================
에필로그-1
행복한 납치가 끝나고, 다시 시간이 흘러 대망의 결혼식 전날이 다가왔다.
결혼식 전야를 맞아 시민들은 기쁜 얼굴로 대화를 나누었다.
“두 분이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는구나.”
“그러게 말이야.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제국의 흥복이야. 자네도 결혼식에 참석할 거지?”
“당연하지. 이미 가게 문도 다 닫았다고.”
등불을 든 여인은 온 제국 시민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었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다.
결혼식 일주일 전부터 거리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고, 사람들은 마치 가족이 결혼하는 것처럼 그녀의 결혼을 기뻐했다.
원래 전통적으로 황실의 결혼식은 대성당에서 치러지지만, 이번만큼은 대경기장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워낙 많은 시민이 결혼식에 참석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인원이 참석하기를 희망해, 수만 명을 수용 가능한 대경기장도 자리가 모자랄까 걱정이었다.
물론 그녀의 결혼식을 모두가 기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약혼식 때처럼 슬퍼하는 이들도 있었다.
“크흑, 내가 등불을 든 여인을 사모한 게 벌써 2년째인데!”
“나도 마찬가지야! 크림 전쟁 때부터 짝사랑했다고!”
“등불을 든 여인은 만인의 여인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바로 엘리제의 열성팬들.
그들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결혼을 아쉬워했다.
그렇게 론도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하며, 결혼식 전야가 깊어갈 때였다.
만인의 축복의 주인공, 엘리제는 가문의 호위기사만 대동하여 홀로 대경기장을 찾았다.
“…….”
엘리제는 말없이 경기장을 바라봤다.
‘이곳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다니.’
엘리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경기장은 그녀에게 깊은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첫 번째 삶, 악녀 황후의 삶을 살 때 죄악을 저지르고 단두대에 처형된 곳이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죽어라, 악녀!’
‘목을 베어라!’
당시 그녀를 향하던 비난이 생각났다.
떠올리기만 해도 아픈 기억들. 참으로 후회되는 삶이었다.
하지만 이번 삶은 달랐다.
엘리제는 회귀 후의 시간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사가 된다고 선포했던 일들.
의사가 되어서 했던 일들.
전쟁에 참전했던 일들.
귀족파와 황제파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
그리고 그와의 사랑.
‘이번 삶, 후회하지 않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저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물론 그녀라고 모든 것을 잘했다고 할 수는 없다. 실수도 있었고, 더 잘할 수 있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번 삶을 후회하지 않았다.
‘바로 내일.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야.'
그래,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대경기장을 바라봤다.
대경기장은 국가적 결혼식을 맞아 미리 성대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녀는 내일 이곳에서 모든 이의 축복을 받으며, 그와 진정한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니 그와의 사랑도, 다른 삶도.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었다.
***
드디어 국가적 결혼식 날의 밝았다.
아직 예식까지 몇 시간의 시간이 남았음에도 대경기장은 새벽부터 달려온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등불을 든 여인 만세!”
“퍼스트레이디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모두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결혼식을 기다렸다.
그리고 대경기장 안쪽에 마련한 신부 대기석에 순백한 드레스로 곱게 차려입은 엘리제가 얼굴을 붉힌 채 예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 이상하지는 않니, 마리?”
“전혀 안 이상해요. 너무 예뻐요. 마치 천사가 내려온 것 같아요.”
“빈말하지 말고.”
“빈말 아닌데, 정말 너무너무 예뻐요.”
정말 빈말이 아니었다.
새하얀 드레스와 면사포를 쓴 엘리제의 모습은 지극히 순결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세상의 것이 아닌,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는 듯했다.
찾아온 손님들 모두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말을 잃고 감탄을 터뜨릴 정도였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마마.”
귀족파, 아니, 등불당의 대표로 찾아온 유리엔 후작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제 황후가 될 엘리제이니, 그녀는 경어를 사용했다.
엘리제는 민망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와줘서 고마워요, 언니.”
“아닙니다. 당연히 참석해야지요. 누구 결혼식인데요.”
황제와 황후의 결혼식이니 예법상 오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오늘 결혼식에 온 이들은 단순히 예를 차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모두 마음으로 그녀와 그를 축하해 주기 위해 왔다.
유리엔을 시작으로 엘리제와 연이 있었던 수많은 사람이 그녀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기 위해 대기실로 찾아들었다.
병원에서 같이 일했던 이들, 그녀에게 치료받았던 이들, 크림에서 도움을 받았던 이들, 은혜를 입었던 귀족파의 귀족들, 셀 수도 없었다.
너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일일이 인사를 받고 있다가는 예식 시작까지 시간이 모자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오기도 했다.
“결혼 축하합니다, 백작님. 아니, 이제는 황후 마마로 불러드려야겠군요.”
“알버트 백작님!”
엘리제는 깜짝 놀라, 나타난 이의 이름을 불렀다.
의족에 목발을 짚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알버트 드 차일드!
크림 전쟁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이였다.
원래 차일드가의 차기 당주였던, 그는 부상 후 본가였던 프러시엔으로 돌아가 백작위를 물려받아 현재 프러시엔 중앙은행의 부총재직을 역임하고 있다고 한다.
“불편하실 텐데…… 이곳까지.”
엘리제는 감사와 미안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 외발로 프러시엔에서 이곳까지 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버트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와야지요. 덕분에 목숨을 건져,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걸요. 이 목숨은 엄밀히 말하면 당신이 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당신에게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결혼식, 진심으로 축하하며 주님의 축복이 임하길 기원합니다.”
엘리제는 감사의 미소를 지었다.
“네, 알버트 백작님께도요.”
그렇게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이가 찾아왔다.
정신없이 인사를 받다 보니 시간이 지났고, 곧 식장으로 나갈 시간이 다가왔다.
마리의 손을 잡고,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려 준비하는 찰나.
“엘리제.”
“아버지.”
아버지, 엘 후작이 그녀를 찾아왔다.
“다 잘 준비됐느냐?”
“네, 아버지.”
“축하한다.”
아버지의 축하를 듣는 순간, 엘리제는 알 수 없이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 아버지의 눈가에 씁쓸함이 감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오늘부터 그녀는 ‘엘리제 드 클로랜스’가 아닌, ‘엘리제 드 로마노프’가 된다.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떠나 다른 이의 아내가 되는 것이다.
모든 딸 가진 아버지가 다 그렇듯, 그도 딸의 결혼을 기뻐하면서도, 씁쓸히 서운해하고 있었다.
“크흠, 내 이렇게 서운할 줄 알았으면 이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약혼을 취소시킬 걸 그랬다.”
아버지는 농담하였다. 하지만 그 농담을 하는 아버지의 눈가에는 애정 어린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엘리제는 미소 지었다.
그녀도 아버지의 품에서 떠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아버지.”
“응?”
그녀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었다.
“사랑해요. 결혼 후에도 궁에 자주 찾아오실 거죠?”
“……!”
엘 후작은 그 말에 스르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사랑한다, 내 딸. 매일 찾아가마.”
***
“와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을 받으며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원래 황가의 결혼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종교 예식이 주였지만, 약혼식 때 학을 뗀 린덴의 주장으로 대폭 생략해 버렸다.
물론 궁내부장 등 깐깐한 대신들이 반대했지만,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또 그런 무식한 예식을 진행하다가 몸이 약한 황후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너희가 책임질 것인가!’
실제로 선황이 약혼식 때 장시간 예식을 못 견디고 쓰러진 게 1년도 되지 않은 일이라, 대신들도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다.
덕분에 허례허식이 대폭 축소된, 오로지 서로를 위한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황제 폐하 입장하시겠습니다!”
결혼 예복을 차려입은 린덴은 비단 카펫이 깔린 길을 걸어 들어왔다.
평소 무뚝뚝한 표정과 다르게 얼굴 만연에 행복이 가득해 시민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황제 폐하 만세!”
“로맨티스트 만세!”
황제의 위에 올랐건만 아직도 시민들 사이에서 로맨티스트라 불리는 그였다.
어찌 보면 불경하다 할 수도 있었지만, 브리티아는 황제를 천자(天子)로 모시는 동방이 아니었다. 이 정도의 친근함은 눈감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맨티스트란 별명은 린덴 본인 마음에 들어 하는 별명인지라, 더욱더 특별한 제지를 하지 않았다.
다음 차례는 엘리제.
새하얀 드레스와 기다란 면사포로 단장한 그녀는 아버지, 엘 후작의 에스코트를 받아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가 나타나자.
“와아아!”
“등불을 든 여인 만세!”
“마이 레이디! 퍼스트 레이디!”
대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행복해라! 황제는 황후를 울리지 마라!”
“꼭 행복하세요!”
“레이디 클로랜스 만세!”
그 함성을 들은 엘리제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죽어라, 악녀!’
이전 삶, 저주를 받으며 생을 마쳤던 이곳에서 이렇게나 큰 축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더욱더 그녀를 흔들리게 하는 것.
“엘리제.”
린덴.
그가 행복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그.
정말 멀고도 멀었던 길이었다. 그 시간 동안 서로 얼마나 엇갈리고, 아팠는지.
그래도 괜찮다.
이제 이렇게 하나가 될 것이니까.
둘은 단상 앞에 나란히 섰다.
대성당의 대주교가 주례를 섰다.
“음……. 대 브리티아 제국의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의 결혼식을 주님의 이름으로 거행하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최소 4시간은 진행해야 할 식순이었지만 황제의 요청하에 허례허식을 대폭 생략했다.
어차피 결혼식에서 중요한 것은 딱 두 개 아니겠는가?
바로 사랑의 언약과 약속의 입맞춤.
먼저 축가, 축도, 축언 등 둘을 축복하는 식순들이 지나가고, 대주교가 말했다.
“그러면 둘의 결혼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이제 사랑의 언약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폐하께 여쭙겠습니다. 황후 마마를 맞이함에 앞서, 일평생 동안 그녀를 사랑할 것을 맹세하십니까?”
그 말에 린덴은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강한 열망이 담긴 눈동자.
그의 대답은 짧았다.
“당연히.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 세상천지가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그대를 향한 내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그저 미사여구가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에 담긴 열망은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 순간 너를 바란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바라고 또 바랄 것이라고.
넌 오로지 내 것이니, 날 벗어날 생각 따위는 하지도 말라고.
그 갈망에 엘리제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번엔 대주교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황후 마마께 여쭙겠습니다. 폐하를 부군으로 맞이함에 앞서, 영원히 사랑으로 대할 것을 맹세합니까?”
엘리제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네, 맹세합니다.”
그 사랑의 맹세가 끝나자, 대경기장이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와아!”
“황제 폐하 만세! 황후 마마 만세!”
단 한 명, 아버지인 엘 후작만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기쁜 날인데, 왜 이렇게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다. 주책 맞은 일이었다.
드디어 식순의 마지막 순서.
약속의 입맞춤.
사랑을 맹세하며 하는 입맞춤으로, 그 순서가 되자 대경기장이 떠나갈 것 같은 함성에 휩싸였다.
“와아!”
“황제 폐하 만세! 로맨티스트 만세!”
“황후 마마 만세!”
“뽀뽀해라!”
“뽀뽀!”
미칠 듯한 함성.
엘리제의 얼굴이 사과처럼 붉어졌다.
그와 처음 입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결혼식 때 으레 하는 입맞춤이거늘,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지.
그녀가 주저하자 린덴이 한 걸음 다가왔다. 엘리제는 긴장으로 흠칫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도망가지 말라는 듯, 린덴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
그가 그녀를 바라봤다.
오로지 사랑만이 담긴 눈동자. 그 깊은 타오름에 엘리제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엘리제.”
“……네, 폐하.”
“사랑한다. 영원히.”
그 말에 엘리제는 눈을 감았다.
“……저도요.”
둘의 얼굴이 천천히 겹쳐졌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둘은 하나가 되었다.
앞으로 영원히 함께할.
그녀와 그, 그와 그녀의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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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에필로그 2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