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2 에필로그 2 =========================================================================
에필로그 2
시간이 흘렀다.
브리티아 제국은 역사상 가장 영화로웠다던 공제 시대를 거쳐, 최고의 번영을 이룩한다.
하지만 역사의 축은 움직이는 법.
게르마니아 제국으로 인해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역사의 축은 서쪽으로 움직이게 했다.
어쨌든 그건 린덴과 엘리제 후대의 일.
그리고 150년이 지난 뒤.
동쪽의 한 나라.
“쏭! 일어나!”
검은 머리의 젊은 아가씨가 기숙사 2층 침대에 누워 있다가 힘겹게 눈을 떴다.
“조금만…… 어제 너무 늦게까지 공부해서…….”
“뭘 조금만이야! 도대체 시험도 없는데, 어제는 왜 공부를 한 거야?! 비행기 시간 늦겠어!”
“몇 시인데?”
“10시야! 비행 출발 시각까지 4시간밖에 안 남았어!”
쏭이라 불린 아가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작은 체구의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귀여운 인상의 여인이었다.
“4시간이면 넉넉하지 않아?”
“이게 비행기 안 타본 티 내네! 면세점도 들러야 하고, 늦지 않게 보딩 하려면 3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단 말이야! 당장 일어나!”
“하암.”
“빨리! 이러다 여행 못 가겠어! 안 가도 돼?”
안 가도 돼? 란 물음에 쏭이라 불린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된다.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으니까.
“아니, 가야지.”
“그러니까 당장 일어나!”
그렇게 친구로 보이는 둘은 허겁지겁 준비해 기숙사를 나섰다.
그들은 공항버스를 타고,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하아, 너 때문에 늦을 뻔했잖아.”
“미안.”
송은 혀를 살짝 내밀며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제 공부는 왜 한 거야? 물론 송, 네가 지독한 공부벌레란 것은 알고 있지만 여행 전날까지 공부하는 것은 심했잖아.”
“그냥…….”
“으이구, 말 안 해도 알겠다. 이번에 직접 클로랜스 가문의 생가(生家)에 가본다고 생각하니, 떨려서 본 거지?”
“……응.”
송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32판 새로 나왔던데, 그것 봤어?”
“응.”
그녀가 본 책은 바로 ‘현대 의학의 어머니’가 기술한 교과서였다.
이 시대 모든 현대 의학서는 바로 ‘그녀’가 기술한 교과서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무려 150년 전에 작성한 내용이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조금씩 손을 볼 뿐, 지금도 크게 개정할 만한 내용이 없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항공사가 어디지?”
“BA. 본토가 아니라 섬으로 바로 가는 직항편이야.”
“돈은 얼마나 환전해야지?”
“섬에서 시작해 본토까지 한 달 가까이 여행하는 거니, 200만 원 정도 환전했는데?”
“통합 단일 화폐로 대부분 되는 거지?”
“응, 아. 본토에서는 주로 기차로 이동할 거니 패스 확인하고. 섬에서 파리스로 이동할 때 탈 승차권도 챙겼어?”
“응, 다 가져왔어.”
“그러면 빨리 탑승하자.”
둘은 비행기에 탑승했다.
스튜어디스의 안내를 따라 일반석에 앉았고, 곧 비행기가 이륙했다.
“으, 기대된다. 여행 완전 좋다던데. 난 파리스가 제일 기대되는데, 너는?”
“나야, 뭐. 알잖아.”
송의 대답에 친구는 혀를 찼다.
“하여튼 너도 특이해. 그 멀리까지 여행가는 목표가 그것이라니. 물론 위대한 위인이기야 하지만…….”
송은 그 말에 겸연쩍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자신이 조금 특이하단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내 꿈인걸.’
‘그녀’.
자신에게 의사의 꿈을 꾸게 한 인물. 송은 ‘그녀’의 위인전을 읽고 의사의 꿈을 품었다.
송은 지금 자신의 꿈과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그녀’가 황후가 되기 전, 살았다던 클로랜스 가문의 생가.
그곳이 이번 여행의 목표였다.
***
긴 비행 끝에 공항에 도착했다.
둘은 완전 녹초가 되어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절차를 밟고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우리 숙소가…… 피카딜리 거리 쪽에 있나?”
“응, 그곳 유스호스텔이야.”
이곳의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가난한 학생인지라 호텔에 묵을 엄두도 못 냈다.
그들은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시내를 구경했다.
“와, 완전 건물들 예쁘다. 저것, 봐. 그림 같아.”
친구의 말에 송도 거리를 구경했다.
정말 근대의 거리에 들어온 듯한 건물들이 그녀들을 반겼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모던함이 섞인 거리의 풍경이었다.
“와, 저기 근위대다!”
“어디?”
친구의 말에 버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말을 탄 붉은 제복의 군인이 보였다. 허리춤에 기병용 검이 매달려 있었다.
물론 의장용 근위대였지만, 덕분에 과거를 느낄 수 있었다.
1시간여가 지나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황과 거리가 멀기도 했지만 길이 막혀 더 걸렸다. 세계 어디를 가나 수도의 교통 체증은 다 비슷한 것 같다.
친구가 짐을 풀며 물었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는데, 어떻게 할 거야? 도착하자마자 생가에 가보려고 했잖아?”
“음……. 오후 4시까지라서, 오늘은 늦은 것 같고. 내일 아침에 가야지, 뭐.”
“그러면 나가서 관광하자! 이 근처에 맛있는 케이크 집 있데! 150년 넘는 전통의!”
친구가 가이드북에서 찾아 이끌고 간 곳은 딸기 케이크가 맛있다는 카린 베이커리!
“황후가 사랑하던 베이커리라고 하던데?”
“그래?”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맛은 진짜 있네.”
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좀 달지 않아?”
“황후도 단 것 좋아했나 보지. 딸기 케이크를 제일 좋아했다고 여기 가이드 북에 적혀 있네.”
그러며 둘은 시내 여기저기를 관광했다.
과거 최강대국이자, 지금도 세계 최고의 강국 중 하나인 나라의 수도인지라 볼 것은 무궁무진했다.
뮤지컬도 보고, 빅밴도 가고.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와 더불어 흑맥주도 먹고.
“피시 앤 칩스는 그냥 튀김이네. 별로 맛은 없다.”
친구의 말에 송은 쿡쿡 웃었다. 동감이었다.
친구가 맥주를 쭈욱 마시며 말했다.
“역시 볼 게 많네. 이 도시 기원이 라틴족 아니었나?”
“난 잘 모르겠네. 그래?”
“응, 아마 2,000년 전쯤 섬에 도착한 라틴족이 세운 게 맞을 거야. 그때 이름이 론디니움인가 그랬을걸?”
여행을 오기 전에 미리 이것저것 공부했는지 친구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송.”
“응?”
“네가 내일 만나러 가려는 그분. 남편이 참 공처가였던 것 같지 않아?”
그 말에 송은 웃었다.
하루 관광을 해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내 엘리제를 위하여, 란 말이 적혀 있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야. 정말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았나. 물론 황후로서도 워낙 온 시민의 사랑을 받는 분이었다고 하지만.”
송이 내일 만나러 갈, ‘그녀’.
‘그녀’가 역사에 길이길이 전해질 이름을 남긴 것은 의학 때문이었지만 황후로서도 굉장히 훌륭했다고 한다.
황금시대라는 공제의 시대가 있었던 것은 어쩌면 황후인 그녀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그렇게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맥주를 마시다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송은 일찍 일어났다. 바로 여행의 목적인 클로랜스 생가를 방문하기 위해.
“화이트가…… 화이트가…….”
그녀는 지하철를 타고 화이트가로 향했다.
수백 년 전부터 대귀족들의 거주지였다는 화이트가는 지금도 이 나라의 내로라하는 부호들이 살고 있었다.
“이곳인가?”
그녀는 지도를 가방에 집어넣으며 한 저택을 바라봤다.
가이드북과 비교해 볼 필요는 없었다.
이전부터 사진으로 숱하게 봐서 알고 있었던 곳이니까.
클로랜스 공작가(公爵家).
엘리제 드 로마노프가 어린 시절 살던 생가.
제국의 명문가, 클로랜스 후작가는 그녀의 사후, 이곳을 생가로 지정해 보존하기로 했다.
이후 대를 이어온 숱한 공으로 공작가가 된, 클로랜스 가문은 근교로 저택을 옮겼고, 이곳을 그녀를 기리는 수많은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보존했다.
“관광 오신 건가요?”
정문에 서 있던 중년의 백인 남성이 물었다.
공무원이었다.
저택 자체는 클로랜스 가문의 소유였지만, 국가 지정 문화재로 관리는 국가에서 하고 있었다.
“아, 네. 입장할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라디오 가이드를 드릴까요? 아니면 따로 비용을 지불하면 직접 안내원의 가이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비용을 확인한 송은 입을 다물었다.
안내원의 가이드는 원화로 치면 무려 4만 원. 대충 30분 코스라 들었는데, 비쌌다.
하지만 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원의 가이드를 받을게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 전문 안내원이 나와 그녀를 이끌었다. 안내원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환영해요. 의대생이신가요? 아니면 벌써 의사?”
“아, 네. 의대생이에요.”
어떻게 알았지?
안내원은 친절하게 웃었다.
“이곳에 관광 오시는 분들은 의료 기관에 종사하시는 분이 많거든요. 그러면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안내원은 차분히 그녀, 엘리제가 지내던 생가를 설명해 주었다. 그녀가 어디에서 지냈고, 어디에서 공부했고, 어디에서 일했는지.
그러며 중간중간 그녀의 삶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분이 처음 의사가 된 것은 16살 때였습니다. 그전까지는 못 말리는 말괄량이였다고 하더군요.”
“말괄량이요?”
송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내원은 짓궂게 웃었다.
“사실은 말괄량이가 아니라, 정말 못된 성격으로 사교계에서도 유명했다고 해요.”
“에이, 그건 못 믿겠어요. 지어낸 이야기 아니에요?.”
“어쨌든 그 뒤 테레사병원에서 일을 시작해 최단 기간에 의사 자격증을 따셨죠.”
테레사병원.
현재 세계 3대 의과대학 중 한 곳인 클로랜스 의대의 교육 병원으로, 전 세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병원 중 하나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때 그분이 그레이엄 백작의 제자로 들어갔다는 거예요.”
“닥터 그레이엄의 제자로요?”
그건 모르던 이야기다.
송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닥터 그레이엄.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무수히 많은 의학적 업적을 남긴 인물.
“네, 그리고 콜레라를 퇴치하고. 크림전쟁에 참전한 것은 아시죠?”
“아, 네.”
당연히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것 아세요? 그분이 왜 크림전쟁에 참전했는지?”
“그거야 죽어 가는 생명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안내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사실은 황제 폐하와의 결혼을 피하기 위함이란 설이 유력해요.”
“……네?”
송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요?”
“네, 당시 그녀의 주변 인물들이 남긴 비공식적인 기록을 보면, 그런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 엘리제가 참전했던 이유는 작은 오라버니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건 전해지지 않은 진실.
어쨌든 송은 안내원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거 국가에서 운영하는 문화재라고 했으면서 왠지 사이비 안내원이 안내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소.
“이곳이 그분의 침실이에요. 벽면에 사진과 간단한 이력들이 있으니 읽어보세요.”
“아…….”
송은 그 방에 들어온 순간,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썼던 것으로 보이는 침대 맞은 편 벽면에 액자에 담긴 사진이 걸려 있었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는 작은 소녀와 한 남자의 사진.
남자는 소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는데, 소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둘 모두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 밑으로 그녀의 간단한 이력과 별칭들이 쭈욱 적혀 있었다.
엘리제 드 로마노프.
브리티아 제국의 12대 황후.
제국 최초의 여성 황실 장미 훈장 수훈자.
최연소 데임 서임자.
콜레라의 정복자.
역학의 어머니.
광휘의 천사.
등불을 든 여인(The Lady with the Lamp).
제국 의무 사령부 초대 대장.
최연소 제국 대령 임명자.
기적의 천사.
최연소, 최초 여성 황실 십자 훈장 수훈자.
최연소, 여성 백작 서임자.
화합자.
예방 접종의 창시자.
천연두 퇴치자.
세계 최초 의과대학의 창시자.
현대 의학의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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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무수히 많은 문구가 적혀 있었고, 마지막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린덴의 사랑하는 아내.
<외과의사 엘리제 -完>
============================ 작품 후기 ============================
다음주 외전으로 뵙겠습니다!!
< 후기 : >
안녕하세요, 유인입니다.^^
외과의사 엘리제를 지금까지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외과의사 엘리제는 아쉬움이 많이 남은 글입니다. 제 부족 때문에 여러 독자님들의 지적을 들을 때마다 조금 더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많이 남습니다.
전작인 메디컬 환생을 완결 후 세웠던 목표가 '꼭 전작보다 나은 글을 쓰자.'였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만약 글을 읽는 중 실망한 독자분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빕니다.
그래도 이 글을 쓰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글을 쓴다기 보다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정신없이 빠져서 썼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부족한 글이었지만, 독자님들께서도 글을 읽는 동안 조금이라도 즐거우셨다면 작가로서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엘리제, 린덴, 미하일.
그리고 그레이엄, 렌, 크리스, 등.
제가 사랑하는 그들과 함께한 여정이 즐거운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끝을 맺기가 아쉬워 외전을 준비했습니다.
1장 - 길거리 데이트
2장 - 임신 대작전
3장 - 로마노프 령에서 온 편지
로. 총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2장은 엘리제와 린덴의 이야기, 3장은 엘리제와 미하일의 이야기입니다. (총 분량은 12편 내외가 될 것 같습니다.)
연재 예정 일자는 다음 주인 5월 첫째주입니다.(월요일이나, 수요일쯤 시작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며, 외전까지 함께 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유인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