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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87화 (187/194)

00187  외전2 임신 대작전  =========================================================================

2장 임신 대작전-1

그 뒤 시간이 지났다.

린덴과 엘리제 사이는 여전했다. 서로를 깊이 사랑했고, 둘 사이에는 행복이 흘렀다.

단 한 가지, 문제를 제외하면 말이다.

바로 후손 문제였다.

“아직도 소식이 없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허. 금실이 그렇게나 좋은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빨리 후사를 보셔야 할 텐데.”

대신들은 목소리를 낮추어 대화를 나누었다.

린덴은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였다. 황위를 이을 후손의 소식이 없는 것은 제국 전체의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진즉 다른 여인을 후궁으로 받아들였을 상황.

하지만 황후가 만인에게 성녀라 추앙받는 등불을 든 여인이었고, 황제가 그녀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함부로 후궁을 맞으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참 걱정이오.”

“곧 좋은 소식이 있겠지요.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시민들도 아기 소식을 기다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엘리제와 린덴은 시민들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황제와 황후였으니까. 모두 둘의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기님 소식은 아직인가?”

“그러게 말이야.”

“난 오늘부터 성당에 나가 기도하려고. 빨리 아기씨가 잉태되길.”

“난 진즉부터 하고 있었어.”

그리고 아기 소식을 가장 기다리는 것은 당연히 엘리제 본인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엘리제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린덴은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를 달랬지만 초조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몸에 문제는 없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해보았다. 이 시대의 기술력상 검사의 한계는 있었지만 둘 모두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왜 임신이 되지 않는 걸까?

‘역시 나 때문일까?’

엘리제는 우울한 얼굴로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이전 삶 때도 임신을 못했었지.’

사이가 좋진 않았어도 의무적 합방을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도 임신을 하지 못했다.

“하아.”

그녀가 한숨을 내쉴 때 진료실 방문에 노크 소리가 들리며 환자가 들어왔다.

마침 들어온 환자는 링켄 남작 부인으로 임산부였다.

“아, 남작부인. 특별히 불편하신 곳은 없으시죠?”

“네, 마마. 항상 감사합니다.”

엘리제는 작게 웃으며 이것저것 물었다.

“한창 피곤하실 텐데 괜찮으신가요? 입덧은 어떻죠?”

“네,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중간중간, 그녀의 눈이 남작 부인의 배로 향했다.

‘저곳에 아기가……’

사랑하는 남자의 아기라니.

부러웠다.

‘나도 린덴의 아기를 가졌으면.’

그런 엘리제의 눈빛을 눈치챈 걸까? 남작 부인이 조심히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마.”

“네?”

“마마께서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원래 임신에 오래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대신 오래 기다린 만큼, 튼튼하고 훌륭하신 아기님이 태어나실 것입니다.”

엘리제는 미소 지었다.

“네, 고마워요.”

***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도 여전히 아기 소식은 없었다. 임신에 좋다는 방법은 모조리 해보았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결국, 기다리다 못한 대신들이 조심스럽게 후궁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엘리제밖에 모르는 린덴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정을 내면서.

“아기는 생길 거다. 그리고 그녀 외에는 그 누구도 받아들일 생각 없으니, 후궁 이야기는 다시는 꺼내지 말도록!”

못 박아버렸다.

물론 대신들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들도 둘 사이의 사랑을 아는 만큼, 후궁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제국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폐하, 제발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황실의 대를 잇는 일입니다!”

특히 사사건건 예법으로 시비를 걸던 궁내부장이 가장 열심이었다.

마치 후궁을 들이게 하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사명이라는 듯 날마다 찾아와 린덴을 괴롭혔다.

결국, 참다못한 린덴은 대신들이 모인 대전 회의 자리에서 버럭 화를 내었다.

쾅!

“그만!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난 절대 후궁을 맞을 생각이 없다! 그러니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지만 폐하! 제국의 미래가!”

린덴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제국의 사직? 그게 문제인가? 그러면 내가 이 황위를 내려놓으면 되는 건가? 그렇게 하면 아무 말 하지 않을 건가?”

“폐, 폐하?!”

그 과격한 발언에 모두 깜짝 놀라 고개를 조아렸다.

“난 다른 무엇보다도 그녀가 더 소중하다. 그러니 다시는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말도록! 황명이다!”

그렇게 소리친 그는 회의실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젠장.’

린덴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황위야 꼭 내 후손이 이을 필요가 있나? 로마노프령에 간 미하일, 그놈의 핏줄이 이어도 되고. 정 안 되면 양자를 받아도 되고.’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난 엘리제, 너만 있으면 되는데.’

린덴은 후손 문제 때문에 생긴 노이로제성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황실십자병원으로 향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았다.

“아, 폐하?”

마침 수술을 끝내고 자신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던 엘리제가 그를 맞았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그냥. 그대 얼굴을 보고 싶어서. 보고 싶었다.”

“오늘 아침에 봤잖아요.”

“그래도 보고 싶었어.”

그의 사랑에 엘리제는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사실 저도 그렇지 않아도 할 말이 있었어요.”

“무슨 할 말?”

린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엘리제는 바로 용건을 꺼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먼저 앉으세요. 차 한 잔 드릴게요.”

린덴은 인상을 찌푸렸다.

왠지 느낌이 안 좋았던 것이다.

‘뭐지?’

엘리제는 말없이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린덴이 가장 좋아하는 청의 차향이 그윽하게 방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엘리제가 건네준 차를 한 모금 마신 린덴이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폐하…… 아니, 린덴.”

“응?”

소파 그의 곁에 앉은 엘리제가 가만히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먼저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물어봐라.”

“저 사랑해요?”

린덴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건 왜 물어보지? 그걸 모르는가?”

“그냥요. 그냥 듣고 싶어서요.”

린덴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하지. 당연히.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엘리제는 배시시 웃었다.

“고마워요. 저도 사랑해요.”

린덴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 그러는 거지? 불안하게.”

“이전에 저에게 황실 십자가(Royal cross)를 주셨잖아요.”

“그랬지.”

과거 결혼 전, 선황인 민체스터의 목숨을 구해준 공로로 그는 그녀에게 백작의 위와 절대 면책권을 지닌 황실 십자가를 수여했었다.

“그 황실 십자가에는 면책권 외에 한 가지 부탁을 폐하께 드릴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 알고 계시죠?”

“알고 있다.”

린덴은 인상을 찌푸렸다.

모를 리가. 잘 알고 있었다.

가끔 드물게 의견 충돌이 있거나, 곤란한 부탁을 할 때마다 그녀가 저 황실 십자가를 내밀었던 것이다.

‘내가 왜 황실 십자가를 수여해 가지고는.’

물론 그녀가 안 좋은 부탁을 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착한 일이어서 문제였지.

전염성이 있는 환자를 직접 치료한다거나, 환자들을 위해 업무 시간을 늘린다거나, 자연재해 지역에 직접 나가 구명 활동을 하려고 한다거나 등.

그런 문제로 부부 싸움을 할 때마다 그녀는 저 십자가를 들이밀었다.

‘이번엔 뭐지?’

엘리제가 입을 열었다.

“사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말해봐라. 황실 십자가를 떠나서 내가 언제 그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적이 있는가?”

“고마워요.”

엘리제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한참을 머뭇거렸다. 의아함이 커질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후비를 맞아주세요.”

“……뭐?”

린덴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뭐라고?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겠지? 뭐라고?”

하지만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다시 말했다.

“……후사를 잇기 위해 후비를 맞아주세요.”

“……!”

그의 표정이 한없이 딱딱해졌다.

“후비…… 라고? 그 말 진심인가?”

린덴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화가 난 목소리였지만, 엘리제는 물러서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심이에요.”

“하!”

린덴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누구지? 누가 그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라고 한 거지?”

“아무도 아니에요. 제가 이전부터 생각해 왔던 거예요. 제국의 미래가 걸린 일인데, 이렇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요.”

린덴은 한숨을 토했다.

그녀의 입에서 후궁 이야기가 나오니 화가 났다. 서운하기도 하고. 난 너밖에 없는데!

그래도 그는 화를 억눌렀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속상할 사람이 그녀일 것이란 것을 알기에. 자신에게 저 말을 꺼내는데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그는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타이르듯 말했다.

“아이는 생길 거야. 아니, 안 생기면 어때? 내가 그대를 이만큼이나 사랑하는데. 그대만 있으면 되는데.”

자신을 생각하는 그의 말에 엘리제는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도 그가 후궁을 맞는 것이 싫었다. 그 누가 좋겠는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맞는 것이.

하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싫더라도 이제는 후궁을 맞아 후사를 잇도록 해야 했다.

엘리제는 눈시울이 붉어지려 해 손등으로 눈가를 닦은 후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저도 린덴을 사랑해요. 누구보다도 제가 당신의 아기를 갖고 싶어요.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해요. 제발 저를 위해서라도 후궁을 맞아주세요. 부탁이에요.”

그 말을 마치고, 참으려 했지만 결국 한 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

린덴은 굳게 입을 다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젠장. 마음에 안 들어.’

물론 그도 알고 있다.

자신이야 누가 황위를 잇든 크게 상관없었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특히나 가장 곤란한 것은 그녀이리라.

‘그래도 후궁을 맞을 수는 없어.’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 외에 다른 여자를 품으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영혼과 몸은 오로지 그녀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난 엘리제, 너 외에는 그 누구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차라리 황위를 내려놓으면 내려놓았지 말이다.

“…….”

그렇게 둘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윽고 린덴이 입을 열었다.

“후손만 가지면 되는 건가?”

“네?”

“그러면 해결책은 간단하군. 네가 내 아기를 가지면 될 것 아닌가?”

엘리제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그녀가 가장 바라는 일이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는가?

“안 되잖아요.”

“아니, 돼.”

황제는 강한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무조건 돼.”

“……?”

엘리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린덴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이제부터 오로지 아기를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아기가 생길 때까지는 모든 일은 중단이다. 엘리제,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그렇게 린덴의 명으로 대제국의 미래가 걸린 아기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다음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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