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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88화 (188/194)

00188  외전2 임신 대작전  =========================================================================

2장 임신 대작전-2

“폐, 폐하?”

엘리제는 당황해 그를 불렀다.

“어떻게 하시려고?”

“어떻게 하긴.”

한 손으로 엘리제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는 린덴은 짙게 웃었다.

“납치하려고 하는 거지.”

“네? 납치요? 무슨?”

“아무도 없는, 우리 둘만 있는 곳으로 말이야.”

부부끼리 무슨 납치인가? 농담하는 건가 싶어 그를 바라봤지만 그의 눈은 진지했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우리가 아이가 안 생기는 이유는 하나야.”

“어떤?”

“그대가 너무 바빠.”

그 말에 엘리제는 입을 다물었다.

린덴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약한데, 하는 일이 조금 많은가? 내명부 일은 물론이고, 수술에 진료에 사실상 보건정책과 일을 전담하고 있고, 의대 학장 일에, 논문 집필에…….”

아직 반도 안 이야기했건만 징글징글하게 많았다.

저 작은 몸으로 해내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좋은 음식만 먹고, 푹 자고, 편안하게 있어도 임신이 될락 말락 하는데 그렇게 늘 과로해서 아기가 생기겠는가?”

엘리제는 할 말이 없었다.

의학적으로 몸이 바쁘다고 해서 임신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예 영향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

린덴은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엘리제를 보며 혀를 찼다.

“물론 안다. 여러 분야에서 그대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가끔은 휴식이 필요한 법인데, 그대는 스스로를 너무 몰아쳐. 그래서는 생기려는 아기도 도망갈 거야.”

“하지만…….”

그래도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일기계도 아니고, 그녀라고 쉬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 일들을 외면하고 쉴 수가 없었다.

그때 그가 그녀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엘리제.”

“……네.”

“너는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문제야. 이곳에 있어서는 절대 일에서 못 벗어날 테니 궁을 벗어나 우리 둘만 있는 곳으로 가자. 쉬면서 아기 만드는 일에 집중하자고.”

린덴이 말했다.

“참고로 이건 황명이야. 정식으로 칙서를 내릴까? 황후는 모든 일을 내려놓고, 황제와 아기를 만들러 떠날 것.”

그 장난 섞인 말투에 엘리제는 쿡쿡 웃었다.

확실히 자신에겐 휴식이 필요하긴 했다.

‘쉬면…… 나도 그의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

엘리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른다. 꼭 과로가 불임의 원인이라 볼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의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그녀가 가장 컸으니까.

“그러면 언제까지 쉬다 와요?”

“언제까지긴.”

린덴은 자신에게 안겨 있는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아이가 생길 때까지지.”

엘리제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임신…… 안 되면요?”

“될 거야. 내가 반드시 되게 만들 거 거든.”

그는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혀로 핥아내렸다.

귓불에서 전해지는 전류와 같은 느낌에 엘리제는 신음을 흘렸다.

“아…….”

그는 짓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가 생길 때까지 끝없이 괴롭혀 줄 테니 각오하고 있어.”

***

황제와 황후가 갑작스레 궁을 비운다니, 황궁이 발칵 뒤집어졌다. 특히 사사건건 트집 잡는 게 특기인 궁내부장은 팔짝팔짝 뛰었다.

“출궁이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폐하와 마마는 제국의 중심입니다!”

하지만 린덴은 한마디의 말로 모두의 반대를 잠재웠다.

“후손을 만들어 돌아오겠다!”

그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이유라면 반대할 수 없었다. 아니, 두 손 들고 응원해 줘야 할 일이었다.

대신들은 우렁찬 인사와 함께 그들의 출궁을 마중했다.

“꼭 좋은 소식 기원하겠습니다!”

“건강한 황자님의 탄생을 기원합니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론도를 떠나는 마차를 마중 나온 시민들도 있었다.

린덴과 엘리제는 온 시민의 사랑을 받는 부부. 그들의 2세 소식은 모두가 기다리는 일인지라, 열렬한 응원이 쏟아졌다.

“황제 폐하 화이팅!”

“로맨티스트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돌아오실 땐 꼭 두 분이 아니라 세 분이 되어 돌아오십시오!”

“쌍둥이도 좋습니다!”

대 제국의 황제 부부에게 외치기에는 다소 편안한(?) 말이었으나, 워낙 시민에게 친근한 이미지의 그들이었기에 모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떠나 있는 동안, 엘리제의 일은 그레이엄을 비롯한 여러 적임자가 빈틈없이 맡기로 했다.

그녀가 직접 하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다들 열정이 넘치는 인재들. 의욕을 불태웠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무런 문제 없이 처리해 놓고 있겠습니다!’

‘수술도 다 맡겨 주십시오!’

린덴의 경우는 재상인 엘 후작에게 많은 부분을 위임했고, 중요한 일은 자신에게 전령이나 대신을 보내도록 하였다.

그렇게 둘은 아기를 만들기 위한 휴가를 떠났다.

기한은 아기가 생길 때까지였다.

***

엘리제와 린덴이 향한 곳은 브리티아 섬 동부 해안가에 위치한 황실 별장이었다.

고풍스럽게 꾸민 별장에 들어가니 백사장과 대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와…….”

시원하게 펼쳐진 대양의 모습에 엘리제가 감탄을 뱉었다.

“마음에 드는가?”

“네, 너무 예뻐요.”

“나도 마음에 드는군.”

그는 창가에 서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등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단단히 느껴지는 그의 품에 엘리제는 얼굴을 붉혔다.

“린덴?”

“이제 우리 둘밖에 없군.”

“네.”

“마음에 들어.”

그 말과 함께 그는 그녀의 턱을 살짝 들더니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그의 혀가 그녀의 깊은 입안을 농락했다. 마치 그녀의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라는 듯한 강렬한 키스.

“아…… 린덴.”

다리에서 힘이 풀려 엘리제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만…….”

하지만 린덴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멀었어.”

그의 입술이 볼을 스치며 귀로 향했다. 그녀의 귓불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사랑한다, 엘리제.”

그리고 이어지는 농밀한 사랑의 접촉. 혀와 혀가 섞여 들어갔고, 그의 입술이 그녀의 하얀 피부를 탐닉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

그의 혀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그녀의 몸이 떨렸다. 더 참을 수가 없어 엘리제는 그에게 애원했다.

“아…… 제…… 제발…….”

린덴이 짓궂게 물었다.

“뭘?”

“그, 그만…….”

엘리제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그런다고 멈출 그가 아니었다. 그녀는 알까? 이런 애원이 자신을 얼마나 더 달아오르게 하는지.

그는 더 참지 못하고 강한 팔로 그녀의 몸을 안아 들었다.

“……리, 린덴? 뭐 하시려고?”

“뭐하긴?”

그는 그녀를 안아 든 채 방 한쪽에 놓인 침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엘리제는 놀라 외쳤다.

“지, 지금 대낮이에요.”

“알아.”

“린덴?”

침대에 내려앉은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쓰러뜨리며 속삭였다.

“아기 만들어야지.”

“……!”

짓궂으면서 농밀한 말에 엘리제의 얼굴이 사과처럼 익었다.

“하, 하지만 시간이. 이제 시간도 많은데, 조금 있다가 밤에…….”

그러나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의 손가락이 봉긋 솟은 가슴을 쓸어내린 것이다. 아찔한 느낌에 그녀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는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때도 만들고. 지금도 만들고.”

“……!”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다시 한 번 범해 들어갔다.

“대제국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 같이 열심히 노력해야지? 안 그런가, 황후?”

그 욕망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며 엘리제는 직감했다.

아기를 만든다는 핑계로 그가 얼마나 자신을 괴롭힐 것인지.

***

그렇게 한차례 격렬한 폭풍이 몰아닥치고, 엘리제는 녹초가 된 얼굴로 침대에 늘어졌다. 완전히 지친 얼굴이었다.

반면 린덴은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각 같은 얼굴에는 아까 전보다 더 생기가 넘쳐, 얄미운 마음이 들어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자신은 이렇게나 힘든데.

“미워요.”

“뭐가?”

“그냥요.”

린덴은 쿡쿡 웃었다.

고개를 숙여 땀 맺힌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며 말했다.

“미우면 더 사랑을 주어야겠는데?”

“……!”

그가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는 안 들어도 뻔했다.

엘리제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왠지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방금 그렇게 탐닉했음에도 그녀를 향한 열망이 타오르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엘리제는 허겁지겁 고개를 저었다. 더는 안 됐다. 죽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왜? 밉다며? 미우니 사랑을 받아야지.”

“아, 아니. 안 미워요.”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그녀는 뒤로 엉금엉금 도망쳤다.

하지만 그래 봤자 침대 위에서 어디로 가겠는가?

얼마 가지도 않아 등에 탁 벽이 닿았다.

“사랑이 모자랐던 것 같아.”

“아, 안 모자랐어요!”

“모자랐던 것 같은데?”

린덴은 엘리제를 화악 껴안았다.

“꺄악!”

바동거리는 그녀를 강한 팔로 붙들며 린덴은 쿡쿡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한다.”

“……!”

“사랑해. 그 어떤 것보다도. 나의 엘리제.”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

왜일까? 늘 듣는 사랑의 고백이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 떨리고 행복한 것은.

엘리제는 눈을 감았다.

“네, 저도요.”

둘의 입술이 다시 한 번 겹쳐졌다.

따스한 햇살이 축복하듯 그들의 몸에 내려앉았다.

***

그렇게 둘은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오로지 서로만 바라보는 생활이었다.

“여기 정말 전망이 좋네요.”

“마음에 드나?”

“네,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에요.”

휴식 장소로 이곳을 선택한 것은 이전 그녀가 이곳 휴양지를 와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스름한 황혼이 깔릴 때쯤, 둘은 서로의 손을 잡고 해변가를 산책했다. 찰싹찰싹 파도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다.

“잠깐 앉았다 갈까?”

“네.”

벤치에 앉은 그들은 잠시 아름다운 풍광을 즐겼다.

황혼을 받은 대양이 붉게 빛났다. 그리고 그 옆으로 펼쳐진 해안가의 마을들.

마치 그림에서나 볼법한 광경이었다.

“거기랑 비슷해요.”

“어디?”

“그때 저 납치했던 곳 있잖아요.”

린덴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그녀를 납치(?)한 것이 한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그녀가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결혼 전, 프로포즈했던 항구 마을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렇군. 조금 다르긴 한 것 같은데.”

“그곳이랑 이곳, 둘 다 예쁘고 좋아요.”

그러며 둘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특별한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야기들.

“뭔가 신기해요.”

엘리제는 그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뭐가 신기하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되니 말이에요.”

그녀의 삶은 오로지 일의 연속이었다. 황후가 되기 전에도 그랬고, 황후가 된 후에도 그랬다. 그건 이전 삶, 지구에서 살 때도 마찬가지다.

일중독으로 살다가 이렇게 휴식을 취하니 뭔가 어색했다.

린덴은 한 손으로 그녀의 백금발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것 아닌데?”

“아기 만드는 거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한 가지 더 있어.”

“뭐요?”

“나한테 집중해야지.”

“아…….”

그는 자신을 옆에 두고도 항상 다른 곳을 바라보는 그녀가 불만이었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린덴은 그녀의 눈가에 살짝 입술을 맞추며 말했다.

“나만 바라봐.”

엘리제는 물었다.

“린덴은요?”

그 물음에 린덴은 피식 웃었다.

“난 원래부터 그대만 바라보고 있다. 언제나. 항상.”

네가 곧 내 삶이니까.

============================ 작품 후기 ============================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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