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9 외전2 임신 대작전 =========================================================================
2장 임신 대작전-3
둘이 이곳에 온 것은 후사를 보기 위한 것이었지만, 당연히 아기 만드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알콩달콩한 일도 많이 하였다.
“음, 린덴? 이게 무슨 냄새예요? 웬 타는 냄새가?”
엘리제가 졸린 눈을 비비며 2층 침실에서 내려왔다.
어제도 밤새 시달린 끝에 세상모르고 늦잠 자고 있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서 깨버렸다.
주방으로 가보니, 놀라운 모습이 보였다.
조각 같은 미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프라이팬에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린덴?”
엘리제는 자신이 헛것을 보나, 눈을 깜박였다.
린덴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
“일어났나? 피곤할 텐데 조금 더 자도록 하지 그러나?”
“아, 그건 괜찮은데 지금 무엇 하시는……?”
린덴이 프라이팬을 노려보며 말했다.
얼마나 열심인지 이마에 살짝 땀도 맺혀 있었다.
“그대에게 줄 요리를 하고 있다. 거의 다 됐으니 조금만 더 누워 있도록.”
“아, 아니…… 황궁에서 함께 온 주방장이 있는데 어째서 린덴이 직접?”
당연히 이 별장에는 둘만 온 것이 아니었다. 수발을 들어줄 인원들도 함께 왔다.
그런데 왜 직접?
린덴은 마치 전문 요리사가 하듯 프라이팬을 위로 흔들며, 다른 손으로는 냄비를 휘저었다. 프라이팬 위에 놓여 있던 정체불명의 검은 물체가 파삭하고 부서졌다.
“그야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렇지.”
엘리제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황제인 그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 요리를 하다니. 감동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
‘……요리하시는 게 맞는 거야? 왜 저런 형태가? 저건 뭐지?’
옆에 계란이 여러 개 깨져 있는 걸로 보아 오믈렛을 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왜 계란 요리가 짙은 갈색이지?
‘그리고 왜 냄비를 휘저으실 때마다 타는 냄새가 올라오는 거야?’
린덴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될 테니. 그런데 조금 간이 안 맞는군.”
아니, 간이 안 맞는 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저 정체불명의 형상을 볼 때 과연 먹을 수 있을지, 요리는 맞는지 의문이었다.
린덴도 뭔가 생각대로 요리가 안 풀리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문제인 거지? 분명 주방장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젠장, 어렵군.”
그러며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배고플 텐데 미안하다.”
엘리제는 쿡쿡 웃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황제님이라니.
그녀는 프라이팬과 사투를 벌이는 린덴의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등 뒤에서 그를 껴안으며 몸을 기댔다.
“너무 고마워요. 감동이에요.”
사랑해요, 린덴.
그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감촉에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몸을 돌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아…….”
이어지는 깊은 키스.
그의 혀가 그녀의 깊은 곳을 침범했다. 사랑과 함께 전해지는 강렬한 느낌에 그녀는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
“린덴…… 그만…….”
“어떻게 하지?”
“네?”
“멈추고 싶지 않은데?”
엘리제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 안 돼요. 아직 아침이잖아요.”
“아침이 뭐?”
“요, 요리도 하셔야 하잖아요.”
그 말에 린덴은 아쉬운 얼굴로 떨어졌다. 그래, 그에겐 지금 중요한 미션이 남아 있었다. 그녀에게 맛있는 아침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꼭 그대의 눈이 둥그레질 정도의 요리를 만들어낼 테니.”
그러며 그는 이리저리 프라이팬을 휘저었다.
하지만 이미 망한 요리가 노력한다고 살아날 리가 있겠는가? 손을 대면 댈수록 이상해질 뿐이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그냥 장작구이나 할 걸 그랬나.’
야전에서 여러 번 해본 장작 구이라면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그냥 굽기만 하면 되니까!
그때 뒤에서 진땀을 흘리는 남편을 보며 쿡쿡 웃은 엘리제가 옆으로 다가왔다.
“제가 다시 해볼게요.”
“그대가?”
엘리제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요리 되게 잘해요.”
‘이전 삶, 자취하며 많이 해봤으니까.’
사실 그렇게까지 잘하는 솜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황제님보다는 나을 거다.
“그래도 내가 해주고 싶은데…….”
“오늘은 제가 해드릴게요. 저도 해드리고 싶어요.”
그녀는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를 뒤로 한 갈래로 묶은 다음 린덴의 앞에 서서 요를 시작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해드릴게요.”
린덴은 대답 없이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의 바로 앞에 선 탓에, 향긋한 체향이 다가왔다.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 거지.’
엘리제는 오랜만에 하는 요리가 좋은지 즐거운 표정이었다. 탁탁 식칼을 움직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랑하기 때문일까? 린덴은 앞치마 차림으로 요리하는 그녀의 모습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자꾸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로 시선이 갔다.
“가서 편히 앉아 있으세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엘리제가 웃으며 말할 때였다.
그가 그녀를 뒤에서 강한 팔로 껴안았다.
“린덴?”
갑작스레 안긴 그녀가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기습적인 키스.
“리, 린덴?”
엘리제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린덴은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집요하게 입맞춤을 이어가며, 한 손으로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
아찔한 느낌에 엘리제는 신음을 흘렸다. 몸에 힘이 풀렸다.
“리, 린덴. 요, 요리해야 해요.”
“하지 마.”
“하, 하지만…….”
“요리는 나중에 내가 다시 해줄게.”
“리, 린덴.”
린덴은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살짝 깨물며 혀로 훑었다. 엘리제는 숨을 흡 하고 들이켰다.
“그대가 자꾸 날 미치게 하니까 그렇지.”
“제가 언제…….”
하지만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다시 입술을 맞추어 온 것이다.
“아…… 린덴…….”
“사랑한다, 엘리제.”
“네…… 저도요.”
그렇게 불타오르는 사랑과 함께 둘의 요리 만들기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갔다.
“신기해요.”
그의 품에 안긴 채 엘리제가 중얼거렸다. 그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이 기분 좋았다.
“뭐가?”
“이렇게 서로만 보고 있는 것이요.”
“싫나? 빨리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나?”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좋아요. 너무나…….”
의사로서의 삶은 소중하다. 황후로서의 업무도 중요하고.
하지만 이렇게 서로를 향하고 있는 시간이 왜 이렇게 행복한지.
그녀는 자신이 그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거 알아요? 제가 린덴을 많이 사랑하는 것.”
린덴은 따뜻한 눈으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도. 나도 그렇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린덴은 쿡쿡 웃었다.
“왜 그러세요?”
“아, 옛날 생각이 나서. 처음에 그대가 날 참 싫어했었지.”
엘리제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그랬었다. 그와 결혼하지 않으려고 선황과 내기까지 하고. 크리스 오라버니를 전쟁에서 빼기 위해 그와 약혼하기로 했을 때는 펑펑 울기도 했었다.
“그때는 린덴도 저를 싫어했잖아요.”
“싫어하지 않았어.”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한 가지 일로 머리가 꽉 차 다른 것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
엘리제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하는 일은 복수를 뜻한다. 결국, 그의 용서로 끝난.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 물었다.
“혹시…… 그들을 용서하신 것 후회하지는 않으세요?”
“후회하지 않아.”
린덴은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복수를 바란 것은 나였지. 어머니와 누이가 바란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들이 진정 바란 것은 내 행복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잠시 둘은 대화 없이 가만히 있었다.
린덴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미하일, 그놈은 잘 지내는 것 같더군.”
“아! 편지 왔었어요?”
“얼마 전에.”
그 말에 엘리제가 그의 품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반가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말씀해 주시지. 그렇지 않아도 잘 지내는지 궁금했단 말이에요.”
“그 못난 놈 잘 지내는지 뭐가 궁금해서.”
“친구잖아요. 당연히 궁금하죠. 편지 보여주세요. 네? 네?”
“없어. 버렸어.”
“안 버렸잖아요. 보여주세요. 네? 네?”
그녀의 반가워하는 모습에 린덴은 괜히 심통이 나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도 그녀의 애교 공세에 버티지 못하고 편지를 보여주었다.
‘밀.’
엘리제는 그의 애칭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잘 지내지, 형님? 리제도 잘 지내고?
린덴이 그 문구를 보며 투덜거렸다.
“형수님이라 하라니까. 어디서 리제야.”
-난 잘 지내고 있어. 형님 명대로 로마노프령에 도착했어.
그 뒤에는 그의 근황이 쭉 적혀 있었다.
“밀은 그러면 청에서 돌아와 로마노프령에 있는 건가요?”
“로마노프 대공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일을 도와주고 있다.”
정권 다툼 후, 추방을 당한 미하일은 마리엔 황비와 함께 서대륙을 떠돌았다.
그렇게 1년쯤 지내다 마리엔 황비는 급환이 닥쳐 갑작스레 병사했고, 슬픔과 함께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그는 모든 것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머나먼 동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힌디에서 청, 려까지.
얼마나 요란하게 여행을 다녔는지, 브리티아 섬까지 그의 무용이 전해질 정도였다.
그 이야기들을 엮어 ‘검제의 모험 2탄!’이란 책이 나왔는데, 웬만한 소설 뺨치는 스펙타클한 모험담이었다.
그렇게 바람 같은 여행을 다니다 최근에는 로마노프령으로 돌아왔다. 로마노프 대공의 몸 상태가 악화하여 린덴이 부탁했기 때문이다.
“밀에게 로마노프령을 맡길 생각이신가요?”
“글쎄, 전통을 따르면 미하일, 그놈이 다음 대의 로마노프 대공이 되어야겠지만, 이전 정권 다툼 문제가 걸려 대신들과 상의해 봐야겠지.”
서대륙 북단의 황제 직할령인 로마노프령을 다스리는 대공은 대대로 황제의 형제가 맡는 것이 로마노프 황가의 전통이었다.
“나야 그놈이 딴마음 품을 리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사실 다른 황가의 인물을 임명하는 것이 정답이지만, 적임자가 없어서 문제군.”
“그렇군요. 근데 밀이 대공이 되려고 할까요?”
“글쎄, 모르겠군. 어쨌든 차차 생각해 봐야지.”
엘리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린덴. 저 하나만 부탁해도 돼요?”
“당연히 되지. 말해봐라.”
“나중에…… 로마노프령 방문하실 때 저도 데려가 주면 안 돼요?”
“미하일, 그놈 때문에?”
린덴은 인상을 찌푸렸다.
엘리제는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못 본 지 오래되어서요. 한번 보고 싶은데…….”
린덴은 단박에 답했다.
“안 돼.”
“예? 어째서? 원래 로마노프 령에는 황후와 같이 방문하는 경우 많잖아요.”
“몰라. 안 돼.”
“지금 심술부리는 거죠?”
“아니야. 어쨌든 안 돼.”
엘리제는 입술을 부풀렸다.
“그러면 황실 십자가의 권한으로 부탁드릴 테니…….”
린덴은 얼굴을 구겼다.
그놈의 황실 십자가! 내가 저걸 왜 줘서.
“알겠다. 대신 조건이 있다.”
“네, 뭐요?”
린덴은 자신의 뺨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뽀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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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