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0 외전2 임신 대작전 =========================================================================
2장 임신 대작전-4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린덴과 엘리제는 중간중간 주변 마을 구경도 다니고, 축제도 참가하고, 예쁜 풍광도 감상했다.
린덴은 요리를 계속 시도했는데,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엘리제가 말려도 언젠가는 그녀가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에 성공하겠다는 일념을 불태웠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저 이렇게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깊은 행복과 별개로 고대하고 고대하는 아기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엘리제는 특별히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점차 초조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걱정하지 마라. 아기가 하루아침에 생길 리가 있는가. 오래 걸릴 것 생각하고 온 거다.”
엘리제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이 좋아지진 않았다.
‘역시 안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엘리제의 몸이 안 좋아졌다. 큰 병이 도진 것은 아니지만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이다.
“하아, 왜 또 아프느냐.”
“……죄송해요.”
속상한 표정을 짓는 린덴에게 엘리제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린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아플 때마다 매번 가슴이 찢어졌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엘리제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냥 컨디션이 안 좋은 거니 금방 좋아질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황궁에 연락해 의사를 보내라고 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정말 금방 좋아질 거예요.”
둘은 잠시 말없이 있었다.
린덴은 그녀에 대한 걱정으로, 엘리제는 복잡한 마음 때문에.
엘리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린덴.”
“응?”
“저…… 몸 좋아지면 황궁으로 돌아갈까요?”
린덴은 인상을 찌푸렸다.
“왜?”
엘리제는 씁쓸히 웃었다.
“그냥…… 안 되는 것 같아서요.”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기는 곧 생길 거야.”
“많이 노력했잖아요. 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폐하도 이제 후비를 맞아주세요.”
그 말에 린덴은 역정을 내었다.
“후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한테는 그대밖에 없는데 무슨 놈의 후비야?”
“폐하.”
“신에게 맹세하건대 만약 정말로 아기가 안 생긴다더라도 후비를 맞을 생각 따위는 없어. 차라리 황위를 내려놓으면 내려놓았지.”
린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이야기하지 말도록. 알겠나?”
“……린덴.”
엘리제는 눈을 감았다.
그의 마음이 고마웠지만 가슴이 답답했다.
‘몸이라도 빨리 나았으면.’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 다르게 컨디션은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마치 병든 병아리처럼 시름시름 거리더니 속이 안 좋아지며 헛구역질까지 시작한 것이다.
“엘리제?!”
그녀의 헛구역질을 들은 린덴은 깜짝 놀랐다.
엘리제는 손을 내저었다.
“아, 그냥 속이 안 좋아서. 웁!”
린덴은 급히 말했다.
“지금 당장 황궁에 연락해 어의를 부르겠다.”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 괜찮아요. 특별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복통이나 다른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배에 특별한 문제가 생긴 건 아닌 것 같았다.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
그러나 상태는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심해지더니, 엘리제는 식사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
“오늘쯤 황궁에서 의사들이 도착할 거다. 조금만 버텨다오, 엘리제.”
린덴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엘리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좋아질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안색은 핼쑥했다. 린덴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도대체. 하아.’
린덴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이렇게나 그녀를 사랑하는데, 자꾸 속상한 일만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아기는 안 생기고, 몸만 아프다니.
‘정말 아기 따위 안 생겨도 좋으니, 빨리 나아다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엘리제는 괜찮다고 말하려 했으나, 다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웁!”
그런데 다시 헛구역질하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진단명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그러고 보니 마지막 생리가?’
엘리제는 떨리는 눈으로 생각했다.
생리가 없으면서 헛구역질이 나는 상태.
‘내가 왜 이걸 생각 못하고 있었지?’
그녀의 가슴이 기대감으로 떨렸다.
‘아니야. 아직 확실하진 않아.’
그녀는 괜한 기대심을 품지 않으려고 고개를 저었다. 기대했다가 아니라고 밝혀지면 너무 실망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정황상 분명 가능성은 있어. 제발…….’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저택의 입구에서 로열 가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황궁에서 어의가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도록 해라!”
노심초사 의사들만 기다리던 린덴이 반색해 외쳤다.
곧 황궁어의인 피터와 제국의 두 번째 명의 그레이엄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도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이 존경하는 황후, 엘리제에게 급환이 생겼다는 이야기에 모두 몰려온 것이다.
“폐하! 마마께서는?”
“이곳이다. 빨리 진료하도록.”
피터 교수와 그레이엄은 다급한 린덴의 표정과 창백한 엘리제의 안색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마마.”
엘리제는 자신이 짐작한 바를 먼저 이야기할까 했으나, 입을 다물었다.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니, 다른 의사의 의견도 듣고 싶었다.
피터와 그레이엄은 신중한 태도로 엘리제를 진찰했다.
문진으로 이런저런 증상을 묻고, 검진하고 그들의 진찰이 길어지자, 린덴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은 건가? 괜찮은 거겠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 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
“검사? 무슨? 혹시 안 좋은 상태인 건가?”
린덴이 놀라 다급히 물었다.
“안 좋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축하를 드려야겠지요.”
“축하?”
린덴이 인상을 찌푸렸다. 황후가 저렇게 아픈데 축하라니?!
그때 피터가 빙그레 웃었다.
“너무 초기여서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소식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합니다.”
“초기? 좋은 소식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린덴의 눈이 갑작스레 커졌다. 피터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설마?”
“네, 태기가 있으십니다.”
“……?!”
린덴은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엘리제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한 채로.
“엘리제.”
“폐하…….”
그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기쁨의 포옹이었다.
“잘됐다. 정말 잘됐어!”
엘리제는 그에게 안긴 채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정확한 것은 검사해 봐야 알 수 있어요.”
“당연히 맞을 거다! 맞을 거고 말고.”
린덴은 기쁨에 차 외쳤다.
엘리제는 눈을 감았다.
***
검사 결과, 임신으로 확인되었다.
황후의 임신 소식에 론도는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엘리제의 임신 소식은 모두가 기다리던 것.
시민들 모두 거리로 나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황제 폐하 만세! 황후 마마 만세!”
“황자님 만세!”
“아니야, 공주님일 거야!”
“무슨 소리야, 당연히 황자님이겠지.”
“난 공주님이었으면 좋겠는데. 황후 마마 닮은 공주님이면 얼마나 귀엽고 아리땁겠는가?”
누군가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시민들이 침묵했다. 황후 마마를 닮은 아기라. 인형보다 귀여우리라.
“아, 몰라. 이번엔 공주님! 다음엔 황자님이면 되지!”
“그래, 한 5명쯤 낳아주세요!”
“아니, 10명!”
“그래, 10명 좋다!”
시민들은 린덴이 들으면 식겁할 요구를 거침없이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임신 소식에 가장 기뻐한 것은 당연히 엘리제와 린덴이었다.
임신이라는 검사 결과를 듣는 순간, 엘리제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바라고 바라던 아기인가?
그런 그녀를 린덴이 안아주었다.
“울긴 왜 울어.”
“흐윽. 그냥 좋아서요.”
린덴은 쉽게 진정 못하는 그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엘리제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린덴.”
“뭘 고맙나. 고생은 그대가 했지.”
“아니에요. 정말로 너무 고마워요.”
이렇게 힘든 길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가 자신을 지탱해 준 덕분이었다.
“사랑해요.”
린덴은 잔잔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사랑한다, 내 엘리제. 그런데 아기가 생긴 것은 좋은데 하나 걱정이 되는군.”
“어떤 거요?”
엘리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가장 큰 근심이 하나 해결되었는데, 무슨 걱정?
“아기 낳으면 나한테 소홀해지는 것은 아니겠지?”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는 일이 많은 그녀 아닌가? 린덴은 아기가 태어나면 자신은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었다.
“음……. 확실히 아가한테도 사랑을 주어야 할 테니…… 이전보다는…….”
그녀의 말에 린덴은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정말로?”
엘리제는 쿡쿡 웃었다.
“농담이에요. 전 당신밖에 없어요. 사랑해요.”
그녀가 그를 달래었으나 그는 걱정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정말로 아기가 태어나면 찬밥 신세가 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싫은데.’
린덴은 시무룩하게 생각했다.
왠지 아기한테 질투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쨌든 시간이 쑥쑥 흘렀다.
홀쭉하던 그녀의 배도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했다.
“이 안에 아기가 자라는 건가?”
“네, 신기하죠.”
그녀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린덴은 그녀의 배를 만졌다가, 깜짝 놀라 손을 떼었다. 무언가 움직였던 것이다.
“이건?”
엘리제가 배를 감싸 안았다.
“태동이에요. 우리 아기가 움직이고 있어요.”
린덴은 조심히 다시 배에 손을 가져갔다. 무언가 볼록볼록 느껴졌다.
“아기가 배를 발로 차는 거예요.”
린덴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대 배를 찬다고? 아무리 우리 아기라도 혼내줘야겠군.”
“뭘 혼내요. 건강하고 다행인 거지. 그나저나 열심히 움직이는 걸로 볼 때 왕자님인가 봐요.”
“그런가? 난 딸이었으면 좋겠는데.”
“딸이요?”
린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황위 계승 측면에서는 황녀보다야 황자가 더 좋기야 하지만, 개인적인 아빠 입장에서는 딸을 갖고 싶었다.
그녀를 꼭 빼닮은 공주면 얼마나 귀여울까? 더욱 많이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엘리제는 반대로 생각했다.
“저는 린덴 닮은 왕자님이요. 너무 귀여울 것 같아요.”
린덴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야, 나 닮으면 하나도 안 귀여울 거야. 맨날 인상이나 찌푸리고 있겠지.”
엘리제는 린덴을 똑 닮은 꼬마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떠올렸다. 너무 귀여울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린덴을 닮은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행복할 것 같았다. 빨리 만나고 싶었다.
‘무럭무럭 건강히 자라주렴.’
이윽고 출산의 날이 다가왔다.
만 하루에 걸친 진통 끝에 모두가 기다리던 아기가 태어났다.
“괜찮은가, 엘리제?!”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린덴이 허겁지겁 뛰어들어왔다.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얼굴이 팍 상해 있었다.
엘리제가 지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을 닮은 아들이에요.”
그녀의 분만을 이끌었던 피터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씩씩한 황자님입니다. 경하드립니다, 폐하!”
린덴은 막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았다. 비단 포대기에 쌓인 아기는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우리의 아기.’
조그만 아기가 꼬물딱거리는 것을 본 그의 가슴이 두근 뛰었다. 간질간질하며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너무 예쁘지 않아요?”
“……안 예쁜데.”
그 말에 그녀가 그를 흘겨보았다.
“첫날이어서 그래요.”
원래 아기가 태어난 첫날은 쭈글쭈글 못나 보이지만 하루만 지나도 피부가 탱글탱글해지며 귀엽게 변한다.
“안아보세요.”
린덴은 아기를 들어 품 안에 안았다.
포근한 느낌과 함께 정체 모를 간질간질한 느낌이 더욱 커졌다.
“어떠세요?”
그는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행…… 복하군.”
그래, 잘은 모르겠지만, 이 정체 모를 느낌은 행복인 것 같았다.
“저도요. 행복해요. 고마워요, 저와 함께해 주어서.”
린덴은 가만히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나의 사랑, 엘리제.
신이 내게 내린 가장 큰 축복.
“엘리제, 명령이 있다.”
“네, 명령이요?”
“건강하도록. 영원히. 아프면 안 돼. 영원히 나랑 행복해야 하니까.”
엘리제는 그 말에 가만히 미소 지었다.
“네, 린덴도요. 우리 영원히 함께 행복해요.”
============================ 작품 후기 ============================
다음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