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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91화 (191/194)

00191  3장 로마노프령에서 온 편지  =========================================================================

‘내가 왜 그놈이 태어났을 때 행복하다고 했지?’

린덴은 자신의 사자궁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황자가 온 시민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처음 자신의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를 떠올렸다. 자신과 사랑하는 그녀를 반씩 섞은 듯한 얼굴에 가슴이 떨렸었는데.

그때만 해도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에드워드, 이놈.’

그는 아들의 이름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갓 돌이 지난 놈이지만 미웠다. 얄미웠다.

“하아.”

그의 한숨 소리를 들은 신임 비서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임 비서관이었던 크리스는 능력을 인정받아 행정부의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왜 그러십니까, 폐하? 혹시 국회에서 새로 입안한 법안에 무슨 문제라도?”

“아니네. 이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아.”

“그러면 이번 프랑소엔과의 일 때문에?”

“아니야. 그것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다행히 이번 총통은 우리 브리티아에 친화적인 성향의 인물일 것 같으니 큰 문제 없이 진행될 것이야.”

하지만 그렇게 답하는 황제의 얼굴은 여전히 좋지 않아, 신임 비서관은 혹시 국정에 자신이 모르는 문제가 있나 걱정하였다.

‘최근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던 것 같은데?’

문제가 없는 정도가 아니었다.

브리티아 제국은 저 눈앞의 조각 같은 미남, 공제(空帝)의 통치 아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군사면 군사, 경제면 경제, 외교면 외교, 문화면 문화.

그 어느 것 하나 할 것 없이 브리티아 제국은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이전 민체스터의 시대 때도 브리티아는 세계 최강국이었지만, 지금은 가히 역사상 가장 눈부신 시대라 불릴 만하였다.

그야말로 황금시대.

그런 번영을 이끌고 있는 황제의 얼굴에 왜 이렇게 근심이 가득한 것일까?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걸까?

뭔가 얄미운 면이 많았던 전임 비서관과 다르게 황제에 대한 존경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신임 비서관은 충성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혹시라도 제가 조금 헤아리지 못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 소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에 황제는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성군이라 칭송받는 황제답지 않게 뭔가 뚱한 눈빛이었다.

“자네.”

“네, 말씀만 해주십시오, 폐하!”

“애 잘 보나?”

“……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신임 비서관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니, 소신은 미혼이라…… 그건 혹시 어째서?”

그 말에 황제는 도움이 안 된다는 듯 혀를 찼다.

“결혼은 했나?”

“이번 가을에 할 예정이옵니다, 폐하!”

“그러면 짐이 한 가지만 충고하지.”

“……?”

그러며 황제는 당황한 표정의 비서관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혼을 즐기게. 아기는 최대한 늦게 가져도 좋아.”

***

해가 어둑하게 지며 고단한 국정이 끝나고 린덴은 사랑하는 그녀가 머무는 궁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안 좋았다.

궁에 돌아갈 때는 그녀를 본다는 생각에 늘 옅은 미소를 띠던 그였는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겠지?’

린덴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길 바랐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에드워드, 그놈이 태어나기 전에 내가 누누이 이야기했건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그녀가 머무는 방에 가까워지니 ‘그 소리’가 들렸다.

“꺄르르~!”

“와! 에드워드, 잘했어요.”

“어마, 어마!”

천진난만한 아기의 목소리와 그녀의 목소리가 함께 들렸다. 행복이 가득한 음성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펴지지가 않았다.

저 천진난만한 음성이 근심의 근원이었기에.

“크흠.”

헛기침과 함께 방에 들어서자, 엘리제가 밝은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그녀의 품에는 그를 똑 닮은 흑발의 아기가 안겨 있었다.

“린덴, 오셨어요?”

엘리제가 아기를 살짝 내려놓고 자신에게 다가오자, 린덴은 부드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오늘 하루 잘 보냈나?”

“아, 네.”

“특별히 힘든 일은 없었고? 보고 싶었다.”

그러고 키스를 하려 하자, 엘리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에드워드가 봐요.”

“보면 어때서. 어차피 모르는데.”

“뭘 몰라요. 하여튼 안 돼요.”

린덴은 팍 인상을 찌푸렸다.

최근 들어 그녀는 이런 거부가 많아졌다. 모두 다 저 에드워드 놈 때문이다.

“괜찮으니…….”

그가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가져갈 때였다.

돌연 빼액!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아앙! 어마! 어마!”

“에드워드! 우리 왕자님. 왜 울어요?”

엘리제는 그를 내버려 두고 아들에게 달려가 토닥토닥 달래주었다.

버려진 린덴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저놈은 왜 맨날 우는 거야.”

“아기니까 당연히 울죠. 우쭈쭈. 에드워드, 울지 마요.”

엘리제가 달래자 아기는 곧 울음을 멈추고 방긋방긋 미소 지었다. 아기가 웃자, 그녀도 같이 환하게 웃었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 꺄르륵 웃으며 행복해하자, 린덴은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소외감이 들었다.

‘나도 좀 신경 써 달라고, 엘리제. 아들만 신경 쓰지 말고.’

일이 끝나 보러 와도, 그녀는 에드워드한테만 신경 쓴다. 자신은 찬밥이 된 지 오래였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이래서 애를 갖고 싶지 않았는데.’

그는 자신에게 꼭 후손을 가져야 한다고 상소를 올리던 대신들을 모조리 잘라 버리고 싶었다.

그때, 엘리제가 아들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 너무 잘생기지 않았어요?”

린덴은 힐끗 아들을 바라봤다.

뽀얀 피부, 짙은 흑발, 자신을 빼다 박은 듯 닮았다.

‘그녀를 닮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는 엘리제를 닮은 공주를 바랐었다. 그녀와 똑같이 생긴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 얼마나 귀여울까!

하지만 저 에드워드는 아무리 봐도 자신과 판박이였다.

“잘생겼죠?”

거듭된 물음에 린덴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내가 더 잘생겼어.”

“그게 뭐예요.”

“내가 더 잘생겼다고.”

뚱한 대답에 엘리제는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아들에게 질투하는 건 아니죠, 폐하?”

린덴은 눈썹을 찌푸렸다.

“질투? 아니야.”

“그렇죠?”

“그래.”

하지만 누가 봐도 질투하는 표정이었다.

세계 최강국 브리티아 제국의 황제가 한 살배기 아들에게 질투하고 있다니! 아무도 안 믿을 이야기지만, 원래 그는 그녀의 일에 관해서 질투심이 넘쳤다.

“린덴, 이쪽으로 오세요.”

여전히 뚱한 표정의 그를 껴안으며 그녀가 말했다.

“사랑해요. 전 에드워드와 당신밖에 없으니 질투하지 마세요.”

“누가 먼저야?”

“네?”

“누구 더 사랑하느냐고. 저 에드워드와 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에 버금가는 유치한 질문에 엘리제는 일순 말문을 잃었다.

“두, 둘 다 사랑하죠.”

“그러니까 누굴 더.”

그때 아장아장 걸어온 에드워드가 그녀의 치마를 붙들며 외쳤다.

“어마! 어마!”

나 더 사랑하지? 하는 듯한 목소리.

린덴도 질세라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누구 더 사랑하느냐고.”

그렇게 큰 아이, 작은 아이, 두 아이에게 둘러싸인 그녀는 울상을 지었다.

***

에드워드가 태어난 후 두 부부의 일상은 늘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린덴이 질투하고, 엘리제가 달래고.

물론 그렇다고 린덴이 아들을 진심으로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아버지. 에드워드를 마음속 깊이 아꼈다.

다만 그가 그녀를 너무 사랑할 뿐이다.

원체 바쁜 그녀다 보니 원래부터 자신과 함께할 시간이 적었는데, 아기가 태어나니 완전 뒷전이 되어버렸다.

머리로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술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가 잠든 후, 엘리제는 그에게 붙어 애교를 피우며 말했다.

“사랑해요, 린덴. 삐치지 말고요.”

삐치다- 황제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었으나 이제 둘 사이에는 익숙한 단어였다.

린덴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로만?”

“네?”

“말로만 사랑하느냐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엘리제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살짝 머뭇거리다 그녀는 입술을 그의 볼에 가져갔다.

하지만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 말고.”

그러며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의 강렬한 시선에 엘리제의 뺨이 화악 달아올랐다. 아이가 있어도 둘은 언제나 신혼 같았다. 그의 저런 눈빛을 볼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그녀는 조심히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고 서로의 입술이 맞닿는 순간.

“읍.”

그의 혀가 거칠게 입안을 파고들었다.

그녀를 향한 열망이 가득한 키스. 강렬한 자극에 엘리제는 신음을 흘렸다.

“아…… 린덴…… 그만…….”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침대 위로 부드럽게 넘어뜨리며 그 위에 올라갔다.

“리, 린덴?”

당황한 엘리제가 불렀으나 그는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봉긋 솟아오른 가슴으로 향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민감한 곳을 스치자 엘리제는 숨을 들이켰다.

“하, 하지 마요. 에드워드도 있는데…….”

마침 에드워드는 그들의 방에서 잠이 든 상태였다. 하지만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자잖아.”

“그래도…….”

린덴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엘리제의 입술을 다시 한 번 덮쳤다. 그만 말하라는 듯.

“엘리제.”

“……네.”

“넌 내 거야.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아. 알고 있어?”

그러며 그는 그녀의 목덜미를 지그시 깨물었다. 마치 자신의 흔적을 새기려는 듯이.

엘리제는 그의 감촉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네, 전 당신 거예요.”

그 말에 린덴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다시. 다시 말해봐. 넌 누구 거라고?”

그의 손길이 점점 자신의 은밀한 곳으로 향하자, 엘리제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저…… 전 린덴 거예요.”

“다시.”

옴짝달싹못하게 하는 독점욕.

은밀한 곳에서 전해져 오는 강렬한 자극에 엘리제는 신음을 흘리며 답했다.

“전 당신 거예요.”

“그래.”

린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그녀가 점차 하나로 합쳐졌다.

“넌 내 것이니, 절대 잊지 마.”

***

길고 긴 밤이 이어진 후, 날이 밝았다.

원래 잠이 적은 린덴이 먼저 일어나 격렬한 사랑 끝에 축 늘어진 채 잠들어 있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사랑한다, 내 엘리제.”

“우웅.”

엘리제가 몸을 뒤척이자,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오늘은 병원도 쉬는 날 아닌가? 조금만 더 자라.”

그리고 그는 방 한편 아기 침대에 누워서 쌕쌕 잠들어 있는 에드워드도 바라봤다.

‘이 얄미운 놈…….’

매번 자신에게서 그녀를 뺏어가는 얄미운 놈.

하지만 그도 아빠긴 아빠인 것일까?

이렇게 잠들어 있는 아들을 가만히 볼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간지러운.

아마 사랑이겠지. 그녀를 향한 사랑과는 조금 다른.

‘그래도 미워.’

그는 허리를 숙여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미우니 꼭 건강히 자라라. 엄마 속 썩이지 말고.’

그러고 그는 자신의 사자궁으로 향했다.

휴일이긴 했지만 황제에게 휴일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최근 급하게 처리해야 할 현안이 많아 더욱 바빴다.

그런데 사자궁에 도착하자 시종장 란돌이 그에게 의외의 소식을 전했다.

“로마노프 령에서 나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네, 폐하.”

“발신인은?”

“미하일 전하이십니다.”

린덴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생이? 무슨 일이지?

의아한 마음으로 편지를 확인하니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형님, 미안한데 리제 좀 빌려줄 수 있어?

이게 무슨 멍멍이 소리야?

린덴은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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