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돌아오다(1)
트래디션필드에서 펼쳐졌던 그 최후의 포구장면이었다.
싯누런 공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래 바로 이 공이었다. 멍청한 좌익수 데이빗이 내가 외치는 마이볼이라는 소리를 무시하고 달려들어 나의 전후방 십자인대를 박살 냈던 바로 그 타구. 덕분에 넓은 수비범위와 뛰어난 어깨를 바탕으로 메츠의 유망주 중에서도 손에 꼽히던 나의 야구 인생은 완벽하게 박살 났다.
뭐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덕분에 야구 선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니 어떻게 보자면 저 멍청한 데이빗 놈이야말로 내 인생의 은인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쿵쾅쿵쾅
야구선수라기보다는 미식축구선수를 연상케 하는 덩치의 데이빗 놈이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여기서 나는 마이 볼을 외치며 질주를 멈추지 않았었다. 좌익수의 수비범위에 슬쩍 걸친 공이기는 했지만, 녀석보다는 내가 잡아서 던지는 쪽이 3루 주자의 태그 업을 막아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데이빗 놈의 송구는 정말이지 절망적이었으니 말이다.
“마이 볼!!”
하지만 역시 데이빗 놈은 멈추지 않았다. 뭐 인생의 마지막 순간 주마등이 과거와 다르게 펼쳐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일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자 이제 저 덩치 놈이 나의 다리를 아작 내는 일만 남았구나. 뭐 나쁘지 않은 결말이다. 이제 나는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공놀이를 위해 그라운드를 땀내나게 뛰어다니는 머저리들과 달리 진정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비지니스맨으로 거듭날테니 말이다. 젠장할!!
“이런 시바알!!!!”
그래, 사실 다 거짓말이다.
성공한 삶? 사업이라는 진정한 재능?
젠장할. 웃기지도 않는 소리. 마누라고 애새끼들이고 전부 다 내가 뒤진 이후 한 푼이라도 더 재산을 받아내기 위해 모여든 승냥이 떼에 불과하다. 사업? 인터넷 포르노 다운 받으려고 사뒀다가 잊고 있던 비트코인 7만 8천원치가 나도 모르는 사이 600억까지 불어났고 그걸로 부동산을 샀더니 그게 또 올라갔을 뿐이다.
내 인생은 지금 이 순간 이후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하루, 하루 비싼 것을 먹고 비싼 똥을 만들어내는 기계였을 뿐. 진정으로 내 인생이 끝난 시점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콰앙!!
아아, 역시. 이 녀석은 야구선수 보다는 미식축구의 라인맨을 하는 쪽이 어울렸을 것 같다.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녀석이 부딪쳐온 가슴이 욱신욱신하다. 응? 잠깐만, 주마등인데 왜 아픈 거지?
“Kang!!!”
저 멀리 나를 부르는 포수 로페즈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직 공은 내 글러브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욱신거리는 가슴의 통증을 무시하고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내가 2루수인 소리야를 향해 힘차게 공을 뿌렸다. 비록 3루 주자의 태그업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후속 주자들의 추가 진루가 봉쇄됐다. 그리고 그것은 본래 나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
“헤이, 진호. 가슴은 좀 괜찮아?”
“어, 그냥 가벼운 타박상이래.”
“어휴, 데이빗 그 자식 진짜. 그 녀석은 수비할 때 대체 뭘 보고 듣는 건지.”
작년 나와 함께 싱글A 팀인 캐피탈 시티 봄버스에서 어드벤스드 A팀인 세인트루시 메츠로 승격한 프레스톤 윌슨이 투덜거렸다.
“뭐, 그러니까 그 타격으로도 위로 못 올라가고 있는 거겠지.”
“진짜 그 녀석은 AL 쪽으로 가서 지명타자를 하는 편이 어울린다고. 젠장.”
그렇지 않아도 데이빗은 올해를 끝으로 토론토에 트레이드되고 지명타자로 반 시즌 정도 빅리그를 밟는다. 내가 경험한 미래의 일들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근데 가벼운 타박상인데 어제 병원에는 왜 그리 오래 있었던 거야?”
“아, 뭐 겸사겸사 볼일도 본 거지.”
“병원에 볼일은 무슨. 심각한 건 아니지?”
“심각한 거면 애초에 보험 때문에 귀국했을걸.”
“하긴. 우리 보험이 좀 안 좋기는 하지.”
내가 어제 방문한 곳은 정신과였다. 어떻게 생각해보더라도 어제의 난 정상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젠장. 경기 중에 갑자기 60년 치의 미래를 경험하다니. 그것도 부상으로 은퇴하고 부동산 졸부가 돼서 쓰레기처럼 살다 죽는 그런 미래를 말이다. 단순히 환각이라고 치부하기에 너무 생생하고 디테일한 기억이었다. 물론 어떤 정신병자건 간에 자신이 본 환각은 단순히 환각이라고 치부하기에 디테일한 환각일 테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정신과에서 진단하기로 나는 아주 지극히 정상이었다. 심지어 학창시절 운동하는 친구들한테 괴롭힘 좀 당해본 너드 출신의 의사는 내가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눈치였다.
“어쨌거나 그러면 당분간은 좀 쉬어야겠네?”
“뭐 앞으로 며칠 정도는 그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는 일에서 제외되겠지”
“에휴, 진호, 네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중견수 노릇 좀 해야겠구만.”
말과는 달리 프레스톤의 표정이 즐겁다. 그 역시 루키리그부터 중견수로 뛰어왔지만 내가 팀에 합류한 이후 우익수를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법 크게 반발했지만 아무래도 내 수비가 워낙에 압도적이었던지라 이제는 어느 정도 납득한 상황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중견수를 볼 기회를 마다할 녀석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중견수가 하고 싶어서 죽겠다는 표정이구만. 뭐 어쨌거나 너도 데이빗 놈한테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너까지 그렇게 되면 팀에 남는 중견수라고는 드와이트뿐이잖아.”
“우, 드와이트 놈에게 중견수를 맡기느니 차라리 은퇴한 우리 아버지를 데려다가 필드에 놓는 쪽이 낫겠어.”
5시간이나 걸리는 원정 경기를 위해 버스로 향하는 프레스톤을 배웅하고 내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트레이닝 룸. 육중한 쇳덩어리들이 나를 반겼다. 물론 지금 내가 할 것은 저 무식한 쇳덩어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일은 아니었다.
어색함
정신과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가 경험한 일들이 현실이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어색함이 바로 그 이유였다. 사실 어제 충돌로 생긴 타박상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경기에 나갈 수 있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80대 노인의 다 죽어가는 몸에 적응해있던 나의 정신은 30미터를 3.3초에 주파할 만큼 활력 넘치는 육체가 무척 버거웠다. 바로 어제까지 50cc짜리 스쿠터를 타던 드라이버에게 갑자기 2,000cc짜리 대형 바이크가 주어진 것과 흡사하달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나의 두 번째 기회라는 사실은 분명해.’
수천억의 재산은 사라졌다. 하지만 재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소중한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내가 진정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기회를 말이다.
***
몸에 대한 적응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물론 여전히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어색함은 조금 남아 있었지만, 그 남아있는 어색함을 이겨내는데에는 트레이닝룸 보다 그라운드가 더 어울린다는 판단이 들었다. 게다가 모처럼 돌아온 젊은 몸으로 하루라도 빨리 경기를 뛰고 싶어 근질거린다는 이유도 있었다.
출전 역시 어렵지 않았다. 사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조금 그렇지만 나는 팀에서 제법 큰 기대를 갖고 있는 유망주였다. 계약금만 90만 달러. 일반적인 드래프트 1라운더들의 계약금이 100만 달러 정도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것은 팀이 나에게 드래프트 1라운더에게 준하는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했다.
“이봐 진호. 내 허리띠, 혹시 내 허리띠 못 봤어?”
“글쎄, 그 허리띠가 지금 네 허리에 걸려있는 것 말고 다른 허리띠라면 본 적이 없는데.”
“오, 갓. 이게 대체 언제 내 허리에 걸려있던 거지? 하하, 고마워.”
물론 저 허리띠도 못 찾는 머저리가 1라운더라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1라운더에 준하는 기대감이라는 것이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들긴 했지만 말이다.
***
솔직히 고백하건대 사실 나는 타격에 대해 그리 높은 평가를 받던 선수가 아니었다. 물론 장래 메이저리거로 기대받는 유망주였던 만큼 싱글A 소속이었던 캐피탈 시티 봄버스에서는 제법 괜찮은 성적을 거뒀었지만, 콜업된지 얼마 안 된 이곳 어드밴스드 싱글A에서는 상당히 고전 중이었다.
7번 타자.
이곳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는 투수도 타격을 하는 리그였고 그런 곳에서 7번이라는 것은, 필드에 나가는 모든 타자 중에서 두 번째로 타격을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팀 내 나의 위치였다.
부웅
저 멀리 타석에 선 데이빗 놈의 위협적인 스윙 소리가 들려왔다. 글러브를 끼고 필드에 설 경우 전력에 마이너스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었지만 저 타격만큼은 분명 진짜였다. 전 세계 수십만의 야구선수 중에서도 메이저 무대를 밟는 것은 불과 한 줌이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저 녀석은 그 한 줌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하지만 그런 재능조차도 지금 마운드에 서 있는 녀석에 비한다면 그저 범상한 것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