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닭인가, 꿩인가(2)
“그래서 오클랜드에선 누구고 우리 쪽에선 누군데?”
“음, 그게 누군지는 아직 안 나왔네.”
“에이, 치즈 빠진 피자도 아니고 그게 뭐야. 그 소식 그거 믿음직한 건 맞아?”
“조엘쪽 소스라니깐 아마 확실할 거야. 그래도 오클랜드면 캘리포니아니깐 그리 나쁘지는 않겠네.”
“나쁘지 않기는. 그쪽 팀 상황 지금 완전 재앙 났잖아.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10년은 밑바닥일걸.”
곧이어 들려오는 이야기가 나의 불안감을 조금은 달래 주었다. 어쩌면 이번 피아자 트레이드를 위해 구단에서 고의로 냈던 헛소문이 조금 늦게 퍼진 게 아니었을까?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이 됐다고 보기에 오클랜드와의 링크는 너무나도 뜬금이 없었다.
‘게다가 빌리 빈이면 출루율 덕후잖아.’
아직 내가 알고 있는 미래와 달라진 점은 내가 메이저에 콜업됐다는 점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빌리 빈의 시선을 끌었다는 말이 되는 것인데,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빌리 빈의 성향과는 전혀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내 입으로 인정하긴 슬픈 이야기였지만 현재 나의 가치는 주루, 그리고 수비, 그리고 제법 높은 기대를 받고있는 실링에 있었다. 게다가 나름대로 시장성을 지닌 한국인이라는 희소성까지 고려한다면 그가 좋아하는 가성비에 전혀 맞지 않는 타입인 것이다.
‘역시, 그냥 피아자를 데리고 오기 위해서 피웠던 연막이 늦게 터진 거라고 봐야겠지?’
***
“이거 한 방 제대로 먹었는데요?”
“젠장, 설마 라소다 그 영감 피아자를 그렇게 팔아치울 줄이야. 게다가 플로리다 녀석들도 이렇게 재빨리 움직이다니. 끄응.”
“듣기로는 피아자가 7년 1억 달러까지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깐요.”
“뭐 확실히 비싸기는 비싼데, 그래도 다저스만한 빅클럽이면 충분히 감당할만한 친구였을 텐데 라소다 영감도 참······. 어쨌거나 플로리다 녀석들도 제법 손이 빨랐어. 이거 상당히 곤란해졌군.”
빌리 빈이 리키 핸더슨의 댓가로 요구했던 두 명의 선수 중 제프 괴츠는 이미 플로리다로 넘어갔다. 하지만 곤란하다는 말과 달리 빌리 빈의 표정은 그리 곤란해 보이지 않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시 오퍼가 들어온 모양이로군요.”
“아직은, 뭐, 그래도 메츠 쪽 아직 외야가 불안한 건 여전하니깐 조만간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글쎄요, 이번에 피아자 딜로 유망주들이 아주 제대로 털렸는데 과연 연락이 올까요?”
“일단 찔러는 보겠지. Kang도 남았고, 아직 마이너에 외야 유망주들도 많잖아. 윌슨에 타이너에 헌터도 괜찮고. 게다가 아직 투수 풀도 쟁쟁하다고. 그래 봬도 필립스씨가 유망주 하나만큼은 아주 기똥차게 모아놨거든.”
따르릉
-메츠의 스티브 필립스 단장님입니다. 연결 할까요?-
“거봐, 연락 올 거라고 했잖아.”
***
마이크 피아자는 대단한 선수였다. 포수라는 포지션은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평균적으로 타격 적인 부분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피아자는 달랐다. 93년 풀타임 데뷔 이후 5년간 그는 항상 리그에서 손꼽히는 타격 성적을 기록해왔다. 비록 몇몇 말도 안 되는 괴물들에 묻혀 MVP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작년과 재작년의 경우 MVP 2위를 차지할 만큼 걸출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마이크 피아자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하지만 그런 마이크 피아자가 속수무책으로 휘둘리고 있었다. 4회 초, 마이크 피아자가 삼진으로 물러났다. 첫 타석 루킹 삼진에 이은 이번 경기 두 번째 삼진이었다. 덕아웃으로 돌아온 피아자가 거칠게 헬멧을 내려놓았다.
“젠장.”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가 로진백을 매만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180cm의 호리호리한 몸매. 야구에서 체격이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 투수임을 감안했을 때 왜소하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사내였다. 하지만 그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스타디움에 들어온 모든 이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페드로 마르티네즈.
입안이 바싹 말라왔다. 움켜쥔 주먹이 축축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내가 알고있는 마르티네즈는 달랐다. 세상이 알고있는 마르티네즈는 그저 작년 마침내 포텐을 폭발시키며 사이영을 수상한 리그 에이스이자 보스턴으로 건너와 로켓의 빈자리를 잘 메워주고 있는 훌륭한 투수에 불과했다. 물론 사이 영을 수상한 투수에게 불과하다는 표현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눈앞의 괴물에게는, 작년 사이 영을 수상하며 자신의 실력을 뽐낸 저 괴물에게는 불과하다는 그 표현조차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뛰고 싶어.’
이 시대, 아니 야구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유례없는 괴물.
월터 존슨, 사이 영, 톰 시버. 레프티 그로브,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클레이튼 커쇼. 과거부터 미래까지 등장했던, 그리고 등장할 수많은 시대의 지배자들 가운데서도 저 괴물은 특별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그의 공을 직접 상대해보고 싶은 욕망과 이런 순간 선발로 선출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실망, 그리고 내가 드디어 저 마르티네즈의 근처까지 다가왔다는 고양감이 한데 섞인 기묘한 감정이 몸속 어디에선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페드로 마르티네즈. 작년 사이영 위너 다운 모습. 압도적입니다. 메츠의 타자들을 상대로 6이닝째 9삼진. 피안타는 1개 뿐입니다.]
[7:0으로 크게 앞서는 가운데 또다시 보스턴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아, 페드로 마르티네즈 선수 어깨에 아이싱을 시작합니다. 오늘 경기는 더 이상 올리지 않겠다는 표시로군요.]
[닷새 후에 있을 양키스와의 경기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7회 초, 마르티네즈를 대신해 마운드에 올라온 것은 브라이언 버클리. 올해 처음 빅리그로 올라온 루키였다.
“Kang 준비하도록.”
“네.”
노아웃 상황. 2번 타자인 좌익수 버나드를 대신해 내가 타석에 들어갔다. 마르티네즈를 상대해보지 못한 아쉬움. 그래도 경기에 출전은 하게 됐다는 위안감이 가슴을 휩쓸었다.
‘꿩 대신 닭이라도.’
평소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던 긴장감은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어서 빨리 타석에서 방망이를 휘두르고 싶다는 욕심뿐이었다.
[브라이언 버클리!! 초구 와인드 업!!]
마운드에 선 투수의 피칭동작이 똑똑히 보였다. 극단적인 오버 쓰로우. 그의 손끝에서 누런 공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과연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만한 좋은 피칭, 그리고 좋은 공이었다.
따악!!
이제 막 메이저에 올라온 루키조차도 파악하고 있는 나의 약점. 바깥쪽 낮은 코스로 들어온 공에 나의 배트가 조금 밀려났다. 공을 후려친 손끝이 얼얼했다. 하지만 분명 달랐다.
[스윙!! 쳤습니다. 밀어친 타구, 2, 3루 간으로!!]
1루를 향한 나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가리비아의 말 처럼 나는 성장했다. 적들은 나의 약점을 정확하게 후벼팠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이제 더이상 나의 약점이 아니었다. 빠르고 강한 타구가 2,3루간을 스치듯 날아갔다.
[강한 타구!!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 몸을 날렸습니다만 빠졌습니다. 좌익스 데런 브렉이 서둘러 달려 나옵니다!! 그 사이 주자 1루 돌아 2루로!!]
[데런 브렉 그대로 공을 잡아 2루에!!]
1루를 지나 2루까지 아홉 걸음. 데런 브렉이 공을 잡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허벅지가 터질것처럼 부풀었다. 그리고 그 만큼 발걸음은 빨라졌다.
글러브에서 공을 뽑아내는 데런 브렉. 2루의 커크를 목표로 누런 공이 출발했다. 살짝 낮은 공. 악성구 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송구를 기다리던 커크의 몸이 흐트러졌다.
‘살 수 있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바닥을 쓸고지나가는 나의 몸 위로 커크의 글러브가 다가왔다. 아슬아슬한 순간. 크게 휘어진 나의 허리 옆으로 커크의 글러브가 스쳤다. 아웃판정을 기대하며 심판을 바라보는 커크. 하지만 나의 왼손이 조금 더 빨랐다.
“세이프.”
[늦었습니다. 2루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7회 초, 선두타자인 Kang이 2루타를 기록합니다. 발렌타인 감독의 대타작전이 성공하네요.]
***
수화기를 내려놓은 스티브의 이마에 땀방울이 가득했다.
“요한 페레즈에 그렌트 로버츠, 그리고 브라이언 콜.”
“와우!!”
나쁘지 않은, 아니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Kang에 제프 괴츠를 부르던 트레이드를 2년째 AA에서 헤매고 있는 외야수와 작년 5라운드 지명자. 그리고 최대 기대치가 메이저리그 불펜에 불과한 투수로 막아냈다. 메이저에서 뛸만한 선수는 전혀 없이 마이너를 전전할 선수들로 당장 1~2년 충분히 메이저에서 뛸 만한 선수를 받아낸 트레이드에 스티브가 웃었다.
“크, 단장님. 결국, 해내셨군요. 괴츠가 빠진 건 아깝지만 그래도 페레즈는 건졌네요. 게다가 로버츠나 콜도 나쁘지 않고요. 콜이야 아직 미지수지만 로버츠는 한 1~2년 정도면 충분히 불펜으로 활용할 만합니다.”
디오네스타의 표정이 밝았다. 애당초 목표했던 괴츠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아니 매우 훌륭한 트레이드였다. Kang을 미끼로 던졌던 것이 유효했다. 스티브는 Kang을 보호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내던졌다.
“Kang이 콜업된 덕분에 페레즈가 빙엄턴에서 주전으로 뛰어준 게 유효했어요. 설마 그 녀석이 1년 사이에 그만큼이나 성장했을 줄이야.”
“흐음, 글쎄. 아무리 그래도 실링 자체가 제법 차이가 나는데. 그래도 Kang에 로버츠를 데리고 오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에이, 그건 이미 끝난 이야기잖습니까. Kang이 툴이 좋긴 한데 타격생산성이 너무 떨어져요. 장기적으로 타율이 오를 가능성이야 조금 있지만, 배드볼 히터고 그 주제에 장타율이 높은 타입은 또 아니라서 여러모로 계륵이에요. 게다가 스티브가 아무리 멍청해도 Kang을 메인으로 했으면 아마 1:1 트레이드가 됐겠죠. 뭐 그 수비능력은 확실히 아깝습니다만 내야도 아니고 중견수잖아요.”
디오네스타의 말은 옳았다. 리드오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루 플레이나, 타율이 아닌 출루율이었다. 실링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크지 않은 심지어 장타율은 낮은 저런 타입의 선수는 보이는 스탯에 비해 실제 생산성은 매우 떨어진다.
“뭐 컨트롤 기간 이내에 가성비라는 말 자체를 씹어먹을 만큼 대단한 선수로 성장한다면 모르겠지만, 그거야 사람이 어떻게 예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잖아요.”
병아리와 꺼병이를 보고 그것이 닭이 될지 꿩이될지 알아보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빌리 빈과 디오네스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끝냈다.
다만 닭이라 생각했던 병아리가 봉이 되는 것은 그들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하늘에 빌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