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23화 (23/210)

# 23화.

에이전트(3)

“그러니까 협회에서 강진호 선수의 출전을 요청한 게 아니라, 대표팀의 형평성을 운운했다 이 말씀이신 건가요?”

“네, 에이전트에게 전해 듣기로는 그렇다고 하더군요.”

“하, 주상훈 이 새끼 진짜.”

박항식 기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지금 당장 정확한 이야기는 제가 들은 게 없어서 뭐라 말씀드리기 뭐합니다만······.”

뻔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관행, 뇌물, 인맥 그리고 담합. 23살의 젊은 강진호였다면 분연히 일어나 분노할만한 그런 이야기들. 이야기를 털어놓는 박항식 기자의 얼굴에선 어른으로서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청년에게 기성세대의 치부를 토로하는 부끄러움과 분노가 묻어났다.

“생각보다 대단한 일은 아니네요.”

“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여기 앉아있는 것은 23살의 강진호가 아니었다. 더럽고 지저분한 이야기였지만 그 굴러다니는 돈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화가 난다기보다는 그저 우스웠다. 차라리 진짜 형평성의 문제였다면 더 곤란했을 것이다. 돈으로 해결되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쉬운 일은 굳이 키울 필요가 없었다.

***

“아, 그게 그러니까 각 대학과 구단 간에 서로서로 조율된 부분도 있고, 그 아무리 외국 리그라지만 주전도 아니고 백업으로 뛰는 선수를 선발하기 위해 이미 조율된 걸 어그러트린다는 게 그게 쉬운 게 아니라서요.”

“아니, 외국 리그라니요. 메이저리그입니다. 메이저리그.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들이 모이는 메이저리그요.”

“아, 그거야 잘 알죠. 그런데 그 요즘 KBO도 수준이 많이 올라왔고, 또 그게 뭐냐. 그 이미 조율된 걸 어그러트리려면 사람들도 만나야 하고, 이게 또 그냥 만나서 되는 게 없어요. 밥도 먹어야지, 술도 한잔해야지. 집에 가는 길 대리라도 불러줘야지. 게다가 구단은 전국 팔도에 다 흩어져있으니 이게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니라 이겁니다.”

상훈은 자신의 말을 통 알아먹지 못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 놈이 참으로 답답했다.

‘최소한 2천은 챙겨야 해.’

진호의 자리를 만드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감독으로 재직 중인 연호대학의 외야수 정우길에게 3천만 원을 받고 외야수 자리 하나를 약속했으니 3천만 원을 돌려주고 그 자리를 진호에게 넘겨주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저 3천만 원이 혼자 해먹은 돈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잡음이 새어 나오지 않기 위해 이곳저곳에 들어간 돈만 2천만 원이 넘어갔다. 최소 2천은 받아야 그래도 본전치기는 하는 셈이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런 일들을 하는데 그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글쎄요. 한국에 친한 사람들이 많으면 좀 좋겠는데 아무래도 미국에서 야구를 하니 그게 참 힘들군요. 그 미국에서 야구 하는 종운이 같은 경우엔 4개 정도 들어갔는데, 강진호 선수는 얼마나 들어갈지 참 감이 안 잡히네요.”

“네, 잘 알겠습니다. 일단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죠.”

***

“신종운 선수가 4천을 냈다네,”

“신종운이라면, 그 종운이?”

“어, 너희 팀 마이너에서 뛰는 그 신종운. 어떻게 할까. 우리도 4천 건네 줄까?”

4천만 원, 물론 큰돈이었다. 하지만 나의 메이저 커리어 2년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푼돈이나 다름없는 금액이기도 했다. 망설일 이유 따윈 없었다.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다면 4천만 원 따윈 그야말로 그깟 4천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뭔가 찝찝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적법하지 않게 일을 처리한다고 해서 생기는 찝찝함이 아니었다. 주상훈, 신종운, 방콕 그리고 4천만 원.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가······.

“아!!!”

신종운. 드디어 생각이 났다.

나보다 한 살이 어린 그는 나와는 다르게 나름대로 성공한 야구 인생을 살았던 녀석이었다. 메이저에서 6년, 그리고 KBO로 복귀해서 8년, 이후로는 지도자 생활까지. 야구선수 전체를 통틀어 성공한 거로 따진다면 상위 1% 정도랄까? 물론 나와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학창시절 전국대회에서 얼굴을 마주쳤었고, 명목상으로나마 같은 메츠소속이었다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그 덕분에 녀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제법 힘들었다.

‘분명 2003년인가 2004년인가에 대대적으로 털릴 때 이름이 오락가락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내가 한창 힘들던 시절,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던 때였지만 그래도 워낙 커다랬던 사건인지라 대충이나마 기억이 났다. 당시  병역 브로커들이 잡히면서 프로야구판에는 대규모 병역 비리 사건이 터졌고 하필 그 용의자 중에 98년과 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들이 포함되어있었다. 금메달리스트가 되기 한참 전에 저질렀던 병역 비리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 덕분에 아시안 게임 출전자들 전체를 대상으로 수사가 확대됐고 그 과정에서 병역과 관계없는 각종 비리가 봇물 터지듯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불길은 빅리그에 막 데뷔했던 종운이에게까지 번졌다.

“토마슨. 종운이가 어느 대학 출신이죠?”

“잠시만, 신종운, 신종운이라······.”

토마슨이 자신의 노트북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여기, 찾았다. 신종운. 올해 메츠랑 계약하기 전까지 연호대학에 다녔다는데? 아, 주 감독 밑에 있었구나.”

망할, 역시 내 기억대로였다. 당시 각종 비리에 연루됐던 주감독은 아시안게임 대표선발에서도 비리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종운이 역시 포함돼있었는데, 당시 주 감독은 자기 대학 출신에 대한 편애는 있었을지언정 금전적 비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즉 종운이의 청탁이 아닌 학연에 따른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덕분에 막 빅리그에 데뷔했던 신종운은 욕은 먹었을지언정 법적인 책임은 지지 않을 수 있었다. 다른 병역브로커들에게 의뢰했던 멍청이들과 달리 신종운은 그저 스승의 어긋난 사랑으로 아시안 게임에 선발된것에 불과했었으니 말이다.

‘역시, 돈 받아 처먹었었네. 그래도 꼴에 제자라고 나름대로 사후 서비스는 해준 거였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나와 주상훈은 아무런 연결점이 없었다. 물귀신처럼 나를 물고 늘어지면 늘어졌지 주상훈이 굳이 나를 커버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돈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조금 번거롭더라도 다른 방식의 해결이 필요했다.

***

플로리다와의 원정 2차전.

“어이, 루키. 이리 와서 몸이나 좀 풀자고.”

그라운드의 헨더슨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가볍게 30미터 정도 거리에서 시작된 캐치볼은 60미터 롱토스까지 발전한 뒤에야 끝이 났다.

“언제 봐도 어깨가 참 일품이란 말이지. 그 정도 어깨면 투수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학창 시절에 코치들이 투수 권유하지 않았어?”

“중학생 때까진 투수랑 타자를 겸업했었는데, 고등학교 올라와선 좀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투수보다는 타자가 재밌잖아요.”

“그건 그렇지. 선발투수들 4, 5일에 한 번씩밖에 경기를 못 뛰는 걸 보면 참 불쌍해. 이 재밌는 야구를 4, 5일에 한 번씩밖에 못 하다니 말이야.”

마흔넷, 한국 나이로 마흔여섯까지 빅리그에서 뛰고 그걸로 모자라 2년을 더 독립리그에서 뛰었던 야구광인 헨더슨다운 말이었다.

“자자, 경기까지 아직 한창 남았는데 페퍼게임이나 좀 하자고.”

“그럴까요?”

흔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미국에 온 이후 경기 전 페퍼 게임을 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현재 팀에서도 이걸 하는 사람은 저 헨더슨이 유일했다.

“난 시합 전까지 이 공을 맞히는 감각을 가지고 들어가는 게 참 좋더라고.”

내가 올려주는 공을 받아치며 헨더슨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페퍼 게임은 히팅포인트와 스윗 스팟을 조절하기에 적절한 연습이었다. 물론 경기 전 티배팅과 프리배팅까지 끝낸 상황에서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었지만 말이다.

20개 정도의 페퍼 게임을 끝으로 헨더슨이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루키, 번번이 고마워. 너도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알았지?”

헨더슨은 그저 생각없이 예의상 건낸 이야기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입밖으로 이야기를 꺼낸 이상 눈앞에서 하는 부탁을 거절하긴 힘들 것이다. 게다가 이건 헨더슨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헨더슨씨.”

“응? 뭔데?”

“제가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겼는데, 그래서 말인데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