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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29화 (29/210)

# 29화.

전설과의 만남(1)

1998년 대한민국이 뒤집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야구였다. 하지만 그 인기에 비해 한국의 야구는 변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80년대 일본의 2군 선수들이 와서 프로를 평정하는 그런 현격한 차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 프로 무대를 정복한 선수들이 일본에 가서 그저 평범한 수준, 혹은 그것도 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한국 야구팬들에게 항상 콤플렉스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박찬화의 존재는 그들의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치유해주고, 또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MLB란 NPB 최고의 선수들조차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천상의 리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MLB에는 이미 성공한 일본인 투수가 존재했다. 메이저 진출은 박찬화보다 1년 늦었지만, 데뷔와 동시에 신인왕을 차지하며 리그 최정상의 에이스로 군림하는 노모 히데오.

그런 의미에서 메이저에서 활약하는 유일한 동양인 타자 강진호의 활약은 그런 야구팬들에게 훌륭한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은 대중적인 부분에서 진호의 인기는 박찬화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갑작스럽게 진호의 수상 소식이 터졌다.

-메이저리거 강진호, 6월 이달의 선수 수상!!-

-메이저리그 이달의 선수란?-

-방망이 하나로 메이저리그를 정복한 위대한 대한민국인 강진호!!-

-강진호, 98시즌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정조준하다.-

6월 내내 단 한 번도 이주의 선수를 수상하지 못했고, 보통 이런 수상에서 가장 중요한 홈런 개수에서 현격히 뒤지는 강진호가 이달의 선수를 받으리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물론 설레발 치기 좋아하는 언론들은 종종 강진호의 수상 가능성을 논하곤 했지만,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고, 심지어 설레발을 치는 기자 본인도 그것이 설레발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7월 2일 발표된 강진호의 6월 이달의 선수 소식은 강렬하게 사람들을 자극했다.

“야, 들었어? 강진호가 이번에 아주 제대로 일냈다던데.”

“뭔데? 또 홈런 쳤대?”

“아니, 그건 아니고 6월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그게 대단한 건가? 박찬화도 못 받은 상이야 혹시?”

“그게 투수는 이달의 선수 말고 이달의 투수라는 상이 따로 있는데 우리 찬화도 아직 한 번도 못 받은 상이래. 그리고 그 신인왕인가? 그것도 엄청 유력하다던데?”

“시, 신인왕? 이야, 강진호가 잘한다, 잘한다 말은 많았는데, 진짜 엄청 잘하나 보네.”

또한 아직은 설레발에 가까운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신인왕이라는 단어는 한층 더 강렬했다. 이달의 선수가 무척 대단한 타이틀 중 하나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에는 없는 타이틀인 만큼 솔직히 말해 그리 와 닿는 타이틀은 아니었다. 반면 신인왕은 달랐다.

“근데, 그래도 이제 7월인데 신인왕은 조금 급하지 않나?”

“에이, 6월 이달의 선수라잖아. 이게 신인들만 대상으로 하는게 아니라 메이저리그 전 선수 통틀어서 제일 잘한 선수라는 의미니까, 신인들끼리만 비교하면 엄청 차이 난다는 소리지.”

“그런가? 근데 메이저에서 제일 잘한 선수라는 소리는 그 새미 소사나 마크 맥과이어보다 잘했다는 거야? 그 친구들 지금 홈런만 막 스무 개 서른 개씩 치지 않았나?”

“그렇기는 한데, 그 타율이 아주 엄청나게 차이 난다나 봐. 거기다가 강진호가 아주 날쌘돌이잖아.”

“그런가?”

하지만 사람들의 화제에 올랐다고 해도  대중적 인기라는 부분에서 진호에게 불리한 점이 존재하는 것은 여전했다. 기본적으로 메츠의 경기는 새벽 2시, 혹은 3시 시작이었다. 더욱이 닷새에 한 번씩 한 경기를 오롯하게 책임지는 선발투수와 달리 한 경기에 몇 번 얼굴을 비치지 않는 타자를 응원하기 위해 그 시간에 일어나 경기를 관람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야, 야. 이거 봐봐.”

“뭔데? 라몬 마르티네즈 등판이 하루 밀렸네. 그게 왜? 아 잠깐만. 이렇게 되면?”

“맞지? 맞지?”

“어, 맞는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특별한 일만 없으면 만나겠는데?”

-7월 27일 일요일. 박찬화, 강진호 선발 맞대결 예정!!-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7월 중순도 채 되지 않았고,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다저스의 1선발로 활약 중인 박찬화였기에 일정이 당겨지면 당겨졌지 미뤄질 확률은 극히 낮았다. 26, 27. 메츠와의 2연전. 박찬화와 강진호의 만남이 높은 확률로 예고됐다.

***

7월 초, 6월 이달의 선수가 발표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에이전트를 통해 뜻밖의 섭외가 들어왔다.

“에? 방송 출연이요?”

“네, 메츠의 중계를 전담하는 WOL-TV에서 요청이 왔군요. 야구 관련 토크쇼, 그것도 한 꼭지정도의 녹화방송이니까 크게 부담 가는 자리는 아닐 겁니다.”

“아니 부담이 가는 건 아닌데, 갑자기 방송에서 저를 왜······.”

“그야 요즘 메츠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가 Kang이니까요. 무려 신인 출신으로 이달의 선수를 수상한 선수 아닙니까. 메츠 프랜차이즈에선 처음 있는 일이에요.”

98년의 한국이라면 시즌 중에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을 일종의 헛바람으로 볼 확률이 높았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야구선수의 TV 출연에 대해 특별히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일은 드물었다. 아니 오히려 최고 레벨의 스타라면 시즌 중에도 종종 전국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입담을 과시하곤 했다. 고작 뉴욕지역방송, 그것도 우리 팀의 경기를 중계해주는 채널의 야구 관련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 정도로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다음 휴식일 오후 4시라고 했죠?”

“네. 그 날, 저희 쪽 직원이 하나 나갈 테니 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틀 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방송국의 스튜디오에 발을 디뎠다. 전생에서도 나를 찾아오는 기자나 리포터를 상대하는 일은 종종 있었어도 이렇게 직접 방송국으로 나와 토크쇼를 녹화해본 경험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토크쇼의 진행자는 금발에 도발적인 몸매를 갖춘 젊은 여성이었다. 야구 관련 토크쇼였기에 응당 50대의 칙칙한 중년 남자를 예상했던 만큼 뜻밖이었다.

“오늘 쇼의 사회를 맡은 카트리나 에반스라고 해요. 이런 쇼는 처음인 걸로 아는데, 어차피 이상한 부분은 다 편집해줄 테니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 네. 알겠습니다.”

WOL-TV 자체가 우리 메츠의 중계방송국이었던 만큼 특별히 부담이 가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팀의 분위기부터 나의 최근 컨디션. 그리고 한국의 야구문화 등 어렵지 않은 질문들이었다.

“오늘 녹화 수고하셨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15분 가량의 방송분량이라고 했지만, 녹화 자체는 1시간 30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이제 남은 일정이라면 집에 돌아가 가리비아가 챙겨주는 저녁을 먹고 TV나 보면서 빈둥거리는 것 정도였다.

“혹시 괜찮으시면 같이 저녁 어떠신가요?”

“저녁이요? 데이트 신청인가요?”

그런데 뜻밖에도 에반스 쪽에서 나에게 데이트를 신청해왔다.

“네. 아, 혹시 만나는 여성분이 있는건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뭐 좋습니다. 먹죠, 저녁.”

미녀의 데이트 신청.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야구에 지장을 주는 만남이라면 안될 일이었지만 휴식일 저녁 가벼운 디너 데이트까지 거절해가며 야구에 몰두하기에 23살의 육체는 너무 건강했다.

기본적으로 야구를 하던 시절, 나는 성(性)적인 부분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이었다. 프로 선수가 운동 외에 다른 것에 정신을 판다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천억의 자산을 쌓아 올리고, 2번의 이혼과 3번의 결혼을 경험한 지금의 나는 조금 달랐다.

‘뭐, 이제 와 새삼 여자한테 정신 팔려서 운동을 소홀히 할 건 아니니까 말이야.’

한창때, 육체적인 매력이 넘치는 성인 남녀의 디너 데이트였다. 카트리나는 적극적이었고, 나 역시 그에 못지않게 적극적이었다. 적극적인 남녀가 만났으니 저녁 식사가 단순히 식사로 끝날 리 만무했다.

다만 가리비아와 함께 생활하는 만큼 나의 집으로 가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가난한 대학생처럼 방문에 양말이나 걸어놓기에는 함께하는 여성의 수준이 너무 높았다.

‘호텔로 가야 하나?’

하지만 호텔로 가자니 또 여러 가지로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종업원에게 얼굴이 걸리지 않는 무인텔이 간절했다.

“우리 집으로 가죠. 바로 이 근처에요.”

나의 망설임을 눈치챈 것일까? 식사 중에 마신 와인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가 나에게 꼭 맞는 제안을 건네왔다. 망설임은 없었다. 나의 차가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마치 영화와도 같은 열정적인 키스가 시작됐다. 1년 가까이 참아온 나의 분신은 단단했고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한바탕 남녀 간의 볼일이 끝난 침대 위, 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카트리나가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아시아 쪽 남자들은 소극적이라고 하던데, Kang을 보니까 그렇지도 않네.”

거사를 치른 덕분일까? 그녀의 말에서 격식이 사라졌다.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애초에 한국어와 다르게 영어에서 formal speech란 상대방을 높이는 존댓말이라기보다는 그저 예의를 갖춘 조심스러운 어투의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글쎄, 유럽이라고 다 똑같지 않은 것처럼 아시아에도 여러 나라가 있으니까.”

“그런가? 어쨌든 내 생각처럼 그라운드에서 만큼이나 여기서도 섹시하네.”

부드러운 숨결이 나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따뜻한 손가락이 나의 몸을 더듬었다. 일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나의 분신이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의학의 힘 따윈 필요 없었다. 23살은 본래 그런 나이였다.

***

“이봐 루키, 쟤는 왜 저렇게 죽상이야?”

LA로 향하는 비행기 안, 헨더슨이 나에게 다가왔다.

“누구요?”

“저기 쟤. 피아자 말이야.”

“지금 우리 다저스로 가는 거잖아요.”

“근데, 그게 왜.”

헨더슨의 질문에 한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리 자신이 관심 있는 것 말고는 신경을 쓰지 않는 헨더슨이라지만 설마 피아자와 다저스의 관계조차 모를 줄이야.

“그게, 그러니까······.”

마이크 피아자는 메이저리그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참 독특한 캐릭터였다. 그는 지독하게 재능이 부족한 남자였다. 부유한 아버지를 둔 덕분에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으며 야구에 전념했지만 그럼에도 학창시절 그는 아무런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 그가 프로가 된 것은 실력이라기보다는 당시 LA다저스의 감독이던 토미 라소다와의 친분에 의한 낙하산에 가까웠다. 그렇게 88년 다저스의 62라운드. 무려 1390번 픽이라는 사실상 버리는 카드로 입단한 그는 4년간의 담금질 끝에 마침내 포텐셜을 폭발시켰고 93년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이후 다저스의 중심타자로 5년간 활약하며 5년 연속으로 올스타와 실버슬러거를 휩쓸고, MVP 투표에서 9, 6, 4, 2, 2위라는 성적을 찍었던 피아자는 당연히 다저스와 고액의 재계약을 예상했다. 하지만 다저스가 내민 계약액수는 그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사실 부유하게 자라난 피아자에게 중요한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실패한 선수로 낙인 찍혔던 그는 자존심을 충족시켜줄 메이저 최고 수준의 대우라는 타이틀을 원할 뿐이었다.

‘협상을 통해 금액을 조율해보자.’

하지만 다저스의 생각은 달랐다. 다저스는 자신들의 오퍼액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대로 플로리다의 유망주 세트를 받고 피아자를 넘겨 버렸다.

62라운드, 1390번픽으로 메이저에서 성공했다는 완벽한 배경 스토리와 우수한 성적. 당연히 다저스의 프랜차이즈가 될 줄 알았던 피아자는 그 트레이드 한 번으로 다저스에 가지고 있던 거대한 애정을 원망으로 전환시켰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저스에 대한 원망을 공공연하게 표시했고, 그렇기에 메이저리그 관계자 중 피아자와 다저스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단 하나, 내 옆에서 캔맥주를 홀짝거리는 리키 헨더슨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냥 트레이드 시켰다고 징징거리는 거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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