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35화 (35/210)

# 35화.

도약(1)

“콜업 된 거야?”

“뭐, 보다시피.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긴 한데 드디어 이 몸이 활약할 시간이 된 셈이지.”

“우리 팀이 드디어 올 시즌을 포기했구나.”

“뭐 인마?”

프레스톤이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마이너에서 함께 박박 구르던 우리가 드디어 빅리그의 라커룸에 함께 섰다. 물론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녀석과 나는 BA 리포트 탑 50위 안에 들어가던 유망주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당연할 것 같은 일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잘 왔다.”

“뭐 당연히 올 곳을 온 거지. 그나저나 너 요즘 잘나가더라?”

“뭐, 나야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으니까.”

“어휴, 이 자식 못 보던 사이에 엄청 뻔뻔해졌네.”

프레스톤과 잠시 웃고 떠들며 잡담을 나누는 사이 문득 내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잠깐 아직 9월이 아니잖아.’

9월은 커녕 아직 7월도 채 지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확장 로스터가 시작되는 것은 9월부터였다. 즉 프레스톤이 올라왔다는 말은 누군가가 자리를 비운다는 말과도 같았다.

‘허스키가 저지른 게 조금 심각한 에러라고는 해도, 고작 에러 하나에 마이너 옵션을 사용할 리는 없으니 데이브일 것 같은데, 근데 왜 투수가 아니라 프레스톤이지?’

일반적으로 25인 로스터는 선발 5인, 마무리, 셋업, 세컨더리 셋업, 그리고 릴리프 세 명과 스팟 스타터로 구성된 투수 12인. 그리고 포수 두 명, 내야 여섯 명, 외야 다섯 명으로 이뤄진 야수 13명으로 구성된다. 만약 투수에 조금 더 힘을 줄 경우 내야와 외야를 동시에 감당 가능한 멀티 유틸리티를 하나 집어넣고, 그렇게 생긴 빈자리에 투수를 하나 더 넣는 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 팀의 25인 로스터에 투수는 12명이었다. 즉 지금 메츠의 투타를 고려한다면 투수 쪽 인원을 늘리면 늘렸지 결코 줄일 상황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

스티브 필립스는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이건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저희가 지원해드릴 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브라이언은 팀의 핵심적인 자원 중 하나입니다. 그를 트레이드시키고 그 빈자리에 23살짜리 애송이를 집어넣으라니요.”

“글쎄요, 최근 두 달 동안 브라이언이 선발로 출장한 경기는 여덟 경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는 프레스톤 역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프런트의 판단입니다.”

“좋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치죠. 선발, 선발은 어떻게 된 겁니까. 이후를 내다보려면 최소한 알 라이터와 짝을 이룰만한 에이스급 선발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단기전은 결국 얼마나 강력한 선발투수를 가지고 있느냐의 싸움인 거 잘 아시잖습니까. 그런데 히데오 노모라니요. 지금은 1996년이 아니에요. 대체 언제적 히데오 노모입니까.”

“현재 시장 상황을 보세요.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그만한 투수를 데리고 온 것도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히데오 선수의 경우 5일 휴식을 꼬박꼬박 지켜주면 발렌타인 감독님이 원하는 수준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저희 분석팀의 판단입니다.”

“하······.”

이 멍청한 프런트 놈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너무 뻔했다. 모든 것을 걸고 대권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를 지기 싫다는 저열함. 그런 주제에 지금 이 정도의 성적에서 벌써 시즌을 포기했다는 비난 여론을 피하고 싶은 얄팍한 자기 보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는 이 정도면 포스트 시즌을 노려볼‘만’하다는 궁색한 변명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프런트의 저 장사꾼 놈들은 그놈의 돈을 가장 우선시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필 구매해온 투수가 일본이라는 제법 커다란 마켓의 대표주자인 히데오 노모라는 사실이 그 증거였다.

‘젠장, 오직 돈, 돈, 돈. 돈밖에 모르는 머저리들 같으니.’

그야말로 멍청한 착각이었다. 언제나 팀의 최종목적은 우승이어야 했다. 미래의 자원까지 끌어모아 지금 우승을 향해 달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설사 지금을 포기하고 후일을 기약하는 것도 역시 그 후일에 우승하기 위함이었다, 포스트 시즌 진출을 노리는 전력? 결국, 기록에 남는 것은 오직 우승뿐이었다. 프런트의 머저리들은 입장수익과 자기 보신에 눈이 팔려 그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Kang만 하더라도 저희 말처럼 훌륭한 전력으로 자라나지 않았습니까. 저희의 판단대로라면 프레스톤 역시 Kang에 못지않은 재능을 갖춘 선수입니다. 게다가 그는 메츠의 상징적인 캐릭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끄응······.”

발렌타인이 입가까지 올라온 욕설을 집어삼켰다. 어쩔 수 없었다. 팀을 만드는 것은 오직 GM의 영역이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현명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

-뉴욕 메츠와 LA 다저스. 브라이언 맥레이+그렉 맥마이클, 히데오 노모. 트레이드-

-LA다저스의 약점을 찌른 스티브 필립스의 성공적 트레이드.-

“개소리하고 있네.”

대체 왜 프레스톤이 올라온 것인지, 나의 궁금증이 풀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팀의 25인 로스터를 차지하던 브라이언과 그렉 맥마이클을 주고 노모를 받아오는 트레이드였다. 물론 지금 당장 표면적인 가치로 본다면 우리가 약간 이득을 본 트레이드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노모의 향후 몇 년간 성적을 잘 알고 있었다.

‘노모는 앞으로 몇 년간 꾸준히 몰락할 거야.’

아직 제법 많은 사람이 노모의 상당히 높은 삼진율을 보고 그가 당장이라도 부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물론 부활하긴 부활한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5년이 지난 뒤 슬라이더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한 다음 이야기였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노모는 가끔 터지는 날에는 2~3선발급의 기량을 보여주지만, 평균적으로 따졌을 때는 5선발에 미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선발투수에 불과했다.

‘논 웨이버 트레이드 기간도 슬슬 끝났고, 이제 보강은 없다고 봐야 하는 건가?’

아쉬웠다. 비록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는 엉망이었고, 조직력은 모래알과 같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내셔널리그 전체를 통틀어 다섯 번째로 많은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아주 약간의 보탬만 더해진다면 우리는 더 높은 곳을 노릴 수 있었다.

“이봐 루키. 저기 네 친구 녀석. 제법 괜찮은데?”

“프레스톤이요? 당연하죠. 저래 봬도 저 녀석 나름대로 야구 영재 교육까지 받고 자란 엘리트 야구인이잖아요.”

“그래서 저 친구 주 포지션이 어디야?”

프레스톤의 포지션을 묻는 헨더슨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깃들어 있었다.

“설마 포지션 경쟁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경쟁은 무슨.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거지.”

“뭐, 일단 외야는 가리지 않고 다 보는데, 주로 오른쪽에서 뛰는 친구예요.”

“그래?”

우익수라는 이야기에 헨더슨의 경계심이 8할쯤 사그라들었다. 만 39세의 전설적인 베테랑이라고는 믿기 힘든 쪼잔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한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사그라들지 않는 저 욕심이야말로 그가 39살의 나이까지도 메이저에서 현역으로 뛸 수 있는 원동력일 것이다.

‘근데 그러고 보니, 헨더슨 씨는 프레스톤의 아버지가 빅리그에 데뷔하기 전부터 풀타임 빅리거였는데, 이제 프레스톤이 데뷔하는 시점에도 여전히 빅리거네?’

그러고보니 곁에서 함께 생활하며 깨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주는지라 종종 잊게 되지만 눈앞의 이 선수는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얼마 전 나에게 타격을 지도해줬던 테드가 타격의 신이라면 헨더슨은 주루의 신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의 조언이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이미 며칠 전 뼈에 사무치게 경험했다.

“헨더슨 씨, 혹시 제 주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주루?”

잠시 고민하며 망설이던 헨더슨이 입을 열었다.

“빠르지.”

“그리고요?”

“상당히 빨라.”

“그래서요?”

“그러니까······, 빠르다니까.”

“그러니까 빠른 거 말고 뭐 다른 거 없어요?”

헨더슨의 얼굴에 곤란함이 서렸다. 그 순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진심이구나.’

빈말 따윈 하지 않는 헨더슨이었다. 그의 눈에 나의 주루에서 칭찬할 구석이란 그저 그 빠르다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본래라면 잔뜩 늘어놨을 악평들을 늘어놓지 않는 것은 최근 쌓아 올린 친분 탓일 것이다.

내심 주루에 자신이 있던 나에게 스피드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부족하다는 그의 말은 조금 충격이었다.

‘그래, 기준이 너무 높은 걸꺼야. 그래도 그 리키 헨더슨의 눈에 그나마 스피드라도 괜찮게 생각되는 게 어디야.’

애당초 질문의 목적 자체가, 칭찬을 듣기 위함이 아닌, 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한번 헨더슨에게 물었다.

“그러면 특별히 부족한 점은요? 이건 당장 고쳐야겠다 싶은 건 뭐죠?”

나의 그런 질문에, 칭찬할 때는 그토록 고민하고 머리를 굴리던 헨더슨이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일단 내가 보기엔 슬라이딩이 가장 큰 문제 같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너 벤트 레그 슬라이딩을 해야 할 타이밍에도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경향이 있더라고. 심지어 어제 경기 같은 경우 그대로 홈으로 밀고 나가야 할 타이밍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선택했잖아. 뭐 포수가 좀 두툼하긴 했지만 그래도 거기서는 녀석을 날려버리겠다는 각오로 부딪히는 게 더 옳았어. 그랬으면 아마 그 포수 녀석 아예 공을 받지도 못했을걸?”

“그건, 부딪히면 괜히 부상을 입을 위험이 있으니까······.”

“무슨 소리야, 부상 위험이라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쪽이 훨씬 높지. 그때는 차라리 몸으로 밀어버리는 게 안전하다고. 아 잠깐만 설마 포수 녀석이 다칠 수 있다는 이야기인 거야? 에이, 그건 아니지.”

헨더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애당초 홈에서 그따위로 자세를 잡고 있다는 건 어디 하나 부러질 각오가 됐다는 이야기잖아. 그런 거 일일이 피해 주면 괜히 얕보인다고. 그렇게 되면 개나 소나 전부 다 홈에서 그따위로 나올 텐데 그럴 때마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일을 할 생각이야?.”

“그건······.”

“뭐 너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자체는 확실히 훌륭해. 솔직히 말해서 쓸데없을 만큼 엄청 훌륭하지. 무슨 체조 선수처럼 공중에서 몸을 휙휙 틀어대는데, 솔직히 나도 그렇게는 움직일 자신이 없겠더라. 근데 말이야 너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동작들 계속하다가는 정말 큰일 난다. 지금이야 그냥 다음 날 근육통이 좀 있고 말겠지. 그런데 그게 나이를 먹으면 또 그렇지가 않아요. 너처럼 그런 이상한 짓 하다가 근육 터진 애들이 한 둘이 아니야.”

“하지만 아웃당하지 않으려면 별수 없잖아요.”

“물론 그렇긴 해. 그런데 아웃당하지 않으려면 그냥 베이스에 공보다 먼저 도착하면 되는 건데, 넌 그럴만한 상황에서도 굳이 글러브에 닿지 않으려고 애를 쓰잖아. 뭐랄까, 선수랑 부딪히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뭐 내가 보기엔 그렇게 보여.”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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