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52화 (52/210)

# 52화.

시즌 이후(2)

-올해의 신인왕. 내셔널리그에선 뉴욕 메츠의 Kang이 아메리칸리그에선 오클랜드의 벤 그리브가 수상!!-

-내셔널 리그 신인왕 강진호. 2위인 케리 우드 선수와는 11점 차. 1위 표에서 이미 승부는 갈렸다.-

-총 32명이 투표한 케리 우드와 토드 헬튼. 반면 강진호에겐 31명뿐? 강진호에게 투표하지 않은 기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담당 기자인 걸로 추측된다.-

-뜬금없는 1위 표 한 장으로 4위를? 애틀랜타의 케리 리젠버그는 누구?-

월드 시리즈가 끝나고 정확히 일주일 후, 나의 신인왕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생각했던 대로 박빙의 승부였지만 결국 신인왕의 영광은 나에게 돌아왔다. 케리 우드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였지만 9월 마지막 한 달, 그가 부상으로 결장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토드 헬튼이야 눈에 보이는 성적은 좋았다지만 솔직히 구장 빨을 제대로 받았음을 부정하기 힘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기쁜 마음이었다. 하지만 마냥 붕붕거리며 들뜨지는 않았다. 신인왕이라고 해봐야 장래 뛰어난 활약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유망주의 의미에 불과했다. 신인왕 발표 하루 후에 발표 되는 MVP와 사이 영 수상자야 말로 진짜 1998 시즌의 주인공들이었다.

‘역시 내셔널리그 MVP는 새미 소사가 받겠지?’

본래 역사에서 98년 MVP는 새미소사에게 돌아갔다. 역사에 남을 치열한 홈런 레이스는 결국 마크 맥과이어가 70홈런이라는 단일시즌 기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다홈런을 기록하며 승리했지만, 그가 소속된 세인트루이스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어차피 결정된 사실에 관심을 둘 이유는 없었다. 지금은 나와 상관없는 MVP에 관심을 쏟기보다 나의 몸을 만드는 데에 더 신경 쓸 시간이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나에게 상상 이상의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진호 내셔널리그 MVP 공동 24위!!-

-동양인 최초 MVP 표 획득!!-

-올 시즌 내셔널리그 신인 중 유일!!-

고작 1표, 그것도 10위 표 한 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셔널리그 16개 팀 32명의 대표 기자 중 하나가 나를 메이저에서 10번째로 훌륭한 선수였다고 평가한 것은 분명 대단한 사건이었다. 현지 언론은 그저 괴짜 기자 하나의 기행 정도로 치부했지만, 한국의 스포츠 일간지들은 바로 어제 신인왕 소식에 이어, 이것을 1면에 대서특필했다.

‘어지간히 찍을 사람이 없었나 보네.’

조금 우쭐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가 MVP 투표에서 표를 받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상당히 먼 미래 각종 수비 관련 스탯이 조금 더 발달되고, 그것에 충분한 가치가 부여된 다음이라면 올해 나의 성적으로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나는 그저 수비가 괜찮은 타격 준수한 외야수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밀려드는 인터뷰를 적당히 소화하며 차곡차곡 몸을 회복시켰다. 그리고 12월 아시안 게임에 맞춰 몸을 만들어갔다. 추운 뉴욕에서 벗어나 따뜻한 플로리다에서 몸을 키웠다. 그렇게 1달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국가대표 소집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작년에는 멕시코리그에서 뛴다고 돌아가지 못했던 한국이었다. 마이애미에서 애틀랜타를 거쳐 17시간에 가까운 비행 끝에 김포국제공항에 발을 내디뎠다. 공항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몰려드는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카메라.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일인 만큼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보리스가 고용해둔 경호원들이 기자들을 적절히 막아섰다.

“강진호 선수, 2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심정이 어떠십니까.”

“이번 아시안 게임에 임하는 각오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시즌이 끝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강진호 선수!!”

나를 애타게 부르는 수많은 기자들. 굳이 여기서 입을 놀릴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아시안 게임 대표팀 합숙에 참여하면 자동으로 인터뷰를 하게 될 테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미리 준비된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향할 수는 없었다. 이미 집 앞은 기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예약해둔 호텔로 향했다.

“엄마!! 아빠!!”

“어이구, 우리 아들. 어디 얼굴 좀 보자.”

넓은 호텔 방 안에서 나를 기다리던 것은 부모님이었다.

“얼굴은 무슨. 두 달 전에도 미국에 놀러 와서 봤잖아.”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그래도 얼굴이 진짜 많이 좋아졌네. 그땐 정말 홀쭉하더니만.”

“뭐, 시즌도 끝났고 푹 쉬었으니깐.”

가볍게 룸서비스를 시키려는 나를 어머니가 만류했다. 어머니가 들고 온 가방 안에는 반찬들이 가득했다.

“오래간만에 봤는데 집밥을 먹어야지.”

“어휴, 엄마는 뭐 이런 걸 다 해오고 그래. 그냥 룸서비스 시키면 되는데.”

“그런 말 말고 어여 먹어. 너 좋아하는 고기산적 해왔으니깐.”

식사를 끝내고 나와 함께 자겠다는 어머니를 아버지가 강하게 만류했다.

“하지만 진호 아버지. 오래간만에 봤는데······.”

“어허, 이 여편네가. 다 큰 아들이 내일부터 국위선양을 위해서 태극기를 달러 가는디 부모가 돼서 도움을 줘야지 방해해서 되겄어? 괜히 신경 쓰이게 허지 말고 푹 쉬게 하자고. 어차피 아세안 게임 끝내면 한국에 며칠 있을꺼 아녀. 또 그거 아니더라도 우리가 미국에 가면 되는 일이고.”

“아녜요. 아버지. 하룻밤 정도는 괜찮아요. 어차피 내일 모여서 바로 시합하는 것도 아닌데요. 뭘.”

“어허, 사내가 큰일 하는데 가족이 신경 쓰이게 하는 거 아니다. 아 뭐혀. 빨리 일어나지 않고.”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이 다 그렇듯, 아버지의 강한 어조에 결국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룻밤 정도는 함께해도 좋을 텐데, 아버지의 완강한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저거 합숙 갈 때 반찬들 잘 챙겨서 가고. 선배들이 괴롭히거나 하면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수그리고. 알았지?”

“아, 거 여편네 참말 많구먼. 저 미국에서도 난다 긴다 허는 놈들 다 이기고 돌아온 게 우리 아들인데, 괴롭히긴 누가 괴롭힌다고 그려. 지금 우리 진호가 국가대표들 사이에서도 이거여. 이거.”

엄지손가락을 들어가며 어머니를 달랜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방문 밖으로 나섰다. 경호원 중 일부가 부모님을 따라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첫날밤이 흘러갔다.

다음 날, 내가 나왔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들러 인사를 하고, 곧바로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리 나와있는 합숙 일정에 따르자면 제주에서의 합숙기간은 보름이었다. 그나마 한국에서 가장 따뜻한 곳에서 미리 만나 합을 맞춘다는 계획이었다.

‘사실 태국에 그냥 일찍 가는 편이 제일 좋긴 할테지만 말이지.’

한국에서 가장 따뜻하다고는 하지만 11월 중순 제주의 기온은 상당히 낮았다. 생활하기에 힘든 추위는 아니었지만,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기온임은 확실했다.

“여어, 강진호. 오래간만이다.”

“진호 선배!!”

“쟤가 그 강진호야?”

합숙 장소에는 이미 많은 선수가 들어와 있었다. 아무래도 병역미필자들로만 선수단을 구성하다 보니 대부분이 내 또래였고 고교 시절 전국 대회등을 통해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세계 청소년 야구 대회에서 나와 함께 활약했던 녀석들도 두 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잘 지냈냐? 아 멍청한 질문인가? 당연히 잘 지냈겠지. 그러니깐 신인왕도 하고 MVP표도 받고 그랬겠지.”

“그러는 너도 만만치 않더구만 뭐. 이번에 프로리그 구원왕 땄다고 들었는데?”

“잘 알고 있네? 한국 야구도 종종 챙겨 보나봐?”

“집에서 내가 나온 스포츠 신문을 미국으로 보내주시거든. 거기에 네 이름도 종종 보이더라.”

나의 이야기에 녀석이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천하의 메이저리거 강진호한테 칭찬을 다 듣고 부끄러운데 이거.”

“메이저리거가 별건가. 너도 나중에 FA 기간 채우고 넘어오면 되지.”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냐.”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앞의 녀석이라면 가능했다. 말년에 조금 추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 녀석은 만 37세의 나이에, 그것도 팔꿈치 부상까지 안고 메이저에 데뷔했던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마무리 투수였다. 늙고 병든 몸이 아닌 비교적 쌩쌩한 상태라면 충분히 메이저에 통용될만했다.

“우리가 세계 대회 우승 한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잖아.”

“그거야 네가 있으니깐 한 거고. 그때 너 진짜 괴물이었잖아.”

“괴물은 무슨.”

“근데 그런 괴물도 3년이나 썩어서 간신히 올라가는 그런 곳, 어휴 난 자신 없다.”

녀석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입으로는 그렇게 약한 소리를 내뱉는 가운데 눈빛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찬화 선배는? 아직 도착 안하신거야?”

“안 하시기는 진작에 도착해서 감독님이랑 따로 이야기하러 가셨지. 그러고 보니 너도 메이저리거인데 따로 부르지 않으시려나?”

“에이, 찬화 선배야 메이저리거도 메이저리거지만 투수 중에 나이가 제일 많으니깐 부르신거겠지.”

“그런가?”

아니었다.

“음, 실제로 보니 상당히 체격이 좋구만. 박동엽이라고 하네.”

“아, 강진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부탁은 내가 해야지.”

대표팀의 박동엽 감독이 찬화 선배에 이어 나를 바로 불러냈다.

‘이 양반 조금 생각이 없네.’

무슨 해외파와 국내파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물론 메이저리그가 세계 최고의 리그인 것은 옳았지만 당장 팀에 나보다 3살 많은 야수가 세 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나를 가장 먼저 부르는 것은 좋지 못했다.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저들 역시 KBO에서는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선수 중에서 가장 빼어난 선수들이었고 그렇기에 자존심 역시 대단했다. 이런 사소한 것으로 굳이 그들을 긁을 필요는 없었다.

감독과의 면담 이후 돌아온 체육관. 역시 몇몇 선수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아무래도 대표팀 생활이 그리 순탄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첫날 가벼운 훈련이 끝나고 몇몇 친분있는 선수들이 한 방에 모였다.

“선배님, 그 새끼 그거 메이저리거라고 너무 잘난 척하는 거 아닙니까? 아까 보셨죠. 연습하는데 혼자만 특별대접 받는 거.”

“감독님이랑 코치님들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감독님도 그래요. 언론에서 좀 띄워주고 미국물 좀 먹었다고 메이저리거니 뭐니 해도 이제 1군에서 1년 뛴 녀석한테 그렇게 따로 신경 쓰고 그런 티 내는 건 좀 아니죠.”

충분한 휴식과 운동을 통해 미리 몸을 만들어 온 진호와 그들이 같은 훈련을 소화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감독, 코치진의 시선이 온통 진호에게 집중된다는 사실이었다.

대졸 출신의 프로 2년 차, 25살 상혁이 비분강개하며 말을 이었다.

“야구 혼자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래 봐야 진호 쟤도 9명의 타자 중 하나인데 특별 취급은 좀 아니죠. 게다가 미일 올스타 하는 거 보니깐 미국 애들도 막 외계인처럼 잘하고 그런 것도 아니더만요. 노모 히데오도 94년에 일본에서 그냥저냥 했었는데 미국 가자마자 그렇게 터진 거잖아요. 솔직히 KBO에서 3할 치는 선배들이랑 메이저에서 2할 8푼 치는 쟤랑 그렇게 차이 난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미국 투수들이 시속 150씩 던진다고는 하는데 여기 지금 소집된 선수들치고 그렇게 못 던지는 선수 없잖아요.”

상혁의 이야기에 몇몇 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플레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 이들이었다. 아직 인터넷도 활성화되지 않은 세상이었다. 프로선수라고 해도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 한 메이저리그의 경기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물론 박찬화의 진출 이후 공중파에서 종종 메이저리그 경기를 중계해줬지만 이들 대부분은 프로 선수였다. 박찬화의 중계가 이뤄지는 새벽시간, 혹은 이른 아침에 TV를 볼 환경은 되지 못했다. 몇몇 선수들이 그런 상혁과 선수들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상혁은 자신이 어제 했던 이야기가 인생의 흑역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빠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 1998년 메이저리그에서 2할 8푼을 치는 타자는 KBO 3할 타자와 차이가 났다. 그것도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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