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59화 (59/210)

# 59화.

유명세(2)

“아!! 이거 그 여자다.”

“그 여자? 너 파멜라 앤더슨을 알아?”

“어, 며칠 전에 영화 봤는데 거기 여자 주인공으로 나오던데.”

“아니, 그렇게 아는 거 말고,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한 적 있느냐고.”

“에이, 내가 영화배우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만나겠냐. 보니깐 잡지 광고 같은 거나 가끔 찍는 나랑은 아예 클래스가 달라 보이는구만.”

“근데, 파멜라 앤더슨이 인터뷰에서 네 이야기 했는데?”

“뭐라고?”

-베이 워치(SOS 해상 구조대)의 그녀 파멜라 앤더슨을 만나다-

에디터(이하 E):안녕하세요. 지난 비브 와이어 촬영 이후 3년 만이죠?

파멜라 앤더슨(이하 P):네, 벌써 그렇게 됐네요.

E:파멜라 앤더슨씨에게 명성을 안겨줬던 작품인 베이 워치가 올해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고 하는데 심경은 어떠신가요?

P:저야 뭐 일곱 번째 시즌을 마지막으로 하차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리즈가 아예 끝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으니 조금 싱숭생숭하네요. 가능하다면 마지막 시리즈에 카메오로라도 출연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작년 새롭게 들어간 드라마 VIP의 시즌2 제작이 결정됐다고 들었습니다. 일정상 가능 할까요?

P:물론이죠. 드라마 촬영이 바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거기만 매달리는 건 아니니깐요. 취미생활을 즐길 시간을 조금 줄이면 충분합니다.

E:취미생활이라면?

P:음, 요새는 야구에 푹 빠져있어요.

E:야구요? 파멜라 앤더슨과 야구라니. 조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네요.

P:지인을 따라 처음 경기장에 갔는데 완벽하게 빠져버렸어요. 조금 재밌는 점은 지인이 응원하러 간 팀이 아닌 상대 팀의 플레이에 빠져버렸다는 점이지만요.

E:혹시 응원하는 팀이 어딘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P:뉴욕 메츠에요. 이번에 몬트리올에 놀러 갔을 때 우연히 보게 됐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특히 그 등번호 2번을 쓰는 Jin-ho Kang이라는 선수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엄청 먼 곳에 떨어지는 공을 쫒아가서 잡아내는데 와우!!

E:그렇군요. 이름을 들어보니 아시아 쪽 선수인 것 같은데 아주 매력적인 선수인가봅니다.

P:들어보니깐 작년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촉망받는 선수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에디터님도 경기를 직접 보시면 반하실걸요.

E:하하, 전 스포츠 쪽은 영 관심이 없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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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별것도 아니구만. 그냥 우연히 경기 보러 왔다가 내 플레이가 보기 좋았더라 수준인데, 뭐 이런걸로 호들갑을 떨고 있어.”

“호들갑이라니, 파멜라 앤더슨이야 파멜라 앤더슨!! 베이 워치의 C.J 파커 파멜라 앤더슨!!”

“어어, 알았다. 파멜라 앤더슨이 나를 언급했네. 와아 신난다.”

“어휴, 앤더슨은 대체 이런 자식 뭐가 예쁘다고.”

“야구 잘하는게 예쁘다고 그러는거지 뭐. 너도 야구만 좀 잘해봐라. 파멜라 앤더슨이 아니라 샤론 스톤이 너 멋지다고 해줄테니깐.”

“그런 아줌마는 관심도 없거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파멜라 앤더슨의 미국 내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막연히 90년대 최고의 섹시스타는 샤론 스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미 4~5년 전부터 대세는 파멜라 앤더슨 쪽이었달까?

베이 워치라는 드라마 자체가 해양구조대가 사람을 구하는 모습을 그린다기보다는 하이레그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들이 슬로우 장면으로 달려나가는 모습을 그리는 드라마라는 느낌이었다.

당대의 섹시스타가 나를 매력적이라고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경기는 흘러갔고 그녀가 잡지에서 나를 언급했던 일은 그저 하나의 헤프닝 정도로 넘어가는 듯했다.

***

이른 아침, 나를 깨우는 가리비아의 재촉이 원망스러웠다.

“아, 10분만. 10분만 더.”

“안돼, 벌써 7시야.”

“이제 겨우 7시잖아. 딱 10분만 더!!”

어제 7시 30분부터 시작된 경기를 끝내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3시간 30분.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것저것 뒤처리를 끝내고 침대에 누운 시간이 새벽 1시. 만약 평소 일과대로였다면 9시나 10시 즈음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었다.

“오늘 더블헤더잖아. 첫 경기가 이제 5시간 후라고!!”

“아, 맞다!! 더블헤더!!”

이틀 전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휴스턴과의 1차전이 취소됐다. KBO라면 정규일정이 끝난 이후로 추가 일정을 편성하겠지만 1년 162경기. 미국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는 MLB의 일정상 그런 사치스러운 일은 거의 불가능이었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상 취소된 경기가 발생하면 이런 식으로 더블 헤더가 잡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젠장, 일정 한 번 더럽네.’

하지만 이번 더블 헤더는 그 중에서도 아주 지독한 일정이었다. 보통 더블 헤더의 경우 전날 낮 경기를 뛰고 충분히 쉬어준 다음 12시에서 1시 사이에 1경기, 그리고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뒤 두 번째 경기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어제 우리 경기의 경우 낮에 내리는 비는 둘째치고 일년에 몇 번 되지 않는 전국 중계 경기였던 터라 도저히 경기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3시간 30분짜리 격렬한 경기를 치르고 13시간 후에 2경기 연속으로 시합해야 하는 더러운 일정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가리비아의 도움 아래 가벼운 스트레칭을 끝내고 그가 준비해둔 식사까지 무사히 끝마치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나보다 먼저 도착한 선수들의 차량이 몇 대 보였다. 대부분이 어제 경기에서 뛰지 않았던 선수들이었다.

‘어제 경기를 뛴 선수 중에선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한 건가?’

헨더슨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의 경우 아예 출근 시간 자체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푹 쉬고 2차전에 제 기량을 발휘하라는 감독의 뜻이었다. 물론 나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나에게는 어제 경기도 뛰고 오늘 경기도 모조리 뛰어야 하는 매우 빡빡한 일정이 주어졌다.

“흐아암, 진호 일찍 나왔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그라운드로 나가려는 찰나 프레스톤이 들어왔다. 녀석 역시 어제와 오늘 경기를 모조리 출전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 현재 우리 팀 25인 로스터에 외야수는 네 명뿐이었고, 헨더슨의 경우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체력적인 부분에서 약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루이스 로페즈 같은 경우 외야알바까지 가능한 슈퍼유틸리티이기는 했지만, 타격이 그리 좋지 못한 만큼, 자주 기용되기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만으로 22살, 24살의 젊은 피들이 조금 더 고생하는 것이 정답인 셈이었다.

“어서 갈아입고 나가자. 너 몸은 좀 풀고 나온 거야? 밥은?”

“그냥 간단하게 스트레칭 정도? 밥은 오는 길에 트럭에서 타코 하나 사 먹었고.”

그라운드에서 꼼꼼하게 몸을 풀고 배팅 케이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제법 많은 동료가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이 선수들이 배팅 케이지가 아닌 그 뒤편 BP 존에 모여있다는 점이었다.

“응? 쟤들 근데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지?”

“그러게. 평일 낮 경기라서 BP 티켓 끊고 온 사람도 많지 않을 텐데.”

본래 우리 팀의 경우 BP 티켓 판매가 그리 활발한 편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경기 이전에 선수들의 연습을 구경하러 오는데 70달러 가까운 돈을 추가로 지출한다는 것은, 경기뿐만 아니라 선수 개개인에 대한 팬심 역시 상당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우리 팀의 경우 90년대 들어 형편없었던 성적 탓에 그런 팬심을 끌어낼 만한 스타가 많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는 제법 성적도 괜찮게 나오고 있었고, 헨더슨이나 허샤이저, 피아자 등의 전국구급 인지도를 지닌 스타들이 합류한 덕분에 그럭저럭 다른 팀과 비슷한 수준까진 올라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일 아침 10시에 BP 존이 붐빈다는 것은 어지간한 인기팀이 아니고는 있기 힘든 일이었다.

“뭐, 우리야 좋지. 저기 케이지 비었다. 바로 연습할 수 있겠네.”

본래라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배팅 케이지에 바로 들어가 방망이를 세웠다.

따악!!

잘 맞은 타구가 우측 담장 앞으로 떨어졌다.

‘흠, 느낌이 별로인데.’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한 탓일까? 스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달아 스무 개의 공을 후려쳤다. 일곱 개의 공을 잡아당겼고 열세 개의 공을 밀어쳤다. 배팅 횟수가 늘어날수록 슬슬 컨디션이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냥 몸이 조금 덜 풀린 거였구나.’

몇 개 더 치고 싶다는 생각. 하지만 오늘 있을 터프한 일정을 생각한다면 이쯤 해두는 것이 딱 좋을지도 몰랐다. 케이지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 케이지에서 공을 치던 프레스톤도 어느새 BP 존에 가 있었다.

‘대체 뭔데 저기 저렇게 모여있는 거야.’

문득 밀려드는 궁금증. 나의 발이 자연스레 BP 존으로 향했다. 선수들로 가려서 잘 보이지 않던 BP 존 라인 너머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열댓 명 정도? 그리고 그 열 댓명의 사람 중 유독 누군가에게 선수들이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이 보였다.

“어휴, 그렇게까지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잠깐 와서 얼굴 보고 간다고 해도 전혀 연습에 지장 주는 건 아니거든요.”

“아니에요. 그냥 팬으로 응원하고 싶어서 온 것뿐이에요. 그렇게 신경 써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하, 그렇군요. 아, 참. 이번에 그 베이 워치 마지막 시즌, 혹시 출연하시는 건가요?”

“글쎄요,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 여러 가지가 조정이 돼야 하는 일이잖아요.”

맙소사. 화려한 금발, 그리고 지금 당장이라도 발사될 것 같은 충실한 흉부. 파멜라 앤더슨이었다.

“어, 저기 왔네요. 연습 끝났나 본데요? 헤이, 진호 이리 오라고. 엔더슨씨가 네 사인 받겠다고 아침 일찍부터 이렇게 직접 찾아오셨다고.”

“안녕하세요.”

가까이에서 직접 본 파멜라 엔더슨은 정말 대단했다. 단순히 얼굴이나 흉부가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색기라고 해야 할까?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무언가가 묻어났다.

“잠깐 와서 사인하고 인사하는 것 정도는 연습에 방해되는 게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연습에 방해될까 봐 널 부르지도 말라고 하더라고.”

“유명한 스타이신데 이런 공개된 장소에 나오셔도 괜찮으세요?”

“네, 너무 붐비면 좀 힘들었을 텐데 다행히 이른 시간이라서요. 다행히 보디가드랑 스텝들, 그리고 일행들 표까지 넉넉하게 구매할 수 있었어요.”

맙소사, 어쩐지. 평일 아침 10시부터 타자들 타격 연습하는 걸 누가 이렇게 보러 왔나 했더니 그 대부분이 파멜라 앤더슨의 스텝들이었다.

“여기 유니폼에 싸인 부탁해요.”

“아, 네.”

자세히 보니 파멜라 앤더슨이 입고 온 것은 나의 홈 경기 어센틱 저지였다. 저지를 들어 가슴을 쭉 내미는 앤더슨. 흉부가 도드라지는 그 동작에 주변 선수들의 시선이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육중한 두 개의 봉우리 아래 사인을 끝냈다.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유니폼. 주변 녀석들의 시선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유니폼에 사인을 끝내고 그녀가 내미는 공, 그리고 또 다른 유니폼까지 모조리 사인을 해주며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경기까지 보고 가시는 건가요?”

“네, 물론이죠!! 더블헤더 전부는 힘들지 몰라도, 한 경기는 꼭 보고 갈 거예요. 응원 열심히 할 테니깐 꼭 이기셔야 해요.”

“네. 감사합니다.”

***

12시 15분. 더블 헤더의 첫 경기가 시작됐다.

첫 경기 휴스턴의 선발은 마이크 햄튼. 1999년 랜디 존슨과 함께 내셔널리그를 씹어먹었던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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