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84화 (84/210)

# 84화.

라스트 스퍼트(1)

-1999년 서브웨이 시리즈. 2:1 메츠의 승리!!-

-조 토레 뉴욕 양키스 감독 ‘메츠의 전력이 생각보다 강했다. 특히 타선의 폭발력은 27년의 Murderers’ Row를 떠올리게 할 만큼 대단했다. 비록 베이브와 루 게릭은 빠진 Murderers’ Row이지만 말이다.’-

-데릭 지터 양키스와 메츠의 월드 시리즈를 예상하다!! ‘오늘이 9월인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10월에는 다른 결과를 보여줄 생각이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페드로 마르티네즈 ‘꿈꾸는 것은 자유다.’-

9월 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3연전을 스윕하고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를 차지한 우리에게 닥친 최고의 어려움은 뉴욕 양키스와의 서브웨이 시리즈였다.

척 노블라우치, 데릭 지터, 폴 오닐, 버니 윌리엄스, 티노 마르티네즈, 칠리 데이비스, 리키 레디로 이어지는 7명의 타자들은 각기 0.8 이상의 OPS를 자랑했다. 물론 내셔널리그인 우리와 달리 지명타자가 있는 아메리칸리그인 데다가 지터와 윌리엄스를 제외한다면 OPS 0.8 초반대에 노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9명의 타자 중 방심할 수 없는 타자가 7명이나 된다는 것은 분명 무서운 일이었다.

게다가 올란도 헤르난데즈, 데이비드 콘, 앤디 페티트, 로저 클레멘스, 히데키 이라부로 이어지는 선발진은 누구 하나 만만한 자들이 없었고 그들을 뒷받침하는 불펜진, 그리고 모든 것을 종결짓는 마무리인 샌드맨 마리아노 리베라까지. 투타 어디에도 약점이 보이지 않는 거의 완전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양키스조차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피츠버그와의 시리즈에서 멀티 홈런 포함 3개의 홈런을 가동하며 32홈런을 채운 나와 29홈런에서 또다시 슬럼프가 찾아온 프레스톤. 그리고 공무원처럼 안타와 홈런을 쌓아나가는 피아자까지. 게다가 리키 헨더슨은 올 시즌 100볼넷을 채울 기세로 공을 골라냈고 올러루드와 벤츄라는 각기 팀 내에서 2번째 세 번째로 높은 연봉 값을 톡톡히 해냈다.

양키스와의 위닝 시리즈.

몇몇 뉴욕 언론은 우리들의 시리즈를 가리켜 이렇게 표현했다.

-미리 보는 월드 시리즈-

뉴욕의 두 팀이 각기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를 대표한다. 안 그래도 미국에서 가장 야구 열기가 뜨거운 뉴욕이었다(비록 대부분이 양키스의 팬이기는 했지만). 뉴욕의 극성맞은 언론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극성인 한국 언론에 더해 미국의 언론들까지 나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지금은 결별했다지만 머라이어 캐리라는 연상의 전국구 탑스타와 연애를 했던 지터와 파멜라와 연애 중인 내가 인지도 면에서 가장 높았던 만큼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TV쇼에 데릭 지터와 함께 출연하는 일까지 있었다. ‘뉴욕, 가장 매력적인 야구 선수 특집’이라는 상당히 민망한 제목으로 말이다.

어찌 됐건 그런 바쁜 일정 속에 시즌은 흘러갔다. 30-30클럽에 가입한 이후로도 나의 홈런포는 멈추지 않았다. 159경기를 소화한 상황에서 37홈런 46도루. 확실히 40-40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긴 쉬운 일이었다면 메이저 130년 야구 역사에서 오직 3명 만이 가입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이 모두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아직 3경기, 최소 12타석의 기회가 남아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저예산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찻잔 속의 태풍 수준밖에 되지 않는 빌리 빈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였다.

오클랜드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것은 2000년 이후다. 물론 1999년의 오클랜드도 무시할 수 없는 팀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실제 기여도에 비해 낮은 몸값을 받고 있었던 다수의 OPS 형 타자들을 싼값에 써먹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좋은 투수는 클래식 성적이 나쁘기 힘들다. 만약 클래식 성적이 나쁨에도 좋은 투수라면 그것은 타자구장을 쓰거나 혹은 팀의 수비가 막장인 땅볼 투수 정도인데 이정도는 굳이 복잡한 수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물론 비효율적으로 몸값이 부풀어있는 투수들을 가려내는 능력은 좋았다. 하지만 진짜 좋은 투수를 써먹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금이 필요했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스몰마켓이었다. 즉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2위를 달리는 팀이기는 했지만, 애슬레틱스의 선발진은 매우 약했다.

단 하나. 97년 드래프트로 입단하여 1년 만에 마이너를 박살 내고. 슈퍼 2를 피해 올 6월부터 메이저에서 뛰기 시작한 팀 허드슨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9월 30일. 160번째 경기를 앞둔 시점. 우리 미팅룸은 상당히 화기애애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올 시즌 지구 우승은 거의 확정이라고 봐야 했다. 무려 11년만의 지구 우승. 그리고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다. 분위기가 나쁠 수는 없었다.

준비된 스크린에서는 오늘 선발로 내정된 팀 허드슨이 공을 뿌리고 있었다.

“시원하게 잘 던지네. 저 친구가 올해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유력한 친구라지?”

“뭐,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공이 쭉쭉 잘 뻗네. 오늘 고생 좀 하겠는데?”

한마디씩 내뱉은 선수들 사이. 프레스톤 녀석의 표정이 어둡다. 아무래도 신인왕이라는 이야기가 또 녀석을 자극한 것 같았다. 이달 초 29호 홈런을 기록할 때만 하더라도 신인왕은 떼놓은 당상인 것처럼 굴던 언론이었다. 하지만 최근 6경기 27타석 1안타. 이미 언론은 프레스톤의 편이 아니었다.

‘어차피 기복이 있는 녀석이니 저러다가 컨디션 좋아지면 또 몰아칠 텐데.’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수 기용에 깐깐하게 참견하는 바비 발렌타인이 6경기 27타석 1안타를 기록하고 있는 놈을 주전 라인업에서 제외하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프레스톤 이따가 페퍼 게임 도와줄까?”

“어? 어.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너도 좀 도와줄까?”

“아냐, 난 됐어. 슬슬 시즌 막판이라 그런지 체력이 좀 부치네.”

문제는 프레스톤 본인이 자기 성적이 안 나오면 우울해한다는 점이었다. 평소 이런저런 행동은 뻔뻔하고 무덤덤한 주제에 야구에 관련된 부분 만큼은 예민하기 그지없었다. 뭐 그런 성격이기에 저렇게 노력하고, 그런 노력을 받아줄 만큼 튼튼한 몸뚱이를 타고났으니 계속해서 발전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옆에서 지켜보기에는 상당히 답답한 성격임은 분명했다.

네트워크 어소시에이츠 콜로세움(Network Associates Coliseum). 오클랜드가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이 늙은 구장의 시설은 형편없었다. 메이저리그 30개 구장은 물론 어지간한 마이너 구장보다도 더럽고 노후화된 야구장. 심지어 본래 미식축구 구장으로 설계된 탓에 홈에서 외야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파울 지역과 외야가 실로 광활했다. 덕분에 외야에 공을 보내면 높은 확률로 안타가 됐지만, 파울 지역에 공을 띄웠을 때 아웃이 될 가능성 역시 매우 컸다.

1회 초. 마운드에 오클랜드의 신인. 팀 허드슨이 섰다. 올 시즌 20번의 경기에 선발 출장해서 12승 8패. ERA 3.15를 기록 중인 젊은 투수. 다른 팀이었다면 그 팀에 전설적인 프랜차이즈로 남을만한 포텐셜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였다. 물론 오클랜드 소속이니만큼 FA로 팀에 남을 가능성은 없었고 5년 후 많은 돈을 받고 빅마켓으로 갈 테지만 말이다.

99시즌, 남은 경기는 3경기. 물론 포스트시즌까지 생각한다면 아직 상당히 많은 경기가 남기는 했지만 어쨌든 길었던 시즌의 끝이 보이는 상황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끝이 보일 때 한층 더 힘을 내는 법이다. 체력적으로 부쩍 힘들어하던 헨더슨이 모처럼 쌩쌩한 모습으로 타석에 섰다.

‘응?’

대기 타석에 서 있던 나의 눈에 특이한 점이 들어왔다. 최근의 리키 헨더슨을 상대로 전진 수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형태의 수비를 보여줬다.

[아, 이게 뭐죠?]

[우익수가 거의 내야까지 들어왔습니다. 이거 내야에만 다섯 명의 야수가 서 있습니다.]

밀어치기로는 절대 장타가 나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고서는 보여주기 힘든 형태의 수비형태. 상당히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였다. 헨더슨이 밀어치기로 높게 공을 띄우기만 한다면 무조건 2루타가 나올법한 시프트. 마운드의 팀 허드슨이 피칭에 들어갔다.

몸쪽 코스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팀 허드슨. 애초에 밀어칠 여지 자체를 주지 않겠다는 피칭이다. 나이를 먹어 파워가 떨어진 헨더슨에게는 확실히 힘든 상황. 하지만 리키 헨더슨은 리키 헨더슨이었다. 묵묵히 자신의 타격을 이어나가는 그에게 동요하는 모습 따윈 보이지 않았다. 빠지는 공을 골라내고 어정쩡한 공을 걷어내며 7개의 공을 지켜 본 헨더슨. 그가 여덟번째 공을 향해 강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딱!!

의도적인 밀어치기. 하지만 힘과 속도 모두 부족했다. 느릿한 타구가 좌측 파울라인 밖으로 높게 떠올랐다. 오클랜드의 일루수 제이슨 지암비가 달려갔다. 리그 최악의 수비로 이름 높은 그였지만 헨더슨의 타구는 너무 느렸고 네트워크 어소시에이츠 콜로세움의 파울 지역은 너무 광활했다. 다른 구장이었다면 충분히 내야석으로 들어갈 만큼 큰 파울타구가 지암비의 글러브에 들어왔다.

“아웃!!”

원 아웃 주자 없는 상황.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수비진이 또다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별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돌아가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좌, 중, 우를 가리지 않고 좋은 타격을 보여주는 나였다. 게다가 전진 수비를 하기에는 장타력이 뛰어났고 후진 수비를 하기에는 발이 너무 빨랐다. 특별한 시프트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오클랜드의 선택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응?’

[어? 이건 뭐죠?]

삼루수의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1, 2루 간을 지키는 유격수와 이루수. 그리고 삼루수는 유격수 자리로 이동한 시프트였다. 이것은 3루 파울라인을 따라 공이 제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땅볼로도 2루타가 나올만한 시프트였다.

[아, 이건 Kang의 경우 외야로 보내는 공은 좌, 중, 우를 가리지 않고 비교적 고르게 보내고 있습니다만 내야 땅볼 안타의 경우 1, 2루 간으로 집중된다는 것을 고려한 시프트인 것 같습니다.]

[외야로 보내는 공은 고른데 내야 땅볼 안타는 1, 2루 간에 집중된다고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1, 2루 간으로 빠지는 땅볼이면 1루와 더 가까우니 아웃이 될 확률이 더 높은 거 아닌가요?]

[확실히 거리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아무래도 당겨치는 타구가 밀어치는 타구보다 타구 속도가 빠르거든요. 그리고 좌타자의 경우 그 당겨친 타구가 향하는 곳이 1, 2루 간이고 타구가 강력한 만큼 내야수를 뚫고 안타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렇다면 어째서 다른 팀들은 저런 시프트를 사용하지 않은 거죠?]

3루 파울라인을 따라 텅 비어있는 지역이 보인다. 저기로 공을 굴리기만 한다면 안타는 확정적이다. 하지만 너무 뻔했다. 문제는 이 미끼가 그 뻔한 걸 알고도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될 만큼 너무나도 먹음직한 미끼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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