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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02화 (102/210)

# 102화.

밀레니엄(1)

2000년 9월 확장 로스터가 시작되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시점. 프레스톤이 자신의 집을 찾은 방문자를 향해 퉁명하게 입을 열었다.

“왔냐?”

“그래, 왔다.”

“이번엔 며칠이나 있으려고.”

“그리 오래 있을 생각 없어. 조만간 집 구해서 나갈 거다.”

“집을 구해?”

“어, 완전히 끝이야 끝. 젠장.”

“이 자식 또 이러네. 무슨 월간 행사도 아니고. 뭐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그러다가 조만간 또 좋아 죽는다고 만나겠지. 뭐.”

“아니거든. 이번엔 진짜 끝이라니까.”

프레스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벌써 6개월째다. 처음에는 진짜 심각한 일인가 싶어 이것저것 잘해줬지만,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녀석은 보이지 않고 타블로이드에 다정한 공개 데이트 사진이 올라온다. 아마 오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 베개랑 이불은 쇼파 옆에 있으니깐 나갈 때 정리해놓고 가라. 아, 이번에 아버지가 T 본을 좀 보내줬는데 그거나 구워 먹던지.”

텍사스의 농장은 여전히 훌륭했고 그곳에서 나오는 각종 고기들은 여전히 맛있었다. 이제는 고액연봉자가 된 진호였지만 궁상맞던 시절 작은 방에서 함께 먹던 고기를 그는 여전히 사랑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어? 야, 너 지금 우냐?”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진호 녀석의 눈가가 불그스름하다. 지금까지 6개월간 약 10여 번의 방문이 있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설마, 이번에는 진짠가?’

“뭔데, 말해봐. 내가 들어 줄 테니까.”

-Kang, 파멜라 결별 인정!!-

-이유는 성격 차이?-

-지난 몇 달간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오던 Kang과 파멜라 완전한 이별!!-

***

파멜라는 정말 괜찮은 여자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녀는 나와 완벽하게 어울렸다. 본래 사람과 사람이 100%를 딱 맞출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이 나와 잘 맞아떨어지는 그녀는 어쩌면 나의 반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내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취미가 존재했고 그녀는 그 취미를 절대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결별 이유는 파멜라 앤더슨의 성적 취향 때문?-

-다시 한 번 조명되는 파멜라 앤더슨의 남성 편력-

-강진호, 이별 이틀 만에 미모의 여성과 심야의 데이트?-

언론에서는 연신 우리의 결별에 대해 떠들었다. 이전 삶과 이번 삶을 통틀어 몇 번의 이별을 경험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별의 허전함에서 오는 슬픔보다 언론의 호들갑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경험이라니. 게다가 전국보급망이 실시된 지 3년째. 이제 슬슬 물이 오르기 시작한 인터넷 여론의 댓글들도 만만치 않았다.

-소문에 전남편이랑 섹스비디오 때문이라는데요?-

-그보다 파멜라가 강진호한테 비디오 찍자고 했는데 강진호가 거절해서 깨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요? 제가 듣기로는 정반대인데, 강진호가 그렇게 변태라고 하던데요.-

-어쨌든 둘이 헤어진 거 잘됐음. 난 솔직히 강진호가 파멜라 만나는 거 별로였음. 이번에는 좀 내조 잘하는 여자 만나서 야구에만 집중했으면 좋겠음.-

-맞아, 강진호 지금 성적이 작년만 못한 거 TV에 너무 많이 신경 써서 그런 것 같아요.-

-무슨 소리에요. 올 시즌 강진호는 작년보다 더 잘했어요. 지금 0.317/0.402/0.566 32홈런을 기록 중인데. 게다가 지금까지 보면 9월에 강진호 더 미치잖아요. 아마 올해도 40-40 충분히 해 먹을 것 같구만.-

-그래도 타점이 훨씬 적잖아염. 결국 타자는 타점인데염. 그래서 그런지 이번엔 MVP도 힘들꺼라고 그러던데.-

-타점이야 올 시즌 메츠가 밥상을 제대로 안 차려줬으니까 그런 거죠. 그리고 MVP는 개인 성적이랑 무관하게 포스트시즌 진출이 힘들어 보이니깐 그런거고.-

-리키 헨더슨님 그립습니다. ㅠㅠ-

***

“하하하, 캐시맨 넌 역시 돈값을 하는 녀석이야. 젠장. 회사의 다른 똥 덩어리들이 네 반만 닮았더라도 내가 좀 살만했을 텐데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입으로는 겸양하는 캐시맨이었지만 그 표정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더, 더, 더 나를 칭찬해라. 나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평소였다면 ‘말똥같은 자식. 나의 지시 없이 네 놈따위는 그저 말똥일 뿐이다!!’라고 외칠 조지 스타인브레너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과찬은 무슨. 하하하.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메츠 놈들을 망가트리다니. 모처럼 네 놈이 비싼 월급 값을 해냈구나. 시즌 초만 하더라도 이 머저리가 계획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주제에 대체 무슨 멍청한 짓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말이지.”

작년 놀라운 우승을 해낸 메츠는 윈터 시즌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아직 연봉협상까지 1년이 남아 있던 강진호에 대한 거액의 장기계약에 이어 휴스턴의 에이스 마이크 햄튼과 매년 20개 이상의 홈런을 적립하는 외야수 데릭벨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올 시즌 쏠쏠하게 활약한 24살의 발 빠른 백업 외야수 로저 세드뇨와 BA리포트 전체 84위의 좌완유망주 그랜트 로버츠와 94년 메츠의 드래프트 2라운드 60번의 좌완투수 카일 케셀을 지불했다.

물론 이름값만으로는 어림없는 트레이드였지만 2001년 휴스턴이 햄튼을 잡지 못할 것은 확정적이었기에 메츠의 유망주 둘, 그리고 휴스턴에서 즉전 감으로 쓸만한 주전 외야수를 빼오는 서로 간에 균형이 맞는 트레이드라 평가받았다. 트레이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메츠의 단장 스티브 필립스의 투수에 대한 집착은 실로 지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의 막강한 타선 위에 괜찮은 투수진만 더해진다면 2000시즌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재패도 결코 꿈이 아니었다.

계약이 1년밖에 남지 않은 4선발 마사타 요시이를 매물로 콜로라도의 라파엘 곤잘레스와 바비 존스를 데리고 왔다. 바비 존스의 경우 쿠어스에서 6.33이라는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였는데 메츠의 분석에 따르면 쿠어스를 벗어날 경우 솔리드한 3선발 혹은 4선발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선수였다.

메츠의 움직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99년 겨울 FA시장이 전체적으로 흉년이긴 했지만 그래도 잘 살펴보면 쏠쏠한 선수들이 제법 시장으로 나왔다. 그중 투수 최대어는 양키스의 데이비드 콘이었다. 하지만 양키스의 선수다. 데이비드 콘이 양키스를 떠날 거라고 예상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메츠는 데이비드 콘에게 상상을 초월한 거금을 내밀었다. 4년 5,500만 달러. 그것은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었다.

마이크 햄튼, 알 라이터, 데이비드 콘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선발라인.

물론 유입이 있으면 유출도 있는 법.

오렐 허샤이저가 다저스로 떠났다. 게다가 작년 부상 이후 영 시원치 않던 리키 헨더슨 역시 시즌 중반 방출됐고, 그렇게 방출된 헨더슨을 시애틀이 낼름 주워갔다.

그리고 존 올러루드. 99시즌 28홈런을 기록한 올러루드를 원하는 팀은 많았다. 그리고 선발의 보강에 많은 돈을 사용한 메츠는 그를 잡을 힘이 부족했다. 물론 대안은 있었다. 작년 내야백업으로 쏠쏠하게 활약한 유망주 맷 프랑코. 배트에서는 올러루드보다 조금 부족하지만 올러루드보다 훨씬 좋은 수비로 내야를 든든하게 안정시켜줄 타자였다.

그 외에도 시즌 중반 자잘한 트레이드들이 이어졌다. 메츠에게 이득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자잘한 트레이드들. 하지만 그 트레이드들은 하나같이 메츠의 유망주들을 대가로 했지만 올 해 두 번째 우승을 노리는 메츠였다. 현재를 얻기 위해 미래의 자원을 판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메츠는 터무니없던 공격력은 조금 꺾였지만 그를 대신할 단단할 마운드를 손에 넣은, 작년 이상의 전력을 갖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비록 리키 헨더슨이 메츠의 레전드는 아니었지만,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 그리고 마이너 행을 거부하는 것이 팀에게 손해가 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지만 그는 이미 라커룸의 중심 축 중 하나였다. 그런 그를 지명할당으로 내보낸 것은 악수 중의 악수였다. 게다가 5년 5,5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불러온 데이비드 콘은 콜로라도로 보내버린 마사토 요시이만도 못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그의 평균 자책점은 무려 5.71 팀의 모든 선발 투수 중 가장 나쁜 성적이었다.

그리고 팀에서 쓸만한 전력이라 평가했던 콜로라도의 두 불펜 투수는 이미 진작에 마이너로 내려간지 오래였다. 구단의 AAA팀인 노포크에서 평가하기로 그들은 AAA 수준도 채 되지 못하는 투수들이었다. 또한 에이스의 부담감을 벗은 알 라이터의 성적이 급락했다. 그것은 알 라이터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레이 오도네즈.

작년 2개의 홈런을 치며 자신의 징크스를 깨버린 남자.

하지만 그 징크스는 그의 높은 수비력을 담보하는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2000년 그는 작년까지의 활약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몰락했다. 그리고 레이 오도네즈의 수비가 없는 메츠의 내야진은 작년의 철벽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무너졌다. 올러루드를 대신해 맷 프랑코를 올린 보람 따윈 전혀 없는 처참함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마이크 햄튼, 진호, 프레스톤, 벤츄라, 에드가르도, 피아자등은 여전히 자신의 몫을 다했다. 하지만 내셔널리그 동부 지구에는 그들이 존재했다.

애틀렌타 브레이브스.

작년 디비전 시리즈에서 애리조나에게 패배했던 그들은 모아왔던 유망주들을 터트렸고 9월 초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이미 91승이라는 터무니없는 승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반면 메츠의 승리는 고작 79승.

물론 79승은 고작이라고 하기에 충분히 많은 승수였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가는법이다. 작년의 우승팀인 메츠의 승률은 여전히 5할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배리 본즈, 제프 켄트, 엘리스 벅스 삼인방을 내세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비상하면서 작년의 챔피언십 진출팀 애리조나와 함께 승리를 양분했다. 각기 84승 86승의 승수였다. 게다가 남은 일정 역시 원정 위주로 돌아야 하는 메츠에 비해 훨씬 인간적이었다.

그렇기에 산술적으로 메츠에게 아직 와일드카드의 희망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본다면 거의 불가능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참았던 것은 메츠 놈들에게 데이비드 콘을 뺏기지 않기 위해 6천만 달러를 부르는 일 뿐이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저 캐시맨은 메이저리그의 이 팀, 저 팀을 충동질하며 전력을 조정했고 결국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스티브 같이 어중간하게 똑똑한 친구들이 제일 쉬운 법이죠.”

“하하하, 젠장. 캐시맨.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진 않지만 넌 정말 최고야.”

***

“젠장. 망할 구단주 같으니. 대체 말을 들어 처먹질 못하는구만.”

뉴욕 메츠를 13년 만에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명 단장. 스티브 필립스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가 생각하기에 올해는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전력분석팀의 분석이 잘못됐고, 작년까지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던 선수들이 부진했으며, 부상의 불운이 겹쳤다. 그렇게 각종 불운들이 겹쳐 생겨난 고작 1년의 부진으로 해고에 대한 위협을 받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당했다. 작년 우승을 끌어낸 자신은 조금 더 존중받을 자격이 있었다.

“뭐? 와일드 카드에 실패하면 각오 하는게 좋을 거라고? 웃기지도 않는군. 내가 메츠 아니면 갈 곳이 없을 줄 아는 건가? 서른여섯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어 낸 단장을 원하는 팀은 이딴 거지 같은 팀이 아니라도 많다 이거야.”

시즌 중반 구단주의 제안들을 거절했던 것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작년 분에 넘치는 성공과 올 해 의도한대로 굴러가던 트레이드들이 그를 망가트렸다. 그래도 평균 수준의 기량은 가지고 있던 스티브는 이미 없었다. 그곳에 남은 것은 그저 29개 구단의 호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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