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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105화 (105/210)

# 105화.

2:1(2)

바비 발렌타인 감독의 얼굴에 고민이 서렸다.

‘올해도 타선은 크게 문제가 없겠어. 하지만 투수진이······.’

몇몇 자리는 이미 확정적이었다. 하지만 고질적인 선발 부족은 여전했다. 옥타비오는 훌륭하게 성장했지만, 그것은 선발의 형태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다재다능함이 부족했고 결국 다른 변화구들을 모두 포기했다. 옥타비오가 주력한 것은 오직 포심과 슬라이더 두 가지뿐이었다. 물론 투 피치로 훌륭한 선발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특별한 재능이 필요했고 옥타비오의 포심과 슬라이더는 훌륭했지만, 그것이 저 랜디 존슨이나 로저 클레멘스와 같은 수준은 되지 못했다.

‘그래도 옥타비오가 저런 식으로나마 성장해준 덕분에 뒷문은 어느 팀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다행이로군.’

지난해 메츠의 마무리를 맡은 아르만도 베니테즈는 99년 ERA 1점대의 위용을 다시 보여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컨텐더 팀의 주전 마무리에 어울리는 피칭을 보여줬다. 여기에 옥타비오 도텔이 더해진다면 이기는 경기의 8회와 9회는 거의 확실하게 틀어막을 수 있다고 봐야했다.

문제는 선발진. 알 라이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랜디 존슨이나 로저 클레멘스, 그렉 매덕스 같이 특별한 투수도 아니었다. 실수를 용납하고 격려를 통해 극복하는 그의 모습은 중하위권 팀의 에이스이자 클럽하우스 리더로서는 훌륭한 덕목이었지만 절대적인 승리를 추구해야하는 컨텐더팀의 에이스라고 하기엔 부족했다.

‘글렌든 러쉬, 스티브 트락셀, 릭 리드, 케빈 아피어, 디키 곤잘레스, 브렛 힌츨리프 정도인가.’

올시즌 그나마 선발 경쟁을 시켜볼 만한 투수들을 한명 한명 곱씹었다. 빅네임은 없었다. 전부 고만고만한 자원들과 이제 막 마이너에서 올려보낸 애송이들. 작년 마이크 햄튼이라는 걸출한 투수의 빈자리를 메울 방법은 도저히 없어 보였다.

데이비드 콘.

연평균 1,100만 달러의 투수. 그의 반등이 없다면 말이다.

***

“아무래도 조금 힘들 것 같아.”

피아자가 고개를 저었다. 야수 조보다 일주일 먼저 캠프에 합류해서 투수들의 공을 받았던 그의 평가다. 그의 평가가 틀릴 가능성은 적었다.

“뭐가 그렇게 안 좋은가요?”

“특별히 뭐가 안 좋은 게 아니야. 그냥······.”

말끝을 흐리는 피아자.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충분히 전달됐다.

‘젠장, 멍청한 스티브 자식 같으니.’

물론 굳이 이해하자고 노력해보자면, 최근 괜찮은 투수들의 몸값은 어마어마했고, 99년 데이비드 콘 정도면 정말 준수한 프론트 라이너였다는 점 정도였다. 실제 99년의 그와 비슷한 성적을 찍었던 올해 햄튼의 경우 28살로 아직 어린 나이라고는 하지만 8년 1억 2,100만 달러의 어마어마한 계약을 맺고 콜로라도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FA 당해 37살이 되는 투수에게 연 1,100만 달러씩 5년짜리 계약이라니 정말 터무니없는 계약이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5년이라는 기간이 진짜 큰 문제다. 아마 양키스에 그대로 잔류했다고 해도 기껏해야 2년. 아니 어쩌면 단년계약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컸다. 아무리 대약물시대이고, 일류의 선수들은 40대까지도 활약하는 일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스티브가 머저리였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는 계약이었다. 대체 캐시맨이 스티브에게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젠장, 햇수가 길면 금액이라도 팍팍 깎던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스티브가 남긴 이 거대한 똥 덩어리 같은 계약은 장기적으로 팀에 아주 큰 암 덩어리로 남을 가능성이 컸다. 당장 프레스톤 같은 경우는 나처럼 조기에 연장계약을 맺기 힘들 것이다. 그나마 녀석이 FA자격을 얻을 때는 저 똥 덩어리가 치워진다는 것 정도가 다행이랄까?

물론 전임단장의 계약인만큼 새로 부임한 미나야 단장이 어떻게든 치우려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연 1,100만 달러짜리 38세 투수가 작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서야, 아무리 많은 연봉보조를 한다고 해도 치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데이비드 콘을 다른 팀에 떠넘기는 것은 사기꾼으로 슬슬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저 오클랜드의 빌리 빈이라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

스프링캠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 하루 전. 나의 마음이 기묘한 흥분으로 가득찼다. 00년대 가장 위대했던 야구 선수의 신인 시절을 직접 목격하고 함께 경기할 수 있다는 흥분 때문이었다.

알버트 푸홀스.

전성기 ‘최소’ 역사상 10위 이내에 위치할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위대한 타자. 비록 몇가지 부상으로 인해 말년이 그리 좋지는 못했지만, 그 좋지 못한 말년에도 불구하고 그는 메이저 역사를 통틀어 스무 명 안으로 꼽히는 타자였다. 그런 타자의 신인 시절이라니. 천금을 내고라도 구경하고 싶은 장면이 될 것이다.

[메츠와 카디널스의 경기. 작년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2위 팀과 중부지구 우승팀의 맞대결입니다.]

[오늘 경기가 열리는 곳은 트레디션 필드. 메츠의 홈입니다. 오늘 메츠의 스타팅 라인업이 화려하네요.]

[그러게요. 거의 메츠의 베스트멤버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운드에는 1,100만 달러의 투수 데이비드 콘. 데이비드 콘입니다.]

[작년 그리 좋지 못했던 데이비드 콘 선수. 일각에서는 노쇠화가 아닌가 하는 시선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보여준 성적이 있는 투수고 구속 역시 그리 많이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충분히 반등할 수 있는 투수입니다.]

아직 스프링 트레이닝 초반. 게다가 카디널스 입장에서는 원정 경기였다. 이름값 있는 선수들은 아예 참가조차 하지 않은 시합이었다. 라인업의 대부분이 초청선수, 혹은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락가락하는 수준에 불과한 이들. 비록 주전 선수들보다 빠르게 몸을 만들어 왔다고는 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25인 로스터의 기량에 턱없이 미달되는 이들이었다.

딱!!

하지만 데이비드 콘은 그런 이들을 상대로도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이 볼!!”

약간의 데자뷰가 스쳤다. 트레디션필드. 전생에서 최악의 부상으로 나에게 야구를 뺏어갔던 바로 그 구장. 하지만 지금은 그저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구장일 뿐이었다. 높게 떠오른 타구를 전력으로 달려가 낚아 챘다.

[데이비드 콘 선수 한숨을 돌리네요. Kang의 좋은 수비!! 98년 데뷔 이후 3년 연속 골드글러브 수상자다운 수비입니다.]

[Kang이 올해로 4년 차인가요? 이제 플레이 하나 하나에 여유가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잔루 1, 3루. 1회 초 메츠가 카디널스의 공격을 무사히 막아냈습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콘 선수, 영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이거 구속이 좋지 않네요. 작년에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구속 자체는 거의 그대로였거든요. 이건 아무래도 아직 스프링캠프 초반이라 몸이 다 올라오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젠장. 피아자 말 대로네.’

노쇠화다. 이건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86마일이라니. 노련함이고 경험이고 뭐고 간에 구속이 86마일이 나오는 투수가 메이저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 구속을 초월하는 특별한 무기가 있지 않은 하에야 어림없는 소리다.

[자, 1회 말 메츠의 공격. 타석에는 1번 타자 리키 헨더슨 선수가 들어옵니다.]

[작년 시즌 중반 메츠에서 방출됐던 리키 헨더슨 선수. 자신을 방출했던 스티브 단장이 경질되고 올 시즌 또 다시 메츠에 돌아왔습니다.]

[헨더슨 선수 같은 경우 방출 이후 시애틀에서 반등에 훌륭하게 성공했습니다. 물론 헨더슨 선수를 대신해 메츠의 좌익을 지켰던 배니 아그바야니 선수도 그리 나쁜 건 아니었습니다만 메츠에 지금 필요한 자원은 리드 오프 쪽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리키 헨더슨 선수의 건강만 확보된다면 올 시즌 메츠의 타선은 99년 그 막강했던 모습을 어느 정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뻐엉!!

[리키 헨더슨 선수. 침착하게 공을 골라내며 볼넷을 얻어냈습니다.]

[자 타석에는 2번 타자. Kang입니다.]

마운드 위 투수의 표정이 어색했다. 입가에 웃음이 맺힌다. 난 저 표정을 알고 있다. 저것은 오래 전 타파니를 마이크 햄튼을 랜디 존슨을 그렉 매덕스를 그리고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의 표정이었다.

대단한 선수를 만나 각오를 다지는 모습. 메이저를 노리는 저 어린 유망주에게 비친 나는 긴장 속에서 조심스럽게 상대해야 하는 이 시대 가장 위대한 타자 중 하나였다.

초구 바깥쪽 꽉찬 볼.

이른 시기부터 빡세게 몸을 만들어온 투수답게 볼 끝이 예리했다. 앞서 우리의 마운드를 지켰던 데이비드 콘보다 훨씬 좋은 공. 하지만 너무 뻔했다.

딱!!

[Knag!! 초구 스윙!! 밀어친 타구가 2, 3루간을 뚫습니다.]

‘조금 늦었네.’

밀어쳤다기보다는 밀린 타구가 유격수의 글러브를 피해갔다. 겨울 시즌 빡세게 몸을 만들기는 했지만, 아직 타격감 자체는 돌아오지 않았다. 뭐 걱정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시범경기를 치르다 보면 타격감은 서서히 올라올 것이고 지금 나는 시범 경기 시즌을 통째로 날린다고 해도 몇몇 극성맞은 언론을 제외한다면 기량을 의심할 사람따윈 없을 만큼 자리를 잡은 선수였다.

***

3이닝 8피안타 2실점. 데이비드 콘이 오늘 경기 투구내용이었다. 물론 시범경기 초반이고 몸이 아직 다 올라오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가 상대한 타자들은 카디널스의 25인에 이름이 올라갈 확률이 극히 희박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상대로 고전이라니. 저절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오늘 푸홀스는 출전을 안 하네. 설마 몸에 문제라도 있는 건가?’

내가 기억하기로 푸홀스는 분명 마이너에서 보여준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홈에 남아서 경기를 할 리는 만무했고 원정에 따라 나왔을 터인데, 설마 아무리 그래도 푸홀스인데 이런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스타팅 멤버로 뽑히지 못했다는 것은 조금 의아한 일이었다.

“어이, 진호. 퇴근 안 해?”

“어, 먼저 들어가. 난 경기 좀 보고 갈 테니까.”

“그래? 알았어. 우린 항상 가던 곳에서 한 잔 걸칠 테니까 혹시 올 생각 있으면 연락하고 오던지.”

“제시네?”

“어, 제시네.”

“알았어. 가게 되면 연락할게.”

스프링 캠프 초반 시범 경기는 최대한 많은 선수들의 기량을 시험해야 했다. 그리고 그 시험 역시 기존 선수단에 대한 배려가 포함된다. 이미 자리를 잡은 선수들은 홈 경기 초반에 출전시켜 체크를 하고 자신의 타석이 끝나면 조기에 퇴근했고 나머지 선수들이 그 뒤를 이어 시험받았다. 나와 함께 스타팅멤버로 출전했던 프레스톤과 동료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우르르 빠져나갔다.

4회 초. 데이비드 콘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른 것은 케빈 어피어. 오랜 기간 켄자스시티 로얄스의 프랜차이즈로 활약했던 33세의 투수였다. 97년까지 거의 로얄스의 1선발이라고 봐도 무방한 활약을 보여줬던 선발 투수. 95년에는 올스타로도 한 번 선정됐던 경험이 있는 그는 98년 부상 이후 평범 미만의 투수로 전락한 상황이었다.

투수들의 몸값이 터무니없이 띄어 오른 올해였지만 그의 연봉은 옵션 포함 2년 1800만 달러. 그 옵션 역시 98년 이후 그의 활약을 살펴보면 달성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옵션들이었다.

‘어? 나왔다.’

[자, 타석에 빌 오르테가를 대신해 알버트 푸홀스. 알버트 푸홀스 선수가 들어옵니다. 올해 나이 21세. 지난 99년 13라운드로 카디널스에 합류한 어린 유망주입니다. 이 선수 경험은 많지 않습니다만 마이너 성적이 참 인상적이에요. 1년 사이 싱글A와 어드벤스드 싱글A에서 각각 0.324/0.389/0.565. 0.284/0.341/0.481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고 바로 AAA로 승격됐네요. 물론 AAA에서는 3경기 15타석 0.214/0.267/0.286으로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닙니다만 성장속도를 봤을 때 미래가 아주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빨간 모자에 카디널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알버트 푸홀스가 타석에 들어왔다. 에인절스 시절 푸홀스의 모습이 선명한 나에게 수염조차 나지 않은 뽀송뽀송한 모습에 날렵해 보이는 외관은 인상적이었다. 태도 또한 그러했다. 비록 21살이라고 보기엔 조금 노안이었지만 타석에 선 푸홀스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영락없는 애송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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