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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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확실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야.”
미나야 단장의 긍정적인 답변. 알레한드로의 얼굴에 안도가 감돌았다.
“이 보고서 작성자가 프리드먼이라고 했던가?”
“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친구인데 꼼꼼한 친구더군요. 제가 방향만 잡아줬을 뿐인데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잘 만들어 왔습니다.”
알레한드로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놨다. 애초에 보고서 자체를 자신이 작성했다고 하기에는 그와 프리드먼이 만나는 것을 본 눈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자주 만났기에 그가 프리드먼에게 보고서의 방향을 일일이 지시했다는 거짓말은 충분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그렇군. 그렇다면 이 시장확대에 관한 부분은 자네의 생각인 건가?”
“네? 아,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팀의 플랜을 생각해본다면 일본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 역시 제법 큰 시장이니까요.”
“송이라······. 확실히 나쁘지 않은 카드지. 일단 내 쪽에서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지.”
미나야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은 이제나저제나 혹시 모를 행운만을 기다리던 알레한드로에게 내려온 구원의 미소였다.
‘됐어!!’
미나야의 방을 떠나는 알레한드로의 발걸음이 가볍다. 그리고 알레한드로가 떠난 자리. 미나야의 얼굴에 어려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 모자란 놈이 이런 생각을 해냈을 리가.’
너무 뻔하게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리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조만간 잘라 버릴 녀석이었다. 본래는 제법 쓸만한 녀석이었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실수에 이미 망가졌다.
‘아직 조금 어설퍼. 하지만······. 프리드먼이라고 했던가?’
데이비드 콘의 처리와 한국 시장의 공략. 두 가지 모두 미나야가 염두에 두고 있던 부분이었다. 거칠고 서투른 계획이었지만 프리드먼의 보고서는 그 두 가지를 아주 절묘하게 이어붙였다. 보고서의 서투른 부분들은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된다.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이런 발상을 해냈다는 점이었다.
‘조금 지켜봐야겠어.’
***
-뜻밖의 반등? 케빈 어피어 21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
-프레스톤 윌슨 3경기 연속 무안타 부진!!-
-92마일 강속구!! 데이비드 콘 반등?-
-데이비드 콘 4이닝 3실점. 아쉬운 제구-
-배니 아그바야니 괴력의 5호 홈런포!! 스프링 트레이닝 최다 홈런포 기록!!-
스프링 트레이닝도 어느덧 중반을 넘어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북적거리던 라커룸은 이제 한산하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여, 배니 요즘 좀 치더라?”
“하하, 아직 한참 멀었어요.”
피아자가 아그바야니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자연스러운 스킨십. 배니 역시 자신에게 신경 써주는 피아자의 모습이 썩 기꺼워 보인다. 별것 아닌 행동이지만 무리에서 리더가 저렇게 관심을 준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마음속에 피아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새겨 넣었다. 지금은 아직 대형 라커 하나를 쓰는 팀의 일원이지만 언젠가 나도 저 피아자처럼 커다란 라커 두 개를 독차지하고 클럽하우스의 중심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한참 멀기는, 최근 아주 기세가 대단하던데. 올해 기대해도 되겠어.”
“뭐 기회가 온다면 말이죠.”
배니 아그바야니가 슬쩍 시선을 돌려 나와 프레스톤 그리고 헨더슨을 훑는다. 사실 작년 헨더슨이 방출된 이후 아그바야니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그가 지금 헨더슨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단지 현재 우리 팀에 필요한 것은 182cm 110kg의 전형적인 거포형 코너 외야수가 아닌 훌륭한 리드 오프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노리는 자리는 프레스톤의 자리일 확률이 높았다. 물론 나의 백업으로도 출전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중견 수비를 보기에 그의 글러브는 영 좋지 못했다.
‘프레스톤 녀석 긴장 좀 해야겠는데?’
99년 신인왕 수상에 이어 작년 34개의 홈런을 쳐내며 자신의 기량을 증명한 프레스톤이었지만 타율은 99년보다 더 떨어져 0.263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시범경기 역시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반면 작년 아그바야니의 타율은 0.289로 나와 피아자 에드가르도의 뒤를 이어 팀에서 네 번째로 높은 타율이었다. 다만 홈런 개수는 프레스톤에 비해 확실히 부족했는데 올해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는 그 홈런 개수마저도 프레스톤보다 더 많은 개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자, 3월 시범경기 일정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경기에 나오는 선수들은 대부분 25인 로스터에 포함이 될 선수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피츠버그의 선발 투수는 올 시즌 피츠버그 선발진의 한 자리를 담당해줄 것이라 예상되는 선수죠? 데이비드 윌리엄스입니다. 98년 17라운드 전체 508번으로 지명된 선수인데요. 최근 하위픽으로 뽑힌 선수가 메이저에 데뷔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고작 3년 만에 빅리그에 선발로 데뷔한다는 것으로 이 선수가 마이너에서 얼마나 놀라운 성장을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저 선수의 데뷔가 이야기해주는 것은 올해 피츠버그가 얼마나 암담한지를 알려주는 것 같군요. 물론 언젠가 메이저에 올라올 만한 잠재력을 갖춘 선수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만 제가 보기에 그게 올해는 아니거든요.]
92년 지구 우승 이후 무려 10년째 5할 승률을 넘기지 못하고 있는 약팀의 대명사. 보통 꼴찌를 하면 드래프트에 우선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 번 정도 반등할 법도 했지만, 약체팀에 어울리는 최악의 프런트가 드래프트와 트레이드를 모두 꾸준하게 실패해주고 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그들의 마운드 위에 얼굴에 여드름이 박박 난 애송이 하나가 섰다.
그래도 최근 성적이 제법 괜찮았는지 리키 헨더슨을 앞에 두고도 얼굴에 자신감이 흘러넘친다. 그런 애송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헨더슨의 표정이 아주 사악하다.
‘저 애송이 오늘 애 좀 먹겠는데?’
뻐엉!!
97마일.
확실히 젊은 나이에 메이저 콜업이 거론되는 투수답게 구속 하나만큼은 일품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아무리 강속구 투수라고 해도 커멘드를 갖추지 못한 투수는 헨더슨을 상대할 수 없다. 헨더슨이 9개의 공을 끌어내고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는 1루에서 암 가드와 풋 가드를 풀어 넘기며 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한다.
네 걸음의 넉넉한 리드폭.
애송이가 나에게 두 개의 공을 던져 볼카운트 1-1을 만들었을 때 리키는 이미 3루에 서 있었다.
‘바깥쪽 공은 제법 위력적이야. 근데 제구에 자신이 없는 티를 너무 내는데? 몸쪽으로는 아예 제대로 붙이지를 못하잖아. 게다가 선발로 뛰기에는 변화구가 영 좋지 못한데. 하긴 뭐, 피츠버그니깐.’
앞서 봤던 아홉 개의 공. 그리고 내가 직접 체험한 두 개의 공. 방망이를 감은 두 손에 힘을 더했다.
따악!!
[삼 구째!! 잡아당긴 타구!! 우중간으로 떨어집니다!!]
[Kang의 적시 이루타. 메츠가 1점을 앞서나가는군요.]
1회 초, 마운드를 내려가는 애송이의 얼굴이 발갛다. 확실히 타선의 힘은 99년에 비해 그리 뒤지지 않았다. 존 올러루드의 빈자리는 조금 아쉬웠지만, 올러루드 몸값의 반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영입한 토드 제아일의 타격 역시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역시 마운드다.
[자, 메츠의 마운드에 데이비드 콘 선수가 올라옵니다.]
[커리어 5번의 올스타, 94년 사이 영 위너. 99년 메이저 16번째 퍼펙트게임의 주인공. 데이비드 콘. 하지만 작년 메츠와의 장기계약 이후 성적이 영 좋지 못했는데요 그래도 최근 점점 몸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메츠는 콘 선수가 살아나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합니다. 연평균 1,100만 달러의 계약이 아직 4년이나 남았거든요. 물론 메츠가 빅마켓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1,100만 달러라는 금액은 보통 금액이 아닙니다.]
딱!!
[아드리안 브라운!! 쳤습니다. 빠른 타구!! 하지만 Kang!! Kang이 잡아냅니다.]
[나쁘지 않은 타구였습니다만 운이 없었네요.]
[메츠의 Kang과 애리조나의 앤드루 존슨 이 두 중견수를 만나는 것 자체가 타자들 입장에서는 항상 운이 없는 거라고 봐야겠죠.]
[데뷔시즌부터 압도적인 수비를 보여준 Kang 선수입니다만 최근에는 수비가 더 발전했다는 느낌이에요. 이전에는 어려운 공이나 쉬운 공이나 모두 다이나믹하게 잡아내는 느낌이었는데 최근에는 쉬운 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잡아내고 있어요. 지금 보시면 방금 타구도 마치 중견수 정면으로 온 공처럼 보이게 잡아냈지만 사실 어지간한 중견수라면 놓칠 수도 있는 타구였거든요.]
[아, 듣고 보니 그렇군요. 타구에 대한 반응이 정말 기가 막히네요.]
데이비드 콘이 몇 차례나 얻어맞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운이 따랐다. 그리고 운이 따른다는 것에서 자신감을 얻어서인지 몸 상태가 특별히 좋았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작년의 부진에서 반등이라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평소보다 괜찮은 공들로 몇 차례 삼진을 잡아내기까지 했다.
최근 몇 경기 타격감이 완벽하게 실종돼버린 프레스톤을 제외한다면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분위기에서 시합이 진행됐다.
“진호, 수고했다.”
잭슨 벤치 코치가 5회 수비를 끝내고 돌아온 나의 등을 두들겼다. 잘 풀리는 시합이었던지라 계속 경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스프링 캠프는 끝나지 않았고 코치진에게는 선수들을 시험해볼 무대가 필요했다. 확정적인 구성원을 우선적으로 제외하는 것에 불만을 품을 수는 없었다. 모자를 벗고 벤치에 털썩 앉았다.
[메츠, 2번 Kang을 대신해 배니 아그바야니. 배니 아그바야니 선수가 타석에 들어옵니다.]
[작년 0.281의 좋은 타율을 기록했던 아그바야니 선수. 올해는 장타력까지 갖춰 돌아왔습니다. 시범경기 벌써 다섯 개의 홈런을 기록했어요.]
[보스턴의 매니 라미네즈 선수와 함께 그레이프푸르트 리그 홈런 공동 선두에 올라와 있습니다.]
딱!!
[어? 어?]
타석의 배니 아그바야니가 배트를 휘둘렀다. 스윙 폼은 깔끔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윙에 담긴 힘은 무시무시했다. 높게 떠오른 타구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맥케츠니 필드의 담벼락을 훌쩍 넘어갔다.
[홈런!! 홈런입니다. 배니 아그바야니. 시범경기 여섯 번째 홈런. 대타로 출전해 첫타석에서 홈런을 기록합니다.]
옆자리 프레스톤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
“지금이 적기입니다.”
“흠, 그렇기는 한데, 조금 아깝지 않을까?”
“우리가 아깝게 느낄 정도는 돼야 저쪽에서 받아들일 겁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밸런스를 볼 때 이정도는 건네줘야 트레이드가 성립됩니다. 저쪽도 그 조시 베켓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유망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증명이 끝난 즉전감인데······.”
“대신 증명이 끝난 폐물도 고작 40%의 연봉보조로 넘어가지요.”
미나야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기를 손에 들었다.
“여어, 오래간만이야?”
“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