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2:1(5)
“그런데 왜 하필 배니 아그바야니지? 차라리 프레스톤 윌슨 쪽이 낫지 않아?”
알레한드로가 프리드먼에게 물었다.
“올 시즌 둘의 생산성은 아마 비슷할 겁니다.”
“그거야 나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왜 하필 아그바야니냐는 거야.”
“그거야 아그바야니 쪽이 더 그럴싸하니까요. 우리가 아무리 타율은 출루율과 장타율에 비해 생산성과의 연관이 떨어진다고 주장해봤자 아직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죠. 그건 현장의 사람들이 더 심합니다. 그리고 보스턴의 전력분석팀과 스카우팅팀은 아직 그 전통을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요.”
“그러니까 비슷한 생산성인데 그쪽이 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라 던져준다 이거야? 단순히?”
프리드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굳이 거기에 뭔갈 더 하자면 단기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쪽보다 이미 축적된 자료 쪽을 더 신뢰하는 편이라서요.”
***
‘저 녀석 설마······?’
배트를 휘두른 아그바야니의 몸이 휘청했다. 완벽하게 무너진 자세다. 그런데도 타구는 담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물론 모든 괴력의 타자들이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까지 아그바야니는 저런 말도 안 되는 파워를 가진 타자가 아니었다. 물론 열다섯 개나 되는 홈런을 쳐낸 만큼 로우파워 자체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분명 그는 그 로우파워를 살릴만한 스킬이 부족했고 그렇기에 기술의 완성에 따라 홈런 숫자가 증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은 기술이 성숙하여 게임파워가 증가했다기보다는 로우파워 자체가 매우 큰 폭으로 향상됐다고 보는 쪽이 타당했다.
‘아닐 거야.’
나는 배니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진심으로 야구를 사랑하고 자신의 재능이 메이저에 통용될만한 재능이라는 것에 감사하며 항상 진지하게 야구에 임하는 사내였다. 아마 그간 꾸준히 해온 웨이트 트레이닝이 마침내 빛을 발한 게 아닐까?
‘그럴 리가.’
홈런을 치고 돌아오는 아그바야니의 피부에 울긋불긋한 두드러기들이 보였다.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기술은 한순간에 극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피지컬은 정직하다. 그것은 오직 하늘이 내려준 재능 안에서 인간의 노력을 통해 선형적으로 증가한다.
단 한 가지.
금지된 약물들을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
“무조건 해야 합니다. Kim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아그바야니라면 지금 우리 외야의 어느 타자보다도 좋은 자원입니다. 그런 타자를 고작 유망주와 교환이라니. 작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인 양키스와 우리의 승차는 고작 2승이었습니다. 아그바야니라면 그 모자란 2승을 충분히 메꿔줄만한 타자입니다.”
“저도 괜찮은 딜이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송과 아그바야니의 단순한 맞트레이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건 사실상 연간 1,100만 달러의 4년이나 떠맞아야하는 댓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쪽에서도 연봉의 절반을 보조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550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아그바야니는 아직 연봉이 40만 달러밖에 되지 않는 3년차의 타자입니다. 그런 타자를 4년이나 싸게 써먹을 수 있다면 그 550만 달러의 값어치 정도는 충분합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 저는 데이비드 콘이 저대로 무기력하게 커리어를 끝낼 거라고 믿기 힘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던 보스턴의 단장 지미 윌리엄스의 얼굴에 고민이 서렸다.
“작년 Song의 성적이 어떻게 되지?”
“A- 로웰에서 13경기 72.2이닝 ERA 2.60 SO9(9이닝 당 삼진)이 11.5 BB9(9이닝 당 볼넷)이 2.5 SO/W(삼진/볼넷) 4.65였습니다. 재작년 루키 리그에서 던졌던 것보다 훨씬 발전한 성적입니다. 변화구만 조금 더 익는다면 어드벤스드 싱글A 혹은 더블A를 거쳐 바로 빅리그로 올려볼 만한 자원이라는 평가입니다.”
“구속은 90에서 94마일 정도에서 형성되지만 커멘드가 매우 좋습니다. 커브는 당장 빅리그를 기준으로 해도 45점 이상이고 최근 익힌 체인지업 역시 굉장히 빠르게 개선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포심의 구속을 어느 정도 조절하며 던질 줄 안다는 점입니다.”
“성적에 비해 구속과 구위가 그리 대단하지 않아서 상위리그에서도 지금과 같은 성적이 가능할지는 회의적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성장한다면 최소 솔리드한 선발자원 정도는 무난히 가능하다는 평가입니다.”
마이너의 많은 유망주들이 그렇듯 아직 변화구를 더 다듬을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성준은 최소 3선발을 장담할만한 선발 유망주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솔리드한 선발과 아그바야니라면 얼추 비슷한 무게감입니다만 한쪽은 아직 유망주이고 한쪽은 이미 증명된 선수입니다. 뭐 550만 달러는 조금 부담스럽습니다만 그게 데이비드 콘이라면 충분히 긁어볼 만한 복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 당장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터질지 안 터질지 모르는 투수 유망주를 붙들고 있는 것보다 우리에게 취약한 외야자원을 데리고 오는 쪽이 무조건 옳은 선택입니다.”
“저쪽에서 이런 좋은 제안을 하는 건 역시 전임단장의 실수를 빨리 치우고 싶어 하는 조급증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저희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조급증 때문이라면 조금 더 요구해도 들어줄 확률이 높습니다.”
“연봉보조를 10% 정도 더 요구해보는 것 어떨까요? 어차피 저쪽도 급한 모양새인데 그냥 들어줄 확률도 높을 것 같습니다.”
부하 직원들의 일치된 이야기에 윌리엄스가 어느정도 결심을 굳혔다. 그런데 그 때
“어? 단장님, 여기 이것 좀.”
“뭔데?”
-야, 너희 메츠 쪽에서 코니랑 배니로 트레이드 제안 왔다고 하지 않았어? 거절한 거야?-
“이게 누군데.”
“애너하임 쪽 동기인데 아무래도 메츠에서 저쪽도 찔러본 모양인데요?”
“애너하임이라면?”
“그쪽은 외야 자원이 꽉 차지 않았어?”
“대신 지명타자쪽이 완전 부실하잖아요. 아그바야니까지 네 명의 주전 외야수를 지명타자 롤에 돌려가면서 휴식을 주면 나쁘지 않죠.”
“젠장, 망할 놈들. 경쟁이라도 붙이겠다. 이건가?”
***
보스턴과의 통화가 있었던 바로 다음 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건내 놓고 뭘 그리 초조해 하고 있어.”
“하하, 그게 아무래도 실제로 뭔가 이뤄진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긴장돼서요.”
프리드먼의 이야기에 미나야가 가볍게 웃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긴장은 무슨.”
“어? 저쪽에서 먼저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거 아니었나요?”
“뭐, 그렇지?”
하지만 말과는 달리 유유자적하게 전화기의 번호를 누르는 미나야. 몇 번의 신호 뒤에 목소리가 들렸다.
“아, 나 오마 미나야인데. 혹시 빌 자리에 있나?”
“아 단장님은 지금 자리를 비우셨는데 혹시 급한 용무이신가요?”
“아니야. 뭐 나중에 다시 걸도록 하지.”
전화를 끊은 미나야가 프리드먼을 향해 웃었다.
“뭘 그리 놀래.”
“아뇨, 확실히 로드리게스라면 작년 성적이 Song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습니다만 변화구가 너무 부족하고 장기적으로 선발 보다는 불펜으로 전향할 가능성이 큰 투수입니다. 게다가 Song과 Kang의 시너지까지 고려한 플랜이라서. 물론 데이비드 콘을 그냥 껴안고 있는 것보다는 괜찮은 딜이기는 합니다만.”
“그만, 그만. 진정하라고. 어차피 애너하임 쪽이랑 거래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왜?”
“뭐, 잘 봐두라고.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말이야.”
-뉴욕 메츠 향후 4년간 데이비드 콘 연봉의 40%를 보조하는 조건으로 데이비드 콘, 배니 아그바야니 – 보스턴 레드삭스 Song.S.J 2:1 트레이드!! 타결-
re 케빈? Song.S.J? 이게 누군데 아그바야니에 코니를 보내고 데리고 오는 거야?
re S.J는 99년 보스턴이 90만 달러에 국제 유망주 계약으로 데리고 온 아시아 쪽 선수야. 작년에 하위 싱글 A에서 꽤 괜찮은 활약을 했고 스카우트들 평가도 제법 괜찮네. 특이한 건 이 친구 Kang이랑 같은 나라 출신인데?
re 미나야가 미친 건가? 지금 배니를 고작 하위 싱글 A의 유망주랑 바꿨다고? 차라리 보스턴의 Kim이라면 그래도 이해해보려고 노력은 하겠는데. 맙소사.
re 그냥 미나야가 데이비드 콘을 치우려고 좀 무리한 것 같은데?
re 이런 젠장. 무능력한 단장 놈을 보내고 나니 미친 단장이 오다니. 돌아버리겠네.
re 아니야, 꼭 그렇게만 보기도 힘든게 저 SJ라는 친구 스카우트 리포트가 굉장히 좋은데?
re 그래 봤자 지가 조시 베켓도 아니고 유망주 시절 스카우트 리포트가 좋은 선수가 어디 한 둘인가.
***
배니가 여섯 번째 홈런을 치고 며칠의 시간이 흘렀을 때, 뜻밖의 트레이드 소식이 들려왔다.
“성준이?”
“어, 알고 있어?”
프레스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묻는다. 물론 80년생인 녀석을 내가 제대로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다. 내가 미국에 건너올 때에도 녀석은 고작 중학생에 불과했다. 그저 가끔 통화하는 옜 동료들에게 건너건너 이름만 들어본 정도였다.
“뭐, 그냥 건너건너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지.”
“그래서 잘 하는 친구야? 음, 하긴 너를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도 생각보다 야구 수준이 높은 것 같으니······.”
“아니, 나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건 좀 그렇지. 나야 한국 역사상 최고의 재능 소리 듣던 사람이고. 그보다 우리 지금 즉전감 투수가 필요한 건데 유망주라니. 배니 정도의 자원이면 1년 렌탈 정도면 리그에이스급 투수도 데리고 올 수 있지 않나?”
“뭐 대신 코니의 연봉 60%를 떠넘기는 조건이었다니까. 사실상 유망주 하나 받고 연 660만 달러에 팔려간 셈이라고 봐야겠지.”
“우리 구단 얼마 전에 중계권도 계약 새로 해서 돈 많을 텐데. 우승을 위해서 팍팍 풀어도 모자랄 판국에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입으로는 약간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사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내심 이번 트레이드가 반가웠다. 요 며칠 아그바야니를 주의깊게 관찰한 결과 나는 녀석이 약물을 했을 가능성에 대한 심증이 점점 두터워짐을 느꼈다.
물론 녀석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작년 그렇게까지 활약했음에도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게 됐으니 답답할 만도 할 것이다. 당장 성공이 코앞까지 와있는 상황에서 경험하는 좌절, 그리고 유혹은 실로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변명일 뿐이지.’
배니 아그바야니와 데이비드 콘의 탈락으로 인해 로스터에 두 개의 빈자리가 생겼다. 트레이드로 영입된 성준이의 경우 즉전감으로 데리고 온 것은 아닐 테니 이번 시즌 무조건 마이너에서 시작하리라 생각했던 이들 중 두 명이 구제되는 셈이었다.
‘아니지, 550만 달러라는 여유자금이 생겼으니 그걸로 무언가 할지도······.’
스프링 트레이닝의 막판.
아직도 우리의 라인업은 확정되지 않았다.
***
“자, 이제 마무리만 남았군.”
“마무리라고는 하지만 이게 제일 중요한 딜이죠.”
“걱정하지 말라고. 댄은 정말 좋은 친구거든.”
미나야가 웃는다. 프리드먼 역시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이 바닥에서 좋은 친구란 호구의 다른 말이었다. 그리고 댄은 자신이 호구라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모르는 아주 좋은 친구였다.
-뉴욕 메츠 1M+훌리오 모레노+스티브 베넷-피츠버그 제이슨 슈미트 트레이드!!-
-사실상의 현금 트레이드? 일각에선 픽 거래 의혹도 제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