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빈 자리(2)
[Kang!! 홈런!! 홈런입니다.]
[7회 말 1:1의 팽팽한 상황을 깨는 Kang의 2점 홈런!!]
[01시즌 Kang의 첫 홈런포가 가동되네요. 커리어 90번째 홈런입니다.]
[이렇게 되면 오늘 경기는 메츠가 거의 잡았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메츠의 뒷문을 책임지는 옥타비오 도텔과 아르만도 베니테즈 모두 굉장히 훌륭한 투수들이거든요. 두 선수 모두 작년 기준으로 ERA가 2점대 중반입니다.]
8회 초 옥타비오 도텔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99년 5선발과 6선발을 오가며 팀의 우승에 일조했던 도텔이었다. 나쁘지 않은 활약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마이너 시절 최고의 자질을 갖춘 선수라는 평가를 들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턱없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이기도 했다.
뻐엉!!
98마일 속구가 시원하게 미트에 틀어박혔다.
“스트라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모든 투수는 항상 선발을 꿈꾸는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발로는 3류에 불과하던 그였지만 불펜으로는 일류 이상, 리그 최고 수준의 기량을 뽐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옥타비오 도텔, 언제봐도 참 시원한 공입니다. 볼 끝이 살아있어요.]
선발로 뛸 때보다 2마일 이상 올라간 속구가 홈플레이트를 가른다. 타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판의 손은 멋지게 올라온다.
“스트라잌!!”
그는 결국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커브와 체인지업을 손에 넣지 못했다. 투 피치 투수. 저 랜디 존슨과 로저 클레멘스처럼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옥타비오에게는 그들처럼 두 가지 공으로 9이닝 내내 상대 타자들을 압박할만한 힘이 없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슬라이더입니다. 옥타비오 선수의 슬라이더에 자비 로페즈 선수가 속아 넘어갔습니다.]
[지난 시즌에도 옥타비오 선수의 슬라이더는 우타자들을 상대로 가장 강력한 구종 중 하나였는데 올해는 그 각이 한층 더 예리해진 것 같네요.]
하지만 단 1이닝이라면. 타자들이 그의 공에 익숙해질 시간조차 없는 1이닝이라면. 그는 저 랜디 존슨이나 로저 클레멘스에 한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최고의 자질. 옥타비오 도텔이 브레이브스의 세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8회 말. 3:1 타석에 프레스톤 윌슨이 올라왔다.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물론 3연패를 해버린 팀의 분위기가 좋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일 테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작년, 혹은 재작년과는 달랐다.
‘마이크의 빈 자리가 크긴 크네.’
클럽하우스 리더의 부재. 연패의 안 좋은 분위기 속에서 팀을 다독일 리더가 없다는 것이 선수들의 사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고작 3연패 만에 아주 잘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경기는 질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연패는 안된다. 그것도 지구 라이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는 더더욱.
다행히 그의 절친한 친구 진호는 이런 위기 속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주인공 같은 기질이 있는 녀석이었다. 7회 말 팽팽한 승부를 깨트리는 투런 홈런포. 솔직히 말해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울었다. 하지만 프레스톤의 예감은 여전히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부웅
“스트라잌!!”
애틀랜타 역시 쉽게 경기를 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8회 말, 케빈 밀우드를 대신해 마운드에 올라온 호세 카브레라의 99마일 강속구가 프레스톤을 윽박질렀다.
잠시 타석에서 내려와 몸을 움직인다. 겨울 시즌, 가리비아의 철저한 관리 아래 만들어진 몸은 지금까지 시즌에 임했던 것 중 가장 완벽했다. 가볍고 강했다. 자세를 가다듬은 프레스톤이 다시 타석에 올라왔다.
호세 카브레라가 바싹 말라오는 입술을 혓바닥으로 훑었다. 강진호, 마이크 피아자, 로빈 벤츄라, 에드가르도 알폰조. 워낙에 쟁쟁한 타자들인지라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가 덜 가고 있었지만 프레스톤 윌슨은 결코 만만한 타자가 아니었다. 리그 외야수 전체를 통틀어 열손가락 안에는 꼽힐만한 방망이의 소유자다.
‘스윙이 예리해.’
대충이라도 얻어맞는다면 무조건 장타로 연결될 것 같은 위협적인 스윙. 카브레라의 두 번째 공이 바깥쪽 낮은 코스를 스쳤다.
‘큭!!’
본래 제구가 좋지 못한 카브레라였다. 그가 던진 공이 의도한 곳보다 훨씬 많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심판의 손이 올라왔다.
“스트라잌!!”
오늘 전반적으로 괜찮은 판정을 보여주던 심판의 실수. 카브레라에게는 천만다행인 순간이었다.
[프레스톤 선수 지켜 봅니다. 스트라잌!! 아, 조금 빠진 것 같았는데 스트라이크가 나오네요.]
[볼카운트 0-2입니다. 이거 프레스톤 선수에겐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로군요.]
선구안이 그리 좋지 못한 프레스톤이었지만 방금 공이 존을 빠져나갔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수 있었다. 프레스톤의 콧구멍이 커졌다.
‘젠장. 이런 공을 잡아주면 어쩌자는 거야.’
볼카운트는 0-2. 무슨 기계처럼 공을 구분하는 진호나 헨더슨이라면 모를까 대충 그럴싸한 유인구 하나만 들어오더라도 무조건 휘두르고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스크를 뒤집어쓴 자비 로페즈가 미티를 바깥쪽으로 갖다 댔다.
‘바깥쪽으로 하나 반 정도 빼 보자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질 줄 알았지만 말 그대로 던질 줄 아는 수준에 불과한 카브레라였다. 로페즈가 판단하기에 그런 어설픈 변화구를 던지느니 여기선 차라리 바깥쪽 빠른 공으로 프레스톤의 방망이를 끌어내 보는 편이 나았다. 헛스윙을 끌어낸다면 좋고, 설사 맞춘다 해도 좋은 공이 될 확률은 낮았다.
마운드의 카브레라가 세 번째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제구력이 그리 좋지 못한 카브레라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흔들려도 상관없는 안전한 공이였기 때문일까? 그가 던질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공이 포수가 요구한 곳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프레스톤의 몸이 맹렬하게 움직였다. 중간에 멈출 생각 따위는 보이지 않는 스윙. 카브레라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어?’
0.31초. 카브레라의 입 주변 근육이 미소에서 경악으로 바뀌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딱!!!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진 99마일 속구. 프레스톤의 배트가 그것을 정확하게 후려갈겼다.
[쳤습니다!! 강한 타구. 좌측으로 쭉쭉 뻗어 나갑니다.]
브레이브스의 좌익수 B.J 서호프가 펜스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잡을 수 있어.’
애초에 후진 수비를 하고 있었던 만큼 펜스까지의 거리는 짧았다. 서호프는 자신의 글러브가 충분히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운드의 카브레라 역시 간절한 시선으로 서호프를 바라봤다. 육중한 덩치의 프레스톤이 빠르게 달렸다. 1루를 지나 2루로. 110kg이 넘는 거구라고 믿기에 너무 빠른 속도였다.
‘쓸데없는 짓이야.’
잠시 낙구 지점을 예측해본 앤드루 존스가 고개를 저었다. 담장 너머 3미터 이상 먼 곳으로 떨어질 타구였다. 중간에 공을 훔치기에 서호프의 몸놀림은 굼떴고 그의 도약은 너무 부족했다.
‘만약 내가 저기 서 있었다면.’
아마 그랬다면 확률은 반반. 하지만 쓸데없는 가정이었다. 가장 훌륭한 외야수는 언제나 중견을 지키는 법이다. 세상에 자신과 같은 외야수가 둘이 아닌 이상에서야 저런 위치에 자신이 서 있을 확률은 없었다.
저 메츠의 Kang이 브레이브스에 온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9회. 메츠의 마무리 아르만도 베니테즈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99년 볼티모어와의 트레이드로 메츠에 자리를 잡은 직후 77경기 78이닝 1.85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메츠의 우승에 일조했던 그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불펜이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속구의 위력은 옥타비오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장기인 스플리터는 속구의 부족함을 메우고도 남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99년 그가 78이닝동안 잡아냈던 삼진은 무려 128개. 작년 조금 부진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76이닝 106개의 삼진을 잡아냈던 스플리터는 오늘도 브레이브스 타자들의 배트를 헛돌게 했다.
[9회 초 원아웃 4:1 상황. 타석에 앤드루 존스가 들어옵니다.]
[작년 0.303/0.366/0.541에 36홈런으로 커리어하이 성적을 기록했던 앤드루 존스 선수. 작년 아쉽게 1개 차이로 200안타를 놓쳤었는데 올 시즌 시범경기부터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오늘도 이미 안타를 하나 기록했어요.]
[자, 앤드루 존스 선수 과연 팀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 지구 라이벌인 메츠와의 경기에서 1승은 다른 팀을 상대로 거두는 2승만큼이나 값어치 있는 승리거든요.]
메이저 6년 차. 하지만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했기에 진호보다 오히려 한 살이나 어린 앤드루 존스였다. 일반적으로 타자들의 전성기가 27세부터 29세라는 점을 고려할 때 존스의 전성기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마운드의 베니테즈가 신중하게 공을 뿌렸다.
부웅
“스트라잌!!”
초구 스플리터. 앤드루 존스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같은 팀의 진호와 흡사한 타자였다. 압도적인 수비, 훌륭한 선구안, 무시할 수 없는 장타력. 하지만 앤드루 존스와 진호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적극성.
좋지 않은 공만 들어온다면 볼넷으로 나가는 진호와 달리 존스의 배팅은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 타율을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고전적 야구관의 영향도 영향이었지만 진호의 경우 나가기만 한다면 높은 확률로 2루를 훔칠 능력이 있는 데 반해 빠른 발에 비교해 주루플레이가 부족한 존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96년 이후 연평균 20개가량의 도루를 성공시킨 존스였지만 성공률이 70%를 넘긴 것은 절반이 채 되지 못했다.
존스의 배트가 연신 맹렬하게 돌아갔다.
파울, 파울. 그리고 또 파울
순식간에 카운트는 0-2
베니테즈의 다섯 번째 공이 날아들었다.
딱!!
강하게 돌아간 배트 끝에 베니테즈의 공이 걸려들었다. 낮게 깔린채 세차게 날아가는 타구. 그 끝에는 공을 던지고 이제 막 자세를 바로 잡는 베니테즈가 서 있었다.
“악!!!”
베니테즈의 정강이에 타구가 직격했다. 단말마와 함께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베니테즈. 그 사이 앤드루 존스는 1루에 무사히 안착했다.
[투수 강습 타구!! 베니테즈 선수 매우 고통스러워보입니다.]
[의료진이 급하게 들어옵니다. 아, 투수 교체, 투수 교체네요.]
시즌 일곱 번째 경기.
우리는 클럽하우스 리더에 이어 팀의 뒷문을 막아주던 든든한 수호신까지 잃어버렸다.
-메츠 4:3 신승!!-
-거듭되는 부상의 악몽. 메츠의 마무리 아르만도 베니테즈 15일 DL에 등재-
***
[아, 에드가르도 알폰조 선수의 송구 에러!! 타자 주자가 무사히 1루에 안착합니다.]
[메츠, 이게 무슨 일이죠. 이번 경기 벌써 네 번째 실책입니다.]
[이렇게 실책이 거듭되면 투수로서도 흔들릴 수밖에 없거든요. 좋지 않습니다.]
팀의 분위기가 가장 좋지 않을 때는 역시 연패가 이어질 때였다. 지난 1차전 이전 우리 팀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 라이벌팀을 상대로 1차전을 승리했고 연패의 사슬을 끊어냈다. 그렇기에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팀의 분위기는 슬슬 올라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라커룸은 정상적이지 못했다.
경기 막판 팀의 주요 전력이 부상으로 물러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승리는 승리였던 만큼 팀을 추스르고 분위기를 끌어올릴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만약 피아자가 있었다면 말이다. 결과적으로 3연패 끝의 1승은 팀의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 댓가는 다음날 곧바로 돌아왔다. 브레이브스와의 2차전. 실책이 난무하는 졸전 끝의 패배.
메츠의 가장 열정적인 팬 조차도 악담을 퍼부을 수밖에 없는 패배였다.
“젠장!!!”
실책을 저지른 사람도, 그리고 그걸 목격한 사람도 모두 짜증이 나는 상황. 나라도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성적이 매우 훌륭했다고는 하지만 이제 고작 4년 차. 게다가 아시안이었다. 인종 차별이 적극적으로 금지되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안은 비주류다.
망설임 그리고 용기의 갈림길에서 나의 라커룸 한쪽에 놓여있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Mike-
‘피아자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