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좋은 선수 너머(1)
-메츠 2차전 에러만 다섯 개, 졸전 끝에 7:2 패배-
-팀 내 불화설? 총체적 난국에 처한 메츠의 현 상황-
-‘공격의 맥을 끊는 레이 오도네즈 11타수 연속 무안타.’-
-잔루만 11개. 결정력이 사라진 뉴욕 메츠의 현 상황을 짚어본다.-
-뉴욕 메츠, 강진호의 4타수 2안타 분투에도 불구하고 7:2 패배-
-바비 발렌타인 ‘믿을 수 없는 에드가르도의 실책. 프로라면 나와서는 안 될 실수였다.’-
3차전이 시작되기 전 이른 오후. 새로 구입한 나의 볼보가 구단 지정 병원 앞으로 향했다. 병원 안 입원실에서 도저히 환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건강한 혈색의 피아자가 오른손을 흔들었다. 들고 온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기 무섭게 그가 말을 건넨다.
“요즘 개판이지?”
“네?”
“라커룸 분위기 말이야.”
누군가 벌써 상담이라도 한 것일까?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 외부 인원들에게야 비밀로 해야 한다지만 피아자를 상대로까지 그럴 이유는 없다. 그의 이야기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깐 빨리 털고 일어나세요. 피아자씨 없으니깐 팀이 아주 콩가루에요.”
“그 정도야?”
“뭐 투수 쪽이야 라이터 씨가 잘 통솔하고 있다지만 야수 쪽은 아시잖아요. 에드가르도랑 벤츄라랑 사이 별로인 거.”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하루 이틀 된 감정은 아니었다. 99년 벤츄라의 영입 이후 주전 삼루수 자리를 내주고 2루로 자리를 옮긴 것부터 에드가르도는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뭐, 데뷔 초창기에는 이루수와 유격수를 번갈아 봤던 에드가르도였기에 발렌타인감독으로서는 그게 가장 효과적인 배치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미 2년 내내 삼루에서만 뛰어왔던 에드가르도로서는 굴러온 돌에게 자신의 주포지션을 뺏긴 기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벤츄라에 비해 딱히 타격이 뒤처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타순에서도 밀린다는 것이 그를 한번 더 자극했다.
99년은 딱히 문제가 없었다. 그해 우리는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오를 만큼 승승장구했었고 로빈 벤츄라는 거액의 FA 다운 모습을 보여줬었다. 하지만 작년은 조금 달랐다. 시즌 중반 벤츄라는 크게 부진했고 에드가르도는 99년보다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에드가르도는 자신의 불만을 은근히 표출하기 시작했고 벤츄라는 자신의 커리어를 존중하지 않는 에드가르도의 모습에 분개했었다. 피아자와 나를 제외하고 가장 잘나가는 두 사람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에드가르도 쪽에는 팜 출신의 어린 유망주들이 벤츄라 쪽에는 FA나 트레이드를 통해 입단한 선수들이 모였다.
그렇게 두 선수의 감정 싸움은 어느새 팀 내의 출신에 따른 라인으로 발전했다.
“흐음.”
피아자가 가볍게 신음했다.
“게다가 올해 새로 합류한 선수들도 따로 놀고, 전체적으로 좀 그래요.”
“너는?”
“저요? 저야 뭐 본래대로라면 에드가르도 쪽이어야겠지만, 아시잖아요. 에드가르도도 저를 좀 부담스러워 하는 거. 그냥 이쪽도 저쪽도 아닌 상태죠 뭐.”
“아니, 너는 뭘 했냐고.”
이건 어떻게 해석해도 질책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가 없었던 며칠 사이 개판이 되는 라커룸을 바라보며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금 팀의 상황이 개판이 된 것을 나의 탓으로 돌리는 피아자의 말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뭐하기는요. 야구 했죠. 못 보셨어요? 그제 홈런 치고 어제는 멀티안타 친 거?”
나의 삐딱한 이야기에 피아자가 씨익 웃는다.
“그건 나도 잘 봤어. 팀 분위가 어떻건 간에 역시 잘하더라.”
“솔직히 제가 지금 그냥 자기 플레이 열심히 하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겠어요.”
“할 수 있는 거야 많지.”
“저 이제 4년 차거든요?”
“나도 알아. 2년 차에 MVP를 받아 낸 메츠 팜 출신의 4년 차 에이스지. 8년 8천300만 달러가 약속된. 그리고 네 앞에 나는 커리어 내내 MVP 한 번도 받지 못했던 심지어 홈팀에게 1,000만 달러 차이로 쫓겨난 선수였고.”
“아니 그거야 다저스가 나쁜 놈들이었던 거고요. 게다가 전 팜 출신이라고 해도 보시다시피 아시안이잖아요. 드래프트 출신도 아니라고요.”
피아자가 또 한 번 웃는다.
“알아. 90만 달러짜리 해외 유망주. 그리고 난 62라운드 전체 1390번. 1만5천 달러짜리였지. 솔직히 우리 아버지가 라소다 감독에게 샀던 밥값만 해도 그 계약금의 열 배는 될 거야.”
“하지만······.”
“아시안? 뭐 그래 좋아. 나도 사무국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아시안에 대한 차별이 아직 있다는 것 인정해. 하지만 그 아시안이 전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여배우와 교제하고 뉴욕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힌 남자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잖아.”
말을 끝낸 피아자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진호, 넌 이미 모든 이들에게 존중받고 있어. 물론 존중받는 것과 그들이 너를 따르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고,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어려운 건 당연해. 게다가 네 개인 성적만 생각한다면 그런 귀찮은 일을 신경 쓰기보다 묵묵하게 네 플레이에 전념하는 쪽이 낫겠지. 그리고 그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만!! 그만요. 피아자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알겠어요. 하지만 피아자 씨와 저는 상황이 달라요. 피아자 씨는 계속 본인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당시 메츠와 지금 메츠는 또 다르잖아요.”
“네 말이 맞아. 그 당시에는 팀의 중심이 될만한 선수가 전혀 없었지. 반면 지금은 에드가르도도 성장했고 누구 못지않은 커리어를 갖춘 벤츄라도 있어.”
나의 말을 순순히 인정하는 피아자. 하지만 그의 눈빛과 태도는 입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젠장.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에요.”
“난 솔직히 네가 리키와 어울리는 걸 좋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는 분명 위대한 선수야. 하지만 잘 생각해봐. 대체 누가 그를 사랑하지? 그의 커리어도 이제 슬슬 끝나가고 있어. 리키 헨더슨만큼 위대한 기록을 세운 선수라면 당연히 자신의 홈으로 돌아가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은퇴를 준비해야 해. 하지만 헨더슨은 지금 어디에 있지?”
“그건!!”
“물론 그가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고, 메츠를 사랑해서 메츠에 있다고 치자고. 그런데 그가 왜 메츠를 사랑하는 걸까? 자신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오클랜드를 더 사랑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가 애써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리키 헨더슨보다는 지금 내 앞에서 떠드는 피아자와 같은 선수가 될 생각이었다. 단지 아직 시기가 좋지 않을 뿐이다. 이제 고작 4년 차. 팀에는 나보다 훨씬 좋은 커리어를 가진 쟁쟁한 선수들이 존재했다. 지금 내가 나서 봤자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선수들은 많지 않다.
“그 정도는 나도 이미 알고 있어요. 단지 지금은 때가 아닌 것뿐이라고요.”
“때? 클럽 하우스에서 제일 목소리 크던 녀석이 자리를 비워서 다들 자기 잘났다고 떠드는 지금이 때가 아니면 대체 언제 그때가 온다는 거지?”
“커리어를 조금 더 쌓고, 팀원들 모두가 나의 말을 존중하는 시점이 오면.”
피아자가 나의 말을 끊었다.
“이봐 진호. 지금 동료들이 너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에드가르도가, 벤츄라가 어째서 너를 자신의 그룹에 넣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호 넌 MVP 위너야. 물론 네 커리어는 아직 짧아. 그리고 넌 아시안이지.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 거야? 중요한 것은 메츠의 선수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잖아. 지금 부족한 건 네 의지 뿐이야.”
“나의 의지······.”
***
[뉴욕 메츠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3차전 경기. 이곳은 셰이 스타디움입니다.]
[현재 시리즈 스코어는 1:1. 오늘 경기에서 이기는 팀이 위닝 시리즈를 가지고 가게 됩니다.]
[오늘 양 팀 모두 꼭 승리를 따내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 에이스끼리의 격돌이에요.]
[알 라이터 선수와 그렉 매덕스 선수. 지난 개막전에 이어 시즌 두 번째 맞대결이로군요.]
[에이스끼리의 맞대결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선발 투수만 봐서는 애틀랜타 쪽으로 많이 기우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야구는 선발 투수만으로 하는 경기가 아니거든요. 실제로 지난 1차전 알 라이터 선수는 승리를 추가하지 못했지만, 메츠는 승리했어요. 최근 몇 경기 조금 삐걱대는 감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메츠의 타선은 내셔널리그 최강이라는 표현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아, 마운드에 알 라이터 선수가 올라옵니다.]
98년 내가 21살의 나이로 메이저에 데뷔했을 당시 만 32세. 투수로서 절정의 시기를 보냈던 알 라이터다. 그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그는 늙었고 나의 성적이 더 나아지는 동안 그의 성적은 천천히 하락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메츠 투수들의 중심이었으며 선발 등판일에도 친절한 우리들의 에이스였다.
알 라이터가 등을 돌려 그라운드에 서 있는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망할 자식들. 오늘은 제발 좀 참아 달라고.’
에드가르도와 벤츄라를 중심으로 한 야수들의 분위기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감정적으로 다툼이 있다고 해도 오늘도 어제와 같은 난장을 부리지는 못할 것이다. 애초에 어제 있었던 그 터무니없는 플레이들에 대해서는 코치진은 물론이거니와 언론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왔었으니 오늘 또다시 그런 짓을 벌인다면 결코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녀석들도 충분히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오늘 선발인 알 라이터는 투수들뿐 아니라 우리 야수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은 사람이다. 나 역시 다른 투수, 심지어 나와 친분이 있는 옥타비오가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보다 알 라이터가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 더 열심히 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브레이브스의 1번 타자. 라파엘 퍼컬이 타석에 들어왔다. 도미니카 출신으로 작년 0.295/0.394/0.382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이며 브레이브스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찬 23세의 젊은 유격수였다.
89마일 포심 패스트볼이 존을 통과했다.
“스트라잌!!”
한때 평균 94마일 이상을 던지던 알 라이터였지만 나이를 먹는 대부분 투수들이 그러하듯 점점 구속이라는 무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공격적인 피칭을 했고 그것은 매우 유효했다.
딱!!
슬라이더. 빗맞은 공이 파울라인을 벗어났다. 볼카운트 2-0. 타석의 라파엘 퍼컬이 신중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세 번째. 알 라이터의 공이 그의 손을 출발했다.
딱!!
힘차게 돌아간 퍼컬의 배트. 알 라이터가 의도한 대로였다. 88마일의 컷패스트볼. 초구로 보여줬던 포심과 고작 1마일 차이나는 그 공이 라파엘 퍼컬을 교란시켰다. 빗맞은 타구가 2, 3루 간으로 흘렀다. 부상 이후 이전만큼의 미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를 보여주는 레이 오도네즈가 맨손으로 타구를 낚아챘다.
[레이 오도네즈!! 맨손으로 공을 잡아 그대로 1루에!!]
[1루에서!! 어?]
젠장. 토드 제아일이 오도네즈의 송구를 받아내지 못했다.
[라파엘 퍼컬!! 1루 지나 2루까지!!]
[아, 메츠!! 1회 초 또다시 실책이 나옵니다.]
[어제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기분이군요. 좋지 않습니다.]
***
“앙? 지금 이게 내 잘못이라는 거야?”